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3:16-22 읽기

전도서 3:16-22 읽기

세상에는 재판하는 곳, 공의가 있어야 할 곳에도 악이 있다. 전도자는 하나님이 의인과 악인을 심판하실 때가 있고, 모든 행위는 심판받을 때가 있다고 생각했다.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죽기는 마찬가지다. 호흡이 있는 것은 죽는다. 사람이라고 해서 짐승보다 나을 것이 없다. 모든 모두 잠깐이기는 마찬가지다. 둘 다 같은 곳으로 간다. 흙에서 나와서 흙으로 돌아간다. 사람의 영은 올라가고 짐슴의 영은 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다. 전도자는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일상의 보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몫이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 다시 일어나 죽은 다음에 일어날 일을 말해줄 사람은 없다.

//죽었다 다시 살아나서 죽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말해 줄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우리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우리 주님이 죽음 너머에 영생과 영벌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죽는다는 점에서 사람과 짐승은 다를게 없다. 유한하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사람이라서 구원받고 짐승이라고 멸망하는 것이 아니다. 유일하게 죽음에서 영원히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다. 전도자는 모든 행위는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공(정)의가 있어야할 재판정에도 악이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의인과 악인에 대한 차별이 없을만큼 정의롭다. 성도는 이 마지막 심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다. 곧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자족하면서 선한 일을 하라고 하신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지 않으면 짐승보다 나을 것이 없다. 어쩌면 짐승만도 못한 놈이 되고 만다.

전도서 3:1-15 읽기

전도서 3:1-15 읽기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와 죽을 때, 심을 때와 뽑을 때, 죽일 때와 살릴 때, 허물 때와 세울 때, 울 때와 웃을 때, 통곡할 때와 기뻐 춤 출 때, (돌을) 흩을 때와 모을 때, 껴안을 때와 껴안는 것을 삼갈 때, 찾아 나설 때와 포기할 때, 간직할 때와 버릴 때, 찢을 때와 꿰맬 때, 말하지 않을 때와 말할 때,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전쟁과 평화
사람이 애쓴다고 때를 바꿀 수 없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수고하라고 지우신 짐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 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곧 때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한다. 전도자는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깨닫는다.
사람이 먹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은총을 누리는 것이다.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언제나 한결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사람이 보탤 수도 뺄 수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를 두려워해야 한다. 지금 있는 것은 이미 있던 것이고 앞으로 있을 것도 이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신 일을 되풀이 하신다.

//모든 일에 때가 있다. 시즌이 있다. 이것을 사람이 바꿀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도 정해진 때를 깨지 않으신다. 한결같으시다. 그러니 사람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보태거나 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한결같으시면서도 때를 따라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 곧 때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고 깨닫는다. 물론 사람이 하나님이 하신 일의 시말을 다 깨닫지는 못한다. 그러니 자족하면서 선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서 살라고 교훈한다. 이것이 주님의 은총을 누리는 길이다. ////때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한다. 주님이 우리를 푸른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길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때도 물론 있다. 성도라고 지름길로 인도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한결같으신 분이시다. 지금은 악한 때다. 세월을 아껴야 한다.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좋은 일을, 곧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해야한다. 이보다 더 좋은 세월을 아끼는 방법은 없다. 주님의 은총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전도서 2:18-26 읽기

전도서 2:18-26 읽기

전도자는 자신이 수고하여 이루어 놓은 것을 뒤에 올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을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뒤에 올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인지 어리석은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수고하고 지혜를 다해서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맡겨야 하니 자신의 수고가 헛되다고 말한다.
전도자는 세상에서 애쓴 모든 수고에 실망한다. 재주는 곰이 부리는 데 돈은 왕서방이 받는 꼴이다. 그래서 슬기롭고 똑똑하고 재능있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보람도 없이 괴로움과 슬픔뿐이고 마음의 안식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먹과 마시고 자기가 하는 수고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그런데 이 (작은) 보람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시고 즐기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슬기와 지식과 기쁨을 주시고, 눈 밖에 난 죄인에게는 수고에 수고를 더하게 하시며, 죄인이 모은 재산도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주신다. 그러니 죄인이 수고에 수고를 더해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수고한 보람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자족하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고 즐거워 한다. 정신적으로도 교만하지 아니하고,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지 않고 자족한다. 곧 겸손이다. 바울은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알 것이니라.” 하고 디모데에게 교훈했다. 내가 무엇을 이루어 놓았다는 (놓겠다는) 생각 자체가 교만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받는 슬기와 지식과 기쁨은 자족과 겸손으로 드러난다. 자족하고 겸손한 자가 누리는 것이 바로 영생이요 임마누엘이다.

전도서 2:12-17 읽기

전도서 2:12-17 읽기

왕위를 계승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선왕이 이미 하던 일뿐이다. 무엇이 슬기로운 일이며 무엇이 어리석은 일인지 알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빛이 어둠보다 낫고 슬리로움이 어리석음보다 더 낫다는 것, 슬기로운 사람은 제 앞을 보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어둠 속을 헤맨다는 것과 같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지혜있는 사람에게나 어리석은 사람에게나 똑같은 운명이 똑같이 닥친다는 것도 이미 아는 일이다.
전도자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지혜있는 자와 어리석은 자에게 똑같은 운명이 똑같이 닥친다면) 왜 지혜를 더 얻으려고 애쓰는가? 지혜를 얻으려는 일도 헛되지 않은가? 사람이 지혜가 있다고 오래 기억되지도 않고,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기는 매한가지다. 슬기로운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도 죽는다. 그러니 산다는 것이 다 덧없다. 인생살이에 얽힌 일들이 전도자에게는 괴로움 뿐이었다.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될 뿐이다.

//지혜자와 어리석은 자에게 닥치는 똑같은 운명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죽음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그리고 잊혀진다. 죽음을 향해 달리는 인생살이는 괴로울 뿐이다. 그래서 전도자는 죽음을 향해 달리는 인생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되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런 (죽은) 인생에 예수께서 오셔서 영원을 말씀하신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죽음을 향해 달리는 인생들에게 부활과 생명의 말씀을 전하신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는 예수께서 하는 일을 한다고 하셨다. 예수께서 하신일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었다. 영원히 살기위해서는 하나님과 잇대어 살아야 한다. 죽음이라는 똑같은 운명이 닥치지만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죽음 너머의 삶, 영생을 이미 사는 것이다.

전도서 2:1-11 읽기

전도서 2:1-11 읽기

전도자는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았으나 이것도 헛되다고 말한다. 이제 ‘헛되다’라는 말 대신에 ‘잠깐’이라는 말을 쓰자. 다시 말해 마음의 즐거움도 잠깐이요 찰라에 불과하다고 교훈한다. 웃을 일도, 희락도 소용이 없다. 전도자는 자신의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는 것은 포기하고 술로 육신을 즐겁게도 해보았고, 덧없는 인생을 무엇을 하며 지내는 것이 좋을까하여 이런 저러 어리석은 일들도 해보았다. 사업을 크게 벌려보기도 하고, 집도 짓고 포도원도 일구고, 과수원도 만들고, 물을 대기 위해 저주지도 만들고, 종들을 사기도 하고, 소와 양 떼도 많이 가졌고, 은금 보배를 쌓았고, 처첩도 많이 두었다. 이렇게 부요하고, 지혜도 여전하고, 마음에 즐거워하는 것들을 하며, 수고해서 얻은 것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나 전도자는 자기가 한 모든 일과 수고로 누리는 낙이 다 헛되어(잠깐이요)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아래서 무익한 것이라고 결론을 낸다.

//전도자의 가르침은 반복적이다. 자기가 한 모든 일과 수고로 누리는 낙, 그것이 재벌의 삶이든 지혜자의 삶이든 다 잠깐이라고. 잠깐이라는 것은 영원이신 하나님께 잇대어 살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인생의 지혜나 수고 모두 다 해 아래서 무익하다고 결론을 낸다. 그렇다면 무엇이 유익한가? 임마누엘뿐이다.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 자기 수고와 즐거움으로 낙을 누리고 싶어하지만, 하나님 없는 낙은 잠깐일(헛될)뿐이다. 믿음의 선배들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고 가르쳤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 하는 것을 시편1편의 시인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하고 노래한다. 성도가 영원하신 하나님께 잇대어 사는 길은 주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 뿐이다. (전도자는 보지 못하였으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 지혜를 보았다.) 다른 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