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2:1-10

베드로는 성도가 거룩하기 위해서는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명령한다. 거룩해야 성도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자란다고 가르친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다시말해 구원의 맛을 보았으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보내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예수께 나아가야 하는 이유를 예수와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라고 가르친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란다는 것은 결국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성도의 몸을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영적예배, 곧 성도가 마땅이 드려야 할 합리적 예배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산돌에 비유한다. 아버지 하나님이 택한 모퉁이 돌이라고 한다. 이 산돌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산돌을 믿지 않는, 곧 불순종 하는 자들은 산돌이신 예수께 걸려 넘어지겠지만 성도들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성도라면 자신들을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게하신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성도들도 하나님나라 백성이 아니었다가  백성이 되었고 긍휼을 얻지 못했다가 긍휼을 얻은자라고 강조한다.

>> 산 돌이신 예수. 산돌. 베드로는 예수를 사람들에게는 버린 바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라고 표현한다. 세례 요한은 속으로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하람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라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대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야한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것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 큰 사랑이었다. 베드로는 성도들이 산돌이신 예수 같이 신령한 집으로, 곧 성전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자라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곧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이 생명을 누리는 (자라는) 삶이다. 곧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예배드리는 삶이다. 거룩하라고 하신다.

베드로전서 1:13-25

구원을 소망하는 성도들에게 베드로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성도들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고 권면한다.

예수를 알지 못랄 때 따르던 사욕을 본받지 말고 말씀에 순종하라고 권면한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받아 거룩한 자가 되는 길이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 따라서 심판하시는 아버지를 모신 자녀답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살아야 한다. 베드로는 우리가 죄사함을 받은 것은 은과 금 같이 없어질 돈이 아니라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속량되었다고 가르친다.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다. 베드로는 성도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만 있어야 한다고 전한다.

영혼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순종해야 한다. 진리에 대한 순종의 첫 실천방안으로 거짓없이 형제를 사랑하고, 마음으로 형제를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한다.

성도의 거듭남은 썩어질 씨가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고 설명한다. 베드로는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라버리는 풀과 시들어 떨어지는 꽃과 대비시킨다.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고 전한다. 이 주의 말씀이 복음이라고 전한다.

>> 베드로는 성도의 거룩함을 강조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강조한다. 진리에 순종하는 첫 실천방안으로 형제사랑을 제시한다. 거짓없이 형제를 사랑하라.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 성도들에게 주실 은혜가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을 통해 주어진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주께서 다시 오실 때 주실 주의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고 하신다. #거룩하라.

베드로전서 1:1-12

발신자 – 베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수신자 –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

문안 –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는 수신자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비 하나님을 찬송한다고 고백한다. 베드로는 흩어진 성도들이 거듭나고, 흩어진 성도들에게 산 소망이 있는 이유를 아버지 하나님께서 긍휼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에서 찾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마찬가지로 성도들로 하여금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 곧 하나님나라를 상속받게 하신다. 성도들이 마지막 때에 받은 구원이 바로 하나님나라에 참여하는 것이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성도들은 이 구원의 소망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는다.

(그러므로) 여러가지 시험을 받아도 잠깐 근심할 수는 있어도 오히려 큰 기쁨을 누리게 된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이다. 연단을 통하여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성도들은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을 것이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에수를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는 성도들은 예수를 사랑하는 자들이다. 볼 수는 없어도 믿음으로 사귈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과 기쁨을 준다. 이 믿음의 결국이 곧 영혼의 구원이다. 영혼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영의 증언과 지시를 상고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의 섬김에 의하여 성도들에게 계시로 알게 되었다.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알려졌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영의 증언과 지시를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 예수를 보지 못하면서도 예수를 사랑하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하소서.

고린도전서 16:13-24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바울은 성차별주의자가 아니다. 당시 문화에따라 아내들에게 잠잠하라고 권면/명령 했다고 비난해서는 안된다. 바울은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 예수를 경외함으로 피차복종해야 하는 관계라고 가르친다. 여기서도 남자답게 강건하라는 능동적이고 책임감있는 믿음을 강조하는 표현일 것이다. 따라서 남자와 여자가 차별없이 적용해야 한다.

바울은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라고 권면한다. ‘너희 모두는 사랑안에서 행하라’ 라는 의미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라고 한다. 곧 일의 성취가 목적이 아니라 사랑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사람들을 소개하고 문안하며 편지를 마친다.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사람들간에 서로 순종하라고 권면한다. 지체의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이 기쁨이요 평안이라고 한다. 서로 순종하고 부족한 것을 채우는 사람을 알아주라고 당부한다.  ….

22절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라는 의외?의 말로 편지를 맺는다.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하나로 결론 짓는다면 주에 대한 사랑이 없음이 아닐까? 바울은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의 몸된 교회가 분쟁하고 음행하고 우상숭배하고… 곧 저주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바울 자신이 고린도 성도들을 정죄하지 않는다. 심판을 다시 오실 주님께 맡긴다. 바울은 우리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사모한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그때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성도들과 함께하고, 바울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들과 함께하기를 축원한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의 사랑이 아니면.” 주님의 은혜를 받은 자라면 사랑안에서 행해야 한다. 주님의 은혜를 받았으니 사랑 안에서 순종해야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라고 하신다.

 

고린도전서 16:1-12

*** 한국생활, 집이 아니라 선교관 생활을 하다보니 말씀묵상을 정리하기 쉽지 않다. 온 가족이 한방에서 잔다. 아마 아이 셋이 생긴 후로는 처음이 아닌가 한다. 불편한 점이 없진 않지만 한방에서 자니 좋다. ㅋㅋ

>> 교회가 연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된 다른 교회를 돕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한 몸에 참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연보다. 지교회 내에서도 가난한 지체를 도울 수 있고, 우주적인 교회를 생각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를 도울 수 있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좋은 방법은 대면하여 교제하는 것이다. 코로나로 비대면 교제를 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이를 잘 반증한다. 그렇다고 대면교제만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주께서 허락하시면 함께 머물수도 있지만 주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비대면 교제도 필요하다. 온라인 묵상나눔이 그런점에서 비대면 교제의 좋은 장이 될 수 있겠다.

>>바울은 디모데를 고린도에 보낸다. 자신의 가르침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디모데를 보내 간접적인 교젤를 나눈다.

>> 바울은 아볼로를 형제로 생각한다. 아니 바울과 아볼로는 형제다. 아볼로는 고린도교회에 아볼로파를 형성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사역자였지만 지금은 고린도교회에 갈 뜻이 없다고 바울에게 말한 듯 하다. 아볼로도 기회가 있으면, 곧 주께서 허락하시면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겠다고 바울에게 답을 한 것 같다. 바울과 아볼로는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린도교회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고린도 방문을 계획하거나 미루거나 했다.

>> 나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상부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