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0:22-34

열왕기상 20:22-34

그 예언자는 다시 이스라엘 왕에게 와서 내년에 시리아 임금이 다시 쳐들어 올 테니 힘을 키우고, 앞으로의 일에 대비하라고 말했다. 한편 시리아 군부는 자신들의 패전이 이스라엘의 신이 산의 신인데 산에서 싸웠기때문에 졌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평지에서 싸우면 승산이 있다고 벤하닷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연합군으로 불렀던 32명의 영주들 대신 군사령관들로 연합군을 꾸리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첫 전투에서 잃은 병마를 보충해서 다시 싸운다면 이길 것이라고 단정했다. 이렇게 준비한 시리아가 다시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다. 이번에도 시리아가 숫적으로 크게 우세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와서 시리아 대군을 이스라엘 왕의 손에 내주겠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왕에게 하나님이 ‘주’되심을 알라고 말했다.

두번째 전쟁에서도 이스라엘이 이겼다. 시리아 십만 대군을 하루만에 무찌를 정도였다. 그러자 벤하닷은 도망쳤다. 벤하닷은 아백성으로 도망쳐, 어느 골방에 숨었다. 벤하닷의 신하들은 이스라엘의 왕들은 인정이 많으니 지금 항복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벤하닷의 신하들은 이스라엘의 왕에게 나아가 벤하닷은 이스라엘 왕의 종이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사관은 이제부터는 이스라엘 왕이 아닌, 아합의 반응을 기록한다. “아직도 그가 살아 있느냐? 그는 나의 아우다.” 벤하닷의 신하들은 옳다구나하며 벤하닷은 아합의 아우라고 맞장구쳤다. 그들이 벤하닷을 아합 왕에게 데려오니 아합은 벤하닷을 자기 병거에 태웠다. 벤하닷은 시리아가 빼앗은 이스라엘의 성들을 다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다마스쿠스에 이스라엘과의 무역광장을 만들라고 말했다. 아합은 벤하닷의 항복조건에 만족하여 조약을 맺고 벤하닷을 풀어주었다. (사관은 벤하닷을 돌려보내 것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아합임을 분명히 한다.)

https://quietwaters.blog/2017/06/23/

그선지자는 일차전을 크게 아긴 아합왕에게 이차전을 대비하라고 예언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차전을 대패하고 돌아간 아람왕의 신하들은 새로운 전략전술을 벤하닷에게 제시하였다. 첫번째는 운동장 사정이 좋아야 하니 경기장을 바꾸라는 것이고 두번째는 삼십이명이나 되는 부감독직을 폐지하고 실전 경험이 있는 코치만 두어 감독의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세번째는 일차전에 잃은 선수를 대신해서 새로운 선수를 보강하라고 하였다.

해가 바뀌어 벤하닷은 이차전을 시작했다. 일차전과 마찬가지로 수적으로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우세했고 경기장 상황도 울툴불퉁하지 않고 평평했다. 아합왕은 일차전 시작과 마찬가지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총감독은 선지자를 통해 아합왕에게 일차전 결과를 상기시켰다. 승패는 전력이나 전술, 운동장 상황이 아니라 총감독이신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이번 승리로 제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라고 말했다. 시합은 며칠 동안 소강상태였으나 한순간에 승기가 이스라엘쪽으로 기울었다. 벤하닷은 우세한 전력을 가지고도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주전선수들도 후보도 차례로 쓰러졌다.

이제 한 골이면 이스라엘의 승리는 뻔했다. 그때 벤하닷 수하의 코치들이 작전타임(삼세번)을 요청하라고 조언했다. (이스라엘 총감독 하나님은 세번째 도전을 받아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필드에 있던 아합왕은 아람왕이 애걸에 승리감에 도취되어 작전타임(삼세번)을 받아주었다. 이제 승부는 연장전(삼차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지나친 승리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잊게하고 스스로를 교만하게 만든다. 모사재인이요 성사재천이다. 눈에 보이는 상황을 따르기보다, 인생의 총감독이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열왕기상 20:13-21

열왕기상 20:13-21

벤하닷이 이끄는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전쟁. 이스라엘의 대장은 아합이 아니라 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한 예언자를 이스라엘 진영에 보내셔서 진두지휘 하신다. 예언자는 시리아 연합군이 숫적으로는 절대적으로 우세하지만 이스라엘 손에넘겨 주실 것이라고 하신다. 아합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주이심을 알게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아합이 누가 앞장서 싸울지 묻자, 지방 장관의 젊은 부하들을 앞세우라고 하셨다. 총지휘는 누가 하느냐고 묻자 아합에게 지휘권을 주셨다. 젊은 지방장관의 부하들은 232명이었다. 이스라엘 군병의 수는 모두 칠천 명이었다. (우연일까?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사람의 수와 같다.)

술취한 벤하닷이 이끄는 시리아 대군은 이스라엘 젊은 부하들의 기습선제공격에 무너졌다. 벤하닷은 기병들과 함께 말을 타고 도망했다. 이렇게 이스라엘 왕은 (사관은 의도적으로 아합의 이름 대신 이스라엘 왕이라고 적는다) 첫 싸움에서 시리아 군대를 크게 무찔렀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신다. 시리아의 대군도 하나님 앞에서는 힘을 쓸 수 없다. 하나님은 이름도 없는 한 예언자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 표면적으로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요 총지휘관이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실질적 왕이 하나님요, 하나님이 /주/이심을 아합이 알기를 원하셨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통해 아합이 주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시리아 대군을 향해 선제 기습공격을 한 젊은이들. 이들과 칠천명. 쉽지 않은 순종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라는 명령에 복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 있었기 때문에 앞장서서 싸웠을 것이다. 누가 총지휘관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를 위해 싸우냐가 중요하다. 이들은 이미 이스라엘의 하나님(신)이 ‘주’이심을 아는 사람들이다.

열왕기상 20:1-12

열왕기상 20:1-12

시리아 왕 벤하닷(하닷 신의 아들)이 (하닷 신을 섬기는) 영주 32명과 연합하여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고 공격했다. 벤하닷이 아합에게  사절을 보내 군신관계를 요구하고 은금과 볼모를 요구했다. 벤바알을 자처했던 아합이 벤하닷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벤하닷은 사절을 다시 보내 군신관계의 화친에서 만족할 수 없으며 내일 신하들을 보내 아합의 집을 탈취하겠다고 일방적인 말했다. 이에 아합은 원로들을 모아 회의했다. 아합은 항복하자고 말을 했으나 원로들과 백성들은 벤하닷의 요구를 듣지 말라고 간언했다. 아합은 벤하닷 사절단에게 왕비와 자녀들을 볼모로 내 줄 수는 있지만 은과 금까지 요구하는 것은 들어줄 수 없다고 대답했다. 사절단의 보고를 들은 벤하닷은 사마리아 성을 잿더미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은 어디서 생긴 담대함인지 참군인은 전쟁의 결과로 자랑하는 법이라고 대답했다. 승전을 당연시 하는 벤하닷은 술을 마시고 있다가 이스라엘 왕의 회신을 듣고 화가 치밀었다. 벤하닷은 바로 사마리아 성 공격에 나섰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전쟁의 승패는 벤하닷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구절에서 이미 예견할 수 있다.  벤하닷의 첫번째 사절단이 왔을 때, 모든 것을 주고서라도 화친을 맺으려고 했던 아합이 마지막에는 전쟁의 결과를 단정하지 말라고 벤하닷에게 회신한 부분이 놀랍다. 아합이 원로들과 미팅에서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들었기 때문일까?  //사관은 이제 아합을 개인 이름 대신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지칭한다. 벤하닷과 벤바알 아합의 전쟁이 아니라, 벤하닷 연합군과 이스라엘의 전쟁이다. 주님께서 이 전쟁에 관여하심을 암시한다. ////전쟁은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도 만약 전쟁이 숫자 놀음이라면 이미 끝이났을 것이다. 그러나 긴장감마저 없어진 우리 땅 한반도의 정전을 생각해도 전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하나님의 뜻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힘의 논리로는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서로간의 미움 다툼 시기 질투를 버려야 한다. 어쩌면 모든 전쟁에서 진정한 적은 상대방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는 미움 다툼 시기 질투가 아닐까 생각한다. – 주님 전쟁이 있는 곳에 평화를 주소서

https://quietwaters.blog/2017/06/20/

열왕기상 19:1-18

열왕기상 19:1-18

아합의 머리는 이세벨이다. 이세벨은 그냥 왕비가 아니라 어쩌면 바알과 아세라의 신전의 여제사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합의 보고를 들은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사람을 보내 다음날까지 사형을 집행하겠다고 언도한다. 이세벨은 엘리야를 사형에 처하지 않으면 자신이 신들에게 천벌을 달게 받겠다고, 천벌보다 더한 재앙이라도 받겠다고 맹세한다. 

사형통보를 받은 엘리야는 두려움에 그길로 줄행랑쳤다. 주님의 능력으로 아합보다 앞서 달렸던 늠름함은 어디로 갔나? 이세벨의 영향권을 벗어나기 위해 유다땅 브엘세바로 피신하여, 그곳에 시종도 남겨둔 채 광야로 숨어들었다. 하룻길 더 걸어 어떤 로뎀나무 아래로 가서 주님께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요청한다. 이세벨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주님께 목숨을 취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기진맥진해서 나무 아래 누워 잠이든 엘리야에게 주님의 천사가 엘리야를 깨우고 음식을 먹으라고 권했다. 엘리야의 머리맡에 갓 구워낸 과자와 물 한 병이 놓여있었다. 엘리야는 먹고 마신 뒤에 다시 잠이 들었다. 천사가 다시 엘리야를 깨운 뒤 일어나서 먹으라고 말했다. 갈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고 말했다. 엘리야는 일어나 먹고 마시고 힘을 얻어 사십 일을 더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 산에 도착했다. 

엘리야가 호렙산의 동굴에서 밤을 보낼 때, 주님이 말씀하셨다. 주님은 엘리야에게 여기서 뭐하고 있는지 물으셨다. 엘리야는 자신은 주님만 섬기는데,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의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고, 주님의 예언자들을 죽여서 이제 자기만 홀로 남았는데, 그들이 자기 목숨도 없애려고 한다고 (그래서 도망쳤다고)  대답했다. 주님은 엘리야에게 주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여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바람속에도 지진 속에도 불 속에도 계시지 않으셨다. 주님은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로 나타나셨다. 주님은 다시 한번 엘리야에게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으셨다. 엘리야는 자기 홀로 남았는데 그들이 자기 목숨마져도 없애려고 찾는다고 이전과 똑같이 대답했다.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다마스커스로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시리아의 왕으로 세우고,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고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후계자로 세우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하사엘의 칼을 피하면 예후의 칼에 죽임을 당하고, 예후의 칼을 피하면 엘리사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엘리사가 이들에게 실제로 기름을 부었다는 기록이 따라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들을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은 분명하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바알에게 입을 맞추지도 않은 칠천 명을 남겨 놓을 것이라고 하셨다. 

//주님은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로 엘리야에게 나타나셨다. 간단하게 말하면 주님의 말씀이면 족하다. 바람 지진 불과 같은 대자연을 압도하는 증거를 보여주시지 않아도 우리에게는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운 주님의 말씀이 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임마누엘의 증거가 어디 있으랴. 이 임마누엘을 누리는 사람이 칠천이나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칠천은 충분하고 완전한 수다. 하나님의 나라다. ////성도는 주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을 피해 달아나도, 사십일 금식을 한다해도 세상의 조류와 맞서면 탈진할 뿐이다. 주님은 세상과 맞서 싸울 힘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조류에도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을 주신다. 주님의 세세한 말씀으로 담대하라고 하신다. ////주님은 성도를 세밀한 말씀으로 먹이시고 마시게 하신다. 그릿 시냇물, 과부의 떡, 갓구운 과자와 물 한병. 이 모든 것은 주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주님의 말씀이 생명 양식이요 생수다. 주님은 엘리야의 목숨을 보존해 주시려고 (혹은 엘리야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말씀하시지 않으신다. 주님의 일을 위해 엘리야를 마지막까지 사용하신다. 주님의 세밀한 말씀으로.   

https://quietwaters.blog/2017/06/20/

열왕기상 18:30-46

열왕기상 18:30-46

한갓 우상인 바알이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대답도 아무런 기척도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엘리야의 차례다. 엘리야는 무너지 주님의 제단을 고쳐 쌓았다. 열두  지파의 수대로 열두개의 돌을 모아 제단을 다시 쌓았다. 그리고 제단 둘레에 충분히 넓은 도랑을 팠다. 그리고 제단 위에 나뭇단을 쌓고 그 위에  수소를 각을 떠서 올려놓았다. 그리고 제단 주위의 도랑이 가득차도록 제물 위에 물을 세차례나 쏟아 부었다.

엘리야는 제사를 드리기 전에 기도부터 했다. 주님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돌봐주신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께, 엘리야는 주님의 종이라고, 주님의 말씀대로 하는 종이라고 자신의 처지를 알렸다. 그리고 나서 백성들이 마음을 돌이켜 주님을 알수 있도록 응답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주님의 불이 떨어져서 제물과 나뭇단과 돌들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을 모두 말려버렸다. 온 백성이 이것을 보고 엘리야의 하나님이 주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다. 엘리야는 그길로  온 백성과 함께 바알의 예언자들을 사로잡아 기손 강 가로 내려가서 그들을 모두 죽였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빗소리가 크게 들리니 이제 올라가서 음식을 먹으라고 말했다.  아합은 엘리야의 말대로 (다시 갈멜산으로 )올라가서 음식을 먹었다. 그러나 비는 아직 내리지 않았다.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로 다시 올라가서 기도했다. 그리고 시종에게 바다쪽을 살펴보라고 했다. 시종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엘리야는 일곱번이나 시종에게 바다쪽을 살펴보게 했다. 일곱번째 드디어 시종이 사람의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떠올랐다고 보고했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비가 와서 길이 막히기 전에 내려가라고 전했다. 하늘은 이미 짙은 구름으로 캄캄해지고 바람이 일고 큰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아합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내려갔다. 그러나 주님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함께 하였기 때문에 엘리야가 아합을 앞질러 이스르엘 입구에 도착했다.

//엘리야는 빗소리를 먼저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비가 오는 것은 아니었다. 큰 빗소리를 미리 들었다는 것은 주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다. 환상 중에 될 일을 미리 들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주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여전히 기도해야 한다. 엘리야는 일곱번씩이나 (곧 전심으로) 기도한 후에도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을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엘리야가 비를 확신하기에 충분했다.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꾼다. 그래서 현실에서도 주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전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대충 살아서는 안 된다. 어쩌면 우리는 작고 미약한 하나님의 나라만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을 확신하기에 충분하다. ////단비가 퍼부어도 아합에게는 병거를 느리게 달리게 하는 걸림돌이 된다. 그러나 엘리야에게는 초인적인 힘을 공금하는 주님의 능력이 된다. 성령의 단비를 부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