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9:1-6

사사기 9:1-6 (공동번역)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으로 외삼촌들을 찾아가서 외삼촌들과 외가댁 온 일가에게 청하였다. “세겜의 모든 어른들에게, 여롭바알의 아들 칠십 명의 지배를 받는 것과 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과 어느 것이 나으냐고 물어봐 주십시오. 그리고 내가 그들과 한 골육이라는 것도 잊지 말라고 해주십시오.” 그의 외삼촌들은 이 말을 세겜의 모든 어른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아비멜렉이 자기들과 한 혈육이라는 생각에서 마음이 그에게 기울어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칠십 세겔을 내다가 그에게 주었다. 아비멜렉은 그 돈으로 할 일 없는 건달패를 사서 졸개로 삼아 거느리고 오브라에 있는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자기 형제들 곧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다. 그러나 여룹바알의 막내 아들 요담만은 어디엔가 숨어 있었으므로 살아남았다. 세겜의 모든 어른들과 밀로의 온 집안은 세겜에 있는 석상 옆 상수리나무 아래에 모여 아비멜렉을 왕으로 받들었다.

삿9:1-6
//아비멜렉! ‘나의 아버지는 왕’이라는 의미다. 이름이 바로 ‘왕자’다. 왕이 되겠다는 탐욕이 담겨있는 이름이다. 그런데 아비멜렉 자신이 이름을 지었을리 없다. 그렇다면 세겜 사람들이 (적어도 아비멜렉의 혈육들이) 자신들도 왕족임을 드러내기 위해 (기드온의 소실이 낳은) 아기를 아비멜렉이라고 불렀다고 보는게 맞다. 다른 기드온의 칠십 명의 아들들의 이름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아비멜렉과 오직 막내 아들 이름만 요담이라고 나온다. 요담은 ‘여호와는 완전/정직/성실 하시다’ 라는 뜻이다. 요담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것을 암시하는 이름이다. // 아비멜렉은 외척을 부추겨 왕이 되고자 했다. 아니 반대로 외척들이 아비멜렉을 부추겨 왕이 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아비멜렉에게 거사 자금을 대준 것이다. 그 돈으로 아비멜렉은 시정잡배를 고용해 칠십 명의 이복 형제들을 죽였다. 아비멜렉은 자신과 자식들은 왕이 되지는 않겠다던 아비 기드온의 뜻도 따르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것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기드온이 왕위에 오르지 않았어도 왕의 권세를 누렸으니 아비멜렉이 무엇을 보고 자랐겠는가? 세겜의 장로들과 밀로 집안 사람들은 아비렐렉을 왕으로 받들었다. 이렇게 아비멜렉은 왕(골목대장)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담을 아비멜렉의 학살에서 살려주신다. 요담이 의로워서라기 보다는 언약에 성실하신 하나님을 드러내시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 우리의 왕이 되신다. 다른 왕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언젠가 ‘난 난 난 난 어린 왕자다. 하늘 나라의 어린 왕자다. 내가 비록 어릴지라도/나는 왕 나는 왕 나는 왕자다’ 라는 주일 학교 찬송을 함부로 부르면 안 된다고 했다.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어떻게 사셨는가 돌아보자. 예수께서는 결단코 왕자의 권세를 누리지 않으셨다.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예수를 생각해 보자!

사사기 8:29-35

사사기 8:29-35 (공동번역)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은 자기 집에 돌아가 살았다. 기드온은 아내가 많아 친아들이 칠십 명이나 되었다. 세겜에 그의 소실이 하나 살고 있었다. 그도 기드온에게 아들을 하나 낳아 주었는데, 그는 그 아이의 이름을 아비멜렉이라고 불렀다.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수를 다 누리고 죽어 아비에젤의 성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비 요아스의 무덤에 묻혔다. 기드온이 죽은 다음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바알들을 따라 음란을 피우며 바알브릿을 자기네 신으로 삼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주위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저희를 건져내신 저희 하느님 야훼를 기억하지 않았다. 여룹바알이라고도 하는 기드온의 집안이 그렇게도 많은 은덕을 입혀주었는데도 이스라엘은 그 은혜를 저버렸던 것이다.

삿8:29-35
//자기 집으로 돌아갔지만, 기드온은 왕처럼 살았다. 왕 되기를 거절했던 기드온은 세상 왕처럼 칠십 명이나 되는 많은 아내를 두었다. 칠십이 상징적인 수라면 기도온은 자신이 원하는 여자를 다 품었다는 뜻이다. 기드온이 소실에게서 낳은 아이의 이름은 아비멜렉이다. 아비멕렉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라는 뜻이니, 기드온은 결국 왕이나 다름없었다. //기드온이 많은 아내를 둔 것은 음란을 상징한다.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 백성이 음란을 피우며 바알브릿을 섬겼다고 한다. 그들이 바알을 언약(브릿)의 하나님(신)으로 섬긴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다. 그래도 기드온이 살아 있는 동안 호가호위라고 주변국들은 기드온 뒤에 있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이스라엘에게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다. 기드온 집안이 이스라엘에게 베푼 은덕은 기드온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기드온에게서 음란 말고 하나님은 보지 못했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열매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드온의 은혜를 저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것이다. ////과거의 영웅담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한국교회도 우리도 과거의 간증만으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 과거에 만난 하나님을 오늘도 만나 교제하지 않는다면 도루묵이다. 하나님을 잊고 산다면, 살인이나 간음 같은 큰 죄를 짓지 않는다 해도 영적으로는 다시 죽은 것이다. 임마누엘을 누리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예수 안에 거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살아야 한다.

사사기 8:13-28

사사기 8:13-28 (공동번역)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싸움을 끝내고 헤레스 고개를 넘어 돌아오다가 수꼿 젊은이 하나를 잡아 수꼿 추장과 장로들의 이름을 대라고 하였다. 그든 그들 칠십칠 명의 이름을 적어주었다. 기드온은 수꼿에 이르러 그 곳 사람들에게 일렀다. “제바와 살문나를 보아라. 너희는 제바와 살문나의 손목이라도 잘라 가졌느냐고 하면서 우리 기진맥진한 군대에게 먹을 것을 주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나를 우롱하였다.” 기드온은 그 성읍의 장로들을 체포한 다음, 들가시와 찔레를 베어다가 수꼿 사람들을 찢어버렸다. 또 브누엘 성의 망대를 헐어보리고 그 성읍 사람들을 죽였다.
그런 다음 그는 제바와 살문나에게 물었다.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더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당신 같이 생겼습니다. 모두가 왕자다운 귀골을 타고 났더군요.” 기드온이 말하였다. “그들은 한 어머니에게서 난 내 형제들이다. 너희가 그들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절대로 너희의 목숨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맏아들 예델에게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그 소년은 아직 어린이였으므로 끔찍한 생각이 들어 칼을 뽑지 못하였다. 그것을 보고 제바와 살문나가 말하였다. “사내 대장부답게 네게 일어나 우리를 쳐라.” 이 말을 듣고 기드온이 일어나 제바와 살문나를 쳐죽이고 그들이 타던 낙타의 목에서 목걸이를 떼어가졌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청하였다.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자자손손이 우리를 다스려주십시오.” 기드온은 “내가 그대들을 다스릴 것도 아니요, 내 자손이 그대들을 다스릴 것도 아닙니다.” 하며 그들의 청을 거절하였다. “그대들을 다스리실 분은 야훼시오.” 기드온은 말을 계속하였다. “그대들에게 한 가지 청할 것이 있소. 각자의 전리품 가운데서 루리 하나씩을 내놓으시오.” 적군은 이스마엘 사람이었기 때문에 금고리가 있었던 것이다. “드리고 말고요.”하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전리품 가운데서 고리 하나씩을 기드온이 펴 놓은 겉옷 위에 던졌다. 그의 요청대로 들어온 고리의 무게는 금 천칠백 세겔이나 되었다. 그 밖에도 목걸이뿐 아니라 여러가지 고리가 있었고 미디안 왕들이 입던 붉은 옷과 낙타 목에 두르는 사슬도 있었다. 이 모든 것으로 기드온은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가 사는 성읍 오브라에 두었는데, 온 이스라엘이 그 에봇으 섬기며 음란을 피웠다.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안에 올가미가 되었다. 이와같이 하여 미디안은 이스라엘 사람 앞에서 기세가 걲여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되었다. 기드온 생전 사십년 동안 세상은 평온하였다.

삿8:13-28
//미디안 두 왕을 사로잡은 기드온은 돌아오는 길에 수꼿과 브누엘 들려 저주한 대로 수꽂의 장로들을 찢어버리고 브누엘의 망대를 허물어 버리고 성읍 사람들을 죽였다. 수꼿과 브누엘은 이방나라 사람들이 아니었다. 동족에게 행한 일이다. 마치 앞으로 기드온을 돕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된다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모양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없는 자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기드온은 미디안 두 왕에게 개인적인 복수를 한다. 그들이 기드온의 형제들을 죽였기 때문이었다. 기드온은 자신의 장자에게 미디안 두 왕을 칼로 쳐죽이라고 명령했다. 기드온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고, 자기 아들에게 미디안 두 왕을 쳐단하는 영광을 물려주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기드온의 아들은 두려워 칼을 뽑지 못했다. 결국 미디안 두 왕이 기드온에게 사내 대장부처럼 굴라고 하자 기드온이 미디안 두 왕을 칼로 쳐죽였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드온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러나 기드온은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릴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며 왕위에 오르기를 거절했다. 과연 기드온이 겸손해서 왕위를 거절한 것일까?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참 왕이심을 알아서 거절했을까? 아니다. 기드온은 (하나님 대신) 금붙이를 택했다. 기드온은 사내 대장부 답지 못한 인물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힘센 장사, 큰 용사라고 불러주셨지만 그는 끝내 작은자였다. 겸손해서가 아니라 믿음이 작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모르니 에봇을 만들어 에봇을 섬겼다. 하나님을 다만 부적처럼 사용했던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이런 기드온이라도 사용하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다.) 미디안으로부터는 평화을 얻어냈지만 역시 사십년 평화에 그쳤다. ////우리에게 자비가 없는 것은 믿음 역시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다고 말하면 그러니깐 믿음이 작기 때문이라고 하자. 그러나 작은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으니 결국 우리에게 그 작은 믿음마져도 있다 없다 하는 모양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공동번역)”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개역개정)” 기드온은 믿음이 작은 사사였다. 예수를 만난 우리의 믿음은 적어도 기드온의 믿음보다는 커야하지 않을까… 믿음의 사람이라면 자비를 베푸는 것이 당연하고, 돈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

사사기 8:1-12

사사기 8:1-12 (공동번역)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미디안과 싸우러 나가면서 우리를 부르지 않았으니 어찌 이럴 수 있소?” 이렇게 기드온에게 엄중한 항의를 하자 그가 대답하였다. “이번에 내가 한 일을 여러분이 한 일과 어찌 비기겠습니까? 에브라임의 주운 이삭이 아비에젤의 수확 전부보다 낫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 미디안 추장 오렙과 즈엡을 여러분들 손에 부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내가 한 일이 어찌 여러분이 한 일만큼 클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서야 그들은 노기가 풀렸다. 기드온이 요르단 이르렀다. 그와 그가 거느린 삼백 명은 지친 몸으로 강을 건너 추격을 계속하였다. 그는 수꼿에 이르러 그 곳 사람들에게 청하였다. “나를 따르는 이 군인들이 지쳤소. 먹을 것을 좀 주시오. 나는 미디안의 두 왕 제바와 살문나를 추격하는 중이오.” 수꼿의 추장들이 대답하였다. “당신 군대에게 빵을 주다니, 당신이 지금 제바와 살문나의 손목이라도 잘라가졌다는 말이오?” 기드온은 “좋소. 야훼께서 제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부치시는 날, 들가시와 찔레로 당신들의 살덩이를 찢어버리겠소.” 하고는 브누엘로 올라가 그 곳 사람들에게 같은 청을 해보았지만 브누엘 사람들도 수꼿 사람들과 같은 대답이었다. 그는 브누엘 사람들에게도 자기가 승리하고 돌아올 때 성의 망대를 헐어버리리라고 하였다. 한편 동방 백성의 전군은 전사자 십이만 명을 내고 만 오천 명이 겨우 살아 남아 제바와 살문나와 함께 카르콜에 진을 치고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데 기드온은 노바와 욕느하 동편으로 목동들의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적진을 들이쳤다. 제바와 살문나는 또 도망을 쳤지만, 기드온은 뒤쫓아가서 마침내 미디안 두 왕 제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군대를 섬멸하였다.

삿 8:1-12
//에브라임 사람들과 기드온의 기싸움. 미디안의 두 추장을 죽여 머리를 가지고 온 에브라임 사람들은 기드온이 처음부터 부르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승전의 공을 기드온이 혼자 챙기는 것을 견제한 것이다. 기드온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미디안 두 추장을 죽인 것이 승전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라며 에브라임 사람들을 추겨 세우며 다독였다. 이제 기드온은 두 추장이 아니라 미디안 두 왕을 뒤쫓고 있었다. 혹시나 두 추장 대신 두 왕이라는 더 큰 영광(상)을 노렸기 때문에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한 발 후퇴한 것은 아닐까? //기드온은 계속해서 미디안 두 왕을 추격했다. 추격하는 과정에서 수꼿과 미누엘 두곳 추장에게 먹을 것을 청했으나 거절 당했다. 수꼿 추장과 브누엘 추장은 미디안 두 왕이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이고 여전히 만 오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진을 치고 있으니, 삼백 명을 이끌고 추격하는 기드온보다는 여전히 미디안 쪽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수꼿과 브누엘을 저주한 기드온은 잘한 일일까? 어떤 상황에서도 저주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듯, 원수 갚는 것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기드온은 마침내 도망치는 미디안 두 왕을 사로잡고 그 군대를 섬멸했다. 미디안과 연합했던 군사 규모는 전사자 12만명에 마지막에 섬멸당한 1.5만명을 더하면, 도합 13만 명이 넘는다. 기드온의 삼백 용사와 비교하면 사오백배 수준이다. 그렇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 그러나 단순히 전쟁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전쟁은 신들의 싸움이다. 곧 세상의 어떤 신들도, 어떤 신들의 연합도 창조주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고 이해해야 한다. 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의 하나님이시다.

사사기 7:15-25

사사기 7:15-25 (공동번역)

이렇게 꿈 이야기와 그 해몽하는 말을 듣고 기드온은 야훼께 경배하고 이스라엘 진으로 돌아와 일렀다. “일어나라. 야훼께서 미디안 진을 너희 손에 부치셨다.” 기드온은 삼백명을 세 부대로 나누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뿔나팔 하나와 횃불이 든 빈 단지 하나씩을 주고는 이렇게 일렀다. “너희는 나를 보고 있다가 내가 하는 대로 하여라. 내가 적진에 접근해 가서 하는 대로 따라 하여라. 내가 거느린 부대가 나와 함께 나팔을 불면 너희도 적진을 둘러싸고 있다가 나팔을 불며 ‘야훼 만세! 기드온 만세! 하고 외쳐라.” 기드온이 자기 부대 일백 명을 거느리고 적진에 다다른 것은 한밤중 보초가 막 교대하고 나서였다. 그들은 나파을 불며 손에 든 단지를 깼다. 세 부대가 모두 나파을 불며 단지를 깨고 왼손에는 횃불을 들고 오른 손으로는 나팔을 불며, “야훼 만세! 기드온 만세!” 하고 외쳤다. 그러면서 적진을 둘려싼 채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적군은 온통 갈팡질팡 아우성치며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삼백 명 군대가 나팔을 불어대고 있는 동안 야훼께서 적으로 하여금 저희끼리 마구 칼로 찔러 죽이게 하셨다. 그리하여 스레라 쪽으로 도망치던 적군은 벳시타에 이르렀고 더러는 타밧 건너편 아벨므홀라 냇가에 이르렀다. 납달리 지파와 아셀 지파와 온 므나쎄 지팡에서 불려 나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디안을 추격하는데, 기드온은 에브라임 온 산악 지대에 전갈을 보냈다. “내려와 미디안을 막아라. 그들을 앞질러 벳바라에 이르기까지의 요르단 강 나루들을 점령하여라.” 이 소집령을 받고 에브라임 사람은 모두 몰려나와 벳바라에 이르기까지의 요르단 강 나루들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미디안의 두 추장 오렙과 즈엡을 사로잡았다.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즈엡은 즈엡 포도주틀에서 죽이고 계속 미디안을 추격하였다. 오렙과 즈엡의 머리는 요르단 강을 건너 기드온에게 전해졌다.

삿7:15-25
//”야훼 만세! 기드온 만세!” 개역개정에서는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라고 번역한다. ‘여호와의 칼, 기드온의 칼’이라고도 외쳤다. 음. ‘기드온 만세’ 나 ‘기드온의 칼’이라고 외쳤다는 부분은 뭔가 편하지 않다. 하나님의 영광에 기드온이 편승했다고 그냥 넘어갈 일인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던가? //기드온과 삼백용사! 한 밤의 기습에 동원된 병사는 삼백용사가 맞다. 삼만이 넘는 병사를 돌려보내지 않았던가? 그러나 기드온은 납달리 아셀 므낫세 지파를 불러 미디안을 추격하게 했다. 싸움은 하나님께서 미디안으로 하여금 서로 싸우게 하셔서 자중지란으로 패하게 하셨는데, 기드온은 전갈을 보내 에브라임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지파들로 하여금 미디안의 패로를 막게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시일까? //아니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믿음의 힘센 장사가 되도록 해주셨는데 기드온은 육신적으로 스스로 높아지려고 했던 것 같다. 교만이다. 미디안의 두 추장 오렙과 즈엡을 죽인 머리를 가져오게 한 것 역시 자신에게 왕과 같은 권위가 있음을 과시하려던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 끊임없이 징표를 구했던 기드온은 드디어 사람들로부터도 징표를 얻어내었다.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을까?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