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러미야 4:5-18

예러미야 4:5-18

유다에 재앙이 선포된다. 예루살렘이라고 피할 수 없다. 재앙의 때에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야 한다. 시온으로 가야 한다. 세계 만민을 멸망시키는 자가 유다 재앙의 선봉에 섰다. 그는 유다 땅을 황무지로 만들고, 유다의 모든 성읍은 폐허가 되고 주민은 떠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의 맹렬한 진노에 탄식하며 애통해야 한다. 그날이 오면 왕이 용기를 잃고 지도자들이 낙담하고 제사장들이 당황하고 예언자들도 소스라치게 놀랄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신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주님의 백성에게 ‘예루살렘은 안전하다’ 하고 속이시곤 칼이 목에 닿게 하셨다고 말한다. 주님은 칼보다 훨씬 더 거센바람이 주의 명령에 따라 불어 닥칠 것이라고, 주님이 심판을 선언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유다는 이제 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님은 예루살렘에게 구원을 길을 알려주신다. 마음에서 악을 씻어 버리라고 하신다. 적군이 먼 땅에서 몰려와 유다를 에워싸고 예루살렘을 포위할 것이다. 예루살렘이 주님께 반역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의 길과 행실이 이런 재앙을 불러왔다고 말씀하신다. 죄악이 주는 아픔이 마음 속까지 파고 들었다.

//주님이 언제 예루살렘은 안전하다고 말씀하셨던가? 시온과 예루살렘은 주의 법과 주의 말씀의 상징인데…백성들이 주의 법과 주의 말씀을 떠났으니 지리적 예루살렘이 시온이 될 수 없다. 그러니 하나님이 ‘예루살렘은 안전하다’고 속이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잘못 믿은 것이다. 재앙의 때에는 여전히 견고한 성 예루살렘으로 , 시온으로 가야한다.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바로 그곳이 예루살렘이요 시온이다. – 우리가 피할 견고한 성, 곧 하나님나라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바로 그곳이 하나님나라다. 그러니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것이 곧 재앙이요, 불순종의 현장이 곧 지옥이다. //그래도 복음은 있다. 마음에서 악을 씻어버리는 곳에 구원이 있다고 하신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욜2:13)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 위해서는 주님께 돌아가야 한다. 주의 법과 주의 말씀에게로 피해야 한다. 주의 법과 말씀이 있는 곳이 시온이다. 우리가 피할 견고한 성이다. 하나님나라다. 하나님만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한다.

예레미야 3:19-4:4

예레미야 3:19-4:4

하나님은 주의 백성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떠나가지 않도록 하나님의 자녀삼고 하나님의 상속자로 생가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주를 배신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를 배신한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을 잊어버린 그들이 주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주님께 돌아오면 변절자라고 하여도, 주님은 그들의 변절한 마음을 고쳐주실 것이다. 그러니 주님만을 하나님으로 모시라고 하신다. 제사가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못한다. 주의 백성의 구원은 오직 우리 하나님께 만 있다. 결국 주의 백성이 수치를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이 주 우리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주의 백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진심으로 돌아오고 속히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우상을 버리고, 두마음을 품지 않고 ‘주의 살아 계심을 두고’ 진리와 공평과 정의로 서약하라고 하신다. 주의 백성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돌아설 때, 세계만민이 주님을 찬양할 것이고 주님은 주의 백성에게 복을 베풀 것이다. 주님은 주의 백성에게 가시덤불 속에 씨를 뿌리지 말고 묵은 땅을 갈아 엎고서 씨를 뿌리라고 명령하신다. 육신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다. 진심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악한 행실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가 꺼지지 않는 불처럼 일어나서 우리를 불살라 버릴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 지은 죄는 불순종이다. 불순종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들, 곧 우상에 찌든 결과다. 하나님과 함께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있다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변절자라도 진심으로 주님께 돌아오면, 주님은 구원해 주신다. 주님께 돌아온 척만 하는 것은 변절자가 되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하셨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시도록 묵은 땅을 갈아 엎고 (전통과 관습에 따라 말씀을 읽지 말고), 성령께서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는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 신실해야 한다.

예레미야 3:1-18

예레미야 3:1-18

남편에게 버림받아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면, 그 여자는 본 남편에게로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다. 하물며 수많은 남자들과 음행을 행한 이스라엘이 어디로 돌아갈 수 있으랴! 문제는 이스라엘은 음행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것이다. 음행을 하고도 주님을 아버지라고 옛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뻔뻔함은 어디서 나왔을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끝없이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니시라고 말하며 온갖 악행을 마음껏 저질렀던 것이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음행이 근래이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그래도 언니 이스라엘이 이 모든 음행을 행한 다음에 주께로 돌아올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끝내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씀하신다. 동생 유다도 언니 이스라엘의 변절을 보았다. 그러나 유다도 두려운 줄도 모르고 언니를 따라 음행을 했다. 그것도 주님의 눈 앞에서. 유다도 이스라엘처럼 음행하는 것을 가볍게 생각했다. 심지어 유다는 주님께 돌아온 척만하고 진심으로 주님께 돌아오지 않았다.
주님은 배신이 신실하지 못함보다 낫다고 하신다.
주님은 주의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 하라고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다. 주의 백성이 (이미 망한 이스라엘이) 배신 했지만 자비를 베풀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니 (유다 에게도) 죄를 깨달으라고 하신다. 하나님 대신 다른 신들을 섬기며 하나님께 불순종했음을 깨달으라고 하신다. 깨달았으면 주께로 돌아오라고 하신다. 주님이 보호자가 되어주신다. 주님께 돌아오면 주님의 마음에 맞는 목자들을 세워 지식과 훈계로 양육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주 앞에 모이면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고집대로 살지 않고 유다와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어서, 포로 잡혀간 곳에서 나와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신다.

//진심으로 주께 돌아오라고 하신다. 배신이 불신실(불순종)보다 낫다고 하신다. (주께 돌아온 척만 하는 것이 배신보다 더 악함을 강조하신다.) 진심으로 주께 돌아오면,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맛보게 된다. 진심으로 주께 돌아왔다는 증거가 순종이다.

예레미야 2:29-37

예레미야 2:29-37

자기들만의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소위 주의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께 따질 수 있으랴. 그들은 주님을 배신한 자들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신다. 주님은 사랑의 회초리를 드셨지만 헛수고였다고 하신다. 오히려 옳게 가르치려고 보내신 주님의 예언자들도 그들은 죽여버렸다. 주님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주님의 말씀을 명심하여 들으라고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주께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주의 백성이 주님을 잊은지 오래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주의 백성이 어느새 음행에 도사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죽이고서도 아무런 죄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두 주인을 섬기는 그들이 앗시리아에 도움을 청해도, 이집트에 도움을 청해도 수치를 당할 것이라 말씀하신다. 주님의 버림을 받았으니 앗시리아와 이집트를 의지한들 형통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께 돌아가지 않는 사람에게 돌아올 것은 수치뿐이다. 이것이 복음이 되는 이유는 주님을 배신했고, 주님의 예언자를 죽였고, 주님께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고,주님을 잊은지 오래되었고, 음행에 찌들었고, 가난한 자들을 죽였어도, 주님께 돌아가기만 한다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예레미야를 통해 회개를 촉구하신다. 끝내 주님께 돌아가지 않는다면 심판을 피할 수 없고, 그 결국은 수치를 당하는 것이다. – 수치 중의 수치는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갔을 때, 주님으로부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라는 선고를 받는 것이리라.

예레미야 2:20-28

예레미야 2:20-28

이스라엘 자손들은 주님이라는 멍에를 부러뜨리고 주님과의 관계를 모두 끊어버리면서 ‘나는 신(하나님)을 섬기지 않겠다’고 큰 소리 쳤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신(하나님)들을 섬기는 음행을 저질렀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사람으로 바뀐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더러워진 몸은 우리 스스로는 아무리 씻어도 씻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남아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핑계할 수 없다. 자신들의 행실을 돌아보면 온통 음행뿐이다. 그들은 대놓고 이방 신들을 쫓아다녔다. 그 결과 붙잡혀 온 도둑과 같이, 음행한 이스라엘은 왕으로부터 제사장과 예언자들과 온 백성까지 수치를 당하였다. 목석의 우상을 보고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면서도, 하나님께는 등을 돌렸다. 환난을 당할 때만 하나님께 구해 달라고 부르짖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섬기는 신(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신다. 환난을 당할 때 너희가 좋아 하는 이방 신들이 일어나서 너를 도와주어야 옳지 않겠느냐? 반문하신다. 주님은 유다에게 너는네 성읍의 수만큼 많은 신(하나님)들을 만들어 놓았다고 일침을 놓으신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주님의 멍에를 부러뜨리고 주님과의 관계를 모두 끊어버렸다. 주님의 멍에 대신, 이방 신(하나님)들의 멍에가 가벼울까 쫓아 다녔다. 아버지 하나님 대신 목석의 우상을 부모로 섬겼다. 주님은 벌을 받아야 주님을 버린 것과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악하고 고통스러운지 깨닫게 될 것이라고(19절) 말씀하셨다. 이렇게 환난은 하나님을 향하게 한다. 그러나 얼굴만 돌려서는 안 된다. 몸이 주님을 향해야 하고, 발걸음이 주님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이방 신들을 향해 버선발로 쫓아나가고, 우상들에게 갈급해 하는, 너도 나도 자기만의 신(하나님)들을 만들어 섬기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생명이 없는 피조된 목석의 우상에게서 도움도 안식도 얻을 수 없음은 자명하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리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쉴 곳은 주님 한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