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5:1-12 읽기

요한일서5:1-12 읽기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태어났다. (하나님이 만드셨다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낳아주신 분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분이 낳은 다른 사람을 (형제자매를) 사랑한다. 요한이 거듭 강조하는 형제자매 사랑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그 계명을 지켜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이 곧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계명, 곧 형제자매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사랑보다 경쟁을 강조하는) 세상을 이긴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물과 피를 거쳐서 오셨다. 물로써만 오신 것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셨다고 성령이 증언하신다. (예수께서는 세례 받으실 때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실 때도 하나님의 아들로 증명받았다. 성령께서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신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아들로 증언하신다.)성령은 곧 진리다. 증언하시는 분은 셋이다. 곧 성령과 물과 피다. 이 셋의 증언은 일치한다. 이 증언은 하나님의 증언이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에게 관해서 증언하셨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8/12/21/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께 잇대어 사는 것이 영생이다. 임마누엘!

요한일서 4:11-21 읽기

요한일서 4:11-21 읽기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영을 나누어 주셨다. 이 영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그것을 증언한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았고 또 믿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고 그 사람 안에 계신다. 이것이 (임마누엘이)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사랑의 완성) 임마누엘이 우리가 심판 날에 담대할 수 있는 이유다. 우리가 담대하려면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야 한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는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다.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은 두려워 한다. (요한이 말하는 사랑은 임마누엘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은 사람들이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8/12/20/

//성탄절 아침! 어제에 이어 형제를 사랑하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 형제 사랑이 하나님 사랑이고, 형제 사랑이 믿음이다.

요한일서 4:1-10 읽기

요한일서 4:1-10 읽기

우리가 믿어야 할 영은 성령이시다. 성령만이 하나님에게서 난 영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거짓 예언자들이 많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영을 분별할 수 있다. 하나님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시인하게 하는 영이다. 그러나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영은 하나님에게서 난 영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영이다. 세상에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영들이 벌써 와 있다.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 하나님으로부터 난 성도는 성령으로 거짓 예언자들을 이미 이겼다. 성도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영보다 크시기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영들은 세상에서 났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따른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에게서 났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요한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은 사람은 요한의 말을 듣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에 대한 청종으로 진리의 영과 미혹의 명을 분별할 수 있다.
요한은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났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다.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하나님을 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자기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신 것이다. 다시말해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이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8/12/19/

하나님께서는 자기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 사랑을 해야 한다.

요한일서 3:13-24 읽기

요한일서 3:13-24 읽기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은 하나님을 아는 믿음의 사람들을 미워한다. 당연한 이치니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말한다. 성도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 옮겨졌다. 성도가 이것을 아는 것은 성도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요한은 형제자매 사랑과 믿음을 동일시 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에 머물러 있다. 요한은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하는 사람이라고 예수의 말씀을 상기시킨다. 살인자, 곧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의 속에는 영생없다. 성도라면 이것을 당연히 안다.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것이야 말로 형제자매 사랑의 본보기다. 성도는 이것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성도의 형제자매 사랑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까지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야 한다. 요한은 형제자매 사랑을 구체적으로 적용한다.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다면 궁핍한 형제자매를 도와야 한다. 궁핍한 형제자매에게 마음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속에 머물수 없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한다
이렇게 사랑함으로써 성도는 우리가 진리에서 났음을 알게 될 것이다. 또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연약하여) 마음에 가책을 받는다 하여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났음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신 분이시라서 우리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요한은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마음에 가책을 받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게 구하면, 무엇이든지 하나님에세서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마음에 가책을 받지 않고 구하는 것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요한은 하나님의 계명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며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우리는 안다.

//형제사랑이 곧 믿음이다!

https://quietwatersweb.wordpress.com/2018/12/18/

요한일서 3:1-12 읽기

요한일서 3:1-12 읽기

요한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베푸셨는지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신 큰 사랑은 우리를 자기의 자녀라고 불러주신 것이다. 이것은 세상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우리 성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요한은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자녀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다시오시면)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면 우리가 그를 참모습대로 뵙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 이런 소망을 두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깨끗하신 것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
죄를 짓는 사람은 불법을 행하는 사람이다 죄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셨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분이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으면 사람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짓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보지도 못한 사람이고 알지도 못한 사람이다. 요한은 자녀된 독자들에게 세상에 미혹을 당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대신 의를 행하라고 말한다. 요한은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의로우신 것과 같이 의롭다고 선언한다.
죄를 짓는 사람은 악마에게 속해 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짓는 자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악마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에세서 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는다.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죄를 지을 수 없다.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는 분명하게 구별된다. 의를 행하지 않는 사람과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 아니다. (요한은 의와 형제사랑을 동일시한다.)
요한은 복음의 핵심이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니 가인과 같이 되지 말라고 경고한다. 가인은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이어서 동생을 쳐죽였다. 무엇 때문에? 요한은 동생이 가인을 사랑했는데 (의로웠는데), 가인은 동생을 사랑하지 않았기 (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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