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1-12

마가복음 4:1-12

늘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예수께서 바닷가에서 매우 큰 무리를 가르치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실 때 여러 비유를 말씀하셨다. 비유로 말씀하시기 때문에 ‘잘 들어야’ 한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와서 그것을 쪼아먹었다. 또 더러는 흙이 많지 않은 돌짝밭에 떨어지니, 흙이 깊지 않으므로 싹은 곧 나왔지만, 해가 뜨자 타버리고 ,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렸다. 또 더러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지니, 가시덤불이 자라 그 기운을 막아버려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런데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가 되었다. 예수께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덧붙여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혼자 계실 때에 예수의 주위에 둘러 있는 사람들이 열두제자와 함께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지 예수께 물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나라의 비밀이 모든 자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저 바깥사람들에게는 하나님나라의 비밀이 수수께끼로 들린다고 하신다. 그래서 바깥사람들에은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해, 회개하고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예수께서 하나님나라를 비유로 가르치셨다. 그런데 비유로 가르치신 이유가 듣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하시니 충격적이다. 오히려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하신다. 예수와 함께 하지 않은 사람들은 봐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니 회개하고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니 하나님나라의 비밀의 핵심은 예수와 함께 함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우리에게는 보혜사 성령의 충만이라고 적용할 수 있겠다. 우리도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말씀을 읽어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한다. 깨닫지 못하면 적용은 엄두도 못낼 일이다. 말씀 앞에 다시 겸손해지며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게 된다. 임마누엘!

https://quietwaters.blog/2020/03/08

마가복음 3:20-35

마가복음 3:20-35

20-27 모여든 무리로 인해 예수의 일행은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었다. 예수의 가족들은 예수의 소문에 놀라 예수를 찾아왔다.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학자들은 예수가 바알세불이 들려 귀신의 두목의 힘을 빌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평가했다. 예수께서는 율법학자들에게 사탄이 어떻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고 반문하셨다. 한 나라에 내분이 일어나면 그 나라가 버티지 못한다고 비유하셨다. 예수께서 사탄보다 힘이 세시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28-30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 어떤 비방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한다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악한 귀신의 힘을 빌어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일하신다.

31-35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밖에서 사람을 보내 예수를 불렀다.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예수께 밖에 어머니와 동생들이 왔다고 말했다. 예수께서 주위에 둘러 앉은 사람들을 보시고 “보아라 내 어너미와 애 형제자매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와 제자들이 식사할 겨를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여러 이유로 예수께 나아왔다. 축귀와 치유를 원하는 많은 무리와, 예수를 트집잡으려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그리고 예수에 관한 놀라운 소식에 가족들도 왔다. // 예수의 가르침과 축귀와 치유는 예수께서 하나님(신)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사건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이 아들이라는 것이 (마가)복음의 바탕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되심보다 축귀나 치유가 먼저였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없애기 위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에 반하는 증거를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예수의 가족들은 예수에 관한 소문에 그저 놀랄뿐이었다.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하나님과 대적되는 귀신의 편이라고 주장했다. 예수께서는 귀신이 귀신을 쫓아내는 내분은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내쫓는다고 말씀하셨다. 한편으로 성령의 능력을 부인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하셨다. //예수께는 육신의 가족보다 영적인 가족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어머니요 형제자매라고 하셨다. 성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하나님의 자녀다. 피는(전우애는) 물(형제애)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예수의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족보다 더 끈끈할 수 있는 이유다.

https://quietwaters.blog/2020/03/07

마가복음 3:1-19

마가복음 3:1-19

1-6  안식일,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다.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하는지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은지,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는지,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은지, 죽이는 것이 옳은지 물으셨다. 그들의 침묵에 예수께서 노하셨다. 그리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손을 회복시켜주셨다.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했다.

//선한 일은 목숨을 구하는 일이요, 악한 일은 죽이는 일이다.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니, 선한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생명이다. 바리새파 사람들도 이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안식일이라는 걸림돌에 걸렸다는 것이다. 안식일 준수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바꿔버렸다. 그들은 예수를 없애기 위해 평소 원수처럼 지내던 헤롯 당원들과 연합까지 한다. 우리는 교회의 전통과 관습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지는 않았는지 자성해야 한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무너뜨려야 한다.

7-12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닷가로 물러가셨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라 왔다.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강 건너편과 그리고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예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소문으로 들은 사람들이 예수께로 몰려왔다. 예수께서 혼잡을 피해 작은 배에 오르셔서 많은 사람을 고쳐주셨다. 악한 귀신들은 예수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고 외쳤다. 예수께서는 ‘나를 세상에 드러내지 말아라’ 하고 그들을 엄히 꾸찢으셨다.

13-19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셔서 열둘을 사도로 부르셨다. 예수께서 사도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그들을 보내어서 말씀을 전파하게 하시며, 축귀의 권능을 가지게 하셨다. 열둘의 이름은 베드로(시몬), 야고보와 요한 (세베대의 아들),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야고보 (알패오의 아들), 다대오, 시몬 (열혈당원), 가룟 유다 이다. 

//많은 무리와 열두 사도. 예수의 소문에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많아졌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인근 이방지역에서까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께 나아왔다. (그러나) 예수가 누구신줄 모르고,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모르고 예수의 사역의 결과만 보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간혹 악한 영들만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악한 귀신들의 증언을 꾸짖으셨다. 악한 영들은 예수와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예수의 증인으로 열두 사도를 택하셨다.  사도를 택하신 첫번째 이유가 임마누엘이다. 예수와 함께 있게 하셨다.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과 축귀와 치유의 권능을 공유해 주셨다.  제자도의 핵심은 예수와 함께함이다. 임마누엘이다. 임마누엘에 순종하면, 가르침과 축귀와 치유의 권능을 가지게 된다. 예수께서 함께 해 주시는데도 예수를 떠난 제자가 있다. 예수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도 진실함으로 행하지 않으면 도루묵이다. – 성도는 예수  안에서 임마누엘을 허락받은 사람이다.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https://quietwaters.blog/2020/03/06

마가복음 2:13-28

마가복음 2:13-28

13-14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로 나가셨다. 보다 많은 무리를 가르치시기 위해서는 마을보다 바닷가가 나았던 모양이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제자로 부르셨고 레위(마태)는 예수를 따랐다.

15-17 예수께서 레위의 집에서 자신을 따라온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다. 바리새인인 율법학자들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식사하는 것을 지적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8-20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금식을 했다.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왜 예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는지 물었다. 예수께서 혼인잔치에 온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금식할 수 있느냐? 하고 방문하셨다.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면 그날에는 예수의 제자들도 금식할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21-22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담아야 한다.

23-28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면서 예수의 제자들이 길을 내면서 밀 이삭을 잘랐다.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일을 한다고 지적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라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인자는 또한 안식일에도 주인이다’ 하고 덧붙이셨다.

https://quietwaters.blog/2020/03/05

마가복음 2:1-12

마가복음 2:1-12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으로 가셨다. 아마도 시몬의 장모집으로 가신듯하다. 예수께서 돌아오셨다는 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셨다. 그때 네사람이 중풍병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청중이 너무 많아 네 사람은 예수가 계신 곳 위의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내려보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죄용서’를 선언하셨다. 그곳에 있던 율법학자들은 속으로 마음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며, 예수께서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했다. 율법학자들의 속마음을 알아채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고 “일어나서 자리를 걷어서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중에 어느쪽이 더 말하기 쉬운지 물으셨다. 예수께서는 인자에게 죄를 용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하셨다.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거 “자리를 걷어서 집으로 가거라” 하고중풍병자에게 명령하셨다. 중풍병자는 곧 일어나서 모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걸어갔다. 모두에게 생전처음 보는 일이었다.

https://quietwaters.blog/2020/03/04

//나병환자와 접촉한 예수께 나병의 증세가 없었다. 예수께서는 다시 마을로 들어가실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가버나움에 있는 시몬의 장모의 집으로 가셨다. 예수의 사역에 우선순위가 있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축귀와 치유보다 하나님나라의 도를 가르치시는 것이 영순위였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하나님나라의 도를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축귀와 치유보다 중요하다.

// 예수께서는 (중품병자와) /친/구/들/의 믿음을 보셨다.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나길 원해도 믿음의 친구들이 없었으면 아무 소용없었다. 내 믿음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 믿음이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의 형제들이 함께 동거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형제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

// 어떤 서기관들은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다’라고 말을 하자, 자신들이 서기관이 되면서 배웠고 서기관으로 일하면서 알고 있는 죄사함의 권세가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과 예수가 방금 하신 말씀이 서로 위배된다고 생각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을 아신 예수께서 자신에게 죄사함의 권세도 치유의 권세도 있음을 보여 주셨다. 그러자 무리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무리들이 /예/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표현이 없다. 이렇듯 내가 영광을 받아야만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다는 말은 틀린말이다. 내가 큰자가 되지 못해도 (내가 인정받지 못해도) 하나님의 권위와 권세가 드러난다면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오히려 나는 쇠하여야 한다. 나는 더 낮은 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