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4:1-14

아홉째 해 열째 달 열째 날에. 오년 넷째 달 초닷새부터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으니 4년반이 흘렀다. 심판에 관한 주하나님의 말씀은 차고 넘치도록 에스겔을 통해 예언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왔다고 주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이 마지막 순간에도 주하나님은 반역하는 주님의 백성에게 (이제는 내 백성에게라고 부르시지도 않고 ‘이 반역하는 족속’이라고 칭하신다.) 비유로 심판의 불가피성을 예언하게 하신다.

가마를 걸라고 하신다. 가마에 물을 붓고 양 한마리를 골라 각을 뜨고 모든 좋은 고기 덩이를 넣고 고른 뼈를 가득히 담아 푹 끓이라고 하신다. 그런데 뼈가 무르도록 삶으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은 이 비유를 또다른 비유로 해설하신다. 가마는 피를 흘린 성읍이다. 즉 불순종한 예루살렘이다. 깨끗하지 않다. 핏빛으로 녹슬었다. (피채) 삶은 고기는 먹을 수 없으니 모두 건져버리라고 하신다. 고기를 피채 먹을 수는 없다. 피는 땅에 쏟아 티끌로 (흙으로) 덮어야 함에도 피가 스며들지 않는 바위에 두었다고 하신다. 피를 바위에 두고 덮지 아니함처럼 주하나님도 분노를 나타내실 것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가마를 끓이기 위해 가마 밑에 쌓아둔 장작더미를 크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심판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시겠다는 뜻이리라. 그래서 고기를 삶아 녹이고 국물을 졸이고 그 뼈를 태우고 가마가 빈 후에는… 어릴때 난로위에 물을 끓이다 주전자를 태워버린 적이 있었는데… 완전 그꼴이다. 그러나 주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가마의 놋을 달궈서 그 속에 더러운 것을 녹게 하며 녹이 소멸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신다. 심판을 통해 정결케 하시는 것이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그리고 연단을 통해 새로운 소망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예루살렘은 너무 심하게 녹슬었다는 것이다. 불에서도 녹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신다. 불에서도 없어지지 않는 더러운 것들 중의 하나가 음란이라고 하신다. 음란은 씻을래야 씻을 수 없다고 하신다. 다시 깨끗하여지지 않는다고 하신다.

주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진다.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이루실 것이라고 하신다. 돌이키지도 않고 아끼지도 않고 뉘우치지도 않고 심판을 행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 행위대로 갚으시겠다고 하신다. 행위대로 재판하시겠다고 하신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 심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는 방편이다. 달게 받아야 한다. 너무 심하게 녹슬기 전에, 씻을래야 씻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인내로 주하나님의 연단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두주인을 섬기는 음란은 결코 씻을 수 없는 더러움이라고 하신다. 두마음을 품지 말라고 하신다.

에스겔 23:36-49

22장에서 에스겔에게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을 심판해야겠지’라고 말씀하신 주하나님께서 다시한번 에스겔에게 오홀라와 오홀리바를 심판하라고 하신다. 심판하시는 이유, 즉 그들이 행한 가증한 일들을 낱낱이 말하라고 하신다.

행음하였고 폭정으로 무고한 피를 흘렸고 우상과 행음하엿고 우상에게 자녀를 화제로 드렸고… 그러고도 성전에 나와 주하나님을 섬긴다고 하고, 안식일을 지킨다고 하니 주하나님은 이런 행위들을 성소를 더럽히며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심지어 우상에게 자녀를 화제로 드린 그 날, 성전에 와서도 율법에 따른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상에게 제사를 드렸다고 저들의 잘못을 꼬집으신다.

또, 외세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창녀처럼 단장하고 즐겼다고 한다. 음행으로 쇠한 여인은 바로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이다. 늙고 몸이 망가져 가는 것도 모르고 그들이 외세와 서로 행음하고 있다고 지적하신다. 외세가 음행에 빠진 오홀라 오홀리바를 창녀취급한다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오홀라 오홀리바를 의인이 간통한 여자들을 재판함 같이 재판하실 것이다. 주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오홀라와 오홀리바를 창녀취급한 자들로 하여금 오홀라와 오홀리바를 공포에 몰아넣고 약탈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오올라와 오홀리바는 돌에 맞고 칼로 죽임을 당하며 자녀들까지 죽임을 당하며 집들까지 불살라질 것이라고 하신다. 온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은 이렇게 망할 것이다.

주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 땅에서 음란을 그치게 하시려고 심판을 행하신다. 심판을 통해 모든 여인이 정신이 깨어 더 이상 음행을 본받지 않게 하신다. 음란을 행한 자들, 우상을 위하던 자들은 자신들의 죄값을 담당해야 한다. 행위대로 갚으시는 주하나님을 알라고 하신다.

//심판전에 돌이키면 좋으련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신을 차리고 음행을 본받지 않아야 한다. 행위대로 갚으시는 주님을 알아야 한다.

에스겔 23:22-35

오홀리바에 대하여 주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에 (남유다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주하나님은 네가 의지하던 (사랑하던) 이방나라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여 너를 칠 것이다. 바벨론과 바벨론에 속한 나라들, 앗수르 등등 예루살렘이 하나님 대신 의지하려고 했던 나라들을 심판의 칼로 사용하신다고 하신다. 이방나라가 재판관이 되고 이방나라가 자신들의 법대로 재판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법을 따르기는 커녕 세상 법을 적용해도 예루살렘은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뜻이리라.) 주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질투하신다고 하신다. 그 질투는 예루살렘이 사랑하던 이방의 칼에 의해 고스란히 집행된다. 수치는 수치대로 당할 것이다. 예루살렘이 음란과 행음하던 것을 그치도록, 예루살렘이 이방을 향하여 도움의 눈을 들지 못하도록, 곧 세상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하실 것이다. 애굽을 향해서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도록, 애굽도 기억하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주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바벨론을 미워하고 싫어해서 애굽을 향해 도움을 청한다해도) 바벨론 손에 예루살렘을 붙이시겠다고 하신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의 음란과 행음을 심판하여 만천하에 드러낼 것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다시한번  예루살렘이 심판을 면할 수 없는 이유를 음란하게 이방을 따르고 이방의 우상으로 자신을 더럽혔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오홀리바가 (예루살렘이) 이미 망한 오홀라 (이스라엘)의 길로 행하였기 때문에, 주하나님께서 오홀라에게 내리신 사약을 오홀리바에게도 내리신다고 하신다. 오홀리바도 오홀라가 마신 사약을 마시고 이방나라들에게 비웃음과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하신다. 오홀리바는 사약을 받고 놀라겠지만 패망의 잔을 마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약을 어떻게 하면 면할 수 있을까 근심하여도 한방울도 남김없이 마셔야 할 것이다. 주하나님을 잊어버린 결과다. 주하나님을 버린 결과다. 음란과 음행의 죄는 다른 것이 아니라 주하님을 잊어버리고 주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자신이 집착하는 것 (사랑하는 것) 때문에 주하나님을 잊어버린다면 입으로는 계속 주여 주여 해도 주님은 그사람을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실 것이다.

// 심판을 달게 받으라고 하신다. 살리시는 것은 주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이삭#예수/십자가

에스겔 23:1-21

또 주하나님이 말씀하신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듯이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비유도 끝이 없다.

이번에는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를 오홀리바 오홀라라는 두 자매로 비유하여 온 이스라엘의 행음을 지적하신다. 이들은 애굽에서부터 행음하였다. 출애굽전부터 행음했다고 하시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고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셨을 때도 행음하였다.

오홀라는 주변 강대국 앗수르를 따라 행음하였다. 앗수르의 모든 우상으로 자신들을 더럽혔다. 애굽에서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행음을 이어왔다. 주하나님께서는 이런 오홀라를 오홀라가 기대어 의지하고 행음하던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게 하셨다. 주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오홀라에 대한 심판의 칼로 사용하신 것이다.

오홀리바는 주하나님께서 언니 오홀라를 심판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오홀리바도 행음을 멈추지 않았다. 주하나님은 오홀리바가 오홀라보다 음욕을 더했다고 지적하신다. 오홀라의 간음보다 오홀리바의 간음이 더 심하고 부패했다고 책망하신다. 오홀리바도 앗수르를 연애했다. 오홀라와 오홀리바가 같은 길을 간것이다. 오홀리바도 더러워졌다고 하신다.

오홀리바는 음행의 대상을 갈대아 사람, 곧 바벨론으로 바꾼다. 오홀리바에게는 바벨론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 바벨론을 사랑하게 되어 바벨론을 따르게 되었다. 그런데 바벨론과의 연애는 오래가지 않았다. 바벨론에게 오홀리바를 싫어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앗수르가 오홀라를 싫어한 것 같이 바벨론도 오홀리바를 싫어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홀리바가 젊었을 때 사랑을 나눴던 애굽을 기억하고 의지하게 된다.

// 오홀라 오홀리바는 하나님께 속하였다. 그럼에도 하나님 대신 애굽, 앗수르 바벨론 등등 주변 강대국들을 의지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대신 주변 강대국을 의지하는 온 이스라엘을 행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도들에게 주하나님 대신 높아진 것이 있으면 음행에 빠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아는 지식을 가로막는 모든 교만을 쳐부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께 복종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다.

에스겔 22:17-31

주하나님의 말씀이 오늘도 에스겔에게 임한다. 에스겔은 끊임없이 말씀이 내게 임했다고 밝히며 예언을 이어간다. 에스겔에게는 주하나님의 말씀이 예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자체였다.

앞에서 주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자기 죄로) 수치를 당해서라도 주하나님을 알라고 하셨는데 드디어 이스라엘을 ‘찌꺼기’가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대장간에 있는 쇠를 녹이고 남은 찌꺼기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은 이 찌꺼기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으신다. 예루살렘이 찌꺼기들로 가득찼다는 의미일 것이다. 주하나님께서는 이 찌꺼기들을 풀무에 넣고 더 센 불로 (주하나님의 심판의 불로) 녹여버리겠다고 하신다. 분노의 불로 완전히 녹여버리겠다고 하신다. 그때서야 이 모든 것이 주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의 말씀는 대장간 찌꺼기 비유를 보충설명하신다. 예루살렘은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라고 하신다. 찌꺼기로 가득찬 땅이다. 심판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다. 심판의 날에 분노의 불을 그대로 견뎌야 한다. 아니 분노의 불에 녹아내려야 한다. 놋, 주석, 쇠, 납, 은의 찌꺼기들은 정결하지 않는 선지자들, 제사장들, 고관들, 그리고 이들을 따라 갑질하는 백성들을 뜻한다.

주하나님은 먼저 선지자들을 먹이감에 포효하는 포악한 사자와 같다고 하신다. 주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삼켰다고 한다. 사람들의 재산과 보물을 빼앗고 (죽여) 과부들이 많아 지게 하였다고 책망하신다. 제사장들에게는 율법을 범하였고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됨을, 정함과 부정함을 구별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신다. 심지어 안식일도 지키지 않았다고 하신다. 제사장들에게 제사는 커녕 더럽힘을 받았다고 하신다. 고관들도 탐심이 가득한 이리 같아서 불의한 이익을 얻으려고 피를 흘렸다고 하신다. 선지자들은 이런 고관들을 변호해 주기 위해 거짓 예언을 했다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 하지 않은 말씀을 주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속였다. 그러니 일반 백성들도 포악과 강탈을 임삼게 된 것은 당연하다. 자신보다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압제하고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하였다. 예루살렘은 이렇게 찌꺼기들로 가득찼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하나님은 의인을 찾으신다. 예루살렘을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찾으신다. 그러나 찾지 못하셨다고 하신다. 주하나님은 분노의 불로, 진노의 불로 찌꺼기가 된 예루살렘을 녹이신다. 그들의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신다. 주하나님의 말씀이다.

// 성도들은 찌꺼기가 조금도 없는 정금으로 연단되어야 한다.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주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실 주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순종이 곧 임마누엘의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