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1-19

예레미야 2:1-19

나에게서 멀리 떠나가서 헛된 우상을 쫓아다니며, 자신들도 허무하게 되었느냐? (5b)

주님께서 끊임없이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다. 주님은 이스라엘이 처음에는 얼마나 주님께 성실하고,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는지, 어떻게 주님을 따랐는지 기억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런 이스라엘이 주님에게서 무슨 허물을 발견한 양, 주님을 떠나 헛된 우상을 쫓아다며, 우상들처럼 허무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상들처럼 허무하게 된 이스라엘은 더 이상 주님을 찾지도 않게 되었다. 주님이 주신 것들에 감사하지 않고 부정하게 만들었다. 일반 백성은 그렇다처도 제사장들까지도 주님을 찾지 않고, 법을 다루는 지도자들도 주님을 알지 못하며, 통치자들은 아예 주님께 맞서서 범죄하였고, (자칭) 예언자들도 바알 신의 이름으로 예언하며 헛된 우상들만 쫓아다녔다고 책망하신다. 결국 주님은 법을 꺼내드신다. 법대로 처리하시겠다고.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배교, 곧 신을 바꾸어 버린 것은 하늘이 놀랄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생수의 근원이신 주님을 버린 것, 주님이 아닌 다른 곳에서 물을 찾는 것이 (주님의) 백성이 저지른 악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악때문에 이스라엘이 원수들에게 포로로 잡혀가 노예가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이스라엘 땅은 황폐하게 되어, 사람이 살수 없는 곳이 되었다. 주님이 길을 인도하여 주시는데도 주님을 버리고 떠난 결과다. 이스라엘이 이런 재앙을 자청한 것이라고 하신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정신을 못차리고 이집트로 앗시리아로 도움을 청하러 달려갔다. 주님에게서 돌아선 악에서 돌이키지 않았으니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배신을 징계하실 것이다. 벌을 받아야 주님을 버린 것과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악하고 고통스러운지 깨닫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이 천국이고 하나님이 다스림이 없는 곳이 지옥이다. 따라서 순종하는 곳이 천국이고, 불순종 하는 곳이 지옥이다. 우상을 따르면 우상처럼 허무하게 (생명이 없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역으로 하나님을 따르면 하나님의 자녀가(영생을 누리게) 된다. //벌을 받아야 주님을 버린 것과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악하고 고통스러운지 깨닫게 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 곧 지옥이다. ㅠㅠ –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로 살라고 하신다. 우리도 첫사랑을 기억(회복)해야 한다. 늘 주 예수의 신부로 신혼으로 살라고 하신다.

예레미야 1:11-19

예레미야 1:11-19

예레미야의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으로 도배된다. (나의 삶에도 주님의 말씀으로 도배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주님은 예레미야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셨다. 예레미야는 살구나무가지를 보고 있다고 대답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가 살구나무가지를 보고 있듯이, 자신의 약속(말)을 지켜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주님께서는 끓는 가마가 북에서부터 기울어지는 것을 예레미야에게 보여주셨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진다고 해석해 주셨다. 이 모든 일을 주님께서 친히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이유는 사람들이 주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밝히신다. 주님은 다른 신들을 섬긴 자들에게 심판을 선고하고 모든 죄악에 벌을 내리시겠다고 하신다.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이 모든 명령을 이 땅의 주민들에게 말하라고 사명을 주신다. 주민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예레미야가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유다 왕들과 지도자들과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치려고 해도 예레미야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이 예레미야와 함께 하여 예레미야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먼저 살구나무를 보여주셨다. 예레미야가 본 살구나무 가지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명확하지 않다.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열매를 맺은 아론의 지팡이였을까? 그렇다면 제사장 가문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성취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예레미야가 본 살구나무가지가 아론의 지팡이와 상관없어도,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주님의 말(약속)을 지켜 이루시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주님이 하실 말씀도, 예레미야가 아니라 주님이 지켜내실 것이다. //끓는 가마가 북에서부터 기울지는 환상과 같이 주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하시는 말씀은 평화가 아니라 심판과 재앙이다. 그것도 소위 자기 백성에게 임할 재앙이다. 그러니 예레미야는 귀를 막고 (주님의 말씀에) 거역하며 자신을 공격해 올 백성들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예레미야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 임마누엘이 구원이라고 하신다. 임마누엘! 주님 편에 제가 서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예레미야 1:1-10

예레미야 1:1-10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6절)

//예레미야가 한 말(1절)을 기록한 책이라고 시작했으면서 온통 ‘주님의 말씀'((2,4,7,8,9절)으로 도배된다. 예레미야의 말은 곧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어리다고 말을 하나, 하나님께서는 어리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저 하나님께서 무슨 명령을 내리든지 그대로 말하라고 하신다. 내가 어리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이다. 우리에 대한 평가는 하나님이 하신다. 우리는 평가대신 대신 어린아이와 같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나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에 두려울 수는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함께 하시며 보호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리고 친히 손을 내밀어 예레미야의 입에 대시고 하나님의 말을 예레미야에게 맡긴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이렇게 예레미야를 도구로 사용하신다. 도구는 자신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무딘 칼도 주인이 알아서 잘 갈아서 쓰실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다.” “누구든지 어리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를 어린이라고 판단하지 말고, 어린이와 같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가 되라고 하신다.

– 잘 못듣고 말도 잘 못하고 잘 못보는 나를 엠으로 사용하신 분은 주님이셨다. 들을 것 듣게 하시고 말할 것을 말하게 하시고 봐야 할 것을 보게 하신 분이 주님이셨다. 오히려 어리니깐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아직도 나에게는 쇠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다. 아직도 제 잘난맛에 살려는 나를 심심치 않게 발견하고 놀라곤 한다.

디도서 3:8-15

디도서 3:8-15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 곧 상속자가 되었다는 말이 참되다고 (믿을만 하다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디도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됨을 힘있게 주장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선한 일에 전념하도록 권면하라고 당부한다. 선한 일은 아름답고 사람에게 유익하다. 아름답다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다는 뜻이요, 사람에게 유익하다는 것은 경건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었다면 어리석은 논쟁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관한 싸움을 피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유익이 없고 헛될 뿐이다. 유익이 없다고 했으니 경건하지 않다는 뜻이다. 경건하지 않으니 헛되다. 바울은 분파를 일으키는 사람을 타이르고, 타일러서도 말을 안들으면 물리치라고 당부한다. 분파를 일으키는 사람은 옆길로 빠져버린 사람이다. 좌로나 우로 치우친 사람이다. 스스로 표적에서 벗어낫으니 스스로 죄를 지은 것이다.
바울은 아데마나 두기고를 디도에게 보내면 속히 니고볼리로 자신을 찾아오라고 디도에게 전한다. 바울은 거기서 겨울을 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한다. 바울은 율법교사인 세나와 아볼로를 (자기에게) 보내주고 그들의 부족을 채우라고 부탁한다. 그들의 부족을 채우는 것이야 말로 교우들이 (형제자매의)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는 좋은 일에 전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다. 좋은 일, 곧 선한 일에 전념하는 것이 열매를 맺는 것이다. 좋은 일에 전념하지 못하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바울과 함께 한 모든 사람이 디도에게 문안한다. 믿음 안에서 형제자매 된 모든 사람에게도 문안한다.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바란다.

//참된 것이 미쁜 것이요 선한 일이 좋은 일이다. 참되고 선한 일이 아름답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고) 유익하다 (사람에게 경건을 가져다 준다.) 교우들이 미쁘고 선한 일에 전념하도록 권면하라고 바울은 디도에게 당부한다. 이것이 복음에 합당한 삶이다. 반면 전통과 관습에 관한 싸움은 피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헛되고 무익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경건에 백해무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표적에서 벗어나 옆길로 빠지면 그것이 곧 죄라고 가르친다. //좋은 일이 선한 일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좋은 일에 전념하는 것이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말한다. 좋은 일에 전념하면 열매를 맺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념하는 것 자체가 열매라고 말하는 것이다. 곧 순종의 삶이 성도의 열매다. 진행형이다. 좋은 일에 전념(충성)하지 못하면 당근 (지금) 열매가 없으니 열매를 맺지 못한다. //율법에 관한 싸움을 피해야 하지만 율법이 나쁜 것은 아니다. 바울이 율법교사인 세나와 아볼로를 보내달라고 하지 않는가? 율법에 대해서도 바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좋은 일에 전념하겠습니다.

디도서 3:1-7

디도서 3:1-7

바울은 디도에게 신도를 일깨워서 통치자와 집권자에게 복종/순종하며, 또 선한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라고 당부한다. 성도는 서로 비방하지 말아야 하며, 다투지 말아야 하며, 대신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야 한다.
바울은 전에는 우리도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서로 미워하던 자였으나,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그의 자비와 사랑하심으로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중생, 곧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셨다고 선언한다. 이것이 구원이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서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의 종노릇하는 자로 살아야 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권세에 복종하고 순종하며, 선한 일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로마서를 읽으면서 권세를 오늘날에는 통치자 집권자라기보다는 준법정신이라고 적용했었다. 디도서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선한 일은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자로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선대하는 일이다. 이 선한 일을 할 줄 아는 힘은 성령으로부터 나온다.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신 성령이 아니고서는 선한 일을 할 수 없다. – 오늘도 말씀을 읽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시는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