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5:7-12. 읽기

그러므로 (내일을 염려하여 재물을 쌓아두려는 탐심이라는 인생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오늘 하나님의 뜻대로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므로) 믿음 안에서 형제자매는 주님 오실 때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 농부가 소출을 기다리며 오래 참듯이 인내해야 한다. 야고보는 성도에게 인내하라고 명령한다.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까우니, 두 마음을 품지말고 마음에 주님을 품으라고 명령한다. 주님께서 오실 때에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심판하실 분께서 이미 문 앞에 서 계신다고 생각하며 살라고 명령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한 예언자들을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과 인내을 견디는 본본기로 삼으라고 명령한다. 야고보는 욥의 예를 들면서 참고 견딘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한다. 주님께서는 고난과 인내의 성도를 가여워 하시고 불쌍히 여기신다. 

야고보는 맹세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마치 내일 일을 아는 것처럼 교만하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라고 말한다. (오늘 겸손하게) 순종해야 할 말씀에 순종하라고 가르친다. 그래야 (불확실한 내일은 알지 못해도) 순종해야 (확실한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 두 마음을 품지 않고 마음에 주님을 품은 삶,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지 않는 삶. 이런 삶을 위해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원망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복종하는 삶이야 말로 성도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우리 주님의 바람이다. 쉽지 않기에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마음을 품고 참고 기다리라고 명령한다. 

야고보서 4:13-5:6 읽기

13-17 (사는 곳에서 정의의 씨를 뿌려 평화의 열매를 거두기를 소망하지 않고)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정 기간동안 머물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 하는 사람들에게 야고보는 내일 일은 알 수 없다고 가르친다. 유한한 인생에서 내일 보다 중요한 것이 오늘이다. 우리 인생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내일을 염려하며 살 것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무엇이든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겠습니다” 하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주님이 주시는 생명 대신, 주님이 원하시는 일 대신, 장사하여 번 돈을 우쭐대며 자랑하는 것은 악한 것이라고 경고한다. 성도라면 사람이 해야 할 선한(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것이 곧 죄다.

5:1-6 야고보는 장사하여 번 돈을 우쭐대며 자랑하는 부자들에게, 닥쳐올 비참한 일들을 생각하고 울며 애통하라고 말한다. 재물은 썩고, 화려한 옷이라도 좀 먹는다. 금과 은도 녹슨다. 금과 은이 녹이 슬었다는 것은 순금, 순은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낸다. 많은 재물을 불순물이라고 지적한다. 금과 은의 불순물을 불로 태워내야 하듯이, 재물로 녹슨 인생이라면 연단을 받아 순수해져야 하는데 세상 마지막 날까지 재물을 쌓는다고 책망한다. 재물을 쌓기 위해 일꾼에게 합당한 품삯을 주지 않고 가로채면, 일꾼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주님이 들으신다. 가로챈 품삯으로 이땅 위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리고, 심판의 날까지도 탐심으로 가득차 있다고 판결한다. 부자는 대항하지도 않는 (가난한) 의인을 (게으르다고) 정죄하고 죽였기 때문에 유죄 판결을 받는다. 

//내일을 위해 돈을 벌고 내일을 위해 재물을 부정하게 쌓는 사람들에게, 내일은 하나님만 아신다고, 불확실한 내일보다 확실한 마지막 심판의 날을 기억하며 살라고 경고한다. 따라서 재물을 쌓아두려는 탐심이라는 우리 인생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오늘, 매순간 하나님의 뜻대로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야고보서 4:1-12 읽기

1-3 정의가 평화의 열매를 맺는다. 따라서 싸움이나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정의롭게 살지 않고, 서로가 육심의 욕심에 따라 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욕심으로도 얻지 못하면 살인도 저질러서라도 빼앗아야하고, 탐심으로도 가지지 못하면 다투고 싸워서라도 다른 사람도 얻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이렇듯 욕심과 탐심으로는 (평화를) 얻지 못한다. 욕심과 탐심은 정의와 달리 평화를 구하지 않는다. 혹여 (평화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평화마져도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가 자신의 쾌락을 누리는데 쓰려고 이기적으로 구하기 때문이다.

4-7 야고보는 간음하는 자들을 세상과 벗하는 자들이요, 세상과 벗함을 하나님과는 등을 지는 일이라고 가르친다. 세상의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 안에 사시는 성령께서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성경 말씀을 헛된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니 교만하게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섬겨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선언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교만한 자들이 아니라 겸손한 자들에게 주어진다. 그러니 하나님께 복종하고 악마를 물리치라고 명령한다. 겸손하게 하나님께 복종하면 악마는 달아날 수밖에 없다. 

8-10 성도는 겸손하게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가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도 성도에게 가까이 다가 오신다. 죄를 짓지 말라고 권면한다. 두마음을 품지 말고 정직하라고 명령한다. 정의라는 씨를 뿌리기 위해 애통하라고 명령한다. 울며 씨를 뿌리라고 명한다. 웃음을 슬픔으로 기쁨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가르친다. 바울은 “하나님의 뚯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회개를 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라고 고린도 성도에게 편지했다. 이렇게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면, 주님께서 오히려 성도를 높여 주실 것이라고 말씀한다.

11-12 믿음 안에서 형제자매라면, 곧 성도는 서로 헐뜯지 말아야 한다. 서로 다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말씀이 틀렸다고 심판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심판하는 사람이라고 선언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이고 책망한다. 하나님은 말씀도 하시고 말씀에 따라 심판도 하신다. 구원은 하나님의 판결로 결정된다. 성도는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헐뜯고 다투고 싸우는 이 모든 것은 정의로 씨를 뿌리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로 씨를 뿌려 평화를 얻는 것이 사람들 사이의 평화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룬다.

야고보서 3:13-18 읽기

13 야고보는 형제자매 가운데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착한 행동을 나타내 보이라고 도전한다.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곧 믿음이 있는 사람이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착한 행동이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함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혜는 잠언을 읽을 때 묵상했듯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곧 착한 행실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온유함으로 행하는 것이다. 온유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다.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라고 말씀하셨다. 온유함이란 어려운 사람과 함께 멍에를 메는 성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서로에게 (피차) 복종하게 한다.

14-18 마음 속에 있는 지독한 시기심과 경쟁심을 뽐내지 말고 진리를 거슬러 속이지 말아야 한다. 지독한 시기심과 경쟁심은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나오는 착한 행실과 대비된다. 시기심과 경쟁심은 땅에 속한 것이고 육신에 속한 것이고 악마에게 속한 것이다.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는 곳에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나오는 지혜는 순결하고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다. 순결하고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어야 정의의 열매를 맺는다.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 열매 맺는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듯,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착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 역시 죽은 사람이다. 믿음의 행함,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와 이해력에서 나오는 행함은 순결하고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삶을 ‘정의’라는 한 단어로 축약 한다. 그리고 정의의 씨를 뿌려서 평화를 거두어 들이라고 도전한다. 정의로 씨를 뿌리는 일은 눈물 없이는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평화를 수확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영생이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3:1-12 읽기

1-5a 야고보는 믿음의 가족들에게 가르치려는 자가 되지 말라고 경고한다. 야고보와 같이 가르치는 자로 부름을 받은 사도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믿음의 가족들, 심지어 가르치는 사도라고 해도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 특별히 말로 실수를 한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이다. 마부들은 말을 부리기 위해 말 입에 재갈을 물리고 말을 끌고 다닌다. 사공은 배의 크기와 동력에 상관 없이 작은 키로 방향을 조종한다. 이와 같이, 혀도 몸의 작은 지체지만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고 자랑질 하는데 사용된다.

5b-12 산불도 아주 작은 불씨에서 시작하여 큰 숲을 태운다. 혀도 작은 불씨와 같다. 우리 몸의 작은 지체에 불과하지만 온 몸을 더럽힌다. 인생에 불을 지르고 결국에는 지옥불에 타버린다. 사람은 어떤 종류의 생물이든지 길들일 수 있다. 그러나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혀는 겉잡을 수 없는 악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이 혀로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을 찬양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한다. 같은 입으로 찬양도 하고 저주도 한다. 그러나 믿음의 형제자매라면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샘이 한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을 낼 수 없듯이, 무화과나무가 올리브를,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을 맺을 수 없듯이, 짠 샘은 단 물을 낼 수 없듯이, 믿음의 형제자매라면 입을 함부로 놀려서는 안된다.

//믿음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언어생활이다. 특별히 선생의 경우 언행일치가 더욱더 중요하다. 잠언도, 야고보 사도도 말 한마디가 이웃을 살리기도 죽일수도 있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성도는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거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우쳐 주시도록 간구해야 한다. 그래야 말과 혀로만이 아닌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행함이 따르는 믿음을 드러낼 수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입의 재갈이 되야하고 성령의 깨닫게 하심이 내 삶을 조종하는 키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