신명기 3:1-11

신명기 3:1-11

1-2 헤스본 왕 시혼을 무찌른 이스라엘 자손은 방향을 바꾸어 바산길로 올라갔다. 바산 왕 옥이 싸우러 나왔다. 주님은 헤스본 왕 시혼을 무찌른 것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그를 무찌르라고 명하셨다.

3-7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의 말씀대로 바산 왕 옥을 무찔렀다. 바산 왕국의 모든 성읍을 점령했다. 모든 성읍에서 남녀노유 할 것 없이 전멸시켰다. 성읍에서 노획한 모든 가축과 물건들을 전리품으로 삼았다.

8-11 이스라엘은 요단 강 동쪽 아르논 개울 가에서 헤르몬 산지까지의 땅을 시혼과 옥의 손에서 빼앗았다. (바산 왕 옥의 침대가 아홉자 곱하기 넉자라는 주석이 달려있다.)

//방향을 바꾸어. 이스라엘의 목적지가 헤스본 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많은 성읍들과 전리품을 차지했더라도 그곳은 눌러 앉을 약속의 땅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약에 따라 방향을 바꾸어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전에 ~처럼” 바산과의 전쟁은 헤스본과의 싸움의 판박이다. 이처럼 경험이 중요하다. 단 한번의 경험인데도 이스라엘 자손은 전에 헤스본 왕 시혼을 물리친 것처럼 바산 왕 옥을 물리쳤다. 성도는 순종의 열매들을 기억해야 한다. 순종의 열매들을 구슬처럼 꿰어 나가야 한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바산으로 올라오자, 바산 왕 옥이 군대를 끌고 나왔다. 그 자신감의 근거가 11절이다. 옥은 침대 크기가 4×1.8미터 정도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옥은 자신의 덩치만 믿고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아마 평생 덩치만 믿고 싸워왔을 것이고, 지금까지는 모두 이겼을지 모른다. 세상 싸움은 덩치나 숫자놀음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따른 싸움은 다르다. 세상조류가 아무리 거세도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다.

https://quietwaters.blog/2018/05/06

////세상조류에는 어리버리해도 하나님의 뜻에는 민감한 사람이 되자.

신명기 2:26-37

신명기 2:26-37

26-30 (주님은 모세에게 “아모리 사람 헤스본 왕 시혼과 그의 땅을 너희의 손에 넘겼으니, 싸워서 차지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24절) 그런데 모세는 헤스본 왕 시혼에게 사절을 보내어 그 땅을 평화롭게 지나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주님이 에서의 자손과 모압 땅과 암몬 땅에서 하라고 했던 방법처럼 그 땅을 지나는데 필요한 비용도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에서의 자손과 모압과 암몬 사람들이 자신들을 지나가게 해 주었다고 설명까지 했다. 그러나 헤스본 왕 시혼은 거절했다. 주님이 그 땅을 이스라엘에 넘겨 주시려고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모세는 말한다.

31-37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시혼과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 땅을 점령하여 유산으로 삼으라고 하셨다. 시혼이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나왔으나, 주 하나님이 그들을 이스라엘 손에 넘겨주셨다. 이스라엘은 그 땅을 점령하고 남녀노유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전멸시켰다. 오직 가축과 성읍에서 탈취한 물건만 전리품으로 삼았다. 이스라엘은 시혼 왕에게 속한 모든 땅을 빼앗았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따라 주님이 가지 말라고 하신, 암몬 자손의 땅과 얍복강 주변과 산지에 있는 성읍들은 접근하지도 않았다.

//모세가 아모리 사람 헤스본 왕 시혼에게 평화를 요구한 것은 주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일까? 친족이 아닌 이방 족속에 대해서도 친족처럼 대하고자 했던 모세는 과연 지면에서 가장 온유/겸손한 사람이다. 주님도 모세의 이런 진행에 기뻐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모사재인이라도 성사재천이다. 주님은 시혼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셔서 주님의 일을 진행시키신다. 온유한 마음을 완고하게 했다기 보다는 완고한 마음으로 그대로 내버려 두신 것이다. //화평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이것을 거부하는 완고함은 주님이 질색하시는 일이다. 결국 어리석은 시혼 왕을 따르는 사람들은 남녀노유를 불문하고 전멸당하고 만다. 출애굽 2세대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모르고 시혼 왕을 따르는 어린아이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으셨다. 성사재천이라는 큰 뜻에서 받아들여 보지만 마음 아픈 대목이다. 그만큼 지도자와 부모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배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취할 것은 취하고 손대지 말아야 할 것은 접근도 하지 않을만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자랐다. 그러나 얼마나 지속될지… 순종은 단회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 구원이 그렇다. 우리 믿음이 그렇다.

https://quietwaters.blog/2018/05/05

신명기 2:1-25

신명기 2:1-25

1 드디어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방향을 틀어 광야로 들어섰다.

2-6 오랫동안 광야를 떠돌다,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님은 모세에게 세일에 사는 에서의 자손과는 다투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필요한 것은 돈을 주고 사라고 하셨다.

7-8 주님은 광야 사십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계셨다. 주님이 함께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주님의 명령대로 친족 에서의 자손이 사는 곳을 비켜 모압광야로 들어왔다.

9-13 주님은 모압과도 다투지 말라고 하셨다. 모압 땅은 약속의 땅이 아니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의 명령대로 세렛 개울을 건넜다.

14-15 가데스바네아를 떠나서 세렛 개울을 건너올 때까지 삼십팔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출애굽 1세대 군인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다. 주님의 손이 그들을 완전히 멸하셨다.

16-23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모압을 지나 암몬 자손이 사는 곳으로 인도하셨다. 주님은 암몬과도 싸우지 말라고 하셨다. 암몬 땅도 약속의 땅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 땅은 롯의 자손에게 유산으로 주었다고 하셨다. 

24-25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르논 개울을 건너라고 하셨다. 그곳은 아모리 사람의 땅으로, 주님은 아모리 사람 헤스본 왕 시혼과 그 땅을 싸워서 차지하라고 명령하셨다. 이 싸움으로 하늘 아래의 모든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이스라엘의 소문을 듣는 사람마다 떨며 근심할 것이라고 하셨다.

//주님은 광야를 지나는 동안,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애서의 자손과 롯의 자손인 모압과 암몬 사람들과 다투지 말라고 명하셨다. 애서와 모압과 암몬이 차지하고 사는 땅은 주님이 그들에게 주신 땅이라고 말씀하신다. 곧 가나안 땅이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약속의 땅이라면, 애서와 모압과 암몬이 이미 차지하고 사는 땅은 그들에게 약속의 땅이다. 마침내 아모리 족속의 땅에 들어와서야 싸워서 차지하라고 명령하셨다. 약속의 땅이라고 거져 주어진 것이 아니다. 애서도 세일 땅을 쳐서 차지했고, 모압과 암몬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일반 은총에 순종해서 땅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언약의 백성은 언약에 순종해서 약속의 땅을 차지해야 한다. ///성도가 차지해야 할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나라다. 하나님의  다스림이다.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 땅에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세상 땅은 성도에게 주어진 약속의 땅이 아니다. 임마누엘이 성도에게 주어진 땅이다. 성도라면 자신의 임마누엘을 누리기 위해 세상 사람들을 괴롭게하거나 그들과 싸워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임마누엘을 위해 세상에 댓가를 지불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기 위해서는 댓가를 치러야 한다. 예수께서는  천국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성도가 치러야 할 댓가를 ‘그가 가진 소유의 전부’라고 말씀하셨다. ////성도에게 하나님의 다스림 외에 남은 것이 없을 때 세상은 성도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8/05/04

신명기 1:34-46

34-38 주님은 가나안으로 올라가라는 명령에 불순종하는 백성들에게 진노하셨다. 불순종하는 백성을 향해 악한 세대의 사람들이라 말씀하시며, 이들 중에는 약속의 땅을 볼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맹세하셨다. 다만 여분네의 아들 갈렙만이 주님께 온전히 순종했으므로 약속의 땅을 허락받았다. 그리고 모세마져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대신 모세의 보좌관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것이니,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라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약속의 땅이 하나님의 백성이 들어가야 할 최종 목적지가 아님이 분명하다. 약속의 땅은 일차적으로 가나안 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다스림, 곧 하나님의 나라다.

39-41 주님께서는 출애굽 1세대가 걱정했던 자녀들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광야에서 사십년동안 지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백성들이 주님께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올라가 싸우자고 말했다. 주님께서 올라가지 말고 광야길로 가라고 하셨는데 백성들은 경솔하게 산지로 올라갔다. //차라리 언약에 대해 잘 몰랐으면 용서받기 쉽다. 불순종은 불순종으로 이어진다.

42-45 주님께서는 산지로 올라가는 이스라엘 군사와 함께 하지 않으시고, 지금 올라가면 패한다고 하셨는데도 백성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올라갔다. 패전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들이 돌아와 주님 앞에서 통곡을 했지만, 주님의 말씀에 청종하지 않는 그들의 소리에 주님은 귀도 기울이지 않으셨다. //매 순간 청종하라

46 백성들은 혹시나 하고 가데스에서 많은 날을 보냈지만 (광야로 방향을 돌리라는 주님의 명령은 바뀌지 않았다.)

//주님의 명령은 늘 새롭다. 주님의 인자와 성실이 아침마다 새로운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매 순간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제의 말씀으로 오늘에 고집하는 엉뚱한 순종을 해서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임마누엘이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어제의 말씀을 붙잡는 것도 소용이 없다. 악한 세대 이스라엘 백성은 순종이 뭔지 몰랐다.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야한다. 어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순간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정말 어렵다. 일 자체에 집중하다보면 지금 하시는 말씀에 귀기울이기 어렵다. 일을 하다보면 내 생각대로 흘러가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매순간 귀기울여 듣고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통곡이다. 더 큰 문제는 통곡을 해도 주님이 우리 소리를 듣지 않으시고 귀를 기울이시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가데스에서 아무리 기다려 보아도 백성들은 주님의 뜻을 돌이킬 수 없다. 순종하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하나님이 함께 계실 때 온전한 순종을 할 수 있다. 임마누엘!

https://quietwaters.blog/2018/05/03/.

신명기 1:19-33

신명기 1:19-33

19-21 모세는 광야 사십년을 출애굽 2세대들에게 가르친다. 이스라엘 자손은 주 하나님의 명대로 가나안을 향한 걸음을 시작했다. 그리고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모세는 두려워하지 말고 겁내지도 말고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올라가서 차지하라고 말했다.

22-25 그런데 백성들은 모세에게 땅을 탐지할 사람을 먼저 보내자고 제안했고, 모세는 그 제안을 옳다고 여겨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두 정탐꾼을 파견했다. 정탐꾼들은 돌아와 ‘주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약속하신) 땅이 좋다’ 하고 대답했다.

26-28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올라가려고 하지 않았다. 정탐꾼들이 가난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보다 힘이 훨씬 더 세고 키가 크며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성벽에 둘러쌓여 있고, 심지어 그곳에 아낙자손까지 산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29-33 그 때에 모세는 그곳 사람들을 무서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했었다.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 하나님이 이번에도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돌보는 것과 같이, 광야 사십년 동안 돌봐주셨듯이 도와주실 것이라고 말했지만,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주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건만, 백성들은 여전히 주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가나안 땅 정탐은 모세에게도 옳게 보였다. 백성들이 가나안 땅이 좋은 것을 알면 당연히 하나님의 명령 대로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서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에 미치지 못한다. 정탐꾼들의 보고에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야 만다. 모세가 하나님께서 대신하여 싸워주실 것이라고 말했지만 백성들은 하나남을 믿지 않았다. 불순종의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다. //모세가 다시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선포하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언약을 잊어버리면 내 판단이 앞서게 된다. 불순종하게 된다.

https://quietwaters.blog/2018/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