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8:35-43

열왕기상 8:35-43

주님께 돌아와서 할 일은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예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세리의 기도가 좋은 예다. 주님 앞에 서면 한 없이 작아진다. 나는 죄인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주님의 자비가 아니면, 주님의 용서가 아니면 주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이것이 주님과의 관계를 트는 길이다. 하나님은 성전을 향해 하는 이 기도를 들으신다.
적에게 패하는 것도 가뭄과 기근과 역병과 전쟁과 전염병과 같은 재앙이 닥치는 근본적인 이유는 주님께 죄를 지어서다. 죄는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아서다. 주님을 인정하고 주님께 돌이켜 용서를 구하면 주님께서는 주님이 계신 하늘에서 기도를 들어주시고 용서해 주신다.
그런데 주님은 용서를 구하는 행위를 보지 않으시고 사람의 마음을 보신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주님은 이렇게 주의 백성이 주님을 경외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이방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성전에 나와, 성전을 향해, 곧 하나님께 기도하면 주님은 주님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그들이 주님을 경외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든 이방인이든 주께 나와 주님을 경외하며 살기를 원해야 한다. 다른 기도는 없다. 용서를 받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한다. 역으로는 주님을 경외하며 살기 위해서는 용서를 받아야 한다. 우리 주님이 그 길을 열어주셨다.

https://quietwaters.blog/2017/05/23/

[…오늘 본문에서도 기도와 간구의 핵심은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온 이스라엘의 잘못도 이스라엘에 속한 각각의 개인의 잘못도 그 잘못에 따른 전쟁과 기근과 가뭄과 재앙과 질병이라는 벌을 받아야 했다. 그렇다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주의해서 살펴야 할 것은 솔로몬의 기도는 전쟁과 기근과 가뭄과 재앙과 질병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순종의 열매들이다. 기도의 열매가 아니다. 기도는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벌을 받을 때 돌이키게 해달라는 것이다. 은혜의 통로다….]

열왕기상 8:22-32

열왕기상 8:22-32

솔로몬의 공중기도. 솔로몬은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그리고 먼저 언약을 지키시는 주님께 다윗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시기를 간구한다. 이어서 솔로몬은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께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드린다. 용서받는 것보다 더 큰 은혜는 없기 때문이다. 용서를 받아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람에 지은 성전에 모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전을 보고 기도하면 주님이 계시는 곳, 하늘에서 기도를 들어달라고 기도한다. 사람들이 성전에 나와 기도해도 주님은 하늘에서 들으신다. 지금 솔로몬도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도한다.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은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 아니라, 정결해야만 성전/제단 앞에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성전을 향한 다는 것은 주님 앞에 서기 위해 용서를 구하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7/05/22/

우리는 (솔로몬 때와 달리 성전에 두신 하나님의 이름 대신)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기도에는 찬양, 감사, 회개, 중보, 간구 등 여러 요소가 있다. 그러나 그 첫번째는 역시 “용서해 주세요”가 아닐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가기에는 하나님의 뜻을 너무 모른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물론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자격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도 가장 먼저 구하는 것은 “용서해 주세요”다. 나의 찬양이, 나의 감사가, 나의 회개가 나의 중보가 나의 간구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 하여도 나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눅 22:42 새번역]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것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바란다는 다른 표현이다.

열왕기상 8:12-21

열왕기상 8:12-21

성전완공후 솔로몬이 주님께 아뢴다. 주님이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친히 말씀하셨지만, 이제 주님께서 계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전을 지었으니, 성전이야말로 주님께서 영원히 계실 곳이라고 아뢴다.
그리고 솔로몬은 회중을 향해 복을 빈다. 솔로몬은 성전건축은 주님께서 선왕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에 대한 성취라고 선언한다. 다윗 대신 자신이 성전을 건축한 것도 주님이 말씀하신 것의 성취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전이야 말로 주님의 언약이 들어있는 궤를 놓아 둘 마땅한 장소라고 선언한다.

//어제에 이어 영이신 주님과 주님의 말씀/계명을 동일시 한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말씀이시다. 요한은 복음서 시작을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심을 선언하며 시작한다. 이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우리와 함께 하셨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말씀으로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주님의 재림을 고대한다. //성도는 주님의 말씀을 둘 마땅한 곳이 되어야 한다. 순종하지 않는 마음에 주님의 말씀이 거할 수 없으니, 주님이 함께 하실 수 없다.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니 성령이 거하실 수 없다.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곳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예수천국은 말씀이 있는 곳, 곧 순종이 하나님의 나라이며 불신지옥은 말씀이 없는 곳, 불순종은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자! 마음에 둔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성령하나님 도우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열왕기상 8:1-11

열왕기상 8:1-11

성전이 완공되자 솔로몬은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겼다. 성전의 수 많은 기구들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고나 할까? 사관은 언약궤 안에 모세가 넣어 둔 두 개의 돌 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선언한다.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지팡이를 쏙 빼놓았다. 사관이 언약궤 안을 열어 보았을리 없다. 언약궤에 손만 대어도 죽는데 누가 언약궤를 열어볼 수 있으랴. 그렇다. 언약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십계명이 적힌 돌 판이다. 그리고성전에 있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주님의 계명이다. 만나도 싹튼 아론의 지팡이도 한시적인 것이지만, 주님의 계명은 영원하다. 주님의 말씀이야 말로 영원하신 주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4절) 하고 말씀하신 후 이어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7절) 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말씀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성도들이고,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이룬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 성전(성도들이 모인 곳)에서 성령하나님께서 일 하신다.

주님의 성전에 구름이 가득차듯 주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차서 제사장들은 서서 일을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주님의 말씀이 있고, 성령충만한 곳에서는 우리 스스로가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주님의 영광을 누리면 된다. 주님이 말씀대로 순종하면 된다. 오늘도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 안에 거하신다. 임마누엘은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고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할 때 확증된다.

https://quietwaters.blog/2017/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