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7

금식할까요?

2년만에 하나님이 스가랴를 통해 다시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벧엘 사람의 질문 “여러해 동안 해오던 오월 금식을 계속 해야하나요?”에 대한 답으로 주셨다. 유다인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 함락된 5월을 기일로 하여 금식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포로에서 돌아왔고 성전 건축이 진행중인 상황이니 포로기간중에 하던 금식의 필요성을 묻는 것이었다.

주님은 지난 칠십년동안 5월 금식 (7월 금식 포함)이 주님을 위해 한것이냐고 반문하셨다. 먹고 마시는 것이 우리 자신들을 위한 것처럼, 금식도 결국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냐고 책망하셨다.  그러시면서 평안의 때에 옛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신 말씀을 상기시켜 주셨다. 그 말씀을 스가랴를 통해 다시 들려주신다.

진실한 재판을 하라.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 서로 해하려고 마음먹지 말라.

그런데 조상들은 주님의 말씀 듣기를 싫어했다. 아예 귀를 틀어 막았다. 마음을 돌같이 굳게 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가 나왔다. 그들이 귀를 막았기 때문에 하나님도 백성들이 불러도 듣지 않으셨다. 그리고 여러 나라로 흩어 버리셨다. 너희들의 불순종이 이 아름다왔던 땅을 황폐하게 하였다.

울며 근신하리이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 6:16)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 었다는 것이다. 주님을 위한 일은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는 세례자 요한의 고백에 답이 있다. 은연중에 주님도 흥하고 나도 흥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내가 흥하는 것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주님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가 정답이다. 주님이 흥하시면 주님의 몸된 교회도 흥한다.

진실한 재판을 하라.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 서로 해하려고 마음먹지 말라.

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주실리 없다. (우리의 기도생활도 황폐해 질 것이다.)

 

스가랴 6

스가랴 6장

환상에 환상이 이어진다. 두 구리 산에서 붉은 말, 검은 말, 흰 말, 어롱지고 건장한 말들이 끄는 네 병거가 나오는 환상이다. 천사의 설명이 네 병거는 하늘의 네 바람이라고 하였으니 사방으로 부는 성령이라고 이해할 수 있고, 이 네 바람이 온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간다고 하였으니 두 구리 산은 온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머무시는 곳, 하나님 임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태산이 아니고 구리산이라고 하였으니 ‘우공이산’ 할 수 없는 흔들리지 않는 진리다.

검은 말이 끄는 병거는 북쪽으로, 흰 말은 검은 말을 따르고, 얼룩(어롱진) 말은 남쪽으로 나갔다. 갑자기 건장한 말이 어롱진 말과 분리되어 땅에 두루 다녔다고 하고, 붉은 말은 언급이 없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방향이 중요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영이 온 세상을 두루 다니시며 역사하심을 뜻할 것이다.  천사는 북쪽으로 간 자들이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다고 외친다. 북쪽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일까?

주님이 스가랴에게 말씀하셨다. (환상과 말씀이 어우러진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헬대, 도비야, 여디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머무니 그집에 가서 그들에게 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워주고,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나와서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라고 하셨다. 이 ‘싹’이 성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보좌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제사장도 자기 자리에 있어 이 둘 사이에 평화와 의논이 있으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씌웠던) 그 면류관을 성전 안에 두라 하셨다.

헬대, 도비야, 여디야는 자신의 전부를 팔아 값 비싼 진주를 산 진주장사와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북쪽과 바벨론을 동일시 한다면 그 땅에서는 하나님나라를 산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요,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씌워주는 것도 왕이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중보자가 필요함을 상징할 것이다. 그러나 대제사상 여호수아는 반쪽 역할 밖에 못하는 불완전한 제사장이라, 오실 ‘싹’, 주님을 예언한다고 생각된다. 그리스도 주님이 왕이요 오직 한분 중보자가 되신다. 그래서 여호수아에게 씌워졌던 면류관은 벗겨져 성전 안에 보관한다.

이런 일은 북쪽에서만 일어날 일이 아니다. 먼 데 사람, 동서남북 사방에서 일어날 것이다. 이방인들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갈 것이다. 우리가 이미 들은 바요, 아는 바다. 환상을 설명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천사는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만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같이 되리라고 한다. 당시에는 예언의 말씀이었지만 /순/종/하/는/ 우리에게는 이루어진 일이며  진행형이다.

주님의 말씀은 들어야 한다. 귀에만 담는 것이 아니라 삶에 담아야 한다. 예수님은 듣기만 하는 것은 사상누각을 세우는 것이라고 하셨다.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위에 집을 짓는 자라고 하셨다. 환상도 어렵과 말씀도 어렵다. 그래도 이해 되는 부분은 조금씩 늘어간다. 이 부분에 대한 순종을 시작하라고 하신다.

스가랴 5

정결

이어지는 환상은 날아가는 (두루미가 아니라) 두루마리 환상이다. 두루마리는 9미터 x 4.5미터 정도의 크기다. 두루마리에는 도둑질 하는 자, 거짓으로 맹세하는 자가 땅위에서 사라진다는 저주가 양쪽으로 각각 쓰여져 있다. 주님의 저주다. (새번역으로 읽고 있다.) 도죽질 하는 자, 거짓맹세 하는 자에 대한 저주다. 그리고 뒤주 (에바)가 가까이 다가온다. 천사는 그들의 죄가 얼마나 많은 지 곡식을 넣는 뒤주가 가득하듯이 온땅에 가득하다고 말씀하신다. 뒤주는 납으로 된 뚜껑으로 덮여 있었는데 뚜껑을 여니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똑바로 보라고 한다. 여인은 세상으로부터 온,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뜻한다. 천사는 이 여인이 죄악의 상징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뚜껑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학과 같이 날개 달린 두 여인이 바람을 일으키며 나타나 뒤주를 들고 공중으로 높이 날라갔다. 천사는 그 뒤주가 바벨론 땅에 지어질 신전에 둘 것이라고 말했다.

도둑질, 거짓맹세 계명을 어긴 자들이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어져 가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안될 것들이다. 도둑질, 거짓맹세는 (장발쟝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에서는 단순히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나 거짓말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있는 자가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것, 법정에서 유전무죄 무전 유죄를 만드는 불의를 뜻한다. 뒤주( 에바, 곡식을 담아 두는 궤)에 여인을 가둔 것도 뒤주가 부정한 저울, 거짓 추를 (곡식을 재는 것이니 부정한 ‘말’이나 ‘되’라고 이해하자) 사용한 것에 대한 상징일 수 있다. 주님은 한결같이 않은 저울 추와 한결같이 않은 되를 미워하신다.(잠20:10) 재건 될 (스룹바벨) 성전, 재건 될 예루살렘이 공의와 정의로 정결해야 함을 보여주신다. 악과 죄는 하나님나라에 어울리지 않는다. (세상나라) 바벨론이 추구하는 가치다. 아름다운 여인처럼 유혹한다. 비록 세상나라가 그것을 하나님의 위치에 둔다고 해도 하나님나라에서는 무거운 납두껑으로 꽉 덮어버려야 할 것이다. 아니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타다 꺼낸 나무조각같은 여호수아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히시고, 태산같은 어려움에 직면한 스룹바벨 손에 다림줄(측량줄)을 쥐어 주신 주님은 성전을, 예루살렘을 깨끗하게 청소하실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정결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1:27)

오늘도 세속에 물들지 말라고 하신다.

스가랴 4

다림줄을 잡은 손

밤이 점점 더 깊어갔다. 스가랴도 졸았던 모양이다. 천사가 깨워서 새로운 환상을 보여주었다. (나에게도 환상이 쉬운 듯  어려우니 더 졸립다. 새번역이 쬐끔 더 쉽다.)

순금으로 만든 등잔대가 있는데  위에 있는 기름을 담는 그릇에서 일곱 대롱을 통하여 일곱 등잔에 기름을 공급하게 되어있다. 등잔대 좌우에는 올리브나무가 한그루씩 서있고 두 금대롱을 통하여 기름그릇에 기름을 공급한다.(1-5, 11-13)

스가랴는 환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천사는 환상을 설명하면서 느닷없이 스룹바벨을 언급한다. (6) 스룹바벨은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 재건 중이었다. 천사는 성전재건은 세상 임금의 명령이나 사람의 노동력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천명했다. (7) 태산같은 어려움이 있다 해도 성전이 완공될 것이고 사람들은 성전을 아름답다 할것이다. (9) 스룹바벨이 기초를 놓았으니 그가 완공할 것이다. (10) 아직은 기초단계지만 스룹바벨이 공사현장을 다시 지휘하면 사람들은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일곱눈을 주님의 눈이라고 보충 설명했다.(그러니 어제 일곱 눈을 가진 돌은 주님을 상징한다.)

천사는 환상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스룹바벨 성전의 완공을 예언하고 있다. 그리고 금등잔대에 기름을 끊이지 않게 공급할 두 올리브나무를 주님을 섬기도록 주님께서 기름부어 거룩하게 구별한 두사람 이라고만 알려주었다. 당시 성전건축을 주도했던 총독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 였을까? 다른 질문이 이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스가랴는 분명하게 이해했을 것이다. 어제는 여호수아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히시더니 (제사장직을 회복시키시더니) 오늘은 스룹바벨에게 성전건축의 전권을 (다림줄을) 맡기신다. 당시 성전건축이 중단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분명 위로와 격려가 되는 환상이었을 것이다.

성전재건은 (고레스 칙령도 16년후 다리오왕 조서도 아닌) 성령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밝혀준다. 한편으로는 주님을 섬기도록 주님께서 기름부어 거룩하게 구별한 두사람을 통하여 성전이 재기능을 발휘하게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두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 하는 것보다 주님을 섬기도록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고 하신다. . (종합해보면 스룹바벨 성전은 일곱눈을 가진 주님이 성전되심의 예표요, 이 성전은 완공될 것이고, 기름이 영원히 끊이지 않는 등잔대를 통해 이 성전이 영원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오늘도 그리스도로 옷입혀 주시고 하나님나라의 일을 위해 다림줄(사명)을 주신 부름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

 

스가랴 3

타다 꺼낸 나무토막

스가랴는 계속해서 사단이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고소하는 환상을 보았다. 피고 여호수아가 누군지 죄명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심판자 주님은 사단의 고소가 잘못되었다고 사단을 책망, 거듭책망하셨다. (환상은 당시 독자들에게는  선명한 메세지를 주었겠지만 우리는 연구해야 알 수 있다. 그냥 읽히는 대로 따라간다.)

주님은 여호수아를 불에서 꺼낸 나무토막에 비유하셨다. 고통과 핍박에서 구원받은 존재다. 주위의 천사는 여호수아의 냄새나고 더러운 옷을 벗기고 거룩한 예복을 입혀준다. (스가랴의 요청으로?) 머리에는 관도 씌워주었다. 눅15장 돌아온 둘째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연상된다. 그러고보니 사단의 고소를 기각하며 책망하실 때 “예루살렘을 사랑하여 선택했다”고 주님은 설명하셨다. 그렇다. 사랑이다. (주님의 천사가) 함께하셨다.

(용서는 사랑의 시작이지만 끝이 아니다.) 관을 쓰고 거룩한 예복을 입은 여호수아에게 경고가 주어졌다.  ‘네가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여기에서 섬기는 사람들 사이를 자유로이 출입하게 할 것이다.” 가나안 땅을 앞둔 그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명령과 다를게 없다. 그렇다. 순종이다. 순종을 요구하신다.

(순종은 개인적이지만 교회적으로도 적용해야 한다.) 주님은 여호수아와 동료들에게 함께 순종을 요구하셨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동료들이 순종의 상징이라고 하시면서, ‘새싹’이라는 ‘주님의 종’을 보내주신다고 하셨다. 이어서 일곱 눈을 가진 돌을 놓으셨다. 이 돌에 이 땅의 죄를 하루만에 없애겠다는 글을 새겼다. 그날이 오면 태평성대, (어진 임금이신)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태평성대가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택하셨다.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어 불가운데 타고 있는 우리를 꺼내주셨다. 냄새나고 더러운 옷을 벗기고 거룩한 예복을 입혀주셨다. 관까지 씌워주셨다. 그리고 순종하라고 하셨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교회 공동체적으로. ( 스가랴 당시에는 여호수아와 동료들이 순종의 상징이었으나 불완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님이 오셔서 완전한 순종의 본이 되셨다. 우리도 불완전하다. 그래서 주님을 바라본다. 그날을 기다린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의의 나무, 주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사 61:3)

어제 본 우주적 예루살렘은 하나님나라요,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타다 꺼낸 나무토막같은 우리들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사랑하셔서 거룩한 예복, 그리스도로 옷입혀 주셨다. 은혜요 감사의 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