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1:1-11

사사기 11:1-11 (공동번역)

마침 길르앗 사람 가운데 입다라는 굉장한 장사가 있었는데, 그는 길르앗이라는 사람이 창녀의 몸에서 얻은 아들이었다. 길르앗의 본처에게서 난 아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 아들들이 자라서 입다에게 “너는 바깥 여자에게서 난 놈이야. 그러니 우리 아버지의 상속을 받을 수 없어.” 하면서 그를 쫓아내었다. 그래서 입다는 자기 형제들을 떠나 돕이라고 하는 지방에 도망가서 살았는데 건달패들을 모아 비적떼의 두목이 되어 있었다. 암몬 사람들이 쳐들어 온 것은 이런 일이 있은지 얼마 뒤의 일이었다.
암몬 백성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오자, 길르앗 원로들은 돕 지방으로 입다를 데리러 가서 그에게 청했다. “그대가 와서 우리의 장군이 되어주어야 우리가 암몬 군을 칠 수 있겠소.” “나를 미워하여 내 가문에서 쫓아내던 때는 언제고 어려운 일이 생겼다고 해서 나한테 올 때는 또 언제요?” 입다는 길르앗 원로들의 청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그대를 찾아온 것이 아니오?” 하며 길르앗 원로들은 입다에게 청하였다. “우리하고 같이 가서 암몬 백성을 물리쳐만 준다면, 우리 길르앗 사람들은 그대를 수령으로 모시겠소.” 입다가 길르앗 원로들에게 재우쳐 물었다. “내가 당신들하고 같이 가서 암몬 백성과 싸운다고 합시다. 그 때 야훼께서 그들을 내 손에 부치시면 당신들이 나를 수령으로 받든단 말이지요?” “야훼께서 우리 사이에 오고가는 말을 다 듣고 계십니다. 우리가 장군 말씀대로 하는가 하지 않는가 두고 보시오.”길리앗 원로들이 이렇게 다짐하자, 입다는 길르앗 원로들을 따라 나섰다. 백성들이 그를 수령이자 사령관으로 받들어 모시게 되자, 입다는 야훼 앞에서 백성들에게 다짐을 받았다. 그 곳은 미스바였다.

삿11:1-11
//입다. 굉장한 장사. 길르앗이 창녀(기생)에게서 나은 아들이다. 굳이 본처의 아들이 아니라고 부연 설명한다. //입다는 서자 홍길동보다도 못한 처지였다. 하여간 집나온 홍길동이 활빈당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면, 쫓겨난 입다는 비적떼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개역개정에서는 공동번역이 건달패라고 번역한 단어를 잡류라고 번역한다. 입다를 따르는 무리들이 가치없는 무익한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암몬이 쳐들어오자 입다가 이끄는 비적떼에 대한 길르앗 장로들의 태도가 싹 바뀌었다. 굉장한 장사 (큰 용사) 입다 외에는 암몬과 맞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큰 용사 – 길르앗 사람들이 입다를 처음부터 큰 용사로 여겼을리 만무다. 기드온도 큰 용사라고 불렸는데, 이는 사람들의 평가가 아닌, 철저하게 하나님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길르앗 장로들은 입다에게 사령관과 수령 자리를 약속하고 입다를 모셔왔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온 백성이 입다를 수령이자 사령관으로 받들기로 다짐했다. 혹은 입다가 하나님 앞과 온 백성 앞에서 수령/사령관의 임무를 다하겠다고 선서했다. (마치 오늘날 대통령 취임선서처럼) ////우리는 모두 한 때, 잡류였다. (우리의 허물과 죄로) 가치없고 무익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영적으로 이미 죽었었다. 그런데 대장 예수를 만났다. 세상 잡류도 굉장한 장사를 만나면 그를 두목으로 모신다. 하물며 우리랴! 우리는 굉장한 장사 정도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을 만났으니, 예수를 왕이요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 세례식에서 나는 아버지 하나님과 믿음의 형제자매들 앞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서약을 했다. 성도라면 이 서약에 신실하게 살려고 매순간 노력해야 한다.

사사기 10:1-18

사사기 10:1-18 (공동번역)

아비멜렉 다음에는 이싸갈 출신인 돌라라는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하러 일어났다. 그는 도도의 손자이자 부아의 아들이었는데 에브라임 산악 지대에 있는 사밀이라는 곳에 살고 있었다. 그는 이십삼 년 동안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있다가 죽어 사밀에 묻혔다.
그 다음에 길르앗 출신 야이르가 일어나 이십이 년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에게는 나귀를 타고 다니는 아들 삼십 명이 있었고 그들이 차지한 천막촌이 삼십 개 있었다. 아직도 야이르의 천막촌이라 불리는 곳이 길르앗에 있다. 야이르는 죽어 카몬에 묻혔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였다. 그들은 바알과 아스다롯,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 모압의 신들, 암몬 백성의 신들, 블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겼다. 이렇게 그들은 야훼를 저버리고 그를 섬기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이런 짓들이 노여우시어 야훼께서는 그들을 블레셋 사람과 암몬 백성의 손에 넘기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요르단 강 건너편 길르앗지방 아모리 땅에 사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십팔 년 동안 억압하며 짓밟았다. 암몬 백성은 또 요르단 강을 건너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을 쳤다.
이스라엘의 고생은 막심하였다. 그리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께 부르짖었다. “우리가 주께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 하느님 야훼를 저버리고 바알 신들을 섬겼습니다.” 야훼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이집트인들과아모리 사람과 암몬 백성과 블레셋 사람과 시돈 사람과 아말렉족과 미디안 족이 너희를 못살게 굴 때에 너희는 나에게 부르짖었다. 그래서 나는 너희를 그들의 손아귀에서 건져내 주었다. 그랬는데도 너희는 나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다. 어떻게 내가 이제 너희를 다시 건져내 주랴? 너희가 선택한 신들에게나 가서 부르짖어 보아라. 너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 신들이 너희를 살려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께 아뢰었다. “우리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다만 이번만은 우리를 살려주셔야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남의 나라 신들을 없애버리고 야훼를 섬기자,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이 겪는 고통을 보고만 계실수 없게 되었다. 마침 암몬 군이 길르앗에 몰려와 진을 쳤다. 이와 대치하여 이스라엘 군은 미스바에 모여 진을 쳤다. 그 때 길르앗 백성의 추장들은 누구든지 나가서 암몬 군과 싸우면, 그 사람을 길르앗 전 주민의 통치자로 삼자고 의견을 모았다.

삿10:1-18
//아비멜렉의 탐욕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내우는 하나님의 심판과 이어지는 사사 돌라와 야일에 이르러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이 둘이 사사로 있었던 기간이 도합 45년이다. 사사라는 약처방 기간이 사십 년에서 이십여 년으로 줄어드는 인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주변의 온갖 신들을 섬겼다. 결국 하나님은 블레셋과 암몬 사람으로 이스라엘을 치셨고 이스라엘의 고생은 막심하였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죽을 죄를 지었지만 ‘이번만은 한 번 더’ 자신들을 살려달라고 (구원해 달라고) 떼를 썼다. 이번에는 다행히 떼만 쓴 것이 아니라 남의 나라의 신들을 없애버리고 하나님을 섬겼다. 그제서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겪는 고통을 보고만 계실 수 없게 되었다. //죄인인 줄 안다면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만을 섬겨야 한다. 여전히 온갖 다른 신들을 섬기면서 말로만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해봤자 소용이 없다. 구원이란 임마누엘이라고 누차 적용해 왔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팔을 벌리고 기다리시는데 그 품에 안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책임이다.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다른 신(것)들을 섬기는 사람들을 품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다른 신들을 제하여 버린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신다. 하나님만 섬기는, 하나님만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들을 품으신다. 더럽고 냄새나고 꾸질꾸질한 모습이라도 다른 신들을 쫓아버리고 제거하고 주님께 나와야 한다. 그러면 죄인이라도 품어주신다. 의롭다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긴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품었다가도 토해내실 것이다. ////나는 누가복음 18:13 에서 예수께서 언급하신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기도한 세리가 부럽다.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는 세리의 자리에 서있는 나 자신을 떠올리며 어쩔줄 몰라할 때가 많다. 세리는 주님께 떼를 쓰지도 않았다. 자신의 처지만 조용히 읊조렸다. 우리가 주님께 떼를 써야 한다면 이런 자세로 떼를 써야한다. 감사보다 앞서 해야할 기도다. 구원 말고 주님께 떼를 써야 할 문제가 또 있을까?

사사기 9:46-57

사사기 9:46-57 (공동번역)

이 소식을 듣고 세겜 성루에 들어가 있던 어른들은 엘브릿 신당 밀실로 피신하였다. 아비멜렉은 세겜 성루에 있던 어른들이 모두 거기에 모여 있다는 말을 듣고는 휘하 군대를 모두 이끌고 살몬산으로 올라가며 손에 든 쌍날 도끼로 나무를 찍어 어깨에 메고 뒤따르는 군인들에게 일렀다. “내가 이러고 있는데 어째서 보고만 있느냐? 어서 내가 하는 대로 하여라.” 군인들이 저마다 나무를 찍어가지고 아비멜렉을 따라 나무를 쌓아놓고 그 밀실에 불을 질렀다. 그리하여 세겜 성루에 있던 사람이 다 죽었는데 남녀 천명 가량이 죽었다.
그 후에 아비멜렉은 데베스로 진군하여 포위하고 공격해서 그 성을 함락시켰다. 그런데 그 성읍 한가운데는 견고한 성루가 있었는데 그 성의 어른들뿐 아니라 남녀 주민이 모두 그 안으로 도망쳐 들어가 문을 걸어 닫고 성루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비멜렉은 그 성루로 공격해 가서 성루 문 가까이에 불을 지르려고 하였다. 그 때 한 여인이 아비멜렉의 머리에 맷돌짝을 내리던져 그의 두개골을 부수었다. 아비멜렉은 즉시 무기 당번을 불러 일렀다. “내 칼을 뽑아 나를 죽여라. 여자한테 죽었다는 말을 들을 수는 없다.” 그리하여 아비멜렉은 무기 당번에게 찔려 죽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비멜렉이 죽은 것을 보고 각기 제 고장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자기 형제 칠십 명을 죽여 아버지에게 못할 짓을 한 죄를 아비멜렉에게 갚으셨고 세겜 사람들도 죄를 받아 죽게 하셨다. 여룹바알의 다른 아들 요담이 퍼부은 저주가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삿9:46-57
//세겜 장로들은 세겜 성루로 피했다. 아비멜렉은 그 성루에 불을 놓아 그곳에 피해 있던 남녀 천명 가량을 모두 죽였다. 세겜은 이렇게 끝장났다. //이어 아비멜렉은 데베스로 진군한다. 데베스는 왜? 단지 세겜의 이웃이라는 이유로? 아비멜렉은 반역의 뿌리를 뽑는다는 명목으로 데베스를 침공했지만 하나님은 데베스를 아비멜렉을 벌하시는 덫으로 사용하셨다. //결국 아비멜렉은 한 여인이 성루에서 던진 맷돌짝에 맞아 두개골이 부서졌다. 여자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말을 듣기 싫다며, 아비멜렉은 무기 당번에게 자신을 찌르라고 했고, 아비멜렉은 무기 당번에게 찔려 죽었다. 이렇게 세겜과 아비멜렉의 불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요담의 저주가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가시나무! 가시나무도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많은 나무와 함께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따라서 가시나무도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만드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가시나무는 양들을 야생포식자 동물로부터 보호하는 좋은 울타리 재료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내야하지 가시를 휘두르며 군림해서는 안 된다. 좋은 목재나 땔감이 되는 나무도 마찬가지다. 창조질서를 거스려서는 안 된다.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 가시도 감사~~기쁨과 슬픔, 아픔과 절망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돋은 가시가 있다면 이웃을 향해 사용되지 않게 하시고, 가시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이유가 되게 하소서.

사사기 9:22-45

사사기 9:22-45 (공동번역)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이 지났다. 하느님께서 악령을 보내시니, 아비멜렉과 세겜의 어른들 사이가 나빠져, 세겜의 어른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여룹바알의 아들 칠 십명이 당한 억울한 죽음을 원수갚는데 자기 형제를 죽여 피 흘린 죄를 아비멜렉에게 갚으시고 제 형제를 죽이는 자를 도와준 세겜의 어른들에게도 그 죄를 갚으시려고 하신 것이다. 아비멜렉을 괴롭히려고 세겜의 어른들은 언덕에 사람을 매복시켜 놓고 그리로 지나가는 사람을 모두 털게하였는데 이 일이 아비멜렉에게도 알려졌다.
마침 에벳의 아들 가알이라는 사람이 자기 형제들과 함께 세겜으로 이사왔는데, 그는 세겜 어른들의 신망을 얻었다. 때는 밭에서 포도를 따서 밟아 즙을 짜는 추수철이었다. 사람들이 잔치를 베풀고 신전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면서 아비멜렉을 욕하는 자리에서 에벳의 아들 가알이 외쳤다. “아비멜렉이 누군데, 그 세겜의 피를 받았다는 자가 누군데, 우리가 그의 종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까? 그 여룹바알의 아들과 그의 심복 즈불이 도리어 세겜의 조상인 하몰 집안 사람들을 섬겨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가 그의 종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까? 나에게 이 백성을 거느릴 권한만 준다면, 나는 아비멜렉에게 싸움을 걸겠습니다. 그리고 그 녀석을 몰아내 보이겠습니다. “
그성의 추장 즈불이 에벳의 아들 가알의 말을 전해 듣고 화가나서 아루마에 있는 아비멜렉에게 전갈을 보냈다. “보십시오, 에벳의 아들 가알이라는 자가 제 형제들과 함께 세겜에 와서 온 성읍을 충동질하여 역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서 휘하 군대를 몸소 이끌고 출동하셔서 어둠을 틈타 들에 매복하셨다가 아침 일찍 동틀 때 행동을 개시하여 성을 기습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가알이 무리를 이끌고 대적하러 나오거든 닥치는 대로 해치우십시오.” 그 말대로 아비멜렉은 어둠을 틈타 휘하 군대를 총출동시켜 세겜 맞은편에 이르러 군대를 네 패로 나누어 매봅시켰다. 에벳의 아들 가알이 성문 어귀에 나와 섰는데, 아비멜렉이 거느린 군대가 매복해 있던 곳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가알이 그들을 보고 즈불에게 물었다. “저기 산꼭대기에서 웬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소?” 즈불이 “산 그림자를 사람으로 잘못 본 것이 아니오?” 하고 시치미를 떼었지만, 다시 가알이 말하였다. “저것 보시오. 사람들이 저기 배꼽마루에서 내려오고 다른 한 떼는 점쟁이 상수리나무 쪽에서 오고 있소.” 그제야 즈불이 말하였다. “아비멜렉이 누군데 우리가 그의 종이 되어야 하느냐 으스대더니, 그 용기가 어디로 갔소? 저 사람들이 바로 당신이 우습게 보던 사람들이오. 어서 나가서 싸워보시오.” 가알은 세겜의 어른들을 거느리고 앞장서 나가 아비멜렉과 맞붙어 싸우다가 아비멜렉에게 쫓겨 도망치게 되었다. 가알의 부하 군인들의 시체는 성문 앞까지 너저분하게 뒹굴었다. 그 후 아비멜렉은 아루마로 돌아가고 즈불의 가알과 그의 형제들을 쫓아내어 세겜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하였다. 다음날 세겜 백성들이 들로 나갔다는 소식이 아비멜렉에게 전해졌다. 그는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 세 패로 나누어 들에 매복하고 있다가 백성들이 성읍을 떠나는 것을 보고 들이닥쳐 쳐죽였다. 아비멜렉은 한 패를 이끌고 쳐들어가 성문 어귀를 지키고 나머지 두 패를 시켜 들에 있는 사람들을 덮쳐 쳐죽이게 하였다. 아비멜렉은 그날 종일 그 성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백성들을 죽이고 온 성읍을 헐고 소금을 뿌렸다.

사사9:22-45
//이합집산! 아비멜렉과 세겜의 장로들 사이가 나빠졌다. 뻔하다. 세겜의 장로들은 자신들이 아비멜렉의 킹메이커였는데 그들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없었던 모양이다. 더군다나 아비멜렉은 심복 즈불을 추장(총독)으로 파견해서 성 관리를 맡겼다. 세겜 장로들은 사람들을 언덕에 매복시켜 노상강도짓을 일삼으며 자신들의 배를 채워야 했다. (호루므즈 해협을 막고 강도질 하는 미국과 이란이 연상되는 이유는?) //하여간 이 때, 에벳의 아들 가알이 세겜으로 이사와서 신망을 얻은 후 세겜의 장로들을 부추겼다. 세겜의 장로들이 아비멜렉에게 거사 자금을 댔던 것처럼 이번에는 자기를 밀어주면 아비멜렉을 몰아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세겜에는 아비멜렉이 파견한 추장 즈불이 있었다. 그는 아비멜렉에게 역모를 알렸다. 뿐만 아니라 역모를 이길 군사적 전술까지 알려주었고 가일의 방비를 무력화 시켰다. 결국 가일의 역모는 실패하고 세겜 성은 함락되었고 성읍 사람들은 죽었다. ////정치적 이해관계는 영원하지 않다. 철저하게 계산적으로 이합집산한다. 세겜 사람들은 무슨 죈가? 그들은 세겜 장로들의 탐욕에 희생양들이 되었다.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힘들어 진다.

사사기 9:7-21

사사기 9:7-21 (공동번역)

이 소식이 요담에게 전해지자 그는 그리짐 산 꼭대기에 가 서서 소리 높이 외쳤다. “세겜의 어른들은 내 말을 들으시오. 그래야 하느님도 여러분의 말을 들어주실 것이오. 하루는 나무들이 모여서 자기들을 다스릴 왕을 세우기로 하고 올리브 나무에게 청을 드려보았소. ‘우리 왕이 되어 주게나!’ 그러나 올리브 나무는 사양을 했소. ‘내 기름은 모든 신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것, 그런데 나 어찌 기름을 내지 않고 자리를 떠나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으스대겠는가?’ 그래서 나무들은 무화과나무에게 청을 드려보았소. ‘자네가 와서 우리 왕이 되어주게나’ 그러나 무화과나무도 사양을 했소. ‘나 어찌 이 훌류한 과일을 내지 않고, 나 어찌 이 달콤한 맛을 내지 않고 자리를 떠나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으스대겠는가?’ 그래서 나무들은 포도나무에게 청을 드려보았소. ‘자네가 와서 우리 왕이 되어주게나.’ 그러나 포도나무도 사양을 했소. ‘내 술은 모든 신과 사람을 흥겹게 해주는 것, 그런데 나 어찌 이 술을 내지 않고 자리를 떠나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으스대겠는가?’ 그래서 모든 나무는 가시나무에게 청을 드려보았소. ‘자네가 와서 우리 왕이 되어주게나.’ 그러자 가시나무는 그 나들에게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소! ‘너희가 정말로 나를 왕으로 모시려는가? 정녕 그렇거든 와서 내 그늘 아래 숨어라. 그러지 않았다가는 이 가시덤불이 불을 뿜어 레바논의 송백까지 삼켜버릴 것이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는 것을 어찌 떳떳한 일이라 하겠소? 그러고도 어찌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하겠소? 그러고도 여룹바알과 그의 집안에 잘해 드렸다고 하겠소? 그것이 어찌 그의 업적에 보답하는 것이 되겠소? 내 아버지가 죽음을 무릎쓰고 싸워 여러분을 미디안의 손에서 건져냈는데 여러분은 오늘 내 아버지의 집안을 뒤엎으려고 즐고 일어나 칠십 명이나 되는 그의 아들들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소. 그리고 여러분 세겜의 어른들은 계집종의 자식인 아비멜렉을 여러분의 혈육이라고 해서 왕으로 떠받들었소. 만일 여러분이 이 날 여룹바알과 그 집안에 한 것이 떳떳하고 하무 잘못이 없다면 여러분의 아비멜렉과 행복스럽게 잘들 지내보시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 세겜의 어른들과 밀로의 집안을 삼키고 세겜의 어른들과 밀로의 집안에서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삼키라고 나는 빌겠소.” 이렇게 말을 마치고 나서 요담은 도망하여 브엘에 이르렀다. 그는 형 아비멜렉을 피하여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삿9:7-21
//요담의 스토리에서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의 대답에 반복되는 말이 있다. ‘…내지 않고 자리를 떠나 …으스대겠는가?’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자신의 역할을 분명하게 알았다. 자신이 무엇을 내야하며,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알았다. ‘내지 않고’는 ‘버리다’라는 의미의 단어다. 무기력하고 부족하고 게으르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내지 않고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창조목적을 저버린다는 뜻이다. ‘으스대다’는 우쭐댄다는 뜻이다. 잘난 척 한다는 의미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교만이 드러나는 것이다. 사실 올리브/무화과/포도 나무는 으스댈만한 것을 가졌다. 그래도 그것으로 으스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내는 것은 자기 능력이 아니라 창조 목적/질서에 따라 주어진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야 기득권을 내려 놓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가시나무는? 무엇을 내는가? 가시덤불을 낸다. 가시덤불은 어떤 유익을 줄까? 잘 관리만 된다면 야생포식자로부터 지켜주는 좋은 울타리가 될 수 있다. 가시나무도 창조 질서에 따라 지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방어적으로 사용해야 할 가시를 공격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말한다. 가시를 창조목적에 어긋나게 사용하겠다고 말하니 교만인 것이다. //세겜 장로들과 밀로 집안 사람들은 가시를 공동체를 위한 방어용이 아니라 탐욕을 만족시키는 공격용으로 사용했다. 가시를 정의와 공의를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사로운 탐욕을 위해서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요담은 아비멜렉과 세겜 장로들 모두 자신들의 포악성때문에 그대로 앙갚은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심은대로 거둔다. ////내야 할 것을 내야 한다. 버려야 할 것을 버려야 한다. 창조 질서대로 살아야 한다. 어째서 말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면서 대기업을 선호하고 청소직은 싫어하게 되었을까? 어째서 소위 사자 달린 직업인들은 우러러 보고 일꾼들은 얕잡아 보게 되었을까? 우리는 좋던 싫던 내야할 것을 내고 살아야 한다. 사람들끼리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으스대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교만한 자는 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