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3:20-34

https://quietwaters.blog/2017/06/07/

//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다. 때로는 속임수에 능한 사람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다.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유다에서 온 선지자가 (일관되게 사용하던 하나님의 사람에서 선지자라고 표현이 바뀐이유는 무엇일까?)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나귀에 태워 보냈다. 유다에서 온 사람 (이제는 선지자라는 표현도 안쓰고 그저 사람이라고… 음)은 길을 가다가 사자에게 물려 죽어 시체가 길에 버려졌고 (이상하게도) 나귀도, 사자도 그 시체 옆에 서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벧엘로 가서 사람들이게 자신들이 본 것을 말했다. 벧엘의 늙은 선지자도 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확신에 유다에서 온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아들들에게 준비 시킨 나귀를 타고 현장을 방문했다. 현장은 사람들이 전해 준 그대로 였다. 사자가 시체도 나귀도 먹거나 찢지 않았다.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돌아와 슬피 울며 장사해 주었다. 하나님이 사람을 내 형제라 부르며 슬퍼 울었다.

벧엘의 늙은 선지자에게서 제사장 엘리의 말년이 떠오른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였고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 [삼상 3] 엘리는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때였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이 사무엘에게 임한다. 엘리는 사무엘에게 임한 이상이 궁금했다. 그는 사무엘을 불러 하나도 숨기지 말고 자신에게 얘기 하라고 명령? 했고 사무엘은 엘리에게 자세히 조금도 숨김없이 말해 주었다. 엘리는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라고 말했다.

늙은 선지자의 유언적 예언도 제사장 엘리의 말과 마찬가지다.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나님 말씀이 나의 처한 상황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상황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말씀에 대한 신뢰와 순종에 대한 기대가 더 커야 함을 배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일이 진행될 것이다.

열왕기상 13:11-19

열왕기상 13:11-19

https://quietwaters.blog/2017/06/06/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암송하면서도 삶에서는 그 명령에 나 자신의 생각을 더하기도 하고 때로는 명령을 부분적으로 누락시키는 나의 삶을 돌아본다. 이렇게 나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 하다보면 그럴싸한 거짓 설교에 속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열왕기상 13:1-10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보내신다. 제단이 무너져 재가 쏟아지는 이적과(말씀의 성취와) 자신의 마른 손이 회복되는 이적을(하나님의 은혜를) 목격하고 체험하면서도 여로보암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 곳이 없었다. 이보다 불쌍한 사람이 어디있으랴!

https://quietwaters.blog/2017/06/05/

열왕기상 12:25-33

열왕기상 12:25-33

짝퉁의 길을 걷는 여로보암. 비슷하여도 짝퉁은 짝퉁이다. 그 결국은 ‘다윗의 길’이 아니라 ‘여로보암의 길’을 내고야 말았다. 말씀이 없는 삶은 짝퉁이다. 사람들에게는 비슷한 길로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께는 전혀 다른 길이다. 여로보암은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버렸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버렸다. ㅠㅠ

https://quietwaters.blog/2017/06/04/

열왕기상 12:12-24

열왕기상 12:12-24

닫힌 귀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잠언 29:7에 의인은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잘 알지만 악인은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못 본 체 한다는 말이 있다. 그 앞 29:2절에는 의인이 많으면 백성이 기뻐하지만,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을 한다는 말씀이 있다. 르호보암에게 정말 잘 적용되는 말씀이다. 르호보암은 의인의 길 대신 악인의 길을 택했다.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못 본 체했다. 백성들이 나와서 친히 탄원했지만 듣지 않았다. 백성의 사정을 듣지 않았다. 곧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모른 체했다. 결국 하나님도 르호보암을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통해 말씀하신다.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복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7/06/03/

////9.26~10.3 인도네시아 서깔리만탄 방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