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2:1-19

민수기 32:1-19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 가축의 떼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이 두 지파의 인구가 다른 지파에 비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두 지파를 합하여도 유다 지파 보다 만명도 더 많지 않다.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얻는 전리품 중 가축이 많았어도, 어차피 모든 지파가 골고루 분배 받았으니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의 가축의 떼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던 이유는 될 수 없다. 하여간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는 가축을 치기에 적당한 요단 동쪽에 머물고 싶다고 모세와 엘르에셀과 회중의 대표들에게 요청했다. 이 두지파에게 가축이 많았다기 보다는 이 두 지파에게 가축을 기르는 노하우가 있었다고 보는게 맞겠다. 요단 동쪽이 가축 기르기에 좋은 땅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는 것이 그 증거다.
모세의 첫 반응은 당연히 반대였다. 모세는 약속의 땅을 거부하는 두 지파에게 사십년 전의 일을 상기시킨다. 열 정탐꾼처럼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는 회중의 사기를 꺾는 행동이라고 책망했다. 그래서 주님의 진노로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떠돌게 되었다고 말했다. 모세는 이번에는 주님께서 더욱더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광야에서 멸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책임을 두 지파가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냥 물러날 두지파가 아니었다. 두 지파는 먼저 가축우리와 가족이 머물 성읍을 만든 후에 (부모세대가 희생해서라도 자녀들에게 좋은 땅을 물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가나안 땅 정복의 선발대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 받을 몫을 차지하기 전에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요단 강 서쪽에서는 땅을 재산으로 분배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요단 강 서쪽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면, 요단 강 동쪽은 푸른 초장이요 쉴만한 물가였나 보다. 특별히 낙농에 관심이 있었던 르우벤과 갓에게는 좋은 땅이었던 모양이다.
//르우벤 지파는 장자였으나, 장자권을 잃었다. 둘째 시므온 지파는 브올에서의 음행으로 작은 지파가 되었다. 세째 레위지파는 제사장 가문이 되었다. 그리고 네째 유다 지파가 지도권을 쥐었으니… 가나안에 들어가도 지도적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어머니 레아의 종 실바에게서 태어난 갓 자손과 함께 요단 동편에 남기를 시도했을지도 모르겠다.
//모세는 주님의 약속과 사십년 전을 들먹이며 협박조로 나가지만, 르우벤과 갓 지파도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협박이 통할리 없다. 자녀들에게는 더욱 그런 것 같다. 부모가 지는게 인지상정이 아니던가? 그러니 자녀들에게 처음부터 협박조로 나가지 말자.
//르우벤과 갓은 자녀들을 생각했을지 모른다. 주님의 약속보다 자녀들을 더 사랑했다고나 할까? 자기 시대를 희생하면서까지 자녀 세대에는 더 풍족히 살았으면 하고 바라지 않았을까? 그러나 자녀 세대의 풍족이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날 세상은 그렇게 가르치는 것 같다. 우리 성도는 달라야 한다. 당장 보이는 풍족함을 따르기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위해 동고동락해야 한다.

민수기 31:25-54

민수기 31:25-54

전리품 분배는 싸움에 나간 사람들이 절반, 그리고 진영에 머물렀던 회중이 절반을 나눠 갖는다. 싸움에 나간 사람들의 몫에서 1/500을 제사장 엘르아살의 가문에게로, 그리고 회중의 몫에서 1/50을 레위 자손의 몫으로 돌린다.
놀라운 것은 전쟁에 나간 이스라엘 군인은 한 명도 실종되지 않았다. 다친 군인은 있을지언정 전사자는 없었다는 의미다. 전쟁에 나갔던 지휘관들은 전리품 분배외에 전원 무사귀환에 감사하는 예물을 따로 드렸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그런데 자신들의 생명을 위하여 주님 앞에 속죄하려고 바쳤다고 하니, 이들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포로로 잡혀 온 여자들이 삼만 이천 명이나 되었다. 시므온 지파의 20세 이상 남자들보다 훨씬 많았다. 이들은 이스라엘 각 지파에 분배되어 그들의 종이 되었을 것이나, 이스라엘 남자와 결혼하여 회중의 일원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니 이스라엘 공동체는 단일 혈통이 아니다. 주님의 백성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다. 포로로 잡혀 왔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들에게 복이 되었다.
////나는 왜 헌물을 드리는가? 소득에 대한 감사인가? 건강에 대한 감사인가? 자녀에 대한 감사인가? 근본적으로 나의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민수기 31:1-24

민수기 31:1-24

모세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주님의 원수 미디안을 치는 것이었다. 주님은 브올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 여인들과 음행한 일로 이스라엘 자손 이만 사천 명을 벌하시고, 미디안을 치라고 명하셨는데, 이 일이 모세의 마지막 일이 되었다.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이 모세의 마지막 사명이라는 것이 뭔가 찜찜하다. 물론 직접 나아가 싸우지는 않았지만. 더군다나 미디안은 모세의 처가 민족이 아닌가? 미디안 광야에 도망쳐 있을 때 모세를 부르신 주님이, 이제 미디안을 진멸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어도 순종해야 한다. 모세는 군소리가 없었다. 마지막까지 주어진 일이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
미디안을 치는 일에는 각 지파에서 천명씩 차출되었다. 지파의 크기 와 상관이 없었다. 모든 지파가 같은 몫을 내고 참여하였다. 전쟁은 브올에서 시므이와 미디안 여자를 창으로 찔러 죽인 제사장 비느하스가 맡았다. 미디안을 치는 일이 여느 전쟁과 달리 종교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비와 긍휼과는 거리가 먼 미디안을 진멸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성경은 거듭 미디안을 주님의 원수라고 부른다. 주님의 원수라는 설정을 하면 자비와 긍휼을 포기해도 되는 것일까?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주님은 음행을 가증히 여기신다.
주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비느하스가 이끈 이스라엘 군인들은 미디안 남자들을 전멸시켰다. 전장에 나온 군인뿐만 아니라 미디안 다섯 왕족을 다 죽였다. 브올의 아들 발람도 칼로 쳐 죽였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미디안 성읍들을 불살라 버리고 미디안 여인들과 아이들을 사로잡아 가축과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왔다. //주님의 천사의 칼을 비할 수 있었던 발람이었지만 비느하스가 이끈 이스라엘 군대의 칼을 피하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 대신, 미디안 다섯 왕족들 편에 섰던 것이다. 미디안 다섯 왕족들이야 발락의 길을 따랐을 것이고, 발람은 결국 다섯배의 물질에 넘어갔다고 할 수 있겠다. 발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지식이 있었지만, 지식만으로는 결코 생명을 살 수 없음을 교훈한다.
모세와 엘르아살이 승전군을 맞았다. 모세는 전리품에 아이들과 여인들이 포함된 것을 꾸짖었다. 미디안 여인들이야 말로 염병의 주범이었다고 말한다. 모세는 아이들 중 남자와 사내를 경험한 여자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했다. 처녀들만 살려주었다. //또한번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지 묻게 된다. 사내 아이들에게는 웬 날벼락인가? 이들도 전쟁고아와 과부들이 아닌가? 사사기 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악을 행하자 하나님께서는 일곱해 동안 이스라엘 백성를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셨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 명령은 온전히 실행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평생 해결해야 할 숙제다.
모세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사들이라고 하여도 시체와 접촉하여 부정하니 일주일 동안 진밖에 머물러 정결의식을 거행하라고 명했다. 정결의식에 관하여는 제사장 엘르아살이 주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시행하였다. //이스라엘 회중은 정결해야 한다. 정결은 주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다. 전장에서 시체를 만졌다고 부정해지는 것이나, 칠일동안 진밖에 머물러 정결의식을 거행한다고 다시 정결케 되는 것이나, 결코 육체적/물질적인 것이 아닐 것이다. 생과사, 곧 생명과 죽음이 함께 할 수 없음을, 하나님(생명)과 다른 신들(죽음)이 함께 할 수 없음을 상기시켜주는 법이다.

민수기 30:1-16

민수기 30:1-16

서원에 대한 주님의 명령이다. 남자는 서원을 어겨서는 안 된다. 어린 여자가 서원한 경우 아버지가 그 서약을 들었을 때 그 날로 말렸으면 무효가 된다. 결혼 여자가 서원한 경우 남편이 그 서약을 듣고 그 날로 말리면 무효가 된다. 다만 과부나 이혼 당한 여자가 서원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 다만 남편이 아내가 서원한 것을 안 그날이 아니라 며칠이 지난 후 서약을 파기한다면, 서원을 파기한 죄는 남편이 떠맡게 된다.

//아버지와 남편은 책임을 지는 자리다. 자녀를 두고 아내를 두었다고 큰 자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자녀와 아내에게 군림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성도라면 작은 자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도에게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신랑되신 성자 예수가 계시기 때문이다. 서원/서약의 유효는 삼위 하나님께 달렸다. 따라서 성도는 굳이 서원이나 서약을 할 필요가 없다. 대신 서원/서약할 일을 아버지 하나님과 남편 성자 예수께 묻고 그 뜻에 순종하면 된다. 삼위 하나님께 순종하면 삼위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 자녀에게도 아내에게도 삼위 하나님이 아버지와 남편이 되신다는 것을 명심한다. 내가 가족을 책임지겠다는 것은 교만이다. 하늘 아버지와 남편이 계시니 이 얼마나 감사한가!

민수기 29:12-40

민수기 29:12-40

일곱째 달 보름날에도 안식일처럼 지키고 이레 동안 주 앞에서 절기를 지켜야 한다. 초막절이다. 초막절 제물은 그 양이 다른 절기보다 풍성하다는 인상이다. 수송아지를 첫날 열세 마리부터 일곱째 날 일곱 마리까지 줄어드는 것이 인상적이다. 마치 하루 하루 죄가 씻겨나가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결코 완전히 씻겨나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매년 반복되어야 하나보다. //하나님 앞에서 속죄와 감사는 과유불급이 없다.

쉬어가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