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13-28

마가복음 2:13-28

13-14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로 나가셨다. 보다 많은 무리를 가르치시기 위해서는 마을보다 바닷가가 나았던 모양이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제자로 부르셨고 레위(마태)는 예수를 따랐다.

15-17 예수께서 레위의 집에서 자신을 따라온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다. 바리새인인 율법학자들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식사하는 것을 지적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8-20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금식을 했다.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왜 예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는지 물었다. 예수께서 혼인잔치에 온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금식할 수 있느냐? 하고 방문하셨다.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면 그날에는 예수의 제자들도 금식할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21-22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담아야 한다.

23-28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면서 예수의 제자들이 길을 내면서 밀 이삭을 잘랐다.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일을 한다고 지적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라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인자는 또한 안식일에도 주인이다’ 하고 덧붙이셨다.

https://quietwaters.blog/2020/03/05

마가복음 2:1-12

마가복음 2:1-12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으로 가셨다. 아마도 시몬의 장모집으로 가신듯하다. 예수께서 돌아오셨다는 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셨다. 그때 네사람이 중풍병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청중이 너무 많아 네 사람은 예수가 계신 곳 위의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내려보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죄용서’를 선언하셨다. 그곳에 있던 율법학자들은 속으로 마음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며, 예수께서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했다. 율법학자들의 속마음을 알아채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고 “일어나서 자리를 걷어서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중에 어느쪽이 더 말하기 쉬운지 물으셨다. 예수께서는 인자에게 죄를 용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하셨다.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거 “자리를 걷어서 집으로 가거라” 하고중풍병자에게 명령하셨다. 중풍병자는 곧 일어나서 모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걸어갔다. 모두에게 생전처음 보는 일이었다.

https://quietwaters.blog/2020/03/04

//나병환자와 접촉한 예수께 나병의 증세가 없었다. 예수께서는 다시 마을로 들어가실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가버나움에 있는 시몬의 장모의 집으로 가셨다. 예수의 사역에 우선순위가 있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축귀와 치유보다 하나님나라의 도를 가르치시는 것이 영순위였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하나님나라의 도를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축귀와 치유보다 중요하다.

// 예수께서는 (중품병자와) /친/구/들/의 믿음을 보셨다.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나길 원해도 믿음의 친구들이 없었으면 아무 소용없었다. 내 믿음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 믿음이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의 형제들이 함께 동거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형제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

// 어떤 서기관들은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다’라고 말을 하자, 자신들이 서기관이 되면서 배웠고 서기관으로 일하면서 알고 있는 죄사함의 권세가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과 예수가 방금 하신 말씀이 서로 위배된다고 생각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을 아신 예수께서 자신에게 죄사함의 권세도 치유의 권세도 있음을 보여 주셨다. 그러자 무리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무리들이 /예/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표현이 없다. 이렇듯 내가 영광을 받아야만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다는 말은 틀린말이다. 내가 큰자가 되지 못해도 (내가 인정받지 못해도) 하나님의 권위와 권세가 드러난다면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오히려 나는 쇠하여야 한다. 나는 더 낮은 자가 되어야 한다.

마가복음 1:35-45

마가복음 1:35-45

35-39 아주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는 외딴 곳에서 혼자 기도하고 계셨다. 그때 제자들이 예수를 찾아 왔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축귀와 치유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까운 고을로 가서 거기서도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온 갈릴리와 여러 회당을 두루 찾아가셔서 말씀을 선포하고 축귀하고 치유하셨다. 

40-45 나병 환자 한명이 예수께 와서 깨끗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예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대밀어 그에게 대시고 ‘깨끗하게 되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나병 환자는 깨끗하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깨끗하게 된 것에 대해 율법에 명한대로 하라고 엄히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는 모든 일을 널리 알렸다. 이 일로 예수께서는 드러나게 동네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 곳에 머물러 계셨다. 그래도 사람들이 사방에서 예수께로 모여들었다.

https://quietwaters.blog/2020/03/03

// 예수님은 기도로 성부하나님과 대화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들었다.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며 전도하시는 것이 그날 새벽기도의 응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제자들, 특별히 시몬은 장모의 집을 치유의 중심으로 삼고자 했을지 모르겠다. “시몬축귀치유센터장”이 되고자하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뜻대로 사람들이 찾아 오는 센터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찾아가는 전도를 하셨다.

// 여자의 손을 잡아 치유하셨던 예수님은 이번에는 나병환자를 만져 치유하셨다. 모두 유대관습을 깨는 행위였다. 특별히 나병환자를 만지는 사람도 부정해지기 때문에 금기시 되는 행동이었다. 나병환자를 만졌다는 소문에 예수님은 한동안 마을에 들어가셔서 전도하실 수 없으셨다. 그렇다고 하나님나라를 전파하시겠다고 하나님의 아들이 가지는 권위로 막무가내로 성읍에 들어가시지 않으셨다. 깨끗함을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육신의 나병은 치유받았어도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율법에 정해진 규칙을 따라야 했다. 내가 깨끗하게 되었다고 자동으로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제사장의 진단서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치유의 궁극적인 목적은 관계회복이다. 좋은게 좋다고 공적인 절차가 있는데 권위로 절차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깨끗함을 받은 사람이 공동체 일원이 되도록 명하셨다. 그러나 나병환자와의 접촉이 소문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실 수 없게 된 예수께서는 대신 성밖 한적한 곳에서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자들에게 전도하시는 기회로 삼으셨다.

>> 한적한 곳. 예수님은 한적한 곳을 성부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삼으셨을뿐 아니라 한적한 곳을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자들을 만나주시는 곳으로 삼으셨다. 나의 한적한 곳은 어디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마가복음 1:21-34

마가복음 1:21-34

21-28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가버나움으로 가셨다. 안식일에 곧바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있게 가르치시는 예수의 가르침에 놀랐다. 그 회당에 악한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다. 귀신들린 사람은 예수께,”나사렛 사람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 하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그를 꾸짖으시며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하셨다. 사람들은 귀신이 예수께 복종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이 권위있고 새롭다며 수군거렸다. 예수의 소문이 갈리리 주위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

29-31 회당에서 나온 후 예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갔다.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었다. 그 사정을 들은 예수께서 손을 잡아 시몬의 장모를 일으키자 열병이 떠났다. 시몬의 장모가 예수와 제자들의 시중을 들었다.

32-34 해가 져서 날이 저물었지만 (안식일이 지나자?) 사람들이 병자와 귀신들린 사람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내쫓으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예수의 가르침이 권위있고 새로운 이유는? 먼저 저자 특강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하나님(신)의 아들이요,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두번째 예수의 가르침이 권위있고 새로운 이유는 언행일치기 때문이다. //영적인 존재인 귀신들은 예수가 누구신지 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귀신들의 증언은 필요없다고 하신다. 오히려 함구하라고 명하신다.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성령에 이끌리어 가르치시고 축귀하고고 치유하셨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예수께서 하나님(신)의 아들이라는 증거는 없다. //복음은 언행불일치의 그럴싸한 가르침이 아니다.  복음은 악한 영들의 장난도, 도깨비 놀음도 아니다. 복음은 나의 안식을 미뤄서라도 이웃들의 안식을 위해 아픈 자들을 손을 잡아주는 진실한 행함으로 드러난다.

https://quietwaters.blog/2020/03/02

마가복음 1:12-20

마가복음 1:12-20

12-13 예수께서 요한에게서 하늘(성령)의 세례 받으신 후, 곧바로 성령은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 사십일 동안 광야에서 지내셨는데 거기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며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다.

14-15 세례자 요한이 투옥되었고 예수께서는 갈릴리로 돌아가셔,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16-20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어부 시몬과 안드레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다.  그들은 즉시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 예수께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그물을 깁는 것을 보시고 그들도 부르셨다. 그들도 아버지 세베대를 일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두고 즉시 예수를 따라갔다.

//마가의 화면 전환은 굉장히 빠르다. 단락마다 ‘곧'(즉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심사숙고란 아예 없는듯하다. //성령충만은 푸른초장 쉴만한 물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성령께서 예수를 광야로 내모신 이유다. 보혜사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억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신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시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을 것이다.(요14:26)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외친 세례자 요한의 시대는 투옥으로 저물었다. 요한이 쇠하자 예수께서 똑같은 메세지로 가르치시기 시작했다. ‘예수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라는 요한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갈릴리로 가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낚으셨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의 초청에 즉시 따랐다.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에 이들은 심사숙고하지 않았다. 이들중 안드레를 제외한 셋은 예수의 최애 제자가 된다. 왜 안드레가 제외되었을까? 아마도 셋중 가장 뜸을 드리는 심사숙고형 성격 때문이 아니었을까 유추해 볼뿐이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살아간다 해도 보혜사 성령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세상에서 담대하기 쉽지 않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세상에서 담대할 수 있도록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매 순간 순종하며 살아가겠습니다.

https://quietwaters.blog/2020/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