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36-56

마태복음 26:36-56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4/14/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에 가서 기도하셨다. 제자들을 앉히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만 데리고 기도하러 조금 더 가셨다. 예수께서는 근심하며 괴로워하셨다. 세 제자에게 마음이 괴롭다고 하시며 그곳에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혼자 조금 더 가셔서 기도하셨다. 예수께서 얼굴을 땅에 대로 엎드려서 “나이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하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와서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하시며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다는 것을 아셨다. 예수께서는 다시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셨다. “나의 아버지, 내가 마시지 않고서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는 것이면,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예수께서 다시 와서 보시니 그들은 아예 자고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제 남은 시간은 가고 쉬라고 하셨다. 그리고 인자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갈 때가 되었으니 일어나서 가자고 하셨다.
예수께서 아직 겟세마네에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가룟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모낸 무리를 인도해서 왔다. 그들은 칼과 몽둥이를 들고 왔다. 가룟유다는 무리에게 자신이 입을 맞추는 사람을 잡으라고 미리 일러 두었다. 유다는 예수께 다가가 선생님 하고 부르고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예수께서 유다를 친구라고 부르시며 무엇 하러 왔느냐고 물으셨다. 무리가 예수를 붙잡았다. 예수 곁에 있던 한 사람이 자기 카를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내리쳐, 그 귀를 잘랐다. 예수께서 그를 말리시고 칼을 칼집에 넣으라고 명하셨다.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요청하면 천군천사들을 보내 자신을 세워주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이루어지도록 순순히 무리에게 잡히셨다. 예수께서 잡히시자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아버지의 뜻에 따르고자 하는 기도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십자가는 예수님의 마음을 괴롭혔다. 그래서 기도하셨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 아버지 하나님이 뜻을 안다고 순종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하물며 감당하기 힘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타락한 사람의 마음을 거스리기 때문에 사람이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알 때까지 어쩌면 졸거나 자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내 맘대로 행하는 것보다 낫다. 내 뜻을 구하는 것은 (안하면 좋겠지만) 한 번으로 족하다.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바울의 권면은 이뤄질 때까지 똑같은 기도를(내 뜻을) 고집하라는 것이 아닐 것이다. 쉬지 않고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물으라는 뜻이 더 강하다. 쉬지 않고 나의 원대로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원대로 이뤄지기를 기도하라는 뜻이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듣는 것이 기도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6:17-35

마태복음 26:17-35

제자들은 유월절 음식 준비에 대해 예수께 물었다. (제자들은 먹고 마시는데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성 난 아무게네 집에서 유월절을 지키겠다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시키시는대로 준비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만찬자리에서 제자들 중 하나가 자신을 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각각 ‘주여, 나는 아니지요?’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자신과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에게 좋았을 것이라고 하셨다. 가룟 유다가 ‘선생님, 나는 아니지요?’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네가 말하였다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떡을 가지고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이것은 자기 몸이니 받아서 먹으라고 하셨다. 또 잔을 가지고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자신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제자들과 함께 마시는 날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않겠다고 하셨다. 만찬을 마치고 모두 감람산으로 갔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라는 말씀의 성취로, 오늘 밤에 제자들이 자신을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겠다고 하셨다. 베드로가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내가 주와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다른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했다.

//”나는 아니지요?” 가룟 유다도 “나는 아니지요?” 하고 물었다. 나는 아니지만, 나의 영이 어떤 영에 순종하느냐에 따라 실족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열하나는 ‘주님,, 나는 아니지요?’ 라는 자문을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여 구원에 이르렀다면, 가룟 유다는 ‘선생님, 나는 아니지요?’ 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주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세상 근심으로 사망의 길을 갔다. (요한복음13장에서 예수께서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하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으니 열하나와 가룟유다의 예수께 대한 호칭은 크게 차이가 없는 듯하다.) //”내가 주와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베드로의 맹세에 뒤따라 다른 모든 제자들도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주를 따르는 것은 우리의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베드로와 나머지 제자들의 실패담을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의지적으로 주를 버리지 않아야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심을 신뢰하고, 그 주님을 주인으로 모셔야만 가능하다. 내가 스스로 주인되려고 하는 것은 곧 주님을 버리는 것이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4/13/

마태복음 26-1-16

예수께서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을 마치시고, 이틀 후 유월절에 인자가 십자가에 못박히기위해 팔릴 것이라고 하셨다. //이틀 후 유월절이 하나님의 때다.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관사에 모여 예수를 모함하여 죽이려고 의논했다. 그들은 민란이 일어날 수 있으니 명절(유월절)에는 예수를 죽이지 말자고 말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때를 모른다.
예수께서는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셨다. //동네에 들어와 사는 것으로 보아 시몬은 나병에서 깨끗함을 받았을것이다. 아니면 나환자 촌이다.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제자들은 아까워 했다. 마치 국보급 고려청자를 깬냥, 실수로 옥합을 깬 것도 아니고 무슨 의도로 향유를 허비했는지 따지며 화를 냈다. 향유를 팔면 비싼 값을 받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 여자를 괴롭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 여자가 예수께 좋은 일을 하였다고 하셨다. 가나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만 예수께서는 항상 함께 있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여자가 향유를 부은 것은 자신의 장례를 위함이라고 제자들도 모르는 ‘의도’를 깨우쳐 주셨다. 그리고 온 천하 어디서든지 예수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와 행한 일이 기억될 것이라고 하셨다.
열두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주겠다고 제안했다. 대제사장들은 유다에게 은 삼십을 주었다. 유다는 그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았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거니와 예수는 항상 함께 있지 않는다. (11) – 임마누엘이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마지막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자신에게 행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와 항상 함께 하는 길은, 우리가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할 때다. 심령이 가난하든, 물질적으로 가난하든, 가난한 자들이 천국을 소유하는 복을 누린다. 시몬과 여인이 사는 동네(베다니)가 그런 곳이다. 다시말해, 가난한 자들에게 주님이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영생이다. 우리가 임마누엘을 누리는 길은,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은, 보이는 (천국을 소유한)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한 몫 잡아야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항상 가난한 자들과 나누라고 하신다. 여유가 생겨야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콩 반쪽도 나눠야 한다. //제자들보다 여인이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제자들은 십자가보다는 부활을 더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활은 십자가라는 징검다리를 피할 수 없다. 건너 뛸 수 없다. 제자들은 부활을 이스라엘의 회복이라고 생각하었을 것이다. 따라서 십자가는 그저 통과의례로만 가볍게 넘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부활은 일단 죽은 후에 오는 것이다. 살고자하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것이 부활이다. 여인은 신랑을 잃었을 때를 준비한 것이다. 지금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는 향유 옥합을 깨어, 주님에게 붓듯 가난한 자들에게 부어야 한다. 가난한 자들을 돌봐야 한다. //가룟 유다를 보라. 그는 은 삼십을 받고 예수를 팔았다. 마가가 향유옥합의 가격을 삼백 데나리온 이상이라고 했으니 일반 노동자의 연봉에 해당한다. 은 삼십의 가치는 소 한마리 정도의 가격이라고 한다. 사탄이 유다의 마음속에 들어 간 이후, 유다에게 예수의 가치는 주인에서 노예로 전락했다.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하나님을 재물과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예수가 아닌 다른 것이 나의 삶을 지배한다면 예수를 판 것이나 다름 없다. 돈이든 명예든 건강이든… 작은 자를 위해 나의 향유옥합을 깨뜨리라고 하신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4/12/

마태복음 25:31-46

마태복음 25:31-46

주님은 주님의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다시 오셔서 주님의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다. 이 보좌은 재판장석이다. 주님은 모든 민족을 재판정에 부르시고 목자처럼 양과 염소를 구분하여, 양은 주님의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신다.
주님이 재판장석에 앉으신 임금님이시다. 임금이 오른편에 있는 양들에게 창세로부터 예비된 (하늘)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축복하신다. 양들은 의인들이다. 임금은 의인들에게 자기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물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했고, 헐벗었을 때에 옷입혀 주었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 돌보아 주었다고 말했다. 의인들은 언제 자신들이 임금님을 공양했느냐며, 하늘 나라를 상속받을 자격이 없다고 겸손해 했다. 그렇지만 임금은 의인들이 임금의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하시며 의인들이 하늘 나라를 상속받을 자격이 있음을 분명히 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생을 내리셨다.
임금이 왼편의 염소들에게는 자기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 물을 주시 않았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옷입히지 않았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 돌보지 않았다고 책망하셨다. 염소들은 언제 자신들이 주님을 돌보지 않았느냐고 항변했다. 임금은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자신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벌을 내리셨다.

//보이는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지막 심판은 영생과 영벌의 갈림길이다. 그러나 갈림길이라기 보다는 기찻길의 두 레일처럼 한 방향으로 달려왔는데, 영생과 영벌로 나뉘게 될 것이다. 목적지는 마지막 때, 재판정이다. 들어가면 영생과 영벌로 나뉜다. 오른쪽으로 왔느냐 왼쪽으로 왔느냐에 따라 자리가 이미 결정되어있다. //형제자매를 사랑해 온 길은 영생으로 이어지고,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은 길은 영벌로 이어진다. 재판정에 앉으신 임금되신 주님은 작은 자를 자신의 형제자매라고 부르신다. 우리가 마땅히 사랑해야 할 작은 자, 이웃이 주님의 형제자매라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행하는 자가 주님이 형제자매다. 빈부귀천지위고하를 따져서는 안 된다. 사람을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서 사귀면 안 된다. 형제자매를 돌보지 않는다면 영벌을 향해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를 돌보는 것이 꼭 주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말할 순 없어도, 주님을 위하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자를 돌본다.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을 느끼기란 어렵다. 그러나 작은 자들과 함께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임마누엘을 증거하는 것은 바로 작은 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은 작은 자들과 함께 하신다. 따라서 작은 자들과 함께 하면 그곳에 계신 삼위 하나님과 당연히 함께 할 수 있다. 물질적이든 마음이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이 있는 이유다. 천국이 가난한 자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다. 그곳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보이는 자기 형제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요일 4:20b 새번역) ‘임마누엘 임마누엘’ 말만하는 거짓말쟁이가 되지 말라고 하신다. 임마누엘의 증거는 확실하다. 바로 작은 자에게 선대하는 것이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9/04/11/

마태복음 25:14-30

마태복음 25:14-30

또 //열 처녀 비유에 이어 마지막 때 천국을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면서 그 종들에게 자기 소유을 맡기는 비유로 설명하신다. 마지막 때는 이땅에서의 삶이다.

어떤 주인은 각각 그 재능대로 첫번째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두번째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세번째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겼다.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장사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땅을 파고 주인에게 받은 돈을 감추어 두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과 결산을 했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 네게 맡기겠다. 나의 즐거움에 참여하여라” 하고 말했다. 주인은 두 달란트를 남긴 종에게도 같은 말을 하였다. 한 달란트를 받았던 종은 감추어 두었던 한 달란를 가져왔다. 그는 주인이 굳은 사람이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고, 자신이 한 달란트로 장사하지 않고 묻어두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주인은 이자라도 받게하지 못한 그 종을 꾸짖으며,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고 명령했다. 주인은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긴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고 명령했다. 그 종은 바깥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 때를 산다. 다시 말해 결산을 앞두고 산다. 주님의 재림 이전에는 이땅에서 죽을 때가 결산할 때다. 죽기 전까지가 받은 달란트만큼 남겨야할 기간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항상 결산의 날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받은 달란트만큼 남기기 위해 특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은 받은 달란트로 장사하여 받은 달란트만큼 더 남겼다. 장사하여 남겼다는 것은 일상의 일의 했다는 뜻이다. 그것도 열심히 노력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했다. 그래서 주인이 착하고 충성된 (성실한) 종이라고 평가한다. 뭔가 많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적은 일에 충실했다고 평가하신다. //적은 일에 충성한 종들에게 많은 일을 맡긴다고 하신다. 많은 일을 맡는 것을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로펌으로 말하면 직원변호사에서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의 잘못은 주인을 몰랐다는 것이다. 감히 자기 나름대로 주인을 평가했다. 주인을 모르니 주인의 뜻에 순종할 수 없었다. 하나님을 모르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없다. 예수께서는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다. 돌고 돌아 영생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다. 이 순종의 삶이 하늘나라를 상속받게 한다. 순종을 위해서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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