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4:19-33

‘우리도 주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라는 백성들의 맹세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하나님을 능히 섬기기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신)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신)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격려가 아니라 이 무슨 저주스러운 독설인가?

여호수아는 주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서약을 쉽게 생각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만일 너희가 주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복을 주시던 주하나님께서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실 것이라고 경고한다. 백성들은 다시한번 ‘우리가 주하나님을 섬기겠나이다’라고 여호수아에게 다짐을 한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너희가 주하나님을 선택하고 주하나님을 섬기리라 한 것에 너희 스스로 증인이 되었다고 확인하니, 백성들이 우리가 서로서로에게 증인이 되었다고 대답한다.

여호수아는 지체없이 이스라엘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돌이켜 주하나님께 향하라고 명한다. 백성들은 ‘우리 주하나님을 우리가 섬기고 주하나님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겠습니다’ 라고 응답한다. 이렇게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백성들과 함께 주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언약을 맺는다.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다는 의미는?) 하여간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언약맺은 이 사건과 언약을 맺으면서 제정한 율례와 법도를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주하나님의 성소 곁 상수리 나무 아래에 큰 돌을 세워 언약의 증거로 삼았다. 여호수아는 이 큰 돌이 언약의 증거가 되리라 라고 하면서 주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증거돌을 세운후 백성들을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여호수아는 110세에 죽었다. (120세에 죽은 모세보다 10년을 덜 살았고, 모세는 죽기까지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하는데 여호수아에게는 끊임없이 늙었다는 수식어가 붙였다.) 여호수아는 죽어 자신이 기업으로 받은 딤낫 세라에 장사되었다. 사관은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주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주하나님을 섬겼다고 기록한다. 또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다고 덧붙인다. 여호수아가 속한 에브라임 지파는 요셉 자손이다. 사관은 세겜땅은 야곱이 백크시타를 주고 하몰에게서 산 밭이라고 주석을 단다.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의 죽음과 함께 제사장 엘르아살도 죽어 장사되는 것으로 마친다.

// 은혜는 결코 값싸지 않다. 순종없이 맹세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보화가 감추인 밭을 사는 것이고 값비싼 진주를 사는 것이라고 비유하셨다. 밭이든 진주든 자신이 가진 소유 모두를 팔아야 살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서약은, 곧 하나님나라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은 버리겠다는 서약이다. 많이 가진 자든 적게 가진 자든 자신의 소유 전부를 팔아 버려야 얻을 수 있다. 어떤 부자에게는 수십 조원 이상이 될 수도 있고 정말 가난한 자에게는 공짜가 될 수도 있으나 전부를 팔아야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 구약에서도 동일하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를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라고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 결국은 사야한다는 것이다. 약속의 땅은 주어졌지만 점령해야 할 땅이다. 하나님나라는 주어졌지만 순종으로 누려야 (사야) 할 나라다.

주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동안에 이스라엘이 주하나님을 섬겼다고 한다. 결국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알아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 영생이다. 참 안식이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율법책을 기록하고 큰 돌이 주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었고 백성들이 한 맹세를 (들은) 증거라고 말한다. (서로가 서로의 증인 됨을 망각할 때 하나님은 돌들로 증거를 삼아 심판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서 돌들로도 능히 아브라함 자손이 되게 하시는 분이라고 하셨다.) 우리 성도들은 22절 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증인이 된다. 성도라면 적어도 한번은 (세례 때) 삼위 하나님 앞과 여러 성도들 앞에서 서약을 한다. 성도는 서로가 이 서약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관계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존재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삶이다.

여호수아 24:1-18

여호수아 유언에 대한 보충설명, 혹은 23장지도자들에 대한 유언을 하나님 앞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유언을 공증하는 장면이다.

여호수아는 세겜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모으로 지도자들을 불러 하나님 앞에 나와 서게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이삭, 야곱과 에서, 모세와 아론, 애굽에 내린 재앙, 출애굽, 홍해, 광야생활, 요단 동쪽 아모리에 대한 승전, 발람의 저주를 막으시고 오히려 축복하게 하신일, 여리고 함락, 가나안 일곱족속을 이스라엘에게 넘겨주신 일 등등, 약속의 땅을 주시기까지의 모든 역사의 주인공이 주하나님이시라고 전한다. 모든 일의 주어가 ‘내가’이다. 곧 ‘하나님께서’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는 주하나님을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라고 당부한다. 이스라엘 조상들이 섬기던 이방신들,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역사와 삶의 주인되신) 주하나님만 섬기라고 명령한다. 주하나님만 섬기는 것은 선택의 문제라고 한다. 두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만일 주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고 말하면서, 여호수아 자신은 “오직 나와 내 집은 주하나님을 섬기겠다”라고 선언한다.

이에 백성들이 화답한다. “우리가 결단코 주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겠습니다.” 백성들은 주하나님을 우리 주하나님이라고 부른다. 보호자 주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약속의 땅을 주신 주하나님이라고 시인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약속한다. “주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신)이십니다.”라고 맹세한다.

// 여호수아서에는 ‘주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신)이십니다’라는 고백이 이어진다. 여호수아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까지의 모든 역사의 주어인 “내가”가 “주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한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에서는 주하나님을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주하나님을 섬기라고 당부한다.

나의 삶의 주어는 누구인가?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결국은 자기 뜻대로 했던 사람들은  심판날에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라고 반문할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 이들에게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가” 하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지혜롭다고 하신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신다.

여호수아의 유언은 하나님 앞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공증된다. 주하나님을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주하나님을 섬기라. 내가 세례를 받으면서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서약한 이것 말고 나의 믿음의 자녀들에게, 이웃들에게 남길 말이 또 무엇이 있으랴.

하나님을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주님을 따르것을 방해하는, 아직까지 내가 치워버리지 못한 우상들은 무엇인가?

여호수아 23 (1-16)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로 본문은 시작한다. 솔직히 여호수아가 요단을 처음 건넜을 때 벌써 아흔이 넘었고, 땅분배 직전에 이미 주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13:1)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오랜 후라는 것은 꼭 긴 시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호수아의 늙음보다는 여호수아의 사명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여호수아는 온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불러서 일종의 유언을 시작한다. 요약하면…

나는 나이가 많아 늙었다. 주하나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하나님(신)이시다. 아직 점령하지 못한 나라들도 이미 점령한 나라들과 함께 너희들의 기업으로 제비뽑아 주었다. 주하나님께서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쫓아내실 것이니 주의 말씀(약속)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하여라. 힘써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아라. 너희 중에 남아 있는 민족 중에 들어가지 말아라. 이방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아라. 이방 신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아라. 이방 신들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아라. 오직 너희의 주하나님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너희의 주하나님은 강대한 나라를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다. 오늘까지 너희에게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다. 너희는 ‘일당천’이다. 왜냐하면 주하나님께서 약속대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삼가 조심하여 너희의 주하나님을 사랑하라.

만약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방 민족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주하나님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실 것임을 확실히 알아라.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허리에 채찍이 되며 눈에 가시가 되어 너희가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망할 것이다. 나는 죽는다. 그러나 주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은 하나도 틀리지 않고 다 너희에게 응할 것이다. 주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도 이미 마음과 뜻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주하나님의 선한 말씀이 온전히 성취된 것 같이 주하나님의 모든 불길한 말씀도 너희가 이 아름다운 약속의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너희에게 임할 것이다. 만일 너희가 주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다른 신들을 섬겨서 그들에게 절하며 주하나님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칠 것이다.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다른 신을 사랑하거나. 여호수아의 유언은 두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주하나님 대신 다른 신을 섬긴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칠 것이다.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는 순종의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을 범하여 다른 신들을 섬긴다면 (아름다운) 하나님나라에서 멸망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율배반적이요 모순적인 말씀이다. 하나님나라에서 멸망하다니. 그러나 다른말로하면 불순종은 더이상 하나님나라에서 사는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약속의 땅’에서 ‘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약속’이 중요하다. 언약이 중요하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 같이 하라고 말씀하신다. 한편으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민족과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신다. ‘가까이 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한글 의미보다 훨씬 강한 뜻을 가졌다. 창세기에서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라에 사용된 단어다. 따라서 하나님께 가까이 하다는 하나님과 한몸됨을 의미한다. 곧 임마누엘이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의미다. 결혼관계라고 해도 좋겠다. 역으로 말하면 이방 민족과 가까이 하는 것은 행음이다. 임마누엘의 관계를 깨는 것이다. 처음에는 올무, 덫,채찍, 가시들을 감기같이 쉽게 넘길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영적으로 병들어 죽는다. 임마누엘로 오늘의 영적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죽음을 앞둔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임마누엘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 주야로 율법책을 읽고 묵상하여 율법에 기록된 대로 순종하는 것이라는 주하나님의 가르침을 기억한다. 율법을 순종함에 (행함에)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이라고 되씹는다. 주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시며 주신 말씀을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을 불러 유언으로 전한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나라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그리고 지도자뿐만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면 누구나 따라야 할 명령이다. 임마누엘!

여호수아 22:21-34

비느하스를 대표로 하는 요단 서편 조사단의 질문에 르우벤, 갓, 므낫세 동편 반지파가 대답한다.

문) 너희가 오늘 여호와께 거역하고자 하느냐? (16)

답1) 거역하는지 아닌지 전능하신 주하나님께서 아신다고 대답한다. 그것도 주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따라서 온 이스라엘도 장차(결국) 이 일이 주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만일 거역하는 범죄함이면 주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지 말라고 간구한다. 답을 조사단에게도 하지만 주하나님께도 고한다.

답2) 제단을 쌓은 것이 주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나, 번제, 소제, 화목제 등 제사를 드리기 위한 목적이라면 주하나님의 벌을 달게 받겠다. 즉 주하나님을 배반하거나 제사의 목적으로 제단을 쌓은 것이 아니라고 대답한다.

답3) 제단을 쌓은 것은 나름 목적이 있고 나름 주의를 기울여 한 행동이라고 항변한다. 목적은 주하나님과의 관계를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오히려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후손들이 요단 동편의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너희는 주하나님께 받을 분깃(기업)이 없다고 말하여서, 요단 동편 후손들에게 주하나님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염려하여 제단을 세웠다고 말한다. 다시한번 이 제단은 번제나 다른 제사를 위함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답4) 제단은 후손들에게 자신들도 주하나님께 요단 서편과 같은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증거하여 요단 서편의 후손들이 요단 동편의 후손들에게 너희는 주하나님께 받을 분깃이 없다고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반복해서 대답한다.

답5) 마지막으로 제단의 모형을 보라고 한다. 제사가 목적이 아니라 요단 서편과 동편 이스라엘이 한 이스라엘임을 증거하는 모형이 될 뿐이라고 답한다. 다시한번 성막에 있는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쌓아 주하나님을 거역하거나 주하님을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려는 것이 결단코 아니라고 최후변론을 한다.

판결) 제사장 비느하스와 요단 서편에서 온 조사단은 요단 동편 지파들의 대답을 듣고 좋게 (옳게) 여겼다. 비느하스는 주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요단 서편과 요단 동편의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계신줄 안다고 말하면서 요단 동편 지파들이 주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무죄를 선고한다. 요단 동편의 지파들이 무죄함으로 요단 서편이 주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을 이유가 없어졌음을 선언한다.

비느하스와 조사단은 요단 동편을 떠나 요단 서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와 요단 동편 자손들이 제단을 쌓은 일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그 결과를 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즐거워 주하나님을 찬송했다. 다시는 요단 동편을 멸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요단 동편 지파들은 자신들이 세운 그 제단을 ‘엣’ 곧 ‘주하나님께서 하나님(신)이시다’라고 불렀다.

// 비느하스를 대표로 하는 요단 서편의 조사단의 질문은 ‘무슨 제단을 세웠느냐?’가 요점이라면 요단 동편지파들의 대답은 ‘왜 제단을 세웠느냐?’에 촛점을 맞추었다. 다른 신을 섬기기 위해, 다른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단을 세워 주하나님을 거역하려고 하느냐? 라는 질문에 신에게 제사를 지낼 목적이 아니라 자신들도 주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요단 서편의 후손들에게 증거로 삼기 위해 세웠다고 대답한다. 요단 동편 지파들이 소유지로 돌아가면서 (요단 동편에 발을 딛자마자) 첫번째로 한 것이 결국 자신들의 시민권이 요단 서편의 시민권과 동일하다는 것을 제단을 세워 증거한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용병들이 돌아가면서 요단 동편 여권으로 입국한 것이 아니라 요단 서편에서 사용하던 신분증을 여권 대신 사용했다는 것이다.

요단 동편 지파들이 세운 큰 제단 모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28절 모형을 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제단이라기 보다 기념비였을 것이다. 10절에 제단 앞에 ‘큰’이라는 (공동번역은 ‘어마어마한’) 수식어가 붙은 것으로 보아 제사를 드리기에 적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단 동편 자손들이 요단 서편을 출입할 때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이라는 증거로 삼았을 것이다.

요단 서편지파들은 요단 동편 지파들이 자신들과 같은 온 이스라엘 인데, 동편의 잘못으로 온 이스라엘이 범죄할까봐 조심하여 조사단을 파견했고, 요단 동편지파들은 요단 서편지파들이 시간이 지나 자신들을 이스라엘 회중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봐 제단을 세웠다. 다시말하면 요단 서편이든 동편이든 하나의 통일 이스라엘을 꿈꿨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관은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라는 표현대신 주하나님의 온 회중이라고 고쳤썼는지 모른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공동체에는 즐거움이 넘친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가 선포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자주 다르다는 것으로 상대방을 정죄한다. 틀린 것이 아닌데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선 적대시부터 한다. 대화를 해보면 결국 같은 목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얼마나 편가르기가 심한 사회에 살고 있는가? 사회 곳곳에서 총성만 들리지 않는 전쟁 중이 아닌가?

사족: 오히려 기득권자, 강한자가 사회적 약자 소외된 자들의 약점을 채워주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고 일어나 자기 배만 채워서는 안된다.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도 무식한 자도 지체가 될 수 있다. 아니 이들이야 말로 주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몸의 지체들이다

여호수아 22:10-20

르우벤, 갓, 므나셋 동편 반지파는 요단을 건너 자신들의 소유지로 갔다. 사관은 이들이 가나안 땅 요단 언덕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제단을 쌓았다고 기록하는데, 이 요단가가 요단 서편인지 동편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문맥상 요단을 건너자 마자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새번역 공동번역 참조)

요단 동편에 제단을 쌓았다는 소식을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자손들이 들었다.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자손들은 실로에 모여 요단 동편의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와 싸우려고 했다. 그러나 우선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각지파의 대표 한명씩 열명을 길르앗 땅 (요단 동편)으로 보내어 사실관계를 확인하도록 하였다. 비느하스를 대표로 한 조사단은 요단 동편 지파에게 “주하나님의 온 회중이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 주하나님을 따르는데서 돌아서서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아 너희가 오늘 주하나님께 거역하고자 하느냐?”라고 물었다. // 자신들을 이스라엘 온 회중이라고 하지 않고 주하나님(여호와)의 온 회중이라고 말함으로써, 요단 동편의 두지파 반이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아닌지 따졌다고 할 수 있다..

비느하스는 특별히 민수기 25장의 브올의 죄악을 언급했다.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죄에서 정결함을 받지 못했다고 자성했다. 주하나님 대신 다른 신에게 제사하여 주하나님을 배역할 때 주하나님께 온 이스라엘 회중에게 진노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비느하스는 특별히 요단 동편은 원래 약속의 땅이 아니기 때문에 깨끗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만약 요단 동편이 깨끗하지 않다면 요단 서편에 와서 열지파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지라고 제안했다. 주하나님의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쌓아 주하나님께 거역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것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한 뜻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공동체의 뜻도 거역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브올의 죄악고 함께 아간의 범죄도 언급한다. 브올이 음행을 상징한다면, 아간은 불순종을 뜻한다. 불순종으로 인해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했다고 한다. 한사람의 잘못으로 당사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아이성 전투에서) 멸망당했음을 예로 든다.

//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지파들은 요단 동편의 지파들도 당연히 이스라엘의 일부로 보았다. 그래서 동편 일부가 주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인한 온 이스라엘에 내릴 재앙에 대처하고 했다. 범죄하게 하는 신체의 일부를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았다고나 할까. 사관은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대표가 자신들을 온 이스라엘의 회중이라는 표현 대신 주하나님의 온 회중(16)을 대표한다고 말함으로써 이스라엘이 혈육공동체가 아닌 주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신정 공동체임을 분명히 하는 것 같다.

비느하스는 브올 사건을 언급함으로 집단적인 음행과 그에 따른 이방신에게 제사하는 범죄에 대한 경종을, 그리고 아간을 언급함으로 한 개인의 불순종으로도 온 이스라엘이 심판받게 됨을 경고한다. 요단 동편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도 주하나님의 온 회중에 포함되어있음을 분명히 한다.

요단 동편이 깨끗하지 않은 땅이라는 것은 (요단 서편은 깨끗하다는 것은) 편견이겠지만 비느하스를 대표로 한 조사단이 깨끗함을 이유로 요단 동편을 포기하게하고 요단 서편을 공유하겠다는 제안은 굉장히 깨끗한 (구별된, 거룩한) 마음에서 나온 것 같다. 거룩함을 위해서라면 세상 욕심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이미 소유한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거룩함을 위해서라면 내것을 이웃들에게 (특별히 믿음의 형제들에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여호수아서가 끝나간다. 그러고보니 이 중요한 사건에서 여호수아는 등장하지 않는다. 요단 서편은 ‘가나안 정복’을 이끌 장수형 지도자에서 ‘가나안 안식’을 이끌 제사장 체제로 전환되어서 일까? 주어가 여호수아 한명에서 땅분배에서부터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이스라엘 각 지파 대표가 추가되더니 안식을 얻은 후 이번 사건에서부터 여호수아가 빠졌다는 것도 새롭다. 땅의 지도자는 유한하다. 브올 사건의 주인공 비느하스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이기도 하지만 제사장 시대의 도래를 뜻하는 것이다. 가나안 정복에는 주하나님의 군대로서의 이스라엘을 이끌 여호수아가 필요했다면, 가나안 안식에는 주하나님의 예배자로서의 이스라엘을 이끌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여간 오늘의 질문은 ‘무엇을 예배하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