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6:1-10 읽기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성령으로 산다.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는대로 살아간다.]

1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형제자매 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로서,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어야 하고, 또 자신도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2.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는 서로 남의 짐을 져야 한다. 바울은 서로 남의 짐을 지는 것이 (율법을 온전케 하신)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길이라고 가르친다. 3 어던 사람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 스스로 무엇이 된 것처럼 생각하면, 그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성도가 자신을 살펴보면 자기 자신에게는 자랑거리가 있더라도 남에게까지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5 성도는 각각 자기 몫의 짐을 져야 한다. (자기 짐뿐 아니라, 남의 짐을 나눠져야할 몫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6 (특별히)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7 바울은 다시 한번 자기를 속이지 말라고 명령한다. (스스로 무엇인가 된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둔다. 8 자기 육체에다 삼는 사람은 육체에서 썪을 것을 거둔다.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생을 거둔다. 9 (따라서) 선한 일을 하다가 (성령에다 심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띠라 이를 때에 (영생을) 거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0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자고 권면한다.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선한 일을 (성령에다 심는 일을) 하자고 권면한다. 

//성령으로 난 성도는 율법에 따라서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죄를 바로 잡아야 한다. 율법을 따르면 처벌은 할 수 있겠지만 죄를 바로 잡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하고 말씀하셨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죄를 바로 잡기위한 해결책으로 비판이 아니라) 서로의 짐을 지라고 명령한다. 다른 사람의 짐을 지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길이라고 바울은 가르친다. 매순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야마로 성령에다 심는 삶이요 영생을 거두는 삶이라고 가르친다.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라는 명령도 모든 사람에게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대하라는 뜻이다. 법의 (기독교신앙과 전통의) 잣대를 버리고 성령의 잣대를 대야 한다. (우리 눈에 들쑥날쑥하게 보이는) 성령의 잣대를 사용하기 어렵다고 전통의 잣대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갈라디아서 5:16-26 읽기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유를 가진 여자의 자녀, 곧 성령으로 난 사람을 율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다고 선언한다.]

16 바울은 재차 갈라디아 교회 성도에게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라고 명령(권면)한다. 그래야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율법을 지키려는 것을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주목하자) 17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린다.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리기 때문이다. 성령과 육체는 서로 적대적이다. 두 주인이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18 성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육체의 욕망을 따르는 율법 아래 있을 수 없다. 19 육체의 행실은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것과, 이런 류의 것들이다. 바울은 전에도, 이번엗 육체의 행실에 대해 경고한다. 이런 짓들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22 육체와 적대적인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다. 23 바울은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다고 선언한다. 24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다. 25 대신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성령으로 산다. 성령이 인도해 주시는대로 살아간다. 26 성도는 잘난 체하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질투하거나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육체의 행실에서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술취암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것은 개인적인 성품/성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질투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결국 스스로를 아무리 경건하게 포장해도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면 육체의 행실을 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열매도 성도가 맺어야 할 개인적인 성품의 열매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드러내야 하는 성품이다. 이웃을 사랑하고, 공동체의 기쁨, 공동체 안에서의 화평, 이웃과의 관계에서 인내하고 친절하고 선하고 신실하고 온유하고 절제해야 한다. 바울은 이런 것을 막을 법이 없다고 선언한다. 기독교 신앙과 전통이 (1차 독자들에게는 유대교 신앙과 전통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막을 수 없다. 성도는 성령으로 산다. 성령이 인도해 주시는 대로 산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사는 성도는 개인의 경건을 자랑하거나, 기독교 신앙과 전통으로 서로 다투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오직 성도는 성령으로 산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성도는 의인이며 성령은 믿음이다. 따라서 성도의 믿음은 나의 열심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신실하게 반응(순종)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1-15 읽기

[바울은 성령을 따라 난 사람이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상속자며, 성도는 자유를 가진 여자의 자녀라고 했다.]

1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은혜에)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권면한다. 2 바울은 믿음의 가족들에게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단정한다. 3 바울은 할례를 받는 사람은 율법 전체를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4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이라고 선언한다. 5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았다면 성령을 힘입어서,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을 소망을 간절히 기다려야 한다.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냐 무할례냐는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것이다.

7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에게, 지금까지 믿음의 경주를 잘 달려왔다고 칭찬한다. 그런데 누가 갈라디아 교회 성도를 가로막아서 진리를 따르지 못하게 하느냐고 묻는다. 8 진리를 따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당연히 성도를 부르신 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9 적은 누룩이 반북 전체를 부풀게 하듯 10 다른 생각은 진리를 오염시킨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가 다른 생각을 조금도 품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전한다. 갈라디아 성도를 교란시키는 사람은 누구든지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11 바울은 자신이 할례를 전한다면 박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신 십자가의 거리낌도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바울이 받는 박해가 주로 유대교 신앙과 전통을 따르며, 십자가를 꺼림직하게 여기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12 바울은 할례를 가지고 선동하는 지체들을 갈라디아 교회에서 잘라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13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를 형제자매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부르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다고 선언한다. 바울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데 사용하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라고 명령한다. 14 바울은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으로 정리한다. 15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곧 서로 싸우면 멸망하고 말 것이니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자유를 가진 여자의 자녀인 성도는 당연히 그리스도의 은혜로 자유를 누려는 자들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할례와 율법을 이행해야 할 의무에서 해방시켜 주셨다고 선언한다. 이 그리스도의 은혜에 신실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의 마음에 부어진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믿음의 경주다. 그리스도의 은혜에 충성하는 것이,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의 경주다. 그리고 믿음의 경주는 결승점(소망)이 있다. 바울은 결승점을 향해 자유를 누리며 믿음의 경주를 하라고 명령한다. 믿음의 경주의 핵심은 율법의 완성인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나라는 의와 희락과 화평이다. 

갈라디아서 4:21-31 읽기

[바울은 믿음의 가족, 곧 성도가 함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길 원한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 성도가 다른 복음을 따른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스러워 한다. 다른 복음이란 율법아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가르침이다.]

21 바울은 율법 (유대교 신앙과 전통) 아래에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율법이 (구약성경이) 어떻게 가르치는지 바로 알라고 아브라함 이야기로 도전한다. 22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한 아들은 여종에게서 태어나고, 다른 아들은 종이 아닌 본처에게서 태어났다. 23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신을 따라 태어났고, 본처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을 따라 태어났다. 24 바울은 이것이 두가지 언약을 비유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다. 25 바울은 ‘하갈’을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을 뜻한다고 말한다. 지금의 예루살렘에 해당한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지금의 예루살렘은 그 주민과 함께 종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26 그러나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은 종이 아닌 여자이며,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성경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여, 즐거워하여라. 해산의 고통을 모르는 여자여, 소리를 높여서 외쳐라. 홀로 사는 여자의 자녀가 남편을 둔 여자의 자녀보다 더 많을 것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형제자매인 갈라디아 교회 성도를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들이라고 선언한다. 29 육신을 따라난 이스마엘이, 성령을 따라 난 사람을 박해한 것과 같이, 지금도 그렇다고 한다. 30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한다.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은 절대로 종이 아닌 본처의 아들과 함께 유업을 받지 못할 것이다.’ 하고 성경은 기록한다. 31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 여러분에게,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를 가진 여자의 자녀라고 선언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민족 신분 성별에 차이가 없다. 바울은 성령을 따라 난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상속자임을 분명히 한다.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야 말로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성령을 따라 났다고 박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한다. 그러나 약속에 따라 끝까지 담대해야 한다. 예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살라고 하신다. 

갈라디아서 4:12-20 읽기

12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를 형제자매라고 부른다. 믿음 안에서 함께 하나님의 자녀된 관계다. 바울은 자신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와 같이 되었으니 갈라디아 교회 성도도 자신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 (서로 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한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가 바울에게 해를 입힌 일이 없다고 말한다. (바울을 부당하게 대우하지 않았다고 감사하는 듯하다.) 13 갈라디아 성도는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처음 복음을 전할 때, 바울이 아팠던 것을 알고 있었다. 14 바울은 자신이, 자신의 병도 고치지 못하는 상태였음에도 갈라디아 성도가 자신을 멸시하지도 외면하지도 않았다고 감사한다. 오히려 갈라디아 성도가 바울을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심지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해 주었다고 말한다. 15 바울은 자신을 환영했던 갈라디아 성도의 그 감격이 지금 어디 있는지 묻는다. (아마도 눈이 아팠던 바울에게) 갈라디아 성도는 자기들의 눈이라도 빼어서 바울에게 주려고 했을 정도로 바울을 환영했었다. 16 그런데 지금, 바울이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갈라디아 성도와 원수가 되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17 바울은 율법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갈라디아 성도를 열심으로 가르치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라, 바울과 갈라디아 성도를 서로 떼어놓으려는 수작이라고 말한다.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는 자기들의 열심을 따르게 하려는 술수라고 말한다.  18 만약 그들이 좋은 뜻으로 갈라디아 성도에게 열심을 낸다면 바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언제든지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좋은 뜻, 좋은 일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뜻이다. 곧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를 ‘나의 자녀 여러분’ 이라고 부른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는다고 말한다. 20 바울은 이제라도 갈라디아 성도를 만나 어조를 부드럽게 바꿔서 말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만큼 다른 복음을 따르는 갈라디아 교회에서 들려온 소식이 당황스러웠다고 편지한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다. 믿음의 가족이다. 피차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렇듯 바울은 형제자매의 관계에서 갈라디아 성도의 모친이 된다. 갈라디아 성도를 ‘나의 자녀 여러분’ 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믿음의 가족은 성도가 함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다. ‘성도의 함께’를 해치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해치는 것이다. 좋은 뜻,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열심을 내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