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6:1-21 (공동번역)
이스라엘 백성 온 회중은 엘림을 떠나 엘림과 시나이 산 사이에 있는 씬 광야에 이르렀다. 이집트를 떠난 지 한 달째 되는 보름날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온 회중은 이 광야에서 또 모세와 아론에게 투덜거였다.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야훼의 손에 맞아 죽느니만 못하다. 너희는 거기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우리를 이 광야로 데리고 나와 모조리 굶겨 죽일 작정이냐?” 그러자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먹을 것을 내려줄 터이니, 백성들은 날마다 나가서 하루 먹을 것만 거두어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이 백성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해 보리라. 여섯째 날 거두어들인 것으로 음식을 차려보면 다른 날 거두어들인 것의 곱절이 되리라.” 모세와 아론은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였다. “저녁에는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너희를 이끌어내신 분이 야훼임을 알게 되리라. 그리고 아침이 되면 야훼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 야훼께서는 너희가 당신께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셨다. 우리가 무엇이라고 너희는 우리에게 불평하느냐?” 모세는 말을 계속하였다. “야훼께서 저녁에는 먹을 고기를 주시고 아침에는 배불리 먹을 빵을 주신다. 야훼께서 당신께 불평하는 너희의 소리를 들으셨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이냐? 너희가 하는 불평은 우리에게가 아니라, 야훼께 하는 것이다.”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백성 온 회중에게 일러주시오. 야훼께서 그들의 불평을 들어주셨으니, 모두들 그의 앞으로 나오라고 해주시오.”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 온 회중에게 말하고 있을 때 그들이 광야 쪽을 바라보니, 야훼의 영광이 구름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그들에게, ‘해거름에 고기를 먹고 아침에 떡을 실컷 먹고 나서야 너희는 나 야훼가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되리라.’ 하고 일러주어라.”
저녁 때가 되자 난데없이 메추라기가 날아와 그들이 진을 친 곳을 뒤덮었다. 아침에는진 둘레에 안개가 자욱하였다. 안개가 걷힌 뒤에 보니 광야 지면에 마치 흰 서리가 땅을 덮듯이,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여 있었다.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이게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야훼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시는 양식이다. 야훼의 명령이니 저마다 먹을 만큼씩 거두어들여라. 한 사람에 한 오멜씩 식구 수대로 거두어 들이면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키는 대로 하였다. 많이 거두어들이는 사람도 있었고 덜 거두어들이는 사람도 있었으나, 오멜로 되어 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결국 저마다 먹을 만큼씩 거두어들였던 것이다. 모세는 그들에게 먹고 남은 것은 그 다음날을 위하여 남겨두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런데 모세의 말을 듣지 않은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이튿날 아침, 그들이 남겨둔 것에서 구더기가 끓고 썩는 냄새가 났다. 모세는 그들에게 몹시 화를 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침마다 먹을 만큼씩만 거두어들였고, 그 나머지는 햇볕에 녹아버렸다.
출16:1-21
//샘이 있고 종려나무가 있는 엘림을 떠났다. 엘림이 살기 좋아도 약속의 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길을 떠나야 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움직였다.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탄탄대로가 아니다. 광야의 길이다. 성도의 삶도 탄탄대로가 아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길은 광야와도 같다. 시험이 많다. //출애굽한지 한 달이 지났다. 출애굽 후 무교경만 먹었을까? 이스라엘 백성은 무교병에 질렸던지, 아니면 무교병마저 다 떨어졌던지 먹을 것을 달라고 불평했다. 어쩌면 우리 문화로 하면 중노동후에 먹던 삼겹살과 소주가 그리운 것이다. 불평을 들으신 하나님은 메추라기와 만나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신다. 그렇다고 그들의 탐욕과 배부름만을 채워주시기 위해서는 아니다. 출애굽의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다. 불평에 교훈으로 답해주셨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일용할 양식! 탐욕적이고 배불리 먹을 양식을 구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이 역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알라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는 것은 나의 내일을 위하여 오늘 내 것을 남기지 않음을 의미한다. 공동체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여 내 것을 공동체를 필요에 따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줄 안다면 내일을 위해 내 것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각자 먹을 만큼만 거두면 된다. 굳이 더 거두어야 한다면 그것은 거둘 힘이 없는 사람 대신 거두어 그사람에게 갖다주기 위해서여야 한다. 나의 필요가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신다. 나아가 성도는 육의 양식으로만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자신이 생명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글을 읽는다면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기도해야 할 만큼 어려운 사람은 아니다. 일용할 양식을 나눠야 할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