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8:13-27 (공동번역)
이튿날 아침, 모세가 백성들의 소송을 재판하기 위하여 재판석에 앉았다. 백성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둘레에 서 있었다. 모세의 장인은 모세가 백성을 다스리느라고 애쓰는 모습을 보고 말하였다. “백성을 이렇게 다스리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둘러서 있는 이 백성을 왜 혼자 앉아서 다 처리하는가?”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께서 판가름해 주셔야 할 일이 생기면 저에게로 옵니다. 무슨 일이든지 생기면 저에게로 옵니다. 이웃끼리의 문제를 제가 재판해 주고 하느님께서 지키라고 주신 규칙도 알려주어야 합니다.” 하고 설명하였다.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충고하였다. “이렇게 해서야 되겠는가? 자네뿐 아니라 자네가 거느린 이 백성도 아주 지쳐버리고 말겠네. 이렇게 힘겨운 일을 어떻게 혼자서 해내겠는가? 이제 내가 한마디 충고할 터이니 들어보게. 아무쪼록 하느님께서 자네를 도와주시기 바라네. 자네는 백성의 대변인이 되어 그들이 제시하는 소송들을 하느님 앞에 내어놓게. 그리고 그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알려주어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주게. 하느님을 두려워하여 참되게 살며 욕심이 없고 유능한 사람을 찾아내어 배것을 다르시레 세워주는 것이 좋겠네. 천명을 거느릴 사람, 백명을 거느릴 사람, 오십명을 거느릴 사람, 심명을 거느닐 사람을 세우게. 언제나 그들을 시켜 백성을 다스리게 하고 큰 사건만 자네에게 가져오도록 하게. 작은 사건은 모두 그들에게 맡겨두게. 그들과 짐을 나누어 자네 짐을 덜도록 하게. 자네가 이와 같이 일을 처리한다면, 이것이 곧 하느님의 뜻에도 부합되고 자네 일도 다 감당할 수 있어 이 백성이 모두 만족해서 집으로 돌아갈 것일세.” 모세는 장인의 말을 듣고 그대로 하였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유능한 사람들을 골라내어 백성의 지도자로 삼았다. 천명을 거느릴 사람, 백명을 거느릴 사람, 오십명을 거느릴 사람, 십명을 거느릴 사람을 세워 늘 백성을 다스리게 하였다. 그들은 어려운 일은 모세에게 가져왔지만 사소한 일들은 모두 자기네가 다스렸다. 얼마 있다가 이드로는 모세의 배웅을 받으며 제 고장으로 돌아갔다.
출18:13-27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충고. 가르치는 일이든 재판하는 일이든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 짐을 나누어 처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고 백성들도 만족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드로의 이런 지혜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드로는 (보조)지도자의 자격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참되게 살며 욕심이 없고 유능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제가 하나님(신)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이드로는 모세와 출애굽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야훼’ 라는 하나님(신)의 이름 직접 사용하지만 일반적인 대화에서는 그냥 하나님(엘로힘)을 사용한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직 ‘야훼’ 하나님에 대해 잘 모르는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라면 하나님(신)을 두려워해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공동번역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여 참되게 살며 욕심이 없고 유능한 사람을 보조 지도자로 세우라고 했는데, 개역개정에서는 능력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일을 미워하는 자라고 번역한다. ‘유능한과 능력있는’은 위치가 바뀌었고 ‘참되게는 진실하며’로 ‘욕심없고는 불의한 일을 미워하는’과 짝을 이룬다. 그렇다면 불의한 일을 미워한다는 것은 곧 욕심이 없다는 뜻이다. 재판관, 지도자는 욕심이 없어야 한다. 뇌물에 대한 유혹에 빠지기 쉬운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최종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그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우리는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보조 지도자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존재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돌아갔다. 모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방 제사장인 장인 이드로에게 이집트 왕궁에서도 배우지 못한 행정능력을 배웠다. 일반은총적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은 민족적 국지적 하나님(신)을 뛰어넘는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은 기독교의 하나님(신)을 초월한다. 따라서 외부에서 교회에 유입된 것이라도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라면 지혜롭게 받아들여야 한다. 기독교라는 종교에 창조주 하나님을 가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경건이다. 불신앙이다. 하나님은 종교보다 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