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5:22-34

민수기 35:22-34

//도피성은 살인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보호하기 위함이고, 피해자의 친족이 함부로 보복살인을 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함이다. 살인으로 더럽혀진 땅은 살인자의 피 값으로만 깨끗해질 수 있다. 그러나 정당한 보복이라도 살인은 약속의 땅을 더럽히는 일이다. 가나안 땅이 약속의 땅이고, 거룩한 땅인 이유는 주님이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함께 머물러 계시기 때문인데(34절), 살인은, 땅에 피를 흘리는 일이요, 땅을 더럽히는 일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더러운 곳에 머무시지 않는다. 따라서 주께서 도피성을 지정하신 것은 피흘림을 (불필요한 살인을) 가능한한 줄이기 위해 제정된 규례라고 할 수 있겠다.
////성도는 우리 자신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도피성인 셈이다. 도피성에 피했으면 (죄사함을 받았으면) 도피성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는 나와서는 안 된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예수다. 예수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 그러니 우리는 영원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 그리스도 예수 밖에는 생명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https://quietwaters.blog/2017/08/24/

민수기 35:1-21

민수기 35:1-21

요단강 동편 모압 평지에서 주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다. 약속의 땅에서 땅을 분배 받지 못한 레위 자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유산으로 받은 땅에서 살 성읍과 주변의 목초지를 분배받게 하라고 하셨다. 곧 레위 자손은 이스라엘 각 지파 여러 성읍에서 살게 될 것이다. 총 마흔 여덟 성읍을 주라고 하셨다. 레위 자손이 분배 받은 성읍을 중심으로 성 밖 동서남북 이천자까지의 목초지도 레위 사람들에게 딸린 목초지라고 하셨다. 레위 자손이 배정 받은 성읍 중 여섯곳을 도피성으로 지정하라고 하셨다. 각 지파는 규모에 비례해서 레위 자손에게 성읍을 주어야 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여섯 도피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도피성은 실수로 사람을 죽게 한 자가 피할 성이다. 살인자가 재판을 받기 전에 사사로운 복수로 죽는 일이 없도록 도피성을 지정하셨다. 여섯 도피성을 요단 동쪽에 셋, 요단 서쪽 가나안 지역에 셋을 지정하셨다. 외국인이나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사는 본토인들 누구든지 실수로 사람을 죽인자는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고의로 살인한 자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친족이 보복살인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이 가지고 있는 땅을 떼어서, 그것을 레위 사람에게 줄 때에는, 각 지파들이 받은 몫의 비율대로 떼어 내도록 하여라. 많이 가진 지파에서는 많은 성읍을 떼어 내고, 적게 가진 지파에서는 적게 떼어 내어라. [민 35:8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받을 기업에서 레위인들에게 거주할 성읍과 성읍 주변의 초장을 주라고 하셨다. 많이 받은 지파는 많이 떼어서 주고, 적게 받은 지파는 적게 떼어서 주라는 공동체적 나눔을 명하셨다.  떼어 내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ㅠㅠ 다. 받은 것을 비교해도 ㅠㅠ 제곱이다. 내 떡이 작아지고 남의 떡이 커보인다. 그런데 촛점을 ‘주는 것’에 맞추면 풍성해 진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바울은 전한다. 주님이 언제 어디서 이 말씀을 하셨는지는 말해주지는 않지만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이라고 생각된다. // 레위인들이 받은 주변 초장의 용도는 단순히 가축을 보관하는 장소라기보다는 레위인들도 기본적인 생업을 해야 함을 뜻하지 않을까? 회막을 나르며 제사일을 돕던 레위인들의 직무는 가나안에 정착하면 많이 줄어들 것이다. 회막을 운반하는 일에서 찬양대의 일로 바뀌기도 하고…

//도피성은 요단 동쪽에도 세곳이 지정된다. – 요단 동쪽이나 가나안 땅이나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당연히 일정비율의 레위 자손도 요단 동쪽 성읍들을 배정받았을 것이다. //도피성은 이스라엘 자손뿐만 아니라, 외국인과 본토인들과 함께 거주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적용되었다. – 도피성은 주님의 백성만 누리는 특권이 아니다. //고의로 살인한 자에게는 보복살인을 할 수 있다. – 악을 악으로 갚아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마음에 두게 한다. 그리고 살인의 고의성 여부를 사람이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오직 주님만 아신다.

https://quietwaters.blog/2017/08/23/

민수기 33:50-34:29

민수기 33:50-34:29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하고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의 원주민을 다 몰아내고, 그들이 새긴 우상을 다 깨뜨리며 산당을 헐고 그 땅을 점령하여 거주하라고 명하신다.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소유로 등기이전 시키신 분이 주님이시라고 천명한다. 그리고 나서 가나안 땅을 제비뽑아 나누라고 하신다.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지 않으면 사는 동안 기존 세입자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아니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지 않으면,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기존 세입자와 같은 취급을 하시겠다 경고하신다. 주님은 모세에게 약속의 땅 지경을 분명하게 정해주신다. 이 경계 안의 땅을 요단 동편에서 땅을 분배받은 갓 자손, 르우벤 자손, 므낫세 자손의 절반을 제외한 아홉지파 반에게 분배하라고 하신다. 땅의 분배는 아론 이은 대제사장 엘르아살과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이 둘을 도와 땅을 분배할 각 지파의 지도자를 뽑아주셨다. 유다지파 갈렙의 이름이 가장 먼저 언급된다. 지도자의 이름은 제비뽑힌 순서대로 나열된 것 같다.

//약속의 땅 가나안은 거룩한 땅이 아니다. 거룩하게 해야 할 땅이다. 이전 세입자의 흔적을 지워햐 할 땅이다. 마치 야곱의 가족들이 기근을 피해 요셉 있는 이집트에 갔을 때처럼, 이전 세입자들의 도움을 받으면 새로운 땅에 거주하는데 더 편할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단호하게 명령하신다. 그들과 섞이면 그들처럼 대하겠다고 하신다. 결국 그들처럼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시는 것이다. //약속의 땅은 모호한 경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주님은 분명하게 동서남북 사방의 경계를 정해주셨다. 두지파 반에게 분배한 요단 동편 땅은 포함되지 않았다. 구약시대에는 지리적 약속의 땅이 주님의 백성이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정해진 곳이 따로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성도가 거주하는 곳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곳이다. //땅의 분배는 차세대 지도자들에게 주어졌다. 내 때에 모든 것을 마무리하려고 무리할 필요가 없다. 주님께서 대를 잇게 하신다. 아론에게서 엘르아살로, 모세에게서 여호수아로 믿음의 대를 잇게 하신다. 유독 유다지파만 여전히 갈렙이 지도자로 이름을 올렸다. 유다지파에서는 갈렙보다 약속의 땅을 더 잘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까? 오히려 주님은 차세대 지도자를 나이로 결정하지 않으셨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민수기 33:1-49

민수기 33:1-49

모세는 주님의 명에 따라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에서 머물렀는지 기록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난, 곧 첫번째 유월절 다음날 부터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던 곳을 기록했다.
[라암셋-숙곳-에담-(비하히롯- 바알스본)-믹돌부근- 바닷길-마라-엘림-홍해부근-신광야-돕가-알루스-르비딤-시내광야-기브롯핫다아와-하세롯-릿마-림몬베레스-립나-릿사-그헬라다-세셀 산-하라다-막헬롯-다핫-데라-밋가-하스모나-모세롯-브네야아간-홀하깃갓-욧바다-아브로나-에시온게벨-신광야의 가데스-에돔땅 국경 호르 산]
호르산에서 제사장 아론이 죽었다. 그 때는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지 사십년 되던 해 다섯째 달 초하루였다.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을 때의 나이는 백이십삼세였다.
[호르산-살모나-부논-오봇-모압국경지대 이예아바림-디본갓-알몬디블라다임-느보 앞 아바림 산-(벳여시못에서부터 아벨싯딤까지)여리고 부근 모압평지]

//친숙한 지명도 있고, 여전히 낯선 지명도 있다. 가나안 1세대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후 몇 세대까지는 지명만 들어도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줄줄이 꿰고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모세가 광야일지를 작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성막이후 광야에서 이스라엘 진영이 구름기둥을 보고 진을 치거나 행군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호르산까지 진을 친 곳이 스무 곳정도 되니, 한 곳에 평균 2년 정도 머물렀다는 계산이 나온다. 광야라도 안주하고 싶은 곳이 있었을 것이고, 때론 빨리 떠나고 싶은 곳도 있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형편의 주인이 되어 주셨다. 같은 길을 걸었어도 불순종의 세대에게는 죽음의 길이었고, 순종의 사람들에게는 소망의 길이었다. – 이 땅의 길도 마찬가지다. 죽음의 길을 걸을 것인가? 순종함으로 소망의 길을 걸으라고 하신다.

민수기 32:20-42

민수기 32:20-42

모세는 르우벤과 갓 지파 사람들에게 그들의 약속대로 무장을 하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이 정복될 때까지 주님과 이스라엘에 대한 의무를 다한다면 요단 동편의 땅이 주님 앞에서 르우벤과 갓지파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약속대로 하지 않으면 주님께 죄를 짓는 것이며,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모세는 르우벤과 갓 지파에게 가족들을 보호할 성을 쌓고, 가축을 가둘 우리를 만들고 약속대로 실행하라고 말했다.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은 모세에게, 모세의 명령을 따르겠다고 대답했다. 가족들과 가축 떼는 길르앗 여러 성읍에 남고, 남자들은 무장하고 요단강을 건너가 주님 앞에서 싸우겠다고 약속을 했다. 모세는 제자장 엘르아살과 후계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각 지파의 지도자들에게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무장을 하고 요단강을 건너가 주님 앞에서 싸우면, 약속의 땅이 정복되는 날, 길르앗 땅을 그들의 소유로 주라고 명령했다.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은 모세의 명령대로 하겠다고 다시 약속했다. 무자을 하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가서 함께 싸우겠지만 요단강 동쪽에서만 땅을 차지하겠다고 말했다.
므낫세 자손의 절반도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과 함께 하기로 했다. 모세는 이들에게 아모리 시혼 왕국과 바산의 옥 왕국을 주었다. 므낫세 자손은 길르앗에 있던 아모리 사람을 포로로 잡기도 하고 내쫓아 버리고 그 땅을 차지하고 정착했다.

//요단 동쪽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자손 절반에게 분배되었다. 지금까지의 흐름과 다르게 모세는 요단 동편의 분배에 관하여 일절 주님께 묻지 않았다. 요단 동편의 분배는 모세의 명령이라고 강조된다. 더 이상 주님께 묻지 않아도 될만큼 모세는 주님의 뜻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므라바 사건에서 보았듯이 아무리 모세라 하여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할 만큼 믿음이 없기도 하지 않았던가? 한편으로는 그 사건 이후 모세는 주님의 자비와 긍휼에 눈을 뜬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의 절반에게 요단 동편의 땅을 분배함으로 그들의 원망과 불평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오히려 가나안 정복의 선봉꾼을 얻음으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결속을 가져왔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모세의 결정은 여전히 아쉬움을 남긴다. 성경은 어느새 르우벤과 갓 지파를 언급하는 순서를 바꿨다. 갓 자손을 먼저 언급한다. 요단 동쪽에 남자고 적극적으로 주도한 지파가 갓 자손이라는 암시일까? 하여간 두 지파는 요단 동쪽에서만 땅을 차지하겠다고 마지막까지 맹세했다. 모세가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각 지파의 지도자들에게 명령을 내릴 때, 갓 가손과 르우벤 자손이 무장을 하고 요단 강을 건너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서 함께 재산을 받게 하라고 명령했음에도 약속의 땅에 대해서 조금의 미련도 갖지 않았다. –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싸움의 수고를 하면서까지 자녀 세대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보다 현세의 평안을 주고자 내린 부모세대의 결정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아쉽다.
//므낫세 자손의 절반이 갓과 르우벤 자손들의 길을 따른다. 마길과 야일이 요단 동편에서 길르앗을 쳐서 빼앗고 아모리 사람을 쫓아내고 모세로부터 그 땅에 거주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주님께 허락받지 않은 싸움으로 땅을 차지했는데, 과연 옳은 방법인지 또 물음표를 붙여본다. –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보다, 이 땅에서의 평안을 위해 싸우는 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일까?

https://quietwaters.blog/2017/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