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6:14-30

출애굽기 6:14-30 (공동번역)

이스라엘 가문의 선조는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의 맏아들 르우벤의 아들들과 시므온의 아들들이 (가나안 여인에게서 난 사울이 포함) 언급 된다. 레위의 아들들을 기록하면서 레위는 137년을 살았다고 나이를 기록한다. 레위 아들들의 아들들과 손자들도 언급한다. 레위의 둘째 아들 크핫 가문의 아므람은 고모 요게벳에게 장가들어 아론과 모세를 낳았다. 아므람도 137년을 살았다. 그리고 아론이 암미나답의 딸이요 나흐손의 누이인 엘리세바에게 장가들어 나답 아비후 에르아잘 이다말을 낳았다고 다른 가문에 비해 상세히 기록한다. 아론의 아들 엘르아잘이 부디엘의 딸을 아내로 맞아 비느하스를 낳았다. (제사장 가문을 비교적 상세히 기록한다.)
야훼께서는 아론과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부대로 편성해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라고 분부하셨다.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내보내달라고 말한 것은 바로 모세와 아론이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나는 야훼다.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전하여라’ 하고 명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야훼께 말이 서투른 사람이라 파라오가 어찌 제 말을 듣겠습니까? 하고 대답했다.

출6:14-30
//이스라엘 가문의 선조(족보)를 언급하는데, 이 족보는 아론의 아들들에서 멈춘다. 아마도 모세와 아론이 족보에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기록이다. 특별히 레위 – 고핫 – 아므람 – 아론/모세로 이어지는 라인의 기록이 자세하다. 레위가 137년, 고핫이 133년, 아므람이 137년 살았다고 다른 인물들과 다르게 수명까지 기록한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있었던 기간 430년을 고려한다면, 족보의 댓수가 4~5대밖에 안 된다는 것은 설명하기 어렵다. ) 하여간 이들은 장수했다. 아론과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은 고모 요게벳에게 장가들었다. 그렇다면 요게벳은 레위의 딸이요 고핫과 남매 사이다. 곧 이집트로 내려간 1세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할아버지 야곱의 하나님에 대해 직접 들으면서 자랐을 수도 있다. 믿음의 가정이라고 보기는 뭐하지만 그래도 조상의 하나님에 대해 더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는 것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 이런 가문에서 미리엄과 아론과 모세가 태어났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잘 아는 가문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세우셨다. 비록 야곱이 레위에게 책망과 저주에 가까운 유언을 남겼지만 그것이 오히려 레위와 레위 후손들에게는 전화위복이 되었던 것이다. 야곱은 레위에게 피를 흘린 댓가로 혹독한 저주를 받을 것이고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레위지파는 야곱 중에서 흩어버릴 것이라고 유언을 남겼다. 이 저주의 유언을 극복하기 위해 레위지파는 맹렬한 분기를 다스리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힘을 모으기보다는 힘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을 것이다. 40세의 모세는 피를 흘리기까지 분기가 맹렬했다면, 80세의 모세에게는 더 이상 이 분기를 찾을 수 없다. 이렇듯 모세의 지나친 겸손은 레위 지파의 저주를 극복하고자 하는 처세술에서 나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처세술로는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출애굽기 6:2-13

출애굽기 6:2-13 (공동번역)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야훼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전능의 신으로 나를 드러낸 일은 있지만 야훼라는 이름으로 나를 알린 일은 없었다. 나는 그들이 유랑민으로 살던 가나안 땅을 주기로 그들과 계약을 세웠다. 나는 이집트인들에게 혹사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 소리를 듣고 내가 세운 계약을 생각했다. 그러니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의 말을 전해라. ‘나는 야훼다. 내가 너희를 이집트인들의 종살이에서 빼내고 그 고역에서 건져내리라. 나의 팔을 펴서 무서운 심판을 내려 너희를 구해 내리라. 너희를 나의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되어주리라. 그제야 너희는 나 야훼가 너희 하느님임을, 너희를 종으로 부리는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낸 하느님임을 알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주겠다고 맹세한 가나안 땅으로너희를 이끌어 그곳을 차지하게 하리라. 나는 야훼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대로 전했으나. 무서운 고역에 시달려 지칠대로 지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 나라에서 내보내라고 요구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모세가 야훼께 이스라엘 백성들조차 자기 말을 들어주기 않는데 말주변도 없는 자신의 말을 파라오가 어찌 들어주겠느냐며 반문했다. 야훼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고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사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라를 분부를 내리셨다.

출6:2-13
//’나는 야훼다’ 세번 반복해서 기록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름도 모르고 섬겼던 하나님(신)의 이름을 그들의 뇌리에 각인시켜 주신다. 창조주 하나님(신), 조상의 하나님(신)의 이름이 여호와(야훼)라고 분명히 알려주신다. 저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족보의 시조를 세우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었던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막연히 하나님(신)이라고 부르지 않도록 이름을 가르쳐주셨다. ‘나는 야훼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신)의 이름도 모르고 그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었다. 출6:2-13//’나는 야훼다’ 세번 반복해서 기록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름도 모르고 섬겼던 하나님(신)의 이름을 그들의 뇌리에 각인시켜 주신다. 창조주 하나님(신), 조상의 하나님(신)의 이름이 여호와(야훼)라고 분명히 알려주신다. 저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족보의 시조를 세우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었던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막연히 하나님(신)이라고 부르지 않도록 이름을 가르쳐주셨다. ‘나는 야훼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신)의 이름도 모르고 그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만 알고 살아왔는데, 이제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를까 봐 아예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에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모든 불순종을 포함한다. 이름을 석자를 (여호와도 석자네 ㅎㅎ) 어떻게 불렀느냐에 국한되지 않는다. 부모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부모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과 같다. //하여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조상들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주시겠다는 언약의 당사자로 서명을 한 이름을 야훼라고 알려주셨다. 언약의 당사자가 누구인지 밝히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언약의 내용이 무엇인지 상기시켜 주시는 것이다. //정작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음소리에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세운 계약을 생각하셨지만 무서운 고역에 시달려 지칠대로 지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힘들고 지칠수록 언약을 기억하고 소망을 품어야 한다. 개인적인 소망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소망이다. 성도는 이 소망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그냥 읽어서는 안 된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 해석해야 한다. 이 땅의 삶이 고되고 지쳤어도 언약에서 약속한 소망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출애굽기 5:15-6:1

출애굽기 5:15-6:1(공동번역)

이스라엘인 현장 감독들이 파라오에게 가서 이집트인 공사감독들이 짚도 안 주면서 생산량을 줄여주지도 않아 일이 늘었다고 항의 했다. 생산량을 못 맞추었다고 얻어맞았는데 잘못은 이집트인 공사감독 탓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파라오는 이스라엘인 현장감독들에게 게으른 소리 하지 말고 당장 물러가서 일이나 하라고 했다. 이스라엘인 현장감독들은 파라오 앞에서 물러나오다 모세와 아론을 보고 야훼께서 그 둘에게 벌을 내려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역겨워하게 된 것을 모세와 아론의 탓으로 돌렸다. 그들의 말을 듣고 모세는 야훼께 돌아와 왜 이스라엘 백성을 이렇게 괴롭히며 왜 자신을 이곳에 보내셨는지 따졌다. 모세는 자신이 파라오를 찾아가 야훼의 이름으로 말한 뒤 이스라엘 백성이 더 들볶이고 있는데, 야훼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줄 기미도 안보여 주신다고  불평했다. 

야훼께서는 모세에게 이제 당신이 파라오에게어떻게 하는지 보여주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손을 쓰시면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낼 것이라고 하신다.

출 5:15-6:1

//이스라엘인들 중에 현장 감독이 있었다. 이들은 친이집트파 이스라엘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들 중에는 진짜 친이집트파도 있었을 것이고 어쩔 수없이 친이집트파 행세를 하며 동족을 돕는 자도 있었을 것이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마음이 완악한 바로는 노동력착취의 강도를 높였다. 친이집트파든 아니든 이스라엘인 현장감독들의 처지는 곤란해졌다. 결국 이들은 바로 앞에 나가서 항의했다. //바로는 이스라엘인들이 게으르다며 일거리를 줄여주지 않고 당장 물러가 일이나 하라고 명령했다. 이스라엘인 현장감독들은 모세와 아론을 탓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는 그렇다쳐도 예상치 못한 이스라엘인 현장감독들의 반응에 모세는 하나님께 따졌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구원하실 아무런 기미도 보여주지 않으신다고 하소연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당신이 손을 쓰시면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낼 것이라고 하셨다. ////만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야 할 것 같은데 하나님의 때와 방법은 우리와 다르다. 출애굽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역사이기도 하지만 이집트와 바로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참 하나님되심을 드러내시는 사건이기도 하다. 우리는 혈통적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을 믿는게 아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는다. 만사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을 쓰실 때와 방법을 인내로 기다리며, 오늘 주어진 하루도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라고 하신다.

출애굽기 5:1-14

출애굽기 5:1-14 (공동번역)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자신의 백성을 광야로 내보내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그러나 파라오는 야훼가 누군데 그의 말을 들어야 하냐며 이스라엘을 내보낸다는 당치도 않은 말이라며 거절했다. 모세와 아론은 히브리인의 하느님께서 찾아오셨으니 광야로 사흘 길을 나가 하느님 야훼께 제사를 드리도록 허락해 달라고 말했다.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야훼께서 질병이나 전쟁의 피해를 입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집트 왕은 호통치며 모세와 아론이 히브리 사람들이 일을 못하게 부추긴다며 그들을 쫓아냈다. 파라오는 히브리인의 숫자가 이집트 사람보다 많아졌는데도 히브리인에게 노동을 시키지 말라는 거냐며 모든 공사 감독과 현장 감독을 불러 히브리 사람들에게 흙벽돌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짚을 공급하지 말고 스스로 모아서 벽돌을 만들도록 명령했다. 그렇다고 생산량을 줄여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히브리인들이 일하기 싫어서 하느님께 제사드리러 가게 해달라고 떠들고 있으니 전 보다 더 심한 일거리를 주어 모세와 아론의 허튼소리에 귀를 기울일 겨를도 주지 마라고 명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땅에 두루 흩어져 짚여물로 쓸 짚을 모아들어야 했다. 생산량도 맞춰야 했다. 공사 감독들은 생산량을 못맞추면 매를 들며 다그쳤다.

출5:1-14
//모세와 아론은 바로를 찾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전한다. 모세와 아론은 야훼 하나님을 히브리인의 하나님이라고 바로에게 소개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질병과 전쟁의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바로에게 말했다. 그러나 야훼(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바로가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들을리 없다. 히브리인의 하나님이라면 태양의 아들인 자신이 충분히 맞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히브리인의 신(하나님)이 질병과 전쟁의 신이라면 제국을 이룬 이집트의 신이 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모세와 아론처럼 (기독교의 신으로) 제한하지 않는지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믿는 예수를 물질과 건강과 형통의 하나님으로만, 복을 주시는 분으로만 소개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요 창조주가 아닌가? //오늘날 섣부른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메세지는 모세와 아론이 전한 메세지처럼 거절당하고 있다. 긁어 부스럼이랄까? 오늘날 교회는 더 부자가 되어야 하고 건강해야 하고 만사형통해야 믿음이 좋은 것으로 평가한다. 그래야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세상 가치관을 따라 더 가지려고 한다. 우리가 가진 복음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아니 복음의 정신으로 살아내지 못하고 말만 한다면, 우리 신앙에도 긁어 부스럼이 생기고 만다. //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입에 넣어주신 말만을 바로에게 전한 것일까? 물론 하나님께서 입에 넣어주신 말만 전했어도 마음이 완악한 바로가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모르면 마음이 완악할 수밖에 없다. 일평생 하나님을 알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기독교의 신만이 아니시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신)이시요 창조주다.

출애굽기 4:18-31

출애굽기 4:18-31 (공동번역)

모세는 돌아와서 장인 이드로에게 작별을 고했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편히 가라고 작별인사를 했다. 야훼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어서 이집트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모세를 죽이려고 찾던 자들이 다 죽었다고 안심시키셨다. 모세는 아내와 아들을 나귀에 태우고 이집트로 돌아갔다. 모세의 손에는 하느님의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야훼께서는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집트에 돌아가거든 온갖 이적을 파라오 앞에서 보여라. 그러나 나는 파라오로 하여금 억지를 부려 이스라엘을 떠나 보내지 않게 하겠다. 그러면 너는 파라오에게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내가 너에게 내 아들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라고 일렀건만 너는 그를 내보내지 않았다. 들어라, 내가 이제 너의 맏아들을 죽이리라.’]
모세가 길을 떠나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밤을 묵는데 야훼께서 찾아오시어 그를 죽이려고 하셨다. 시뽀라가 돌칼로 제 아들의 포경을 자르고 그것을 모세의 발에 대며 당신은 피로 얻은 나의 신랑입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야훼께서 모세를 놓아주셨다. 시뽀라는 모세에게 할례를 베풀어 피흘려 얻은 신랑이라고 말했다.
아론은 모세를 만나러 광야로 나가라는 야훼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산에 가서 그를 만나 입을 맞추었다. 모세는 야훼께서 자기에게 사명을 주시며 하신 모든 말씀과 일러주신 모든 증거들을 아론에게 들려주었다. 모세와 아론은 돌아가서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아론은 야훼께서 모세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그들에게 들려주고 백성 앞에서 증거들을 보여주었다. 백성들은 믿었다. 야훼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오시어 자기들이 당하는 괴로움을 살펴주셨다는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예배했다.

출4:18-31
// 모세가 이집트로 가는 도중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신 사건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죽을 죄를 진 모세의 죄목이 무엇인가? 모세(십보라)는 이것을 ‘할례’ 때문이라고 기록에 남겼다. 할례는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이다. 할례를 받는 사람들은 할례의 의미를 모르고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할례를 베풀 때야 비로소 할례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결국 할례를 받아서 히브리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할례를 베풀어서 진정한 히브리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도는 복음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복음을 받았다고 온전한 성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복음을 베푸는 (전하는) 사람이 진정한 성도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은 모세와 아론을 믿었다. 특별히 백성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굽어 살피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보셨다는 말을 듣고 엎드려 주님께 경배했다. 이것이 믿음이다. 주님께서 성도를 굽어 살피시고, 성도가 고통받는 것을 보신다는 것만으로 성도는 주님께 경배할 이유가 충분하다. 출애굽해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간다는 것은 고역에 지쳐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뜬금없는 소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언약백성에게 주님께서 굽어 살피신다는, 주님께서 자신들의 고통받는 것을 알고 계신다는 소식만으로도, 이집트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복음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카타콤의 순교자들에게, 신사참배로 옥에 갇혔던 우리 믿음의 선배들에게도 언약백성을 굽어 살피신다는 말씀이 곧 복음이었다. 임마누엘! 암울한 한국 교회의 현실에도 임마누엘의 약속만으로 위로를 받는다.
////출애굽의 여정에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원포인트 역할을 했다. 아론은 오랜 동안 모세를 돕는다. 하나님은 모세가 혼자 일하게 나두지 않으셨다. 독불장군은 없다. 하나님의 일은 합력하여 선(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다. 선발투수도 있고 원포인트 투수도 있고 마무리도 있다. 맡은 보직이 무엇이든 감독되신 하나님 뜻에 순종해야 한다. 감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감독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