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6:1-15

예레미야 6:1-15

지리적 예루살렘은 결코 피난처가 될 수 없다. 시온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보내신 재앙이 예루살렘으로 밀려온다. 만군의 주 하나님이 적군에게 이미 예루살렘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하셨다. 예루살렘이 심판을 받아야 할 이유로 도성 안에서 탄압이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이 죄악을 솟구쳐 내고 있다고 하신다. 외환이 문제가 아니라 내우가 문제다. 폭행과 파괴의 소리만 들리고 병들고 상처 입은 사람들 뿐이라고 하신다. 외환은 이런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다. 그런데도 예루살렘이 외환을 하나님의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이 예루살렘에게서 떠나갈 것이라고 하신다. 결국 예루살렘은 황무지가 된다. 만군의 주님이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보내신 적군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샅샅이 뒤져서 포로로 끌고 갈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을 구하라고 하신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말을 누가 듣겠느냐고 주님께 아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하면 그들이 오히려 자신을 비웃기만 할 것이라고 주님께 말한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사람들이 되었다. 예루살렘 거민들을 향하신 주님의 진노가 예레미야 속에서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말한다. 주님은 속앓이만 하지말고 진노를 길거리에 쏟으라고 하신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신다. 거할 곳도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신다. 힘 있는 자든 힘 없는 자든, 모두가 자기 잇속 채우기에만 급급한 사회, 사기를 쳐서 부를 축적하는 사회, 백성을 속이는 지도층. 이들은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고 말하지만 평안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하나님 보시기에 역겨운 일을 하고도 부끄러운줄 모르는 백성들. 그들의 결국은 죽음이다. 주님이 벌을 내릴 때 그들은 모두 쓰러져 죽을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이 재앙을 자초했다. 시온은 외환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아니라 먼저 내우를 깨달아야 했다. 외환은 내우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이자 벌이다. 사랑없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그 결국은 사망이다. 역으로 생명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도 외환을 걱정하기보다 먼저 내우를 돌아봐야 한다. 호우시절이 지났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해야 한다. 모두가 자기 잇속 채우기에만 급급한 사회에 하나님이 보내시는 경고의 소리를 들어야 할 때다. –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나눠야 한다.

예레미야 5:20-31

예레미야 5:20-31

주님은 끊임없이 말씀하신다. 주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순종하지 않는 어리석은 주의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을 청종 (듣고 따르라고) 하라고, 잘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을 경외하라고 말씀하신다.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도 주의 백성은 목이 곧아 고집이 세고 반역하는 백성이요, 주님에게서 돌어서서 멀리 떠나고 말았다고 하신다. 소위 주의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진심으로 (마음속으로) 주님을 경외한 적이 없었다고 하신다. 경외한 적이 없으니 은혜에 감사할 수도 없다. 죄악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한다. 온갖 범죄가 좋은 (선한) 것들을 가로막는다. 다른 사람을 속여서 부를 쌓는 사람들, 세도를 부리는 사람들, 자신들은 피둥피둥 살이 찌고 살에서 윤기가 돌지만 악행하는 자들, 자기들의 잇속만 채우는 사람들, 고아와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지켜주지 않는 사람들.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벌하신다. 그들이 행한대로 갚아주신다. 이것이 지금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놀랍고도 끔찍한 일들이라고 하신다. 심지어 예언자들이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거짓 예언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니, 일반 백성들은 지도자들을 맹목적으로 따른다. 이런 사람들이 마지막 때에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어리석고 깨달을 줄 모르는 백성. 눈이 있어도 볼 수 없고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는 백성. 그러니 주가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없게 된 백성. 우상을 섬기더니 우상처럼 되어버린 백성. 결국 생명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과 올바른 교제가 없으면 죽은 것이다. 죽은 자들이 어찌 주님을 경외할 수 있을까? //주님을 경외하지 않는 주의 백성들, 심지어 예언자들이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거짓 예언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니, 일반 백성들은 지도자들을 맹목적으로 따른다. 지금도 예레미야의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가 행한대로 갚으시는 분이시라는 것도 변함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순종이 없으면 생명 없는 우상과 다를 것이 없다. //그래도 주님은 말씀하신다. 마지막 순간까지 말씀하신다. 주님을 경외하여 주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남은 자들이 있기에. 한 명이라도 더 주님께 돌아오기를 바라시기에. – 주님을 경외하여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루하루를 허락하소서.

예레미야 5:10-19

예레미야 5:10-19

주님이 이스라엘 대적들을 불러 주님의 포도원을 직접 망쳐 놓으라고 명하신다. 그러나 전멸시키지는 말고 가지만 잘라버리라고 하신다. 가지는 더 이상 주의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순종이 없는 이스라엘 유다가 완전히 배신했다고 주님이 말씀하신다. 주님이 재앙을 선포하시는데, 주님이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런 재앙도 덮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예언자들의 허풍에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을 부인하고야 만다. 이런 백성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잘라버리신다. 예수께서는 주님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쓸모 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고, 사람들은 버림 받아 말라 버린 가지를 모아다가 불에 던져 태워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예례미야에게 불순종의 백성이 장작이 되어 땔감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반복해서 이방 민족을 데려다가 이스라엘을 치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강한 이방 민족이 이스라엘이 의지하고 있는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주님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겠다고 약속하신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벌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이 약속의 땅에서 주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기 때문이다. 주님은 이런 불순종의 백성이 남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그들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전멸은 면했지만 이방 땅에서 종살이 하게 될 것이다.

//전멸 시키지는 말아라. 그러나 불순종의 댓가는치러야 한다. 쓸모없는 가지는 하나님께서 잘라버리신다. 그러니 쓸모있는 가지가 되어야 살아 남는다. 어떤 가지가 잘리지 않을 가지인가? 열매를 맺는 가지다. 순종의 가지다. 순종을 행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주님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쓸모 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는 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순종이란 주님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곧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이고, 예수께서는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과 동일시 하셨다. 곧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물러 있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어야 한다. 이것이 전멸당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예수 안에 거하는 것. 임마누엘! – 가지로 남아 있으려는 행위가 아니라 나무와 하나가 되려는 순종이야 말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임마누엘은 주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고 순종하는 것이다. 이게 사는 것이다. 영생을 누리는 길이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한다.

예레미야 5:1-9

예레미야 5:1-9

‘너희가 그곳에서 바르게 일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을 하나라도 찾는다면 내가 이 도성을 용서하겠다.’ 역설적이게도 한 명도 없다는 말이다. 분명히 주님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고 주님을 섬긴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들의 삶은 말하는 것과 다르다고 일침한다. 주님께서 찾는 것은 진실이다. 주님께서 회초리를 들어도 정신을 차리지 않고, 주님이 멸망시킨다고 경고하시는데도 교훈을 받지 않는데, 아니 주님께 돌아오기를 거절하는 그들에게서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
예레미야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주님의 길도 모르고 하나님의 법도 몰라 어리석게 행동할까 하여, 부유하고 배운사람들에게가서 주님의 말씀을 전했으나 그들도 마찬가지로 주님의 멍에를 부러뜨리고 결박한 끈을 끊어버렸다. 그 결국은 맹수의 먹잇감이 될 뿐이다. 하나님을 배반한 죄가 아주 크고 매우 크다. 이런 예루살렘이 용서 받을 수 있으랴! 하나님을 떠나서 신도 아닌 우상들에게 맹세하고 우상들을 섬기는 그들이 용서받을 수 있을까? 먹을 것을 주시는 주님을 떠나 음행을 하고 이웃의 아내를 탐내는 일을 주님께서 벌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신다. 주님은 이들을 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신다.

//제 멋대로 주님을 섬기는 사람은 많다. ‘OMG!’을 입에 담고 살아도, ‘Jesus Christ’를 내뱉어도 그들의 마음에 주님이 없다. 그들이 말하는 것과 삶이 다르다. 주님께서 찾는 것은 진실이라고 말씀하신다. 바르게 일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 곧 주님이 찾는 사람이다. 한 사람 예레미야가 있지만,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한 명 더 찾으라 했으나 찾지 못했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 중에서도, 부유하고 배웠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없었다. ㅠ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주님은 죄가 있는 곳에 함께 거하시지 않으신다. 용서를 구하러 나오는 사람들에게 함께 하신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결박당한 삶. 이런 삶을 함께할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찾아 합심해서 죄를 돌이켜야 한다. 합심해서 구해야 할 것은 죄의 문제다. 주님 앞에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설대 에쎕씨 동문모임! 주님의 회초리에 정신을 차리고 주님의 경고에 교훈을 받는 자리가 되고, 우리들의 죄를 용서받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 설대에쎕씨가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뭐 자랑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반가운 얼굴들이 벌써 그립다.

예레미야 4:19-31

예레미야 4:19-31

전쟁의 함성이 들려온다. 그러나 패전을 전해야 하니 애가 끊을 수 밖에 없다. 재난에 재난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설상가상이다. 온 나라가 황무지가 된다. 머물곳이 없다. 전쟁이 언제 끝날 것인가? 주의 백성이 주님을 모르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들은 악한 일을 하는 데는 슬기로우면서 좋은(선한) 일을 할 줄 모른다. 사면초가다. 하늘에도 빛이 전혀보이지 않는다. 산을 향해 눈을 들어도 무슨 도움이 오겠는가. 모든 성읍이 주님 앞에서 무너졌다. 그러나 주님은 온 땅을 황폐하게 하여도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겠다고 하신다. 그래도 유다와 예루살렘을 벌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취소하지는 않으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신 것이 절망이라면, 완전히 멸망 당하지 않는 다는 것은 한줄기 희망이다. 결국 성읍에는 주민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예루살렘은 정신을 못차리고 잔뜩 치장을 하고 도와줄 연인을 찾는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연인이라고 생각했던 나라들은 예루살렘을 경멸하고 오히려 죽이려고 할 것이다. 주님은 예루살렘이, 시온이 망하면서 내는 신음 소리를 이미 들었다고 하신다.

//주의 백성이 주님을 모르는 아이러니! 재난이 설상가상으로 일어나는 이유다. 악한 일을 하는 데는 슬기로우면서 좋은 일을 할 줄 모르니 어쩌랴! 예레미야는 깊른 시름에 애가 끊어질듯 아파한다. 좋은 일은 선한 일이다. 주의 백성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해야 하지 않나? ㅠㅠ 선한 데 지혜롭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말이다. //시인의 노래처럼, 도움을 구하려 산을 향해 눈을 들어봤자 소용이 없다.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화친을 시도해도 소용이 없다. 불순종의 예루살렘을 벌하시려는 주님의 마음은 취소되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완전히 멸망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한줄기 소망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의 신음을 들으신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돌아가는 자가 남은 자다. – 하나님을 향해 신음하라. 그래야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