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12-2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바울은 감옥에 갇혀있다. 13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이 온 친위대와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다고 밝힌다 (새번역). 공동번역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갇혔다고 번역하지만 개역개정처럼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가 개인적으로 더 뜻깊게 다가온다. // 이번에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보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안경을 끼고 빌립보서를 읽고 싶다.

바울의 매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는 형제도 생겼다. 형제들 중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다고 바울은 편지한다. 바울은 형제들이 겉치레로 하는 참으로 하든 전파되는 것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기쁘고 또 기뻐할 것이라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바울에게는 복음전파의 목적이 숫자놀음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성도들과 함께 지어져 가는 것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가 처한 사정보다도 그 자신이 여전히 그리스도 예수의 몸된 지체라는 사실로 (그리스도의 몸이 자라는 것을) 기뻐하고 기뻐할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바울은 19절에서 (자신이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듯) 빌립보 성도들의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바울을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안다고 고백한다. 이 구원은 바울이 감옥에서 풀려날 것을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이어지는 구절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온전히 지어지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구원을 자신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라고 편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가 ‘내안에 그리스도’가 된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된 성도들, 교회 공동체에 유익하다고 말한다. 하물며 바울 자신에게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는 (2:20)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의 삶이라고 편지한다.

궁극의 목적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내안에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이요, 세상을 떠나서는 그리스도 예수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바울은 좀 더 살아서 빌립보 성도들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고백한다. 한구절 한구절이 다 어렵다. 그러나 바울이 바라는 믿음의 진보와 기쁨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랴.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로 아름답게 단장하면서 하객들에게 신랑되신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는 것외에 무슨 자랑이 또 있으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빌립보서 1:1-11

감옥 안에서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쁨으로 간구하는 이유를 빌립보 성도들이 첫날부터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삶이다. 곧 성도의 삶이다. 전도나 선교는 복음을 위한 일의 극히 작은 한부분이다. 바울은 복음을 위한 일을 하나님께서 성도 안에서 시작하신 착한 일이요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실 일이라고 확신 한다.

하나님께서 성도 안에서 시작하신 착한 일은 구원, 곧 성도의 성화요 영화다. 바울은 다른 편지에서 성도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화는 성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함께 지어져 가는 과정이요 영화는 그 열매다.

바울은 자신도 빌립보 성도들과 함께 지어져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고백한다. 빌립보 성도들을 바울 자신의 복음 사역에 참여한 자라고 인정한다. (후원유무를 떠나 그리스도 예수의 몸된 지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심장같은 존재로 소개한다. 빌립보 성도들이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온 몸에 피를 공급하는 심장의 역할을 기도로 감당하고 있다고 쓴다. 그러나 바울은 성도들의 (바울 자신도 포함) 성화와 영화가 바울의 기도에 대한 열매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은 의의 열매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11절 마지막.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라고 하니 몸둘바를 모르겠다. 눅 12 :37 에서 예수님은 복있는 종에 대해 이렇게 비유하셨다.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사는’ 삶! (그리스도 예수에 하나로 묶인) 성도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할 제목이다.

여호수아 24:19-33

‘우리도 주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라는 백성들의 맹세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하나님을 능히 섬기기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신)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신)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격려가 아니라 이 무슨 저주스러운 독설인가?

여호수아는 주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서약을 쉽게 생각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만일 너희가 주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복을 주시던 주하나님께서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실 것이라고 경고한다. 백성들은 다시한번 ‘우리가 주하나님을 섬기겠나이다’라고 여호수아에게 다짐을 한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너희가 주하나님을 선택하고 주하나님을 섬기리라 한 것에 너희 스스로 증인이 되었다고 확인하니, 백성들이 우리가 서로서로에게 증인이 되었다고 대답한다.

여호수아는 지체없이 이스라엘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돌이켜 주하나님께 향하라고 명한다. 백성들은 ‘우리 주하나님을 우리가 섬기고 주하나님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겠습니다’ 라고 응답한다. 이렇게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백성들과 함께 주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언약을 맺는다.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다는 의미는?) 하여간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언약맺은 이 사건과 언약을 맺으면서 제정한 율례와 법도를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주하나님의 성소 곁 상수리 나무 아래에 큰 돌을 세워 언약의 증거로 삼았다. 여호수아는 이 큰 돌이 언약의 증거가 되리라 라고 하면서 주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증거돌을 세운후 백성들을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여호수아는 110세에 죽었다. (120세에 죽은 모세보다 10년을 덜 살았고, 모세는 죽기까지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하는데 여호수아에게는 끊임없이 늙었다는 수식어가 붙였다.) 여호수아는 죽어 자신이 기업으로 받은 딤낫 세라에 장사되었다. 사관은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주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주하나님을 섬겼다고 기록한다. 또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다고 덧붙인다. 여호수아가 속한 에브라임 지파는 요셉 자손이다. 사관은 세겜땅은 야곱이 백크시타를 주고 하몰에게서 산 밭이라고 주석을 단다.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의 죽음과 함께 제사장 엘르아살도 죽어 장사되는 것으로 마친다.

// 은혜는 결코 값싸지 않다. 순종없이 맹세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보화가 감추인 밭을 사는 것이고 값비싼 진주를 사는 것이라고 비유하셨다. 밭이든 진주든 자신이 가진 소유 모두를 팔아야 살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서약은, 곧 하나님나라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은 버리겠다는 서약이다. 많이 가진 자든 적게 가진 자든 자신의 소유 전부를 팔아 버려야 얻을 수 있다. 어떤 부자에게는 수십 조원 이상이 될 수도 있고 정말 가난한 자에게는 공짜가 될 수도 있으나 전부를 팔아야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 구약에서도 동일하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를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라고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 결국은 사야한다는 것이다. 약속의 땅은 주어졌지만 점령해야 할 땅이다. 하나님나라는 주어졌지만 순종으로 누려야 (사야) 할 나라다.

주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동안에 이스라엘이 주하나님을 섬겼다고 한다. 결국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알아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 영생이다. 참 안식이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율법책을 기록하고 큰 돌이 주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었고 백성들이 한 맹세를 (들은) 증거라고 말한다. (서로가 서로의 증인 됨을 망각할 때 하나님은 돌들로 증거를 삼아 심판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서 돌들로도 능히 아브라함 자손이 되게 하시는 분이라고 하셨다.) 우리 성도들은 22절 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증인이 된다. 성도라면 적어도 한번은 (세례 때) 삼위 하나님 앞과 여러 성도들 앞에서 서약을 한다. 성도는 서로가 이 서약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관계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존재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삶이다.

여호수아 24:1-18

여호수아 유언에 대한 보충설명, 혹은 23장지도자들에 대한 유언을 하나님 앞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유언을 공증하는 장면이다.

여호수아는 세겜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모으로 지도자들을 불러 하나님 앞에 나와 서게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이삭, 야곱과 에서, 모세와 아론, 애굽에 내린 재앙, 출애굽, 홍해, 광야생활, 요단 동쪽 아모리에 대한 승전, 발람의 저주를 막으시고 오히려 축복하게 하신일, 여리고 함락, 가나안 일곱족속을 이스라엘에게 넘겨주신 일 등등, 약속의 땅을 주시기까지의 모든 역사의 주인공이 주하나님이시라고 전한다. 모든 일의 주어가 ‘내가’이다. 곧 ‘하나님께서’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는 주하나님을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라고 당부한다. 이스라엘 조상들이 섬기던 이방신들,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역사와 삶의 주인되신) 주하나님만 섬기라고 명령한다. 주하나님만 섬기는 것은 선택의 문제라고 한다. 두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만일 주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고 말하면서, 여호수아 자신은 “오직 나와 내 집은 주하나님을 섬기겠다”라고 선언한다.

이에 백성들이 화답한다. “우리가 결단코 주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겠습니다.” 백성들은 주하나님을 우리 주하나님이라고 부른다. 보호자 주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약속의 땅을 주신 주하나님이라고 시인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약속한다. “주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신)이십니다.”라고 맹세한다.

// 여호수아서에는 ‘주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신)이십니다’라는 고백이 이어진다. 여호수아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까지의 모든 역사의 주어인 “내가”가 “주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한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에서는 주하나님을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주하나님을 섬기라고 당부한다.

나의 삶의 주어는 누구인가?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결국은 자기 뜻대로 했던 사람들은  심판날에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라고 반문할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 이들에게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가” 하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지혜롭다고 하신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신다.

여호수아의 유언은 하나님 앞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공증된다. 주하나님을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주하나님을 섬기라. 내가 세례를 받으면서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서약한 이것 말고 나의 믿음의 자녀들에게, 이웃들에게 남길 말이 또 무엇이 있으랴.

하나님을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주님을 따르것을 방해하는, 아직까지 내가 치워버리지 못한 우상들은 무엇인가?

여호수아 23 (1-16)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로 본문은 시작한다. 솔직히 여호수아가 요단을 처음 건넜을 때 벌써 아흔이 넘었고, 땅분배 직전에 이미 주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13:1)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오랜 후라는 것은 꼭 긴 시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호수아의 늙음보다는 여호수아의 사명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여호수아는 온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불러서 일종의 유언을 시작한다. 요약하면…

나는 나이가 많아 늙었다. 주하나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하나님(신)이시다. 아직 점령하지 못한 나라들도 이미 점령한 나라들과 함께 너희들의 기업으로 제비뽑아 주었다. 주하나님께서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쫓아내실 것이니 주의 말씀(약속)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하여라. 힘써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아라. 너희 중에 남아 있는 민족 중에 들어가지 말아라. 이방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아라. 이방 신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아라. 이방 신들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아라. 오직 너희의 주하나님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너희의 주하나님은 강대한 나라를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다. 오늘까지 너희에게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다. 너희는 ‘일당천’이다. 왜냐하면 주하나님께서 약속대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삼가 조심하여 너희의 주하나님을 사랑하라.

만약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방 민족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주하나님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실 것임을 확실히 알아라.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허리에 채찍이 되며 눈에 가시가 되어 너희가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망할 것이다. 나는 죽는다. 그러나 주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은 하나도 틀리지 않고 다 너희에게 응할 것이다. 주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도 이미 마음과 뜻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주하나님의 선한 말씀이 온전히 성취된 것 같이 주하나님의 모든 불길한 말씀도 너희가 이 아름다운 약속의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너희에게 임할 것이다. 만일 너희가 주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다른 신들을 섬겨서 그들에게 절하며 주하나님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칠 것이다.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다른 신을 사랑하거나. 여호수아의 유언은 두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주하나님 대신 다른 신을 섬긴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칠 것이다.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는 순종의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을 범하여 다른 신들을 섬긴다면 (아름다운) 하나님나라에서 멸망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율배반적이요 모순적인 말씀이다. 하나님나라에서 멸망하다니. 그러나 다른말로하면 불순종은 더이상 하나님나라에서 사는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약속의 땅’에서 ‘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약속’이 중요하다. 언약이 중요하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 같이 하라고 말씀하신다. 한편으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민족과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신다. ‘가까이 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한글 의미보다 훨씬 강한 뜻을 가졌다. 창세기에서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라에 사용된 단어다. 따라서 하나님께 가까이 하다는 하나님과 한몸됨을 의미한다. 곧 임마누엘이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의미다. 결혼관계라고 해도 좋겠다. 역으로 말하면 이방 민족과 가까이 하는 것은 행음이다. 임마누엘의 관계를 깨는 것이다. 처음에는 올무, 덫,채찍, 가시들을 감기같이 쉽게 넘길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영적으로 병들어 죽는다. 임마누엘로 오늘의 영적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죽음을 앞둔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임마누엘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 주야로 율법책을 읽고 묵상하여 율법에 기록된 대로 순종하는 것이라는 주하나님의 가르침을 기억한다. 율법을 순종함에 (행함에)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이라고 되씹는다. 주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시며 주신 말씀을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을 불러 유언으로 전한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나라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그리고 지도자뿐만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면 누구나 따라야 할 명령이다. 임마누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