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13-22 읽기

13-15 모세가 하나님께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물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 라고 하는 분이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고 하여라.” 대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한 나의 이름, 너희가 대대로 기억할 나의 이름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6-22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주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나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하고 ‘내가 너희의 처지를 생각한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겪는 일을 똑똑히 보았으니, 이집트에서 고난 받는 너희를 내가 이끌어 내어,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기로 작정하였다’ 하여라. 그러면 그들이 너의 말을 들을 것이다. 또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이집트의 임금에게 가서 ‘히브리 사람의 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으니, 이제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을 걸어가서, 주 우리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하고 요구하여라. 그러나 내가 이집트의 왕을 강한 손으로 치지 않는 동안에는, 그가 너희를 내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므로 나는 손수 온갖 이적으로 이집트을 치겠다. 그렇게 한 다음에야, 그가 너희를 내보낼 것이다. 나는 이집트 사람이 나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게 하여, 너희가 떠날 때에 빈 손으로 떠나지 않게 하겠다. 여인들은 각각, 이웃에 살거나 자기 집에 함께 사는 이집트 여인들에게서 은붙이와 금붙이와 의복을 달라고 하여, 그것으로 너희 아들 딸들을 치장하여라. 너희는 이렇게 이집트 사람의 물건을 빼앗아 가지고 떠나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 “나는 곧 나다!”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이름은 필요 없다는 뜻이다. 서로 잘 안다는 뜻이다. ‘나야 나’ 하면 된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알 것이라고 하신다. 요즘에는 ‘나 용승이야’ 하고 이름을 바로 댈지 몰라도, 이전에는 ‘나야 나, 잠중 6기’ 하고 관계를 먼저 말해 상대방으로 내가 누군지 기억하도록 했다. ‘잠중 6기 투더리’라고 해도 기억 못하면, 내 이름을 말해줘도 소용없다. 사람들은 이름으로 서로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름 대신 직함을 부르는 우리 문화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면 굳이 이름을 말할 필요가 없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본문에서 반복해서 자신을 ‘주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말씀하신다. 곧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 성도에게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다. 이름이 필요 없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시기에. 물론 관계가 없는,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름부터 알려주고 소개해야 하겠지만.

출애굽기 3:1-12 읽기

1-6모세는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 곧 르우엘의 양 떼를 몰고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주하나님의 사자가 불붙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났다. 모세는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불살라지지 않는 것을 보고,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려고 떨기나무 가까이 갔다. 주 하나님께서 모세가 다가오는 것을 보시고,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불러 세웠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에 “내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어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하나님 뵙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렸다.

7-12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을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 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고,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을 학대하는 것이 보인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나오게 하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하나님께 “나는 바로에게 갈 수 없으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할 수도 없습니다.” 하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겠다. 너로 내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 와서 나를 예배 것이다.” 이 일이 이루어지면 너는 내가 너를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소명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부르신다. 주신 사명의 주어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 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하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소명을 받은 자는 도구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런데 도구인 모세가 사용자인 하나님께 나는 능력 없는, 적합하지 않은 도구라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도록,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 소명을 받은 자가 해야 할 일이다.   

// “너희가 이 산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때에, 그것이 바로 내가 너를 보냈다는 징표가 될 것이다.” 소명의 징표는 일이 이루어 졌을 때 확실해 진다. 소명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 없다.   소명의 시작은 하나님과 함께 함이요, 소명의 중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함이며, 소명의 마침은 순종의 결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도구로 잘 사용되고 있다는 증거도, 나의 삶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지는 순종의 삶과 예배적 삶에 달려있다.

// 소명을 받았는가? 구체적 사명이 있는가? ‘임마누엘’을 누리고 있는가?

출애굽기 2:11-25 읽기

11-15a 세월이 지나 모세가 어른이 되었다. 모세는 왕궁 바깥으로 나와 동족에게 갔다. 동족들은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침 동족 히브리 사람이 이집트 감독관에게 매를 맞는 것을 보았다. 모세는 좌우를 살펴서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 이집트 감독관을 쳐죽여서 모래 속에 묻어 버렸다. 이튿날 모세는 다시 나가 보았다. 이번에는 히브리 사람 둘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모세는 왜 동족을 때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모세에게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습니까? 당신이 이집트 사람을 죽이더니 이제는 나도 죽일 작정입니까?” 하고 따졌다. 모세는 자신이 이집트 사람을 죽인 일이 탄로난 것을 알고 두려워하였다. 이 일은 바로에게까지 전해졌다. 바로는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고, 모세는 바로를 피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망쳤다.

15b-22 어느 날 미디안 땅에 머무는 모세는 한 우물가에 앉아 있었다.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는데 그 딸들이 우물에 와서 아버지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려고 했다. 그런데 목자들이 나타나서 제사장의 딸들을 쫓아버렸다. 모세는 이 꼴을 참지 못하고 제사장들의 딸을 도와 양 떼에게 물을 먹였다. 제사장 르우엘은 딸들에게 오늘은 어떻게 이렇게 일찍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딸들은 어떤 이집트 사람이 목자들의 손에서 자신들을 구해 주었고, 양 떼에게 물을 먹이는 일까지 도와주었다고 대답했다. 제사장이 딸들에게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불러서 음식을 대접하라고 말했다. 르우엘은 모세가 기꺼이 초청에 응하고, 함께 살겠다고 하자, 딸 십보라를 모세와 결혼하게 했다. 십보라가 아들을 낳자, 모세는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 (내가 낯선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구나!)이라고 지었다.

23-25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집트 왕이 죽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여전히 고된 일 때문에 탄식하며 부르짖었다. 이스라엘은 고된 일 때문에 하나님을 부르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탄식을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신다. 이스라엘 자손이 종살이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셨다.

// 모세의 이집트 왕궁생활은, 모세가 어떻게 왕궁에 들어가게 된 이야기로 시작해서 ‘세월이 지나’로 그냥 끝이 난다. 모세가 왕궁을 떠난 것은 그의 나이 마흔이라고 하는데… 이어지는 두 사건으로 볼 때, 왕궁에서 자란 모세는 정의감에는 불탔지만 주변을 살펴야 할 정도로 바로의 권위와 보이지 않는 (어머니에게 들은 하나님의) 권위/권세 사이에서 고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국의 최상위 지배층에서 두 주인을 섬겼다고나 할까?

// 모세의 미디안 생활 역시, 모세가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의 딸 십보라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은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세월이 많이 흘러서’ 로 정리된다. 이 기간도 사십 년이라고 한다. 모세가 십보라를 만나는 사건에서, 모세는 여전히 정의감에 불탔다. 그러나 더 이상 자신의 처지(지위)나, 주변을 살펴보지 않아도 되었다. 바로의 권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있게 되었으나, 보이지 않는 (말로 듣기만 한)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서는 더 미궁에 빠졌을 것이다.

// 그동안 모세를 죽이려고 했던 이집트 왕은 죽었지만,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전히 고역으로 힘들어 하고 있었다. 세상 역사는 그냥 흘러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신다. 고역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억하게 한다. 하나님께 부르짖게 한다.

//마찬가지로 세월이 지나고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주님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변함없다. 문제는 성도가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잊고 산다는 것이다. 성도가 힘들게 살아간다면 어쩌면 이 약속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라는 주님의 사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 땅에서 제국의 최상위 계층에서 호사를 누리든, 아니면 가난해서 비천한 생활을 하든, 정의감은 나의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곧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이 방법대로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언약/약속 앞으로 불러주신다.

출애굽기 2:1-10 읽기

1-4 레위 가문의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다. 그 아기가 하도 잘 생겨서, 남이 모르게 석 달 동안 길렀다. 그러나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갈대 상자를 구해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아기를 그 안에 담아 강가의 갈대 사이에 두었다. 그 아이의 누이가 멀찍이 서서 동생이 담긴 갈대 상자자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았다.

5-10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려고 강으로 나왔다. 시녀와 강가를 거닐다가 갈대 숲 속에 있는 갈대 상자를 보고, 시녀 한 명을 보내서 가져오게 했다. 갈대 상자를 열어보니 남자 아이가 울고 있었다. 공주는 그 아이를 불쌍히 여겼다. 공주는 이 아이가 히브리 사람의 아인 줄 알았다. 그때 아이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히브리 여인 가운데서 유모를 데려올까요?” 하고 물었다. 공주는 그렇게 해 달라고 대답을 했다. 누이는 어머니를 불러왔고, 공주는 아이의 친모를 유모로 삼고 삯까지 주었다. 아이가 자라 젖을 뗀 다음, 아이의 어머니는 그 아이들 바로의 딸에게 데려다 주었다. 공주는 이 아이를 양자로 삼았다. 공주는 아이의 이름을 모세 (내가 그를 물에서 건졌다) 라고 지었다.

// 레위 가문에서 모세가 태어났다. 이스라엘(야곱)은 죽기 전에 레위를 시므온과 함께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라고 예언했다. 폭력적인 성격으로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이런 저주받은 레위 가문에서 이스라엘을 이끌 아기가 태어나게 하신다. 그러나 레위 자손의 운명은 바뀐다. 제사장 가문이 된다.

// 잘 생긴 아이! 사울 왕도 다윗도 ‘잘 생겼다’, 준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아이 모세도 같은 평가를 받는다. 다시 말해 ‘잘 생겼다’는 것은 멋지게 생겼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는 뜻이다. 모든 피조물은 기본적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랴!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다는 것이 곧 잘 생겼다는 증거다. 생김새와는 상관이 없다. 레위 사람 부부는 아기가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리 없었겠지만, 산파들과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경외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석 달 동안 애지중지했고, 결국 갈대상자에 담았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라는 우산 아래 보호하시고 번성하게 하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모세를 이집트 왕궁이라는 우산 아래 보호를 받으며 자라게 하셨다. 누이와 모친은 아이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아기를 갈대방주에 담아 갈대 숲에 두었다. 하나님의 손에 맡긴 것이다. 노아의 방주와 마찬가지로 갈대상자는 나일 강을 따라 흘러가지 않았다. 갈대 숲에 놓인 그곳에 머물렀다. 아이의 울음은 이집트 공주를 불러냈고, 아이의 누이는 담대할 수 있었고, 모친은 젖을 물릴 수 있었다. 하나님은 가족이라는 우산을 씌워 주시기도 하시지만, 때론 원수를 우산으로 삼게 하신다.

// 성도는 그리스도라는 방주에 거하는 자들이다.  

출애굽기 1:1-22 읽기

1-5야곱과 함께 이집트로 내려갔던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블론, 베냐민, 단, 납달리, 갓, 아셀]이다. 요셉은 이미 팔려가 총리가 되어있었다. 이들에게서 난 사람들을 모두 포함하면 총 일흔 명이 애굽으로 내려갔었다.

6-7 세월이 지나, 요셉과 그이 형제와 그 시대 사람들은 다 죽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자녀를 많이 낳고 번성하여, 그 수와 세력이 커졌고, 애굽 땅에 가득 퍼졌다.

8-14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 왕이 자기 백성에게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 백성보다 수도 많고 힘도 강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신중이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더욱 불어나서,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이스라엘이 애굽의 원수들과 합세하여 애굽 땅을 치고, 애굽의 통치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집트 왕은 이스라엘 자손을 부리는 공사 감독관을 두어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강제 노동을 시켰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로 왕이 곡식을 저장하는 성읍을 건설하는 일에 끌려갔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는 점점 더 불어났고, 이스라엘 자손이 번성하였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런 이스라엘 자손을 몹시 싫어해서, 더욱 혹독하게 이스라엘 사람들을 부려먹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흙을 이겨 벽돌을 만들거나 밭일과 같은 온갖 고된 일을 시켰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우 힘들었다.

15-22 이집트 왕은 십브라와 부아라고 하는 히브리 산파들에게, 히브리 여인이 아기를 낳을 때, 낳은 아기가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 두라고 명했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므로, 바로의 왕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남자 아이들을 살려주었다. 이집트 왕 바로가 산파들을 불러 꾸짖었으나, 산파들은 히브리 여인은 이집트 여인과 같이 않고, 기운이 좋아서, 산파들이 도착하기 전에 아기를 낳아 버린다고 대답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크게 불어났고 매우 강해졌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산파들의 집안을 번성하게 하셨다.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바로는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 아이는 모두 강물에 던지고 여자 아이들만 살려 두라고 명령을 내렸다.

// 출애굽기는 일흔명의 이스라엘 가족이 이집트에 내려간 사건을 언급하면서 시작한다. 일흔명의 일가가 이집트로 갔는데,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스라엘과 열두 아들의 이름들은 족보에나 남았을 것이다. 요셉의 이름도 역사의 한 페이지에 묻혀버렸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긴 세월동안 번성했다. 주류 이집트 사람들보다 수적으로 많아졌던 모양이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이런 이스라엘을 견제하기 위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강제 노동을 시켰다. 목축을 하며 번성하던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에 시달리는 노예로 전락했다. 그래도 이스라엘 자손은 수적으로 계속 번성했다. 이집트 왕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번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에 남자 아기가 태어나거든 죽이라고 산파들에게 명령했지만, 십브라와 부아를 비롯한 산파들은 바로의 명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남자 아기들도 살려주었다. 결국 바로는 남자 아이는 모두 강물에 던지라는 명령을 내렸다.

// 일흔 명에서 이백만 명으로 (남자만 육십여만 명). 애굽에 내려간 이스라엘의 역사는 자손의 번성으로 집약된다. 몇 년, 몇 백 년이 지났는지 언급하는 대신 이스라엘 자손의 번성에 초점을 맞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제국의 우산 아래서 번성하도록 지켜 주셨다. 요셉 때에는 이집트 바로의 도움을 받으면서,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는 이집트에서 노예 신분으로 전락했지만 번성하도록 하셨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지켜 가신다. 이땅에서 성도의 삶도 마찬가지다. 세상에서 부하게 살아가게도 하시지만, 세상에서 비천하게 살아가게도 하신다. 사실 요셉이 살아 있을 때에도 이스라엘 자손은 이집트의 주류가 아니었다. 나그네였다는 것을 기억하자.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성도도 세상의 주류는 아니다. 나그네임을 기억하자.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세상 조류를 거스리는 산파의 삶을 살아내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