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2:1-12

데살로니가전서 2:1-12 (공동번역) 읽기

1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자신들이 데살로니가를 방문한 것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2 바울 일행은 필립비에서 갖은 고생과 모욕을 당했고, 데살로니가에서도 심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담해하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했다. 3 바울 일행은 잘못된 생각이나 불순한 동기나 속임수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격려하는 것이 아니다. 4 하느님께 인정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 말한다.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느님을 기쁘게 하고자 말한다. 5 바울 일행은 자신들은 아첨과 속임수와 탐욕과 거리가 멀며, 하느님께서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신다고 말한다. 6 바울 일행은 사람에게서는 아무 영광도 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7 그리스도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았다. 다만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대했다고 말한다. 8 이런 어머니의 마음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나누어 주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목숨까지 바칠 생각을 할 정도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사랑했다고 고백한다. 9 바울 일행은 자신들의 수고와 노력을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기억해주길 바란다. 자신들이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노동을 한 것도 언급한다. 10 이렇게 자신들이 행동이 경건하고 올바르고 흠잡힐 데가 없었다는 것을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직접 보고 아는 일이며, 하느님께서도 증명해 주실 일이라고 말한다. 11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자녀를 대하는 아버지처럼,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생활을 하도돌 권고하고 격려하고 지도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하느님의 나라와 영광을 누리도록 가르쳤다.

//어머니처럼 아버지처럼.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때로는 어머니처럼 사랑했으며, 때로는 아버지처럼 훈계했다. 아버지 하나님처럼 사랑하고 훈계했다!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함이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는 동일하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한다. 가르치는 자는 경건하고 올바른 행동으로 흠잡힐 데가 없어야 하고, 가르침을 받는 자들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쉽지 않다. 끊임없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만 가능하다. 바울 일행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에는 필연적으로 고생과 모욕이 따른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고생과 모욕이 없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굳이 필요할까? 하고 반문해 본다. 고생과 모욕이 없는데도 자신을 위해 뭔가를 구한다면 탐욕/탐심이 아닐까? 이웃을 위해 간구하자. 이웃을 위해 구하는 것에도 고난이 따를 것이다. //어제 아내가 학교 채플시간에 들은 말씀을 잠깐 나눠주었다. “don’t be nice, be kind” 였다. NICE는 겉으로 보이기에 긍정적이고 예의를 갖추는 태도라면, KIND는 타인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고 배려하는 행동이다. 하나님은 NICE 보다 KIND를 원하신다.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랴와 맞아 떨어진다.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이웃에게 NICE 한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이웃에게 KIND 한 사람이 되자.

https://quietwaters.blog/2022/08/24/

데살로니가 1:1-10

데살로니가 1:1-10 (공동번역) 읽기

//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한다. 교회는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다. 개역개정은 ‘믿는’이라는 번역을 ‘안에 있는’으로 번역한다. 이처럼 믿음은 그냥 입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대상 안에 있는, 곧 믿음의 대상을 따르는 삶이다. 임마누엘!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한다. 자신들이 전한 복음을 그저 말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을 본받을 뿐만 아니라 주님까지 본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아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기 때문이다. 믿음의 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로 살았다. 이것이 믿음의 본이다. 사회적 성공이 (예를 들어 부자가 되거아 유명해 지거나 건강하거나, 자녀가 잘 되거나 등등) 믿음의 본일 수는 없다. 세상적 성공은 다시오실 주님을 기다리는데 방해가 될 것이다. 마라나타!

https://quietwaters.blog/2022/08/23

디모데후서 4:9-22

디모데후서 4:9-22 (공동번역) 읽기

9 바울은 디모테오에게 속히 오라고 편지한다. 10 데마는 현세를 사랑하여 바울을 떠나 데살로니카로 갔다. 그리스겐스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 11 루가만 바울과 함게 남았다. 바울은 마르코도 꼭 필요한 사람이니 데리고 오라고 당부한다. 12 바울은 디키고는 에페소로 보냈다. 13 바울은 자신이 트로아스에 있는 가르포의 집에 두고 온 외투와 책들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한다. 특히 양피지로 만든 책들을 꼭 가지고 오라고 요청한다.

14 바울은 구리세공업자 알렉산드로가 자신을 몹시 괴롭혔다며 그의 행실에 대해 주님의 마땅한 벌을 기대한다. 그리고 15 디모테오에게도 알렉산드로를 경계하라고 주의 준다. 알렉산드리아는 복음 전도를 악착같이 반대한 사람이었다. 16 바울은 자신이 재판받을 때 도와주지 않고 재판정을 떠나버린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엄한 벌을 받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17 바울은 주님께서 함께 계시며 힘을 주셔서 하느님의 말씀을 완전히 선포할 수 있었고, 하느님의 말씀이 이방인들에게 전해졌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주께서 자신을 사자의 입에서 구해주셨다고 말한다. 18 앞으로도 자신을 모든 악한 자들에게서 건저내어 구원하셔서 하느님의 나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확신한다. 하느님께 영광이 영원 무궁토록 있기를 기도한다 아멘

19 브리스카와 아퀼라에게, 오네시포로의 가족들에게 문안한다. 20 고린도에 머물러 있는 에라스도, 밀레도스에서 투병중인 트로피모의 소식을 전한다. 21 다시 한번 겨울이 오기 전에 오도록 힘쓰라고 당부한다. 유불로, 부덴스, 리노, 클라우디아와 그밖의 모든 교우들의 문안을 전한다. 22 주께서 디모테오의 마음속에 계시기를 빌며 독자들에게 은총을 내려주시기를 빈다. 

//사람들. 바울을 떠난 사람들, 현세를 좋아해서 떠난 사람, 각자의 길로 떠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바울 곁에 남은 누가가 있고, 바울이 보고싶은 마가와 디모데도 있다. 문안해야 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오네시보로 가족들, 에라스도 트로피모 유부로 부덴스 리노 클라우디아…함께 하든 떠나 있든 교회는 성도들의 공동체다. 바울의 서신들이 마무리 될 때마다 회자되는 이름들은 반갑지만,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떠났다는 데마와 같은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이름도 있다. 그러나 데마를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적어도 편지 앞머리에서 언급한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바울을 등졌다고 더 강한 표현을 쓰기 때문이다. 사실 바울도 바나바와 등졌고, 지금은 디모데에게 함께 오라고 요청한 마가를 한 때 버리기도 했었다. 따라서 바울을 버렸거나 등진 사람들에게 우리가 함부로 돌을 던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전한 말, 곧 복음을 대적한 알렉산더를 제외하고는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 알렉산더에 대해서도 주님께 행한 대로 심판하시길 바랄 뿐이다. //우리는 우리 편에 서지 않는 사람들과 등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사람은 우리를 떠난 사람들이 아니라, 복음을 떠난 사람들이어야 한다.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등을 돌린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정작 자신들의 잇권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라고 핏대를 세우며 분열되어 온 한국교회는 돌이켜야 한다. 나라고 이런 잘못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ㅠㅠ //성령께서 믿음의 가족들에게 늘 함께 하시길…

https://quietwaters.blog/2018/07/08/

디모데후서 4:1-8

디모데후서 4:1-8 (공동번역) 읽기

1 바울은 하느님앞과 다시 오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디모테오에게 명령하고 당부한다. 2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하고 당부한다. 기회가 좋든 나쁘든 꾸준히 전하고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사람들을 책망하고 훈계하고 격려하라고 명령하고 당부한다. 3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듣기 싫어하는 때가 올 것이라고말한다. 그러면 그들은 자기 귀를 만족시키는 마음에 맞는 교사들을 찾아 4 진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꾸며낸 이야기에 마음을 팔 것이다. 5 바울은 디모테오에게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뎌내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을 다하여 사명을 완수하라고 명령한다. 6 바울 자신은 이미 이 길을 걸어왔고 죽을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7 바울은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하고 고백한다. 8 이제 자신에게는 정의의 월계관이 기다린다고 말한다. 그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이 자신에게월계관을 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주님은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월계관을 주실 것이다. 9 바울은 디모테오에게 속히 자신에게로 오도록 힘쓰라고 편지한다.

//성경을 삶의 기본으로 삼는 사람은 기회가 좋든 나쁘든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은 건전한 가르침이라고 한다. 이 가르침은 건전한 삶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곧 변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귀를 만족시키는 사람을 찾고, 진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곧 불순종한다. 고난을 받으라는 명령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많겠는가? 그러나 복음에는 고난이 따른다. //바울은 자신이 살아온 길의 끝에 정의의 월계관이 기다린다고말한다. 믿음을 지킨 결과가 정의의 면류관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바울의의도는 정의야말로 믿음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정의는 공동체적인 가치다. 믿음은 나를 위한 것에 머무를 수 없다. 형제에 대한 사랑이다. 이웃사랑은 여기에서 나온다. (요1 3:14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을 벗어나서 생명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https://quietwaters.blog/2018/07/07/

디모데후서 3:10-17

디모데후서 3:10-17 (공동번역) 읽기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들을 멀리하라고 당부한 바울은) 10 디모테오가 바울 자신의 가르침과 생활, 생활목표와 믿음, 참을성과 사랑, 인내를 본받아 살아왔다고 (칭찬) 말한다. 11디모테오는 안티오키아와 이고니온과 리스트라에서 바울이 받은 박해와 고난도 함께 겪었다. 주께서는 이 모든 박해에서 바울을 건져주셨다. (당연히 바울과 함께한 디모테오도 건져주셨을 것이다.) 12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13 반면 악한 자들과 사기꾼들은 날이 갈수록더 사악해져서 남을 속이고 속기도 할 것이라고 말한다. 14 바울은 디모테오에게 배운 진리를 지켜나가라고 권면한다. 누구에게 그 진리를 배웠는지 일깨워 준다. 15 디모테오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익혀왔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지혜를 줄 수 있는 것이다. 16 성경은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데 유익한 책이다. 17 성경으로 하느님의 일꾼은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과 준비를 갖추게 된다.

https://quietwaters.blog/2018/07/06/

//성경은 어떤 책인가? 바울은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지혜를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설명한다. 이어서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데 유익한 책이며, 하나님의 일꾼으로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과 준비를 갖추게 하는 책이라고 설명한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지혜가 곧 성경에서 진리를 배우고, 잘못을 돌이키고, 허물을 고치고, 올바르게 살아, 하나님의 일꾼으로 모든 선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다고 한 순간에 완전한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없기에 말씀을 통해 자격과 준비를 갖춰가야 한다. 이 노력이 없다면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은 없는 종교인에 불과하다. 바울과 디모데처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을 능력이 있어야 한다. (성경은 도깨비 망망이가 아니라 환난-인내-연단-소망을 이루게 하는 보물지도다. 보물섬을 향한 항해는 쉽지 않다.) //예수님의 말씀을 곱씹어보면 말씀을 듣기만 해서는 안 되고, 듣고 행하는 자가 되라고 하신다.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