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5:25~32

열왕기상 15:25~32

//북 이스라엘에서는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왕이 되었다. 나답은 두 해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여로보암의 길의 끝이 다가 온다. 남 유다의 아사가 선대의 악한 일에서 돌이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41년을 통치한 것과 비교된다. 나답은 선대의 악한 일을 답습했다. 자신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했다. 결국 하나님은 바아사를 일으켜 나답을 죽이고, 바아사를 왕으로 세우셨다.

잇사갈 가문의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는 실로 사람 하나님의 사람 아히야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대로 여로보암 가문을 전멸시켰다. 사관은 한 번 더 여로보암 가문이 자신들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까지도 죄를 짓게 하였다고 평가한다. 바아사는 주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샬롬의 도구가 되지는 못했다. 

바아사가 아사와 늘 전쟁을 했다는 것은 (여로보암과 마찬가지로) 상대방을 이겨서 자신의 자리를 견고히 하려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쟁구도에서는 샬롬(평화)이 있을 수 없다. 나는 선의의 경쟁은 없다고 본다. 

다윗의 길에는 경쟁이 없다. 예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으시고, 오히려 죽기까지 섬기러 오셨다. 그래야 모두가 산다. 섬김의 길에 경쟁은 어불성설이다. 반대로 여로보암의 길은 경쟁의 길이다. 다른 사람을 죽여야 내가 산다. 그러나 결국은 모두 죽는 길이다. 선의의 경쟁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https://quietwaters.blog/2017/06/12/

열왕기상 15:9-24

열왕기상 15:9-24

아사는 유다 왕으로 마흔한 해를 다스렸다.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주님을 사모하는 아사의 마음은 평생 한결같았다. 그래서 은과 금과 그릇을 주님의 성전에 들여놓았다.

이런 아사라도 (북)이스라엘의 바아사왕 사이에 늘 전쟁이 있자, 은과 금을 모아 시리아의 벤하닷에게 이스라엘과의 동맹을 파기해 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아사의 늘그막에 발병이 난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그것은 아사가 주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시리아의 벤하닷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을 버리고 다른데 도움을 청하면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난다. 

평생 다윗의 길을 따른 아사라고 해도, 할머니도 대비의 자리에서 폐위시켰다 해도, 완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완전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주 예수가 나의 보물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열왕기상 15:1-8

열왕기상 15:1-8

르호보암에 이어 아비야(아비얌)가 유다 왕이 되었다. 아비야의 어머니는 아비살롬(아마도 압살롬)의 딸(손녀) 마아가다. 아비야는 르호보암이 지은 죄를 모두 그대로 따라갔다. 사관은 이것을 ‘다윗의 마음과 달랐다’라고 표현한다. 다윗의 마음과 달랐다는 것은 주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유다가 망하지 않은 이유를 사관은 주 하나님께서 다윗을 생각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관은 다윗에게서 헷사람 우리야의 사건 말고는 주님의 명령을 어긴 일이 없었다고 평가한다. 

하나님의 중재로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 큰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사관은 아비야와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었다고 기록한다. 아비야는 삼년을 다스리고 죽고, 그의 아들 아사가 이어서 왕이 되었다.

https://quietwaters.blog/2017/06/10/

//아비야의 죄는 다윗의 마음과 달랐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라는 평가를 받았으니, ‘다윗의 마음과 달랐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과 마음이 달랐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다. 주님의 명령을 어긴 일이 있어도 곧 바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포도원에서 일 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에 ‘아니오’ 하고 대답 했어도, 뉘우치고 일하러 나간 아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있을까마는, 주님은 주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 주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다. 주의 말씀을 마음 속에 둘 때,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 내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 되지 않을까 희망한다.  

열왕기상  14:21-31

열왕기상  14:21-31

르호보암이 즉위할 때 이미 마흔한 살.  그렇다면 르호보암은 솔로몬이 왕이 되기 전에 태어났다. 르호보암의 어미 나아마는 솔로몬의 여인 중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알려졌다. (스바의 여왕도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청년? 솔로몬은 이 암몬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고, 나아마는 조강지처로 (통혼정책으로 데려온) 다른 여자들 위에 군림했을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암몬의 신(밀곰/몰렉)은 인신제사를 받는 신이 아니던가. 솔로몬에게 일천이나 되는 첩과 후궁이 있었음에도 나아마와 그의 자녀들의 이름 외에는 기록되지 않은 이유를 나아마가 다른 여인이 낳은 아이들을 인신제사로 바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상상해 본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다른 여인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숨겼을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르호보암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조상들보다 더 악을 행한 것은 어미 나아마의 영향이 컷을 것이다. 솔로몬도, 르호보암도 나아마의 손아귀에서 놀아 났다고 밖에 달리 이해할 수 없다. ㅠㅠ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다’ 라는 카피도 있지 않은가? //사관이 반복해서 르호보암의 어머니는 나아마이고 암몬여자라고 강조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https://quietwaters.blog/2017/06/09/

열왕기상 14:1-20

열왕기상 14:1-20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었다. 여로보암은 아내에게 실로에 있는 아히야 예언자에게 가서 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물어보라고 부탁했다. 여로보암의 아내가 실로에 있는 아히야의 집에 이르렀다. 아히야는 나이가 들어서 눈이 어두워서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아히야에게 미리 여로보암의 아내가 변장을 하고 자기 아들의 일을 물으려고 올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아히야는 여로보암의 아내가 들어오자 여로보암의 아내인 것을 알고 있으며,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아히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임명하고 다윗의 가문으로부터 왕국을 쪼개어 네게 주었다. 그러나 너는 내 종 다윗처러 살지 않았다. 다윗은 내 명령을 지키고, 내가 보기에 올바르게 행동하였고 마음을 다해서 나늘 따랐다. 그러나 너는 앞선 모든 왕들보다 더 악한 일을 했다. 다른 신을 만들었다.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보암의 가문에 재난을 내리겠다. 여로보아 가문에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모두 끊어 버리겠다. 여로보암의 속한 사람 중 죽은 사람들은 개들이 먹어치울 것이고 성읍 바깥에서 죽은 사람은 하늘의 새들이 와서 쪼아 먹을 것이다. 나 주가 하는 말이다.]

아히야는 여로보암의 아내를 돌려보내면서, 부인이 성읍 안에 들어설 때에 아들이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아들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착하게 살았기 때문에 제대로 무덤에 묻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다스릴 또 다른 한 왕을 세우실 것이며, 그가 여로보암의 가문을 끊어 버릴 것이라고 하셨다. 이 모든 일이 여러보암의 아내가 성읍에 들어가는 순간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주님께서 불순종의 이스라엘을 쳐서 유프라테스 강 저쪽으로 흩으실 것이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이 여로보암이 죄를 지었고, 이스라엘까지 죄를 짓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님께서는 여로보암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을 버리실 것이라고 하셨다.

여로보암의 아내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가 집으로 들어설 때 아들이 죽었다. 온 이스라엘이 그 아이를 장사했다. 주님께서 아히야에게 하신 말씀이 성취되었다.

여로보암의 나머지 행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 여로보암은 스물두해 동안 다스린 뒤에 죽고, 그의 아들 나답이 왕이 되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 앞에 떳떳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히야 앞에 나가서 아들에 관해 묻기를 주저했다. 대신 아내를 보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해 하는 행동이다. 하나님을 바로 안다면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나아가야 한다. 여로보암의 태도는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교만이다. 감히 하나님을 속이려 들다니. 여로보암의 길은 이렇게 다윗의 길과 달랐다. 반면 다윗의 길은 주님의 명령을 지키고, 주님 보시기에 올바른 행동을 하고,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여로보암은 아들을 낳고 ‘아비야’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도 신실했었다. 아비야는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아비야는 이름값을 하며 산 것 같다. 사관은 아비야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착하게 살았다고 기록한다. 아비야는 여로보암의 길의 결국, 즉 집안이 망하는 꼴을 보지 않고 무덤에 장사되는 복을 누렸다. 때론 일찍 죽는 것도 복이다. ////어떻게 감히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아들의 죽음에도, 말씀의 성취를 목격하고도 여로보암은 요지부동이다.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도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결과다. 그러나 악인의 길은 결국 망한다.  

https://quietwaters.blog/2017/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