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성벽재건은 정말 한국적이다. 빨리빨리다. 적어도 시작은 일사천리였다.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의 첫삽을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제사장들과 함께 양문을 건축하고 성벽을 함메아 망대부터 하나넬 망대가지 건축하여 성별하였다>라고 적는다. 그리고 성벽을 둘러가며 건축자들을 적어나간다.
문들과 망대들의 이름을 따라가면 양문 – 함메아 망대 – 하나엘 망대 – 어문 – 옛문 – 화덕망대 – 골짜기문 – 분문 – 샘문 – (수문) – 마문 – 동문 – 힘입갓문 순서다. 차례대로 건축되었다기보다 구역을 정해 동시다발적으로 성벽재건 공사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느헤미야는 제사장이 건축한 양문과 성벽은 성별되었다고, 즉 하나님께 봉헌되었다고 특별히 구분해서 적었다. (제사장들과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달랐던 모양이다.) 반대로 보면 다른부분들도 성별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느헤미야는 일에 참여한 사람들을 제사장, 금장색, 상인, 등등 직업이나 지위, 여리고 사람들, 드고아 사람들 등등 지역, 누구 누구의 자손과 같은 가문으로 다양하게 기록한다.
느헤미야는 비고란에 일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특이사항도 기록한다. 예를 들면 드고아 사람들 중에는 귀족의 말을 듣고 공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귀족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들은 세상질서보다 더 중요한 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았나보다. 예루살렘 반쪽을 책임지고 있던 할로헷의 아들 살룸은 자기 딸들과 함께 공사에 참여했다. 성벽재건에는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었다는 뜻이리라. 물론 빈부귀천 지위고하의 구분도 없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집 앞을 또 다른 사람은 자기 집 옆을 보수 했다.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일 할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 내가 좋아하는 느디님 사람들도 성벽재건에 참여했다. 왜 한글 개역개정에서는 이 구절을 괄호로 가뒀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성전막일꾼들은 혈통적 유대인이 아니어서 어떤 사본에서는 일부러 누락시킨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느니딤 사람들이야 말로 가장 신약적인 성도들의 표상이라고 생각한다. 성전막일꾼이어서 성전 가장 가까이에 산다. 이들은 신약적으로 말한면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다. 그래서 포로기간에도 자유자가 되기보다 느디님사람들로 모여 살았다. 그리고 에스라 귀환 때 흔쾌히 성전 막일꾼으로 동참했었다. 이들은 시편 84편 10절 <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서 호의호식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라는 시인의 노래를 허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느헤미야 2장에서 느헤미야의 성벽재건 계획을 말하자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듣고 일어나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자>라고 반응했다고 느헤미야는 기록한다. 선한 일이란 하나님의 일이다. (오직 한분 하나님만 선하시다.) 성벽재건은 시작되었다. 예루살렘 지도자들, 즉 관리들만의 일이 아니었음을 느헤미야는 3장에서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남녀노소 빈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선한 일에 참여했다. 그래서 1절이 귀하다.
“대사재 앨랴삽은 동료 사제들을 거느리고 양 다니는 문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문틀을 짜고 문을 만들어 달았다. 그런 다음 메아 망대까지, 또 하나넬 망대까지 수축하여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1절 공동번역)
성전에서도 힘든 일은 성전막일꾼을 부렸던? 제사장들이 직접 육체노동에 참여했다. 느헤미야는 28절에서 제사장들이 마문 위로부터 자기 집과 마중한 부분을 중수했다고 기록한다. 제사장들은 성벽재건에 중복해서 참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제사장들뿐 아니라 중복되는 이름이 하나 둘 더 보인다.
주일 새벽이다. 교회는 성령 안에서 성도들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곳이다. 함께 지어져 가기 위해서는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할 뿐 아니라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