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7:5-73

(본문 길이에 압도 당하다.) 느헤이먀는 하나님께 감동되어 유다백성들에게 주민등록을 하게 한다. (물론 순서상으로는 하나님께 감동되어 1차 귀환자 명부를 찾아 본 것으로 되어있지만)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감동된 것은 환상이나 주님의 음성을 들어서가 아니라 근 한세기 전에 작성된 스룹바벨의 1차 귀환자 명부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느헤미야는 이 귀환자 명부를 다시 기록할 정도로 자세히 살폈다. (오늘날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록된 성서 말씀을 읽을 때 보혜사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심을 느끼면서 하나님께 감동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런데)

느헤미야는 1차귀환자들이 예루살렘과 유다에 돌아와 각기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다는 기록을 보았다. 느헤미야는 읽으면서  왜 예루살렘은 성읍은 큰데 그 주민은 적을까?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주민등록을 새로 실시해 예루살렘이 고향인 사람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돌아와 거주하게 할  심산이었을 것이다.

남의 기록을 열심히 들여다 볼 이유는 없으나 귀환자 42360명에 노비가 7337명, 말 노새 낙타 나귀를 다합하면 이동용 가축만 8천마리가 넘는다. 엄청난 규모다. 제국에서 한 몫을 잡은 사람들이 귀환을 한 것이다. (5인가족에 한마리 정도니 모두 자가용을 타고 귀환한 셈이다.  장거리 여행에 꼭 필요한 가축이었다. 거기에다 집집마다 노비까지 한명씩 거느렸다.그렇다면 모르드개처럼 제국에 남았던 사람들은 오히려 너무 가난해서 귀환하지 못했을 것이다. 뇌피셜이다.) 그리고 1차 귀환후에 거의 한세기기가 흘렀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반세기는 훌쩍 넘는다.) 제국에 남아 제국의 교육을 받아 제국의 제도권에 들어간 느헤미야는 요즘말로 하면 개천에서 난 용이다. 이제야 성벽재건 후에도 유다 귀족들이 느헤미야를 홀대한 태도가 이해된다. (과연 그랬을까?)

하여간 정작 느헤미야가 실시한  백성들의 주민등록부는 따로 기록하지 않는다. 1차 귀환자 명부가 너무 자세해서 또 1차 귀환 인원에 비해, 심지어 에스라 때와 비교해도 느헤미야 자신과 함께 귀환한 인원이 상대적으로 너무 적어서 굳이 추가로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까? 아니면 느헤미야 자신은 영구 귀환이 아니어서 애당초 귀환자로 취급하지 않았던 것일까?

느헤미야는 성벽재건 후 예루살렘 성읍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길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읍은 크고 넓으나, 인구가 얼마 안 되고, 제대로 지은 집도 얼마 없었다. 4절 새번역>  당연히 이주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주민등록의 목적은 예루살렘이 고향인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1차 귀환자 명부를 붙들고 씨름하지 않았을까?

예수님도 우리가 하나님나라에 거주하길 원하신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우리 거처를 준비하러 가신다고 하셨다. 그렇다. 하나님나라는 큰 성읍으로 거할 곳이 많다. 그렇지만 황금집이 있는 곳은 아니다. 대신 우리 주님이 계신 곳이다.  하나님나라는 우리가 삼위 하나님과 거처를 함께 하는 곳이다. 임마누엘! 이 땅에서 임마누엘을 누리는 자는 여전히 적다. 예수님은 하늘에 기록된 우리 이름을 보며 중보하신다.

느헤미야 7:5-73 혼자 읽기

 

 

느헤미야 6:15-7:4

성벽이 재건되었다. 52일 걸렸다. 신축이 아니라지만 두달이 채 되지 않아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성벽재건에 참여한 사람들이 열심으로 일했다는 반증이다. 한편으로는 제국의 교육과 제도에서 배운 느헤미야의 ‘밀어붙이기’였을 수 있다. 그래선지 반응이 영 시원찮다. 감격과 감사가 없다. 오히려 대적들의 반응만 기록하고 있다. 대적들과 이방이들은 성벽재건 소식에 두려워하고 크게 낙담했다. 대적들과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온갖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성벽재건을 할 수 있었던 것을 하나님의 역사로 인정했다.

(성벽재건의 감격과 감사를 적지 않은 것은 유다에 느헤미야를 음해하려는 시도가 여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다 내부에 느헤미야 반대파가 여전히 활개치고 있었다.) 산발랏과 함께 성벽재건을 방해했던 도비야는 유다 귀족들을 선동해서 느헤미야를 압박했다. 도비야는 성벽재건 참여자 명단에 두번이나 이름이 나오는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며느리로 삼았다. 정략결혼?관계로  도비야는 많은 유다 귀족들과도 친했다. 도비야와 동맹을 맺은 사람들은 느헤미야 면전에서도 서슴없이 도비야를 칭찬했다. 그들은 느헤미야의 말을 도비야에게 고자질 해서 도비야로 하여금 느헤미야에게 협박편지를 보내게 했다. 낙하산으로 유다 총독이 된 느헤미야는 외로왔다. 자신은 하나님의 낙하산으로 예루살렘에 왔는데 다른 유다 귀족들과 그 땅을 담당하던 제국의 관리들은 느헤미야가 제국의 왕의 낙하산으로 유다총독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리적 성벽을 재건되었을지 몰라도 영적 성벽재건은 요원했다.

우여곡절 끝에 성벽재건이 끝났다. 성문을 달고 성문지기를 배치했다. (노래하는 사람과 레위 사람들도 배치된 것은 여전히 외침에 대한 위협이 있어서 성문지기 인원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일까?) 느헤미야는 동생 하나니 (예루살렘 소식을 느헤미야에게 알린 형제다.) 와 요새 지휘관 (문관보다는 무관이었을 것이다) 하나냐에게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했다. 느헤미야는 하나냐를 성실하고 (충성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성벽재건과정에서 보여준 느헤미야 자신의 성품과 일치한다. 돈안지유돈(豚眼只有豚) 불안지유불(佛眼只有佛) 이라고 했던가)

느헤미야는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말고 해가 여전히 높이 떠 있을 때 (해지기 전에) 성문을 닫으라고 명했다. 그만큼 예루살렘의 안전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당부한 것이다. 그리고 외부인이 아닌 예루살렘 성 사람들로 하여금 지정된 곳에서, 이왕이면 집 가까운 곳에서 경비를 서도록 명했다. (예루살렘) 성읍은 크고 넓은데 거주민은 얼마 안되고 거주할 집도 얼마 없었다는 것은 여전히 치안이 취약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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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6:1-14

성벽재건은 착착 진행되었다. 이제 성문에 문을 다는 일만 남았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바비아 사람 게셈 등등 우리의 원수들이 느헤미야 암살이라는 새로운 음모를 꾸몄다. 저들은 물리적 성벽재건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저들은 느헤미야에게 사신을 보내 회담을 하자며 암살하기 좋은 들판으로 나오라고 했다.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의 막바지라 바빠서 만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이와 같은 시도는 네번이나 반복되었지만 느헤미야는 같은 말로 회담제의를 거절하였다.

산발랏은 다섯번째에는 종편에 전갈를 보냈다. (앞선 네번은 사자들을 보냈었다.) 더군다나 봉하지도 않는 편지를 보냈다. 한마디로 공식적이지도 않고 편지 내용을 공개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산발랏은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축하고 유다의 왕이 된다는 반역에 관한 소문이 이웃나라에도 퍼져있고 구체적인 증인까지 있다. 선지자들에게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되려는 계획도 들린다. 이 일이 제국의 왕의 귀에도 들어갈 날이 멀지 않았으니 이 일을 잘 마무리 하기 위해 의논하자.>라고 편지에 썼다. 한마디로 모반했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왕에게 보고되면 예루살렘은 제국의 왕이 보낸 군대에 의하여 또 다시 폐허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조성하기 위한 시도였을 것이다. 느헤미야가 불안한 여론 밀려 회담장으로 나오기를 바라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회담장에 나가는 대신 느헤미야는 그런 소문은 거짓이다. 이 소문은 산발랏 네가 지어낸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회신함으로 백성들을 안심시켰다. 한편으로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에 참여한 우리들이 산발랏의 으름장에 놀라서 공사를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힘 주시기를 기도했다.

(느헤미야를 해하려는 산발랏의 음모는 집요했다. )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 하자 느헤미야가 친히 그를 찾아간다. 스마야가 어떤 인물인지 따로 밝히지 않는다. 스마야는 제사장 중 한 명이었을 것이고 아마 느헤미야를 도와 성벽재건을 하다가 갑자기 공사에 나오지 않자 느헤미야가 공사 책임자로서 문안하기 위해 방문한 것 같다. 느헤미야가 방문하자 스마야는 밤에 자객들이 느헤미야를 죽이러 올 예정이니 함께 성전으로 피해 죽음을 면하자고 조언했다. 느헤미야는 지도자인 자신은 도망해서도 안되며 또 자신은 성소에 들어갈 자격도 없다고 대답했다. (백성들 앞에서는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며 하나님 앞에서는 작은 자로서 서는 모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때 느헤미야는 스마야가 산발랏 일당에게 매수당한 것을 알아챘다. 대적들이 스마야를 암살 목적으로 포섭한 것 같지는 않다. 느헤미야에게 겁을 주고 성전을 더럽히는 죄를 짓게해서 지도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이 사건후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도비야와 산발랏 일당이 한 일을 잊지 말아달라고 기도했다. 자신을 해하려고 예언한 여선지 노아댜와 다른 선지자들도 잊지 말아달라고 기도했다. 스마야처럼 포섭된 선지자가 한둘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적은 의외로 가까운데 있다.)

어제 느헤미야는 자신의 행실을 기억하고 기억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오늘은  자신을 해하려는 일당이 한 행실을 기억하고 기억해 달라고 기도한다. 느헤미야는 우리 하나님께서  행한대로 갚으시는 분이심을 알았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롬 2:6-8).

나는 하나님께 나의 행한 일을 기억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을 만큼 성별된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일을 하는가?

느헤미야 5:6-19

성벽재건을 관리감독하는 것도 바쁜 마당에 백성들이 대적(외환)이 아닌 불의(내우)로 고통받은 일에 대해 느헤미야는 크게 화가 났으나 깊은 생각 끝에 성벽재건 중이라도 대회를 열어 이문제를 처리한다. 깊은 생각이란 느헤미야가 제국의 왕에게 대답하기 위해 잠시 하나님께 묵도했듯이 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하나님께 장시간 기도로 씨름했다는 것을 뜻일 것이다.

(기도 끝에) 느헤미야는 귀족들과 관리들을 모아놓고 같은 동포끼리 인신매매와 돈놀이를 하는 것에 대해 크게 책망했다. 특별히 남의 나라에 팔려갔던 것을 기억하라고 한다. 그런데 다시 동포들을 팔고 있는 것이 말이 되냐고 다구쳤다. 귀족과 관리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느헤미야는 가난한 백성들을 돌보지 않은 귀족들과 관리들에게 고리대금 업은 옳지 않다고 말하면서 이방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서 살라고 교훈했다.

느헤미야 스스로가, 또 자신의 친족과 관리들도 돈놀이를 해왔지만 모든 변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제국에서 관리들의 이자놀이는 느헤미야도 피할 수 없는 당시 관행이었나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관행이었으니 당연하다고 말하지 않고 또 잘못했으니 앞으로는 안하겠다고만 말하지 않았고 돌려줄 것을 제안했다. 제국의 관행과 하나님의 율법사이에서 고민하느라 깊이 생각했었나보다. 그리고 귀족들과 관리들에게 (채권자들에게 채무대신 받은) 밭이나 포도원이나 올리브 밭과 집을 오늘 당장 돌려주라고 명했다. 그리고 이자로 받은 돈이나 곡식이나 포도주나 올리브 기름도 돌려주라고 명했다. 그들은 느헤미야의 제안대로 하겠다고 대답했다. 느헤미야는 귀족과 관리들이 제사장들 앞에서 서약하게 하였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보이면서 이 서약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빈 주머니처럼 털어버리실 것이라고 말했다.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아멘하며 주님을 찬양하였다. 백성은 약속을 지켰다. 많은 경우 내우의 문제는 지도권에서 기득권을 포기하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느헤미야는 사족을 단다. 자신은 유다총독으로 임명받아서 십이년 동안 총독자리에 있으면서 총독으로서 받아야 할 급여를 받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총독자리에 있으면 급여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선임 총독들 처럼 무거운 세금도 양식과 술값도 거두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하나님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그 이유를 적는다. 선임총독들이 거둔 은 사십 세겔이 어느정도인지 가름하기 어렵지만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받은 돈이 은 삼십이었으니 (즉 포상금 수준이었으니)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유다총독 십이년동안 느헤미야가 올인한 것은 성벽재건이었다고 회고한다 (성벽재건에 걸린 기간이 두달이 채 안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물리적 성벽재건도 성벽재건이지만 유다백성으로서의 정체성 회복도 나름 영적 성벽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밭 한 뙈기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자기 아래 관리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방문객을 제외하고 느헤미야가 먹어야 할 관리들과 사람들이 백오십여명이나 되었는데 그것을 느헤미야가 개인적으로 부담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을 먹여야 함에도 총독으로서의 녹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부자였었다.) 총독의 녹이 허덕이는 백성들에게는 큰 짐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자신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한다. 성경앱은 은혜도 ‘기억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알려준다. 다시 적으면 하나님께 자신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고 기억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은혜란 주님이 나를 알아 주시는 것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한 행동이 아니라면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실 것이다. 결국 느헤미야의 고백은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경외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백성들에게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고 기억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깊은 생각을 하고 (때론 그자리에서 묵도하고) 일을 처리했다.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제국의 교육과 제도에 익숙한 그에게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서는 기도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길이다.

느헤미야 4:1-5:5

느헤미야 4 혼자읽기

오늘의 주어는 느헤미야가 아니고 우리다. 3장에 나오는 성벽재건에 참여한 모든 자들이 우리다. ‘우리’ 참 아름다운 단어다.

우리가 예루살렘 성을 건축한다는 소식에 산발랏은 매우 분개하며 화를 내었다. 아니 비웃었다. 사마리아 군사들을 데리고와 빈정거리며 성벽재건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발했다. 마치 블레셋 군사들을 등지고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도발하던 골리앗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그 옆에 있던 도비야도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질 것이라고 산발랏을 거들었다.

느헤미야는 산발랏에게 댓구하는 대신 우리 하나님께 기도했다.느헤미야는 자신의 직위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한다. 산발랏의 도발이 단순히 성벽재건을 하는 우리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주 하나님께 도발한다고 고발하는 기도를 하고 우리는 열심히 성벽을 재건했다. 원수 갚는 것은 주께 맡기고 주어지 일에 충실했다. 성벽은 전부 연결되었고 높이가 절반정도 쌓였다. 열심히 일했다는 것을 마음들여 일했다고 느헤미야는 기록한다. 우리 공동체가 한 마음으로 즉 하늘에 마음을 두고 일을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성벽이 점점 높아가자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사람과 아스돗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벽재건에 여전히 화가 났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기습하여 우리를 혼란에 빠뜨릴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 예루살렘 주변에 사는 유다 사람들이 저들의 기습공격을 열번이나 미리 일러주어 공격에 대비할 수 있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음모를 헛되게 하신 것이라고 뒤에 고백한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백성중 일부를 칼과 창과 활로 무장 시켜서 보초를 서게 하였다. 그리고 백성들 사이를 다니면서 귀족들과 관리들과 백성들을 격려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위대하고 두려운 주님을 기억하고, 형제와 자매와 자식과 아내와 가정을 위하여 싸워라”

우리의 대적들은 우리가 자신들의 기습공격 계획을 눈치챘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음모를 헛되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다시 성벽재건에 힘썼다. 그러나 언제 또 대적의 도발이 있을지 몰랐다.

그때부터 우리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무장하고 지켰다. 심지어 건축하는 자들도 한손으로 일하며 한손으로는 병기를 놓지 않았다. 일부는 허리에 칼을 차고 일을 했다. 그리고 나팔부는 자를 세워 언제 어디쪽으로부터 대적의 공격이 있어도 합력하여 대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야간공격에 대비하여 밤에는 성안에서 묵으면서 경계를 서고 낮에는 건축을 계속했다. 느헤미야와 우리들은 심지어 옷을 벗고 편히 쉬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물을 길러 갈 때도 무기를 소지하고 다녔다고 한다. 성벽재건 현장에는 전시와 다름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느헤미야 5:1-5

전시와 다름없는 상황은 백성들의 삶을 더 힘들게 했다. 산발랏 등 강 서쪽 관리들은 아마도 성벽재건을 방해할 목적으로 유다백성들에게 대한 양식거래를 줄였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흉년이라 곡식구하기가 더 어려웠다고 한다. 또 세금징수를 독촉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밭과 포도원과 집을 저당잡혀야 하는 백성들이 생겼다. 심지어 자녀를 종으로 팔아야 했다. 백성들 사이에는 왜 성벽재건을 시작해 자신들을 힘들게 하느냐는 동요가 있었을 것이다. 가난한 자들은 무기력했고 부자들은 오히려 탐욕을 채우는 기회로 삼았을 것이다.

제국은 (세상은)  사람들이 우리가 되어 일하는 것을 못견뎌 한다. 공동체로 일하는 것를 교묘히 (때론 공개적으로) 방해한다. 개인주의화 시킨다. 경쟁사회로 만들어 간다. 이런 생각이 교회에도 들어와 있다. 성벽재건에 참여한 사람들을 느헤미야는 우리라고 지칭한다. 성벽재건에 마음을 모아서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내가 아니라 우리가 주어가 되는 교회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