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4:1-12

예레미야 14:1-12

불순종의 땅에 가뭄이 계속된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애통한다. 귀족들이 물을 구하려고 종들을 보내지만 종들도 어쩔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온다. 땅이 갈라지고 농부는 상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들짐승도 신음한다. 드디어 주님께 기도한다. 주님께 수없이 반역했다고 이실직고 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위해 선처해달라고 간청한다. 주님만이 이스라엘의 희망이라고 아부한다. 주님만이 이스라엘을 환난에서 구해 주시는 분이라고 떠받든다. (그러나 주님은 나그네처럼 행하신다. 주님은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는 사람처럼 반응하신다. 힘을 잃은 용사처럼 뒤꽁무니를 빼신다.) 주의 백성은 주님이 자신들 가운데 계시고, 자신들은 주님의 백성이라며 제발 그냥 버려두지 말라고 탄원한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들의 죄악을 징벌하실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금식하여도 그들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겠다고 하신다. 제사도 받지 않으시겠다고 하신다. 오히려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전멸시켜 버리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주님이 우리에게 나그네처럼 행하시고, 주님이 우리를 처음보는 양 우리를 모른다 하시고, 주님이 우리를 돕지 않고 뒤꽁무니를 빼시다니…ㅠㅠ 사실은 반대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우리가 주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고, 우리가 주님의 형제자매들을 돕지 않고 뒤꽁무니를 빼기 때문이다. 주님은 이런 죄악을 벌하신다. 이런 주님의 형상을 잃은 곳에는 주님의 은총이 없다. 이런 곳에서 드리는 기도와 금식과 제사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주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멸이다. //내가 주님께로 가야 한다. 종들을 보내 주님께 물을 달라고 간구하는 것으로는 주님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내가 가야한다. 가뭄의 땅을 버리고 생수가 흐르는 주님께로 내가 가야한다. 임시방편의 선처를 간구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기도와 금식과 제사가 아니라 (내가 주인된 삶이 아니라)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깨달아 순종해야 한다. 비록 그 길이 환난의 길이라도.

예레미야 13:15-27

예레미야 13:12-19

https://quietwaters.blog/2017/10/12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헛된 것을 믿은 자의 결국은 수치다. 이들에게 닥칠 것은 화뿐이다. 그들은 주님을 부르지만, 주님은 그들을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이라고 부르신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려느냐? 하고 물으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거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고 말할 것이다.” 평생 예수 믿는다고 살아왔는데 주님 앞에 서는 그날 주님으로부터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큰 수치는 없다. 이보다 더 큰 화는 없다.

https://quietwaters.blog/2017/10/13/

예레미야 13:1-14

예레미야 13:1-14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베로 만든 허리띠를 띠고 물에 적시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명하셨다. 예레미야는 순종했다.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그 허리띠를 유프라테스 강 바위 틈에 숨기라고 명하셨고, 예레미야는 순종했다. 며칠후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숨려둔 허리띠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예레미야가 허리띠를 숨겨둔 곳을 파자, 허리띠는 썩어서 전혀 쓸모가 없게 되었다.
주님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교만이 허리띠처럼 썩게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완악해서 주님의 말씀 듣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고집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다른 신들을 섬기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이런 백성은 주님의 나라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 허리띠는 허리에 동여져야 되듯이, 주님의 백성은 주님께 동여매어져야 되는데, 주의 백성들이 주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다.
주님은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항아리마다 포도주가 가득담겼다고 말하라고 하신다. 그들은 포도주 항아리에 포도주가 담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반응할 것이다. 주님은 그들이 포도주에 잔뜩 취해 서로 부딪쳐서 깨질 것이라고 하신다. 그래도 주님은 (술취한)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동정하지 않으실 것이다. 사정없이 멸망시키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강 바위 틈에 묻어 두었던 베 허리띠가 썩지 않으면 이상하다. 항아리 가득한 포도주를 마시고도 술취하지 않으면 이상하다. 주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유다와 예루살렘의 결국을 보여주신다. 베로 만든 허리띠에 물을 묻히지 않으려면 물가에 가지 않아야 한다. 술취하지 않으려면 포도주 항아리를 깨뜨려야 한다. 그런데 유다와 예루살렘은 베로 만든 허리띠를 강가에 묻어도 썩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포도주 항아리를 비워도 술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정도로 교만했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나 사실 예레미야에게 강가에 베로 만든 허리띠를 묻으라는 주님의 명령은 베 허리띠를 물에 적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주님의 명령과 모순된다. 모순된 명령에 대한 예레미야의 순종은, 이스라엘 백성의 진정성 없는 순종을 상징하는지도 모르겠다. 두 주인을 섬기는 그들의 모습을 꼬집는 것이다. 주님은 그런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신다. 동정하지 않으시고 사정없이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하신다. 허리띠는 허리에 동여져야 하듯, 주님의 백성은 주님께 동여매어져야 한다.

https://quietwaters.blog/2017/10/11/

예레미야 12:7-17

예레미야 12:7-17

주님이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사신 바 된 사랑하는 유다를 벌하시는 이유는, 주님의 소유인 유다가 주님을 향해 대적했기 때문이다. 주님은 주님을 대적하는 유다를 미워하신다. 유다는 주님의 들짐승을 삼키며, 주님의 포도원을 헐어 황무지로 만들었다. 황폐해진 땅은 슬퍼한다.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는 땅이 되었다. 농부는 수치를 당한다. 이 모두 주님의 분노로 말미암는다. 주님은 주님의 백성에게 준 소유에 손을 대는 악한 이웃을 뽑아버리신다. 유다집안이라고 예외는 아니다.그러나 진멸은 아니다. 주님은 그들을 뽑아 낸 후 돌이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향으로 인도하신다. 그들이 주님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다시 주님의 백성으로 세움을 입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들이 순종하지 않으면 주님은 그 나라를 뽑아 멸하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은 주님을 향해 핏대를 세우고 대드는 유다를 원수같이 여기신다. 유다가 주님의 원수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결국 유다에게 닥친 재앙은 유다가 자초했다. 그래도 소망이 있음은, 주님은 주님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주님의 백성으로 세우시기 때문이다. 불순종은 뽑아 버리시고 순종하는 사람들을 주님의 백성으로 삼으신다.

https://quietwaters.blog/2017/10/10/

예레미야 11:18-12:6

예레미야 11:18-12:6

주님의 말씀을 깨달은 자는 예레미야뿐이다. 말씀을 깨달은 예레미야는 주의 백성의 악한 행실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런 예레미야를 해치려고 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주님께 아뢰었다. 사람들은 예레미야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고 협박했다. 주님의 이름으로 재앙을 선포하는 예레미야를 죽이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그들이 벌을 받는다고 하셨다. 예레미야를 협박한 아나돗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 남을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하신다.
예레미야는 주님이 언제나 옳으셨다고 인정한다. 그런데 왜 악인들이 형통하고 배신자들이 모두 잘 되기만 하는지 주님께 묻는다. 예레미야는 그들이 말로만 주님을 섬기지, 속으로는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고발한다. 반면 자신의 마음은 주님과 함께 있음을 주님이 아신다고 예레미야는 확신한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일에 관계하지 않으신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예레미야는 피곤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친척, 집안식구에게까지 욕을 먹는 예레미야!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그들을 믿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세상평가에 동요되지 말라고 하신다.

//물론 주님과 예레미야 사이는 소통이다. 그러나 주님과 백성, 예레미야와 백성 사이는 불통뿐이다. 불통보다 더 짜증나고 피곤한 일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