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2:1-9 읽기

1-3 (예언의 말씀, 곧 성경 말씀을 강조한 베드로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난 것과 같이, 성도를 가운데도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거짓 교사들은 파멸로 몰고 갈 이단을 몰래 끌어들일 것이라고 한다. 거짓 교사들은 자기들을 사서 소유 삼으신 주님을 부인하고 자멸할 것을 재촉하는 자들이다. 많은 사람이 자멸을 재촉하는 거짓 교사들을 본받아서 방탕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저들만 방탕해서 자멸 할 뿐 아니라 진리의 길이 비방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거짓 교사들은 탐욕에 빠져 성도의 호주머니를 털어 갈 것이라고 주의를 준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거짓 교사들에게 심판을 정해 놓으셨다. 거짓 교사들은 반드시 파멸을 받을 것이다.
4-9 하나님께서는 천사라도 죄를 지으면, 지옥에 던져서, 사슬로 묶어 심판 때까지 어두움 속에 가두신다. 옛 세계를 아까워하지 않으시고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홍수로 심판하셨다. 홍수로 심판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정의를 부르짖던 노아와 그의 가족 일곱 사람만 살려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 두성을 잿더미로 만들어, 후세에 경건하지 않은 자들에게 본보기로 삼으셨다. 그러나 무법한 자들의 방탕한 행동 때문에 괴로움을 겪던 의로운 사람 롯은 구하셨다. 롯은 그들 가운데 살면서, 그들의 불의한 행실을 보고 들으면서, 날마다 그의 의로운 영혼에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주님은 경건한 사람을 시련에서 건져내시고, 불의한 사람을 벌하셔서, 심판 날까지 가두어 두신다.


// 경건한 사람, 곧 주변의 불의한 행실을 보고 들으면서 날마다 그의 의로운 영혼에 고통을 느끼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없다. 주님은 경건한 사람을 시련에서 건져내시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성경 역사를 통해, 불의한 사람, 곧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은 반드시 파멸을 받을 것임을 경고한다.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성경에 있는 사건들을 본보기를 삼으라고 가르친다. //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회개를 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로 마음 아파 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라고 편지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을 개인적인, 혹은 성도간의 문제로만 이해해 왔었는데, 세상의 불의한 행실을 보고 들으면서 의로운 영혼에 고통을 느끼는 것도 포함될 것 같다. 이웃과 세상을 향해 하나님이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도 후회할 것이 없다. // 주님은 경건한 사람은 구원하시고 불의한 사람은 벌하신다.

베드로후서 1:12-21 읽기

12 성도가 더욱 힘써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행하고 실족하지 않아,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넉넉히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받은 진리에 굳게 서 있어도, 베드로는 또 다시 성도들을 일깨운다. 13 베드로는 이땅에 사는 동안 성도들의 기억을 일깨워서 분발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보여주신 대로, 베드로도 육신의 장마을 벗을 때가 멀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15 베드로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성도들이 이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게 하려고 힘을 쓰고 있다고 편지한다.
16 베드로 일행은 성도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준다.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은 교묘하게 꾸민 신화가 아니라고 가르친다. 베드로와 동행자들이 그리스도의 위엄을 눈으로 보았다고 증언한다. 17 베드로는 (아마도 변화산상에서) 더 없이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좋아하는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실 때에,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았다고 증거한다. 18 베드로는 거룩한 산에서 예수와 함께 있을 때에, 다른 제자와 함께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을 들었다고 간증한다. 19 (그러나) 베드로는 무엇보다 (자신의 간증보다)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다고 선언한다.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예언의 말씀에서 빛을 볼 때까지 (깨달을때까지),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다고 권면한다. 20 베드로는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일 때, 아무도 성경이 모든 예언을 제멋대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21 예언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경의 저자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받아 적은 것이라고 선언한다.


// 베드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하나님으로부터 넉넉히 받았다는 것을 알고(체험하고), 진리에 (말씀에) 굳게 서있는 성도들을 일깨운다. 베드로는 자신의 체험을 간증함으로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행하고 실족하지 않는 것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의 뜻에서 나오지 않고,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더 확실한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있으라고 성도들을 일깨운다.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도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이 신화가 아님 밝히기 위해 보조로 사용한다. 그리고 예언의 말씀이야말로 성도들이 주의를 기울여 들어야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나의 경험(간증)이 진리의 말씀보다 앞서서는 안된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행하고 실족하지 않게 하는 힘은 진리의 말씀에서 나온다.

베드로후서 1:1-11 읽기


1-2 발신자: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인 시므온 베드로. 수신자: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서, 우리의 믿음과 같은 귀한 믿음을 받은 이들문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써, 은혜와 평화가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성자 예수 그리스도들)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곧 영생을), 그의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영광과 덕을 누리게 해 주신 분이십니다. //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은 곧 영생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이요,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덕을 누리는 것이다.

4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과 덕으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심으로) 귀중하고 아주 위대한 약속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약속들로 말미암아 성도는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다.

5-7 그러므로 성도는 열성을 다하여 성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성도간의 우애를 더하고, 성도간의 우애에 사랑을 더하도록 해야한다. // 성도의 믿음(구원)은 개인적으로 시작할지 몰라도, ,개인적인 믿음의 성숙은 결국 공동체와 이웃(사랑)을 향한다.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하는 이유도 ‘나에서 우리’, ‘우리에서 이웃’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8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우애, 사랑이 성도에게 갖추어지고, 넉넉해지면, 성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이 곧 영생이다. 영생을 누리는 일에 게으르면 (믿음이 자라지 않으면) 영생이라는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다.

9 성도가 마땅이 갖추어야 할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우애, 사랑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근시안이거나 앞을 못보는 사람이다. 자기의 옛 죄가 깨끗하게 용서받았음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것은 죄 용서 받았음을 잊어버렸다는 것이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는 뜻이다.

10-11 성도는 더욱 더 힘써서, 부르심을 받은 것과 (죄사함과), 택하심을 받은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 곧 영생) 굳게 해야 한다. 그러면 성도는 넘어지지 않는다. 결국 성도는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충분히 갖추게 된다.


#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써 알자

역대하 36:1-23 읽기

1-4 백성은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삼았다. 여호아하스는 스물세 살에 왕이 되었으나, 석달만에 이집트의 왕에 의해 폐위되었다. 유다는 이집트에 은 백달란트, 금 한 달란트를 조공으로 바쳐야 했다. 이집트의 느고 왕은 여호아하스의 형제 엘리야김을 예루살렘의 왕으로 삼고,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여호아하스는 이집트로 잡아갔다.
5-8 여호야김은 스물다섯 살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렸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여호야김은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포로로 잡혀갔다. 느부갓네살은 성전의 온갖 기구도 바빌로니아로 가져가서 도성 바빌론에 있는 자기의 궁전에 들여놓았다. 여호야김의 사적과 악행은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어 있다. 아들 여호야긴이 왕위를 이었다.
9-10 여호야긴은 여덟 살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석달 열흘 동안 다스렸다.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시켜 여호야긴을 바빌로니아로 잡아갔다. 이번에도 성전에 있는 값비싼 기구를 함께 가져갔다. 여호야긴 대신 삼촌 시드기야를 유다와 예루살렘의 왕으로 삼았다.
11-16 시드기야는 스물 한 살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을 다스렸다. 그는 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그는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선포하는 예레미야 예언자 앞에서 겸손하게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느부갓네살은 강제로 시드기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에 충성을 맹세하도록 하였다. 시드기야는 억지로 하나님께 충성을 맹세했지만 결국 느부갓네살에게 반항까지 하였다. 시드기야는 고집을 부리며 뉘우치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 지도자들인 제사장들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도 크게 죄를 지어, 이방의 모든 역겨운 일을 따라했다. 심지어 거룩하게 구별한 하나님의 성전도 더럽혔다. 하나님께서는 백성과 성전을 구원하시려고 예언자들을 보내시고 또 보내셔서 경고에 경고를 거듭하셨지만 그들은 예언자들을 조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치솟았다. 백성을 바로 잡을 길이 전혀 없었다.
17-21 하나님께서는 바빌로니아 왕으로, 자신의 백성을 치셨다. 바빌로니아 왕은 유다의 젊은이들을 닥치는 대로 칼로 쳐죽였다. 심지어 성전 안에서도 살육했다. 바빌로니아 왕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잔인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의 백성을 바빌로니아 왕에게 넘기셨다. 바빌로니아 왕은 성전의 기구와 성전 안의 보물, 왕과 신하들의 보물을 모두 바빌론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성전을 불사르고 예루살렘 성벽을 헐고 궁궐들을 다 불살랐다. 칼에 죽지 않은 사람들은 바빌로니아로 포로로 잡아가서 왕과 왕자들의 노예로 삼았다. 포로들은 페르시아 제국이 일어나기까지 노예생활을 했다.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칠십년동안 땅이 황폐하게 되어 그동안 누리지 못한 안식을 다 누리게 될 것이다 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셨다.
22-23 페르시아 고레스가 왕위에 오르자 주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고레스로 하여금 온 땅에 다음과 같은 조서를 써서 돌리게 하셨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땅 위의 모든 나라를 주셔서 다스리게 하시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그의 성전을 지으라고 명하셨다. 이 나라 사람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모두 올라가게 하여라.]

// “하나님(신)을 섬기는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신)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페르시아 고레스 왕의 조서의 핵심이다. 하나님(신)은 단지 이스라엘의 하나님(신)만이 아니시다. 창조의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은 창조의 하나님을 주변 이방 나라들처럼 현지화 했다. 결국 하나님을 목석 우상화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크시다. 하나님은 세계화, 아니 전우주적 하나님이시다. 제국의 왕들, 느부갓네살, 고레스는 단지 저 멀리 계시는 하나님을 인식했을 뿐이다. 그래서 불쌍하게도 자신들은 하나님(신)께서 자신들과 함께 계시기를 추구하지 못했다. 하나님을 찾는 자,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함께 계신다. 임마누엘.

역대하 35:20-27 읽기

20-24 요시야가 성전 정돈을 마치고, 무교절을 마치고 난 뒤에, 이집트의 느고 왕이 유프라테스 강 가에 있는 갈그미스를 치려고 올라왔다. 요시야는 그것을 막아섰다. 느고가 요시야에게 유다와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싸움을 걸어온 갈그미스를 치려고 나섰으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니, 하나님께 멸망을 당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거역하면서까지 자신을 막는 일을 멈추라고 전령을 보냈다. 그러나 요시야는 돌이키지 않고 변장까지하고 느고와 싸웠다. 사관은 요시야가 하나님께서 느고를 시켜서 하시는 말씀을 듣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요시야는 므깃도 평원에서 싸우다가 화살을 맞았다. 화살을 맞은 요시야는 예루살렘으로 이송되어 왔으나 숨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요시야를 조상들의 묘에 장사했다.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의 죽음을 슬퍼했다.
25-27 예언자 예레미야가 요시야의 전사를 애도하는 애가를 지었다. 요시야의 남은 사적은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어 있다.


// 정말 어렵고 힘든 것이, 이방 왕(사람)들을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분별력이다. 요시야가 느고의 전령을 듣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호사밧, 히스기야의 승전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요시야가 느고에게 맞선 것은 요시야의 교만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느고는 골리앗이나 산헤립처럼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않았다. 하나님(신)의 심판의 도구로 갈그미스를 치겠다고 전령을 보냈다. 심지어 하나님(신)께서 느고 자신과 함께 계신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요시야는 느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변장까지 했다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해야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감췄다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교회밖 사람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분별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오히려 교회 내에서 평안하다 평안하다 평안하다를 말하는 거짓 하나님의 사람이 판치는 현실이다.

// 요시야의 죽음이 슬프다. 순교정신이 하나님의 뜻을 가리고 말았다. ‘죽으면 죽으리라’의 신앙은 내 뜻을 고집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죽으라 하시면 죽기까지 순종하겠다는 자세다. 결국 내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니 주님께 물어야 하고,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