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3:1-20

민수기 13:1-20

주님은 모세에게 지파마다 한 사람씩 선정하여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보내라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주님의 분부대로 바란 광야에서 열둘을 파견했다. 이 열둘은 각 지파의 지도자였다. 예로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모세의 후계자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던 눈의 아들 호세아가 파송되었다. 모세는 호세아를 여호수아라고 불렀다고 호세아와 여호수아가 동일인물임을 확실히 기록한다.
모세는 열둘을 보내면서 가나안 땅 구석구석을 잘 살펴보고 오라고 말했다. 어떤 백성이 사는지, 얼마나 사는지 살펴보라고 했다. 그리고 어떤 땅인지, 기름진 땅인지 메마른 땅인지, 민둥산지인지 아닌지 살펴보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담대하게 행동하고, 그 땅의 과일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열둘을 보낼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무렵이었다.

//약속의 땅을 굳이 정탐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부동산 계약으로 말하자면, 이미 잔금까지 다 치른 집을 살펴보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래서 (주인처럼?) 담대하게 행동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번 정탐은 보지도 않고 계약한 집에 들어가기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방배정은 어떻게 할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집주변 환경도 미리 알아두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각 지파의 지도자급을 파견했다. 이사가서 서로 큰방을 차지하겠다고 싸우지 않도록, 미리 조정하기 위한 사전작업을 위해서다. 살 수 있는 집인지 아닌지는 정탐목적에 포함되지 않았다. 폐가라 해도 어차피 고쳐서 살아야 할 집이었다. 물론 현재 그 집에 거주하고 있는 세입자를 어떻게 내보내느냐의 문제가 남아있기는 했지만 집 자체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유다지파의 정탐꾼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다. 여분네는 근본이 없는 인물이다. 유다의 족보에 나오지 않는 인물이다. 족보가(혈통이) 분명하면 좋겠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는다. 하나님으로부터 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혈통을 중요시 하는 유대문화에서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유다 지파의 지도자/대표가 되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놀랍지 않은 이유다. //민수기 1장에 각지파의 지도자들의 이름이 한 번 열거되었다. 그런데 이들과 오늘 본문의 이름들은 완전히 다르다. 출애굽과 정탐꾼 파견까지 얼마 지난 것도 아니니 열두 정탐꾼은 차세대 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출애굽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은 물러가고 약속의 땅으로 이끌 지도자들이 뽑혔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둘을 제외하고 나머지 열은 불신으로 죽는다.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

https://quietwaters.blog/2017/03/23/

민수기 12:1-16

민수기 12:1-16 – 안과 밖

(읽기)
모세가 구스 여인을 데리고 왔다. (어디서?) 미리엄과 아론은 모세가 구스여인을 아내로 맞았다고 해서 모세을 비방했다. 미리엄과 아론이 “주님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하면서 꿍시렁 대는 것을 주님이 들으셨다. 저자(모세)는 모세가 땅위에 사는 모든 사람가운데 가장 겸손한 사람이라고 토를 달았다.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과 미리엄을 당장 회막으로 부르셨다. 셋이 회막으로 나갔다. 주님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 내려오시어 장막 입구에 서시어, 아론과 미리엄에게 한 걸음 앞으로 나오라 말씀하셨다. 두 사람이 나가 서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 예언자들에게 나는 환상이나 꿈으로 말을 해 주지만,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모세는 나의 온 집을 충성스럽게 맡고 있다. 나는 그와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말한다. 명백하게 말하고 모호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나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너희는 어찌하여 두려움도 없이 나의 종 모세를 비방하느냐?”] 주님이 둘에게 진노하시고 떠나가셨다.
구름이 장막 위에 걷혔다. 미리암에게 악성 피부병이 내려, 미리엄은 눈처럼 하얗게 되어있었다. 아론이 미리엄을 살펴보니 악성 피부병이 확실했다. 아론은 모세에게 자신들이 어리석었다며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벌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누이 미리엄을 악성피부병에 걸린 채로 두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모세가 주님께 미리엄을고쳐달라고 부르짖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미리암을 이레 동안 진 밖에 가두었다가 그 뒤에 돌아오게 하라고 대답하셨다. 미리암은 이레 동안 진 밖에 갇혀 있었다. 백성은 미리암이 돌아올 때까지 행군을 하지 않았다. 미리엄이 돌아온 후 백성은 하세롯에서 떠나 바란 광야로 가 진을 쳤다.

(생각)
//밖에서 안으로 – 구스 여인은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출애굽 때 따라 나왔을까? 광야에서 우연히 만났을까? 다 늙은 모세는 왜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을까?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다고 번역하지만, 그냥 갈 길 없는 이방 여인을 이스라엘의 진영으로 받아들였다고 해석하면 안 될까?
//안에서 밖으로 – 모세의 권위 도전했던 미리암과 아론. 이들의 불평을 들은 주님은 결국 진노하시고 미리암에게 악성피부병을 내리셔서 벌하셨다. 대제사장 아론에게는 면책특권을 주신 것일까? 아니면 누나 미리암에게 연장자의 책임을 지운 것일까? 아론은 누나의 중보자가 되어 모세에게 나아갔고, 모세는 아론의 중보자가 되어 주님께 나아갔다. “주님께서 우리와도 말씀하지 않았느냐?” 미리암과 아론은 이런 마음을 가졌지만, 정작 미리엄에게 악성피부병이 내리자 주님과 직접 대화하러 나가지 못했다. 그 둘과 주님 사이에 여전히 모세라는 중재자가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가장 (온유)겸손한 모세 – 주님께서는 모세를 하나님과 대면하여 대화하는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치켜올려 세우셨다. 정작 모세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낮췄는데 말이다. 예수께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온유와 겸손은 그냥 모세의 성품을 운운한 단어가 아니다. 그는 자신을 낮췄다. 모세보다 더 온유/겸손하신 분이 예수시다. 성자 예수께서는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셨다.
//진 안과 밖 –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것이 복이다.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모시는 것이다. 구스 여인이 이스라엘 안에 머무르게 된 것을 이것에 비유하면 안 될까? 반면 미리암은 이레지만 진 밖에 머물러야 했다. 진 밖에 갇혔다고 표현한다.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없는 상태다. 이보다 더 큰 벌은 없다.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 머무는 것이 복이다. 집 떠나면 고생에 그치지만,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떠나면 벌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7/03/22/

// 진 ‘밖’에 갇혔다. 보통은 안에 가두지 밖에 가두지 않는다. 안이 속박이고 밖은 자유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주님 ‘안’에 자유가 있고 ‘밖’에 속박 (죄에게)이 있다. //미리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는 이레동안 구름을 머물게 하셨다는데서도 발견할 수 있다. (백성들이 이레동안 행진하지 않음으로 구름을 묶어 놓았을까?) 하나님께서는 때론 기다려 주신다. 내가 깨끗해 지도록, 내가 쓸 수 있는 그릇이 되도록

성령의 바람

민수기 11 (2017-03-21)

칠십인의 노인들 중 엘닷과 메닷이 있었다. (히브리어로 이들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사랑’ 과 ‘깊은 애정’이라고 한다.) 이 둘은 하나님의 영이 칠십인에게 임하였을 때 장막에 있지 않았고 진영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둘에게도 영이 임하였고 진중에서 예언했다.

이 사실이 모세에게 전해졌다.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즉각 모세에게 엘닷과 메닷을 말리라고 보고하지만 오히려 모세는 하나님의 영이 모든 백성에게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기원한다.

// 모세는 문제의 본질을 알았고 여호수아는 아직 멀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었다. 만약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의 영이 주어진다면 이 문제는 단숨에 해결될 것이다.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 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큐빗쯤에 내리게 한지라…”[31]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호와의 손이 크심을, 아니 전능하심을 보이셨다. 그당시 하룻길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 그래도 한 사람이 모은 열호멜의 고기 양을 부피로 따지면 약 2 큐빅정도라 하니 (대충 2톤) 그 양이 어마어마함을 알 수 있다.

// 31절의 ‘바람’은 모세와 칠십인 장로에게 임한 ‘영’과 같은 단어다. 하나님은 ‘영’으로 일하신다. 우리에게 ‘영’으로 힘을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내 힘으로 순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혜의 샘이 되어야 할 그곳이 욕망의 무덤이 (기브롯 핫다아와) 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람’이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거리와 두 큐빗쯤 높이로 충만했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고기’만 보았다. 오직 ‘고기바람’만 났으니, 고기에 온통 정신이 팔렸으니 하나님의 은혜가 보일리 만무다.

당신은 무슨 바람이 났는가? 혹 춤바람 아니면 술바람

이왕이면 ‘성령의 바람’이 나면 어떨까?!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7,18]

민수기 11:16-35

민수기 11:16-35

(읽기)
주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장로/지도자 일흔명을 주 앞으로 소집하라고하셨다. 주께서 회막에서 말씀하시겠다고 하셨다. 주께서 모세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영을, 장로/ 지도자들에게도 나눠 주어서 모세와 함께 백성을 돌보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더 이상 모세 혼자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하셨다.
주께서 모세에게 백성들이 내일을 맞이할 수 있도록 스스로 거룩하게 준비하게 하셨다. 백성들이 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소리를 들으신 주께서 고기를 주 것이라고 하셨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한달 내내 냄새만 맡아도 먹기 싫을 때까지 고기를 먹이시겠다고 하셨다.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 가깝다.) 백성들이 주를 거절하고 출애굽한 것을 후회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모세는 주께 보병만 육십만 명이나 되는데 어떻게 한달 내내 고기를 주어 먹게하시겠는지 여쭙는다. 아니 모세의 셈으로는 불가능 했다. (빈들에서 제자들처럼) 그러자 주께서 ‘나의 손이 짧아지기라도 했느냐?” 하시며, 주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라고 하셨다.
모세가 나가서 주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달했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모세에게 내린 영을 일흔 장로들에게도 내리셨다. 일흔 장로들도 예언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일흔 장로들은 다시는 예언하지 않았다. 일흔 장로들 중 엘닷과 메닷은 회막으로의 소집에 응하지 않고 진 안에 머물렀다. 이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내렸고, 그들도 진에서 예언했다. 이 사실을 한 소년이 모세에게 알렸다. 모세의 시중을 들던 여호수아가 이 일을 말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영이 내려 예언하는 것을 질투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모세는 오히려 모든 백성에게 주님의 영이 내려, 모두가 예언자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세와 장로들은 진안으로 돌아왔다.
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셔서 바다쪽에서 메추라기를 몰아 진 둘레에 떨어지게 하셨다. 진 둘레 하룻길 지역에 메추라기를 땅 위 두자 쌓이게 하셨다. 백성들이 온종일 메추라기를 모았다. 이튿날에도 메추라기를 모았다. 백성들은 모은 메추라기를 진 주변에 널어 놓았다. 아직 고기를 먹기도 전에 주께서 백성에서 크게 진노하셨다. 백성에게 극심한 재앙을 내리셨다. 탐욕에 사로잡힌 백성을 죽여 기브롯 핫다와라는 곳에 묻었다. 백성을 기브롯 핫다아와를 떠나 하세롯으로 행구하였다.

//여호수아의 질투? – 모세가 힘들다고하자, 주께서 일흔명의 장로들을 세우게 하시고,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을 나눠 주셨다. 물론 처음이자 마지막이긴 했지만 장막에 모인 예순여덟 장로 진중에 남았던 두명의 장로에게 하나님의 영이 내리자, 그들은 모두 예언을 했다. 이 소식에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가 발끈?했다. 내심 이인자를 자처했을지도 모르겠다.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예언을 하는 장로들을 그냥 두는 것은 마당하지 않다고 했다. 모세는 질투하지 말라고 여호수아를 꾸짖었다. 오히려 모든 백성에거 하나님의 영이 내리면 좋겠다고 응대했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예수께서는 예수께서 이 땅에 머무시는 것보다, 성령께서 오시는 것이 더 낫다고 하셨다. 물리적 임마누엘은 이 시공간에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의 교제가 요구된다.)) 그런데 저자(모세)는 장로들의 예언은 일회적이었다고 토를 단다. 아마도 하나님과 말씀의 교제를 이어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성령은 말씀을 마음에 둔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역사하신다.
//구하는 대로 받는 저주? – 구하는 대로 받는 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다. 탐욕을 따라 구한 것을 받는 것은 더 그렇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기를 구한 이번 사건이 그 예다. 백성에게 고기를 지겹도록 내려주시겠지만 한편으로 심각한 재앙도 보내셨다. 그러니 내가 구하는 대로 받으려고 고집하지 말고, 아버지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성령)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질투와 탐욕을 버리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7/03/21/

민수기 11:1-15

민수기 11:1-15

백성들이 주님께 들으라고 대놓고 심하게 불평했다. 주님께서 듣고 진노하셔서 그들 가운데 불을 내리셔서 진 언저리를 불태워 버리셨다. 백성이 모세에게 살려달라고 요청했고, 모세가 주님께 기도드리자 불이 꺼졌다. 주님의 불이 그들 가운데서 타오른 그곳을 ‘다베라’라고 불렀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섞여 살던 무리들이 먹을 것 때문에 탐욕을 품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덩달아 또다시 울며 고기를 먹여 달라고 불평했다. 이집트에서는 생선을 공짜로 먹었는데.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도 맘껏 먹었는데, 이제는 만나밖에 없으니 입맛이 떨어졌다고 불평했다. (노예 생활을 하면서 잘도 먹었겠다!)
(만나이 모양은 깟 씨와 같았고 브돌라와 같은 색깔이었다. 백성들은 만나를 거두어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고 냄비에 구워 과자로 만들어 먹었다. 그 맛은 기름에 반죽하여 만든 과자 맛이었다. 만나는 진에 이슬이 내릴 때, 이슬 위에 내리곤 했다.)
온 백성이 고기를 먹여 달라고 모세에게 울며 불평하는 일로 주님은 대단히 노하셨다. 모세는 주님이 노하시자 걱정이 태산 같았다. 모세는 자신이 백성의 모들 불평을 짊어지는 것이 너무 힘들어 주님께 어찔할지 물었다. 자신은 불평하는 백성을 품고 갈 자신이 없다고 주님께 아뢨다. 백성들이 고기를 달라고 하는 요구를 감당하는 것이 모세 자신에게 너무 무거운 문제라고 아뢨다. 모세는 자신이 주님의 눈 밖에 나서 이런 어려움에 처한 것이라면, 이 곤경을 당하지 않도록 자신을 죽여 달라고까지 주님께 간청했다.

//불평!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다. 다른 피조물들은 불평을 모른다.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도, 지구 주위를 도는 달도 창조이래 챗바퀴 돌듯 주어진 일을 반복하지만 불평하지 않는다.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목적에서 자꾸 이탈하려고 꾀를 낸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 가운데 섞여 살던 무리들의 탐욕에 물들었다고 완곡히 표현하지만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불평을 했다. 사실 주님께 들으라고 대놓고 심하게 불평을 한 것이다. //모세는 이런 백성들을 위해 매번 하나님께 중보하느라 힘들었다. 드디어 이런 곤경을 당하지 않도록 자신을 죽여달라고 주께 간청까지 했다. 예수께서는 불평분자 이스라엘 백성과 크게 다르지 않는 우리들을 위해 곤경을 친히 담당하셔서 죽기까지 아버지의 원대로 순종하셨다. 모세는 매번 중보의 자리에 나아가야 했으나, 우리 주님은 단번에 자신을 재물로 드리셔서 영원하 중보자가 되셨다. //탐욕이 불러오는 불평을 하지 말자. 대신 감사하자. 세상에서 환난을 당한다고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말자. 주님의 눈 밖에 나서 어려움을 당하는 게 아니다. 주님과 함께 한다는 증거다. 그러니 주님께 나아가자. 주님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 그것도 주님께서 함께 메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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