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2:28-34

마가복음 12:28-34

율법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께서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부활에 대해 변론을 잘하시자 예수께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예수께서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시며 첫째는 하나님 사랑이요, 둘째는 이웃사랑이라고 답하셨다.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율법학자는 예수께 선샌님의 말씀이 옳다고 맞장구쳤다. 그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다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뒤에는 감히 예수께 더 묻는 사람이 없었다.

>> 한 율법학자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람이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낫다, 곧 사랑하라는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낫다고 적용한다. 예배적 삶이 성도들의 생명과 다름 없으나, 주일예배가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주일예배가 제사로 전락해 버렸다면 더욱 그렇다. 하나님사랑이 곧 이웃사랑이요, 이웃사랑이 곧 예배적 삶 (하나님사랑) 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예수께서 저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실 것이다. 예수의 부활을 경험하지 못한 율법학자도 예수님의 답변에서 번제물과 기타 제물을 드리는 제사 보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 낫다는 것을 알았는데 부활의 삶을 사는, 곧 하나님 앞에서 이미 영생을 살고 있는 성도들이라면 어찌 살아야 할 지 분명하다.

>> 하나님나라에서 멀지 않다. 거의 다 왔다고 속으면 안된다. 멀지 않다는 것은 아직 들어가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마태는 예수께서 심지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늘 나라의 문을 닫기 때문이다. 너희는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마23:23) 라고 강하게 책망하셨다고 기록한다. 아는 것과 순종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과 듣고 행하는 것은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의 차이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들어가고의 차이다. 멀지 않다고 만족해서는 안된다. 끝까지 안전운전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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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2:13-27

마가복음 12:13-27

13-17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당원의 연합전선으로 예수를 책잡으려고 했다. 바리새파 사람과 헤롯당원은 예수를 선생님이요 진실한 분이며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는 분이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는 분이라고 입발린 소리로 칭송한후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지 물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속임수를 아셨다. 예수께서는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와 보여달라고 하셨다. 그들이 가져오니 예수께서 데나리온에 있는 초상이 누구의 것이며 누구의 글이 적혀있느냐고 물으셨다. 그들은 황제의 것이라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리라고 대답하셨다. 그들은 예수를 책잡기는커녕 경탄했다.

18-27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당이 손잡는데 사두개파 사람들이 빠질 수 없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형사취수제를 언급했다. 일곱형제 가정에 맏이가 아내를 얻고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고 동생들이 차례대로 형수를 맞아 들였지만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일곱형제가 모두 자식을 두지 못하고 죽은 후 그 여자도 죽었다. 그들이 살아날 부활 때에 그 여자는 일곱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는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몰라서 잘못 생각한다고 운을 떼셨다.그리고 사람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에 관해서 예수께서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상기시켜 주셨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 너희는 생각 크게 잘못하고 있다고고 말씀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가이사의 것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가이사의 형상과 가이사의 글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것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글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 성도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렇다면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 세상사람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없다. 예수께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라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글이 심비에 새겨지지 않은 사람들은  그것을 알 수 없을 뿐이다. 자칭 성도라면서도 내 것이 있는양 사는 사람은 부자청년과 같이 슬픈기색으로 예수를 떠나게 될 것이다.

//육신의 부활은 어느 한 날에 이루어지겠지만 영의 부활은 죽음 너머에 바로 이어진다.  과거가 주마등처럼 찰라에 지나가듯 미래도 찰라로 압축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영원에 잇대어 산다는 것을 (임마누엘을) 세상 언어로 풀어낼 수는 없다. 사두개인들이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임마누엘을 모르기 때문이다. (영원에 잇대어 산 대표적인 다윗은 주님(아버지 하나님이)께서 주님(성자 하나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었고 그것을 노래했다.) 따라서 영원에 잇대어 사는 것은 이땅에서도 부활한 영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살아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천국은 가야할 곳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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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27-12:12

마가복음 11:27-12:12

27-33 예수께서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다. 성전 뜰을 거니시는 예수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와서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즉답을 피하시고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하고 되물으시며, 이것에 대답하면 예수께서도 대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들은 의논했지만 답을 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믿지 않은 요한을 하늘에서 왔다고 대답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요한을 하늘에서 온 참 예언자로 믿는 사람들 앞에서 사람에게서 왔다고 대답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결국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예수께서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시는지 그들에게 직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12:1-12 예수께서 직답대신 비유들 말씀하셨다. [1-11]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의 비유가 자기들을 겨냥하여 하신 말씀인 줄 알아차렸다. 그래서 예수를 잡으려고 했지만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보다 사람들을 무서워 했다. 사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들도 두려워하는게 맞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른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가 쌓일 수록  그들은 눈을 감아버리고 예수를 잡으려고 한다. 자신들의 이권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손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기득권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는 눈을 감겨버린다. //예수께서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시는지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은 예수이 하나님의 권세로 일을 하시고 자신들은 소작인과 같이 포도원 주인의 아들까지도 죽여버릴 놈들이라는 것이 발각되었음을 알아차린다. 그러면 회개하고 돌이켜야 정상인데, 그들은 비유의 말씀대로 예수를 죽이고자 했다. 다만 사람들이 두려워 예수를 그대로 둘 수 밖에 없었다.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자다. 말씀을 깨닫고도 순종하지 않으면 어둠의 길을 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말씀의 씨가 뿌려지는 곳이 모두 옥토가 아님을 알 수 있다. …. 생각해야 할 것이 많은데 오늘은 몸이 아프다. 삼일째 몸살기운이다.

마가복음 11:12-26

마가복음 11:12-26

12-14 이튿날 베다니를 떠나 다시 예루살렘을 향하신 예수께서 시장끼를 느끼셨다. 멀리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 나무에 열매가 있나 가까이 가서 보셨다. 그러나 잎사귀 밖에 열매는 없었다. 무화과의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그 나무에게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제자들이 들었다.

15-19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성전으로 가겼다. 성전 뜰에는 팔고 사는 장사치들과 환전상이 많았다. 예수께서 그들을 내쫓으시며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 성전 뜰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것을 금하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기록된 성경말씀을 인용하시며,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을 만들어 버렸다고 책망하셨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서 예수를 없앨 방도를 찾았다. 그들은 예수를 두려워했다. 무리가 예수의 가르침에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와 제자들은 성 밖으로 나갔다.

20-24 다음날 아침 제자들은 어제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린 것 보았다. 베드로가 예수께 선생님이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렸다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기도할 때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이라고 하셨다. 

25-26 예수께서는 기도할 때 다른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있으면 용서하라고 하셨다. 그래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하셨다.

//무화과나무 저주? – 성전 청결 – 말라버린 무화과나무와 기도 – 기도와 용서.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무화과  철이 아니었으니 저주받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저주?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 하신 말씀일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맹인 된 사람이 부모나 자신의 잘못 때문 맹인이 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예수께서는 주님의 말씀은 성취 됨을 이 사건으로 드러내신다. //예수께서는 이 사건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해 가르치신다. 하나님을 믿고  말한 대로 이뤄지는 것에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이뤄진다고 하신다. 무화과나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뤄진 것이 증거다. //그러면 기도의 핵심은 무엇인가? 철이 아닌 때 열매를 맺는 것과 산을 옮겨 바다에 던지는 것과 원수를 (등진 사람을) 용서하는 것과 같이 곧 우리 힘으로는 안 되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이런 것들에 대해 의심하지 말라고 하신다. 특별히 다른 사람과 등지지 말고 용서하라고 하신다. 기도는 복을 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을 주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 복이 나에게 돌아온다. 내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기 위해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성전은 무엇인가?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는 기도의 집이 성전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기도를 앞장서서 도와야 할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자신들의 돈벌이에 예수의 가르침이 방해가 되자 회개하기는 커녕 예수를 죽이고자 도모한다. 오늘날에도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인다는 망언을 하며 예수님을 죽이는 종교지도자들이 있다. 기도는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것이다. 작은 자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성취됨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마가복음 11:1-11

마가복음 11:1-11

예수님 일행은 예루살렘 가까이 왔다.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예수께서 제자 둘을 보내어 맞은 편 마을로 가서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고 명하셨다. 만일 누가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고 답하면 그가 이리로 보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제자 둘이 가서 보니 과연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었다. 그곳에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하려느냐고 물었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답을 하자 끌고 가도록 하락해 주었다. 나귀 새끼를 예수께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안장삼으니 예수께서 타셨다. 많은 무리들은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펴고 깔았다. 예수를 앞 뒤서 따르는 무리들이 “호산다!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복되다!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더 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고 외쳤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이 도착하셔서 성전에 들어가셨다. 성전을 둘러보신 예수께서는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열두 제자와 함께 베다니로 돌아가셨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목전에 두고 베다니에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둘러보신예수님은 성전에 머물지 않으셨다. 열두 살 때, 자신을 찾아 온 육신의 부모에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하고 대답했던 예수님이 날이 저물자 성을 나가 베다니에 숙소를 마련하셨다. 물론 성전은 숙박장소가 아니기 때문이겠지만, 예루살렘과 성전이 예수님이 거하시기에는 너무나 부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이 거하시는 곳은 지리적 예루살렘이나 성전 건물이 아니다. (오히려 주님이 거하시는 곳이 성전이다.) 나귀 새끼를 타실지언정 성전에 오래 머물지 않으신 이유다. 성결한 곳, 거룩한 곳이어야 한다. 우리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  결국 주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어야 한다. 주님은 말씀으로 우리 안에 거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