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3:15-38 읽기

15-17 당시 유대 백성은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었다. 모든 백성은 마음속으로 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들의 생각을 읽은)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곧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오실 터인데,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습니다. 나보다 더 능력있는 분은 여러분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자기의 타작마당을 깨끗하게 하시려고, 손에 키를 들고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셔서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실것입니다.”
18-20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고백하고) 그 밖에도 많은 일을 권면하면서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요한은 기쁜 소식만 전한 것이 아니라 분봉왕 헤롯이 자기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이한 일과 헤롯이 행한 다른 모든 악한 일들에 대해서는 책망을 하였다. (헤롯은 자신을 책망한 요한을 나중에 옥에 가둔다.)
21-22 요한에게 나온 백성들은 세례를 받았다. 예수께서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 위에 내려 오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라는 소리가 울렸다.
23-38 예수께서 서른 살쯤 되셨을 때, 활동을 시작하셨다. 사람들은 예수를 요셉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누가는 요셉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다윗 >> 유다 > 야곱 > 이삭 > 아브라함 >> 노아 >> 셋 >> 아담에게 이르는 족보를 기록한다. 그리고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한다.


// 요한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힌다. 자신은 더 없이 높으신 분, 자신 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의 길을 준비하는 자라고. 마태는 유대 광야에서 세례 요한의 첫 외침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기록했다. 예수께서도 같은 말씀을 전파하시며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그러나 사역을 보면 요한은 회개로 이끄는 일에, 예수께서는 천국을 가르치시는 일에 더 집중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요한은 이것을 자신의 물세례와 예수의 성령/불세례로 구분한 것이다. 그래서 요한 자신의 물세례는 죄씻음의 시작에 불과하고 예수의 성령/불세례를 받는 것은 온전히 죄사함을 받고 곳간에 들여지는 일이라고 정리한다. 시작이 반이어도 완결은 아닌 것이다. (요한은 죄를 지적하고 예수는 죄를 용서한다…)

//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 받으셨을 때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 라는 소리가 울렸다. 아버지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선언하면 사실 다른 증거는 필요없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는 (아들인) 너를 좋아한다’ 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개역개정의 ‘기뻐한다’를 새번역에서 굳이 ‘좋아한다’로 번역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창세기 1장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연상된다. 마찬가지로 성도도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 의사 누가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요셉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보조증명한다. 결국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함을 복음의 눈으로 확인시켜 준 것이다. 족보에서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을 파내는 쭉정이가 되지 말라고 하신다. 예수께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께서 그렇게 사셨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도 평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누가복음 3:1-14 읽기

1-2 디베료 황제가 왕위에 오른 지 열다섯째 해,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 통치할 때, 헤롯이 분봉왕으로 갈릴리를 다스릴 때, 헤롯의 동생 빌립이 분봉왕으로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을 다스릴 때, 루사니아가 분봉왕으로 아빌레네를 다스실 때,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니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했다.
3-6 (하나님이 말씀을 받은) 요한은 요단 강 주변 온 지역을 다니며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누가는 요한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사야의 예언서에 적혀있는 대로 였다고 전한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하여라.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해야 할 것이니,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
7-9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진노를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 마음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말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도끼를 이미 나무 뿌리에 갖다 놓으셨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어서 불 속에 던지신다.”
10-14 요한의 말을 들은 무리가 요한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요한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속옷을 두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세리들도 요한에게 물었다. 요한은 세리들에게는”너희에게 정해 준 것보다 더 받지 말아라.” 라고 대답했다. 군인들에게는 “아무에게도 협박하여 억지로 빼앗거나, 거짓 고소를 하여 빼앗거나, 속여서 빼앗지 말고, 너희의 봉급으로 만족하게 여겨라”라고 대답했다.

// 하나님의 말씀은 황제에게도 아니고 총독에게도 아니고 세 분봉왕에게도 아니고, 심지어 두 대제사장에게도 아니고, 광야생활을 하면서 더 없이 높으신 분의 예언자로 준비하던 요한에게 임했다. 그 말씀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사야의 예언서에 적혀있는 말씀이었다. 요한은 그 말씀을 온 지역을 다니며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는 것으로 자신에게 먼저 적용했다. // 요한은 세례받으러 나오는 사람들에게 세례가 죄사함의 종착역이 아니라 출발역이라고 가르친다. 죄사함으로 진노를 피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외적 증거인)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독설을 내뿜는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 곧 의인의 회중에 들어가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말씀이 거하는 삶이라고 가르친다. // 세례 받으러 나온 사람들이 요한에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말씀이 거하냐고) 물었다. 요한은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과 나누어서 더불어 살라고 가르쳤다. 세리들에게는 정해진 것보다 더 받지 말라고 적용했고, 군인들에게는 봉급으로 만족하라고 적용했다. ‘더 받지 말고 만족하라.’ ‘나누어 주고, 더 받지 말고 만족하는 것’이 더불어 사는, 곧 회개에 합당한 좋은 열매를 맺는 삶의 기본 원리라고 적용한다.

// 시편 41편 1-3 묵상 일부를 다시 소환한다. [시인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보살피는 것이 복되다고 노래할 때 사용한 ‘돌보다/보살피다’ 라는 단어는 출애굽기에 세번 나오는데, 세 번 모두 ‘배상’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다시말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 것은 배상의 성격이 강하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초청을 받아들였을 때,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를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삭개오 집에 이르렀다고 축복하셨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 것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단순히 베푸는 것이 아닌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공동체다움을, 사회다움을 회복하는 일이다. (20/12/28)]

>> 나누어 주라. 더 받지 말라. 만족하라.

누가복음 2:41-52 읽기

예수의 부모는 해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 유월절을 지켰다. 예수가 열두 살이 되는 해에도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그런데 그들이 절기를 마치고 나사렛으로 돌아갈 때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렀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것을 모르고 하룻길을 간 후에야 예수를 찾지 못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찾아다녔다.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예수를 찾았다. 예수는 선생들 가운데 앉아서 선생들과 토론을 하고 있었다. 예수와 논쟁하며 예수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예수의 슬기와 대답에 경탄하였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를 보고 놀랐다. 마리아가 예수에게 ‘부모에게 말도 안하고, 무슨 일로 예루살렘에 남았느냐, 너를 찾느라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고 말했다. 예수는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제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가 하는 말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나사렛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순종하면서 지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 40절에서 누가는 “아기는 자라나면서 튼튼해지고, 지혜로 가득차게 되었고, 또 하나님의 은혜가 그와 함께 하였다”라고 아이 예수의 성장을 요약했다. 52절에서는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라고 청소년 예수의 성숙을 요약했다. 아이 예수와 함께 한 하나님의 <은혜>와, 청소년 예수가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에 사용된 <사랑>이라는 단어는 같은 단어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다’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다’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데, ‘사람에게도 은혜를 받았다’는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 그렇네, 52절 사랑을 은혜로 바꾸려니 어려운데, 40절을 ‘하나님의 사랑이 아기 예수와 함께 하였다’ 라고 은혜를 사랑으로 치환하니 자연스럽다. 은혜는 사랑이다. 은혜라는 단어에 갇히지 말아야겠다. 하나님의 은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은혜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은혜가 있다. // 십대 예수는 부모님께 순종했다. 귀신들이 예수의 권세에 <항복>했다와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소년 예수가 부모님께 (온전히) 순종했다는 뜻이다. 부모에게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다. // 어떤 자녀를 기대하면 좋을까? 열둘에 학자들과 논쟁을 하며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영재, 아니면 온전히 순종하는 효자. 세상은 남의 자식이 효자인 것을 부러워하면서도, 자기 자녀는 효자보다 천재가 되었으면 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내가 틀렸길 바란다. // 사람들 사이에도 은혜가 넘치면 좋겠다. 서로 사랑하자

누가복음 2:21-40 읽기

21 아기 구주도 팔일째 할례를 받았다.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이름을 천사가 일러준대로 예수라고 하였다.
22-24 요셉과 마리아는 모세의 법대로 (출산후 정한 기한이 지난 후, 남자 아이의 경우 할례후 33일째?) 정결예식을 드리러 예루살렘으로 갈 때 아기 예수를 주님께 드리려고 데리고 갔다. 첫 아기는 주님의 거룩한 사람, 곧 하나님께 속했다는 율법의 기록에 따른 것이었다. 가난한 요셉과 마리아는 율법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로 정결예식에 필요한 희생제물을 준비했을 것이다.
25-35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때, 마침 시므온이라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성령이 임한 시므온은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사람이었다. 시므온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고, 때 마침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성전에 들어왔다. 시므온은 아기를 자기 팔로 받아 안고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찬양했다. “주님, 이제 주님께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 주십니다.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백성을 위해 구원을 준비하셨습니다. 이 구원은 이방 사람들에게도 계시의 빛이 됩니다.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의 빛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께 찬양하는 이 말을 듣고서 이상하게 여겼다. 시므온은 요셉과 마리아도 축복한 후, 마리아에게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하려고 세움을 받았습니다. 비방도 받을 것입니다. 칼이 (예수의 고난과 죽음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사람들이 넘어질지 일어설지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지 안할지는) 사람의 마음 속 생각과 같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36-38 성전에는 아셀 지파에 속하는 바누엘의 딸, 안나라는 나이 많은 예언자도 있었다. 그는 칠년만에 과부가 되어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겨왔다. 안나가 (요셉과 마리아와) 아기 예수에게 다가서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 구주에 대하여 말하였다.
39-40 요셉과 마리아는 예루살렘에서 율법에 규정된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의 자기 동네,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아기 예수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로 가득 차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가 이 예수와 함께 하였다.

// 성령에 이끌려 사는 시므온과 (말씀을 맡은) 예언자 안나가 구주 예수를 알아 본 첫 두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성령의 해석을 받은 두 사람은 예수가 비록 갓난 아기였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 안나는 금식과 기도로 평생 하나님을 섬겼왔고,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왔다. (야고보는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적용한다) 다시 말해 시므온과 안나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보여주신 선한 삶인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을 실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본다. 구주 예수를 본다. 말씀을 듣기만 하지 않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실천할 때 임마누엘을 누린다.

누가복음 2:1-20 읽기

1-7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칙령으로 유다 백성들도 호적 등록을 하러 자기 고향으로 갔다. 요셉은 다윗 가문의 자손이어서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동네로 정혼자인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갔다. 그곳에서 마리아는 해산할 때가 되어, 아들을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은 만원이어서 민박집에 묶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8- 14 베들레헴 들판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밤에 주님의 한 천사가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나타나 주님의 영광으로 그들을 비추었다. 목자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 구주가 나셨다. 그는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너희가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인 것을 보면 내 말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때 갑자기 많은 하늘 천사들이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15-20 천사들이 떠나자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천사들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그 일을 확인하자고 서로 말했다. 목자들은 급히 베들레헴으로 달려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뉘인 아기를 찾아냈다. 목자들은 아기 예수를 보고, 구주가 나셨다는 천사에게 들은 말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목자들이 그들에게 전해준 말을 이상히 여겼다. 그러나 마리아는 목자들의 말을 고이 간직하고 마음 속에 곰곰히 되새겼다.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본 모든 일이 천사가 말한 그대로임을 알고 돌아가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구주로 오신 아기 예수를) 찬미하였다.


// 지난 성탄절 말씀 본문이다. 구주 탄생의 첫 소식이 목자들에게 전해졌다. 그 당시 목자들은 단순히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군인들 세리들과 더불어 부도덕한 사람들, 거짓을 일삼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삯군 목자를 떠올리게 한다. 다시 말해 목자들은 일반 백성에게 신의를 잃은 자들이었다. 그런데 구주가 나신 소식은, 법정에서 증인의 자격이 거의 없는 삯군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졌다. // 이런 목자들이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의 전달자로 선택을 받았다. 누가 거짓을 일삼는 양치기 목자들이 전하는 소식에 귀를 기울일까?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천사들의 소식을 전하기에 앞서 구체적인 증거를 찾았다. 선한 목자가 99마리 양을 들에 두고,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아 나선 것처럼, 목자들은 양 떼를 들에 두고, 베들레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천사들이 가르쳐준 증거를 찾고 찾아, 결국 구유에 뉘인 아기를 찾아냈다. 그 후에야 천사들이 전해 준, 구주 나신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했다. 이때까지 거짓 소식을 전하던 목자들의 말을 사람들이 이상히 여긴 것은 당연했다. // 그러나 마리아는 목자들이 전해 준 소식을 마치 가브리엘이 수태고지 했을 때처럼 마음에 담았다. 목자들은 들에서 천사들의 소식이 들을 때는 두려웠으나, 천사들의 말이 자신들이 본대로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알고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아기 구주를 찬미하며 돌아갔다.

>> 아기 예수는 역사 속에 오셨다. 누가는 찾고 찾아서 예수께서 역사 속에 오심을 찾아냈다. 아기 예수를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시리야 총독 구레뇨와 나란히 언급한다. 그러나 누가는 아기 구주를 높은 자리가 아닌 낮은 자리에 둔다. 더 높은 곳에서 오신, 더 높으신 분을, 더 낮은 곳, 더 낮은 사람들 가운데 둔다. 성도들이 있어야 할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