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3:1-10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보내신다. 제단이 무너져 재가 쏟아지는 이적과(말씀의 성취와) 자신의 마른 손이 회복되는 이적을(하나님의 은혜를) 목격하고 체험하면서도 여로보암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 곳이 없었다. 이보다 불쌍한 사람이 어디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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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2:25-33

열왕기상 12:25-33

짝퉁의 길을 걷는 여로보암. 비슷하여도 짝퉁은 짝퉁이다. 그 결국은 ‘다윗의 길’이 아니라 ‘여로보암의 길’을 내고야 말았다. 말씀이 없는 삶은 짝퉁이다. 사람들에게는 비슷한 길로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께는 전혀 다른 길이다. 여로보암은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버렸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버렸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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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2:12-24

열왕기상 12:12-24

닫힌 귀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잠언 29:7에 의인은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잘 알지만 악인은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못 본 체 한다는 말이 있다. 그 앞 29:2절에는 의인이 많으면 백성이 기뻐하지만,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을 한다는 말씀이 있다. 르호보암에게 정말 잘 적용되는 말씀이다. 르호보암은 의인의 길 대신 악인의 길을 택했다.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못 본 체했다. 백성들이 나와서 친히 탄원했지만 듣지 않았다. 백성의 사정을 듣지 않았다. 곧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모른 체했다. 결국 하나님도 르호보암을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통해 말씀하신다.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복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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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6~10.3 인도네시아 서깔리만탄 방문으로

열왕기상 9:1-9

열왕기상 9:1-9

주님께서 두번째로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놀랍지 않은가? 성전을 건축하지 전에 나타나셨으니 이십년이 더 지나서야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주님이 솔로몬을 떠났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그동안 솔로몬이 주님을 찾지 않았다는 것일까?
주님은 솔로몬에게, 솔로몬이 한 기도와 간구를 들었다고 입을 떼신다. 그렇다면 왕궁을 완성하고 나서 성전을 봉헌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주님이 몇번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든, 주님은 같은 말씀을 솔로몬에게 하신다. 다윗처럼 살아라. 다윗처럼 산다는 것은, 주님이 명하신 것을 실천하고, 주님의 율례와 규례를 온전한 마음으로 올바르게 지키는 것이라고 풀이까지 해주신다. 그래야 다윗의 왕좌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 확언해 주신다. //주님이 이십 여년만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것은 솔로몬이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은 지난 이십년동안 솔로몬과 함께 하셨지만, 솔로몬이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않자 마지막 카드를 빼드신 것이다.
만약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곁길로 나아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면 이스라엘은 끊어질 것이요, 성전도 외면하겠다고 하신다. 이스라엘도 성전도 한낱 속담거리가 되고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하신다. 세상사람들도 이스라엘 백성이 재앙을 받은 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미혹되어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왜 필요할까? 솔로몬이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곁길로 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던가? 사관은 현재시점에서 여전히 기다리시는 주님의 자비를 드러낸다. 그러나 주님은 마냥 기다리시지는 않으신다. 끝이 있다.

내가 지은 것이, 나를 나되게 하지 않는다. 주님이 세워주셔야 한다.

https://quietwaters.blog/2017/05/26/

열왕기상 8:54-66

https://quietwaters.blog/2017/05/25/

/그/러/나/ 제일 감동은 봉헌식을 떠나는 백성들이 왕을 /축/복/ 했다는 것이다. 왕을 축복한 백성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왕을 축복한 그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사관은 백성들이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 하였더라.”[66] 라고 맺는다. // 왕이 백성을 축복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축사도 높은 사람들이 한다. 축하는 서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니 백성이 왕을 축복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왕께 ‘감사’하면서 떠난 것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사관은 적었다. 각가그이 개인은 몰라도 ‘백성들’은 왕보다 위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엥 좌클릭 깜빡 깜빡 모드) 하여간 우리 정부도 국민들의 축복을 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