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8:12-27 읽기

12-13 미가야를 데리러 간 신하가 미가야에게 이미 다른 예언자들이 아합왕의 승리를 예언하였으니 미가야도 아합왕의 승리를 예언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미가야는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자신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만 말하겠다고 대답했다.

14-15 미가야가 아합에게 오자, 아합은 북이스라엘-남유다 연합군이 길르앗의 라못을 치러 올라가는 것이 좋는지 아닌지 물었다. 미가야는 올라가라고 대답했다. 승리는 아합의 것이요, 길르앗 라못은 이미 아합의 손에 넘어온 것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아합은 미가야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진실을 말해 달라고 말했다.

16-17 미가야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온 이스라엘이 이산 저산 흩어져 있는 것이 마치 못자 없는 양 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이스라엘에게는 인도자가 없다. 제각기 집으로 평안히 돌아가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미가야는 자신에게 길한 것은 예언하지 않고 흉한 것만 예언하다고 다시 말했다.

18-22 미가야가 말을 계속했다.[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주님께서 보좌에 앉으시고 그 좌우에 하늘의 모든 군대가 둘러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가 이스라엘의 아합왕을 꾀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거기서 죽게 하겠느냐? 라고 묻자, 둘러 서 있던 자들이 이렇게 저렇게 저마다  자기 의견을 말하는데, 한 영이 하나님께 자신이 아합을 꾀어내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꾀어내겠는냐고 물으시자, 그는 아합의 모든 예언자들이 모두 거짓말을 하도록 시키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라.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다. 그렇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거짓말 하는 영을 왕의 예언자들의 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에게 재앙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23-24 미가야의 말을 듣고 있던 시드기야가 다가와 미가야의 뺨을 때리며 주님의 영이 언제 나를 떠나서, 어떻게 너에게 말씀하셨느냐고 따졌다. 미가야는 네가 골방으로 들어가 숨는 그날, 시드기야 스스로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25-26 아합이 미가야를 잡아서 아몬 성주와 요아스 왕자에게 끌고가서 옥에 가두고 자신이 전쟁에서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빵과 물을죽지 않을 만큼만 먹이라고 명령했다. 미가야는 아합이 정말로 평안히 돌아오실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런 예언을 하지 않으셨을 것이라며 당당하게 말했다. 미가야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해 두라고 말했다.

>> 미가야는 “ 주께서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에게는 인도자가 없다. 제각기 집으로 평아니 돌아가게 하여라” 라고 예언했다. 미가야는 강력한 아합왕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을 보면서 목자 없는 양떼 같다고 주께 아뢨다. 아합이 목자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주께서 미가야의 말에 ‘그렇다 이스라엘에는 인도자가 없다. 제각기 집으로 평안히 돌아가게 하여라.’ 라고 신탁하셨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인도자로 모시지 않고 있다고 책망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군대 대장으로 모시지 않는다면, 전쟁의 결과가 뻔하니, 전쟁을 하지 말고 백성들을 평안히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아합은 400:1을 따랐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850(450):1의 싸움에서 진 것을 망각했나보다. 아합의 마음은 이미 완악해서 자신에게 길한 것만 듣고 흉한 것은 듣지 않았다. 길하든 흉하든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해야 한다. 예언(말씀)에 길흉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순종은 고난이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나, 불순종은 평안이어도 망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역대하 18:1-11 읽기

1 여호사밧은 재물을 많이 모으고 큰 명예를 얻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아합 가문과 혼인의 유대를 맺었다. // 다윗의 길을 따르며,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는 여호사밧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2-5 몇해 (2년) 뒤 여호사밧이 사마리아로 가서 아합을 방문했다. 여호사밧을 대접한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함께 길르앗 라못을 치러 올라가자고 제안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자신도 아합과 같은 생각이고, 남유다의 군대가 곧 북이스라엘의 군대라며 아합과 함께 싸우러 가겠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대합하고 나서야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주님의 뜻을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아합은 사백명의 선지자를 모아 놓고 그들에게 물었다. 아합의 선지자들은 올라가서 싸우면 하나님께서 길르앗 라못을 아합의 손에 넘겨 주실 것이라고 대답했다.

6-8여호사밧은 아합에게 주님의 예언자가 또 있는지 물었다.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주님의 뜻을 물어볼만한 사람으로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예언자가 있다고 대답한다. 아합은 미가야는 자신을 싫어하고, 자신에게 길한 것을 예언한 적이 없고, 언제나 흉한 것만 예언하는 자라고 소개한다.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하나님의 예언자를 두고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고 반응했다. 아합은 하는수없이 미가야를 불렀다.

9-11 아합과 여호사밧은 사마리아 성문 어귀 타작 마당에 왕복을 입고 보좌에 앉아있었다. 미가야를 부르런 간 사이, 사백명이나 되는 예언자 중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주님께서 아합에게 길르앗 라못을 쳐서 파멸시키라고 하셨다고 (거짓) 예언을 했다. 다른 예언자들도 시드기야의 예언에 동참했다. 길르앗 라못으로 진군하십시오. 승리는 아합왕의 것입니다. 주께서 이미 그 성을 아합 왕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 22:4). 1절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던 이유는 17장에 기록된 대로  다윗을 길을 따르며,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랐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왜? 갑자기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연합을 하게 되었을까? 잠언 30:9절에서 지혜자는 배불러서 (부와 재물과 영광을 얻으면) 하나님을 모른다, 하나님이 누구냐 할까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렵다고 경고한 그대로다. 결국 여호사밧이 북이스라엘과 혼인의 유대를 맺은지 몇년 (개역개정은 2년) 밖에 안걸려셔 일이 터지고야 만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습관?이 여호사밧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의와 불법이 함께하고, 빛과 어둠이 사귀면 어떻게 되는 지 교훈한다.

>> 아합의 불의에 유착된 예언자들이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대언하리요. 그럼에도 시드기야는 자신이 만든 철뿔들을 들고 주님의 말씀이라며 아합의 승리를 예언했다. 모름지기 예언자는 자신의 뿔을 내려놓고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달하는 일에 충실해야 하는데, 자신의 뿔을 들었다는 것은 하늘 높은줄 모르는 교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런 자세로 전하는 자칭 목사들도 많지 않은가?)

>> 두 마음을 품지 말라고 하신다. 겸손 겸손 겸손 하라고 하신다.

역대하 17:1-19 읽기

1-6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왕이 되었다. 여호사밧은 북이스라엘의 침략을 막으려고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유다 전국과 아사가 정복한 에브라임 여러 성읍들을 요새화 하고 군대를 배치하고 수비대를 강화했다. 여호사밧은 왕이 되면서부터 다윗의 길을 따랐다. 주님께서는 다윗의 길을 따르는 여호사밧과 함께 계셨다. 여호사밧은 바알 신들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고, 이스라엘 사람의 행위를 따르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이런 여호사밧이 다스리는 남유다를 굳건하게 해주셨다. 온 유다 백성이 어호사밧에게 선물을 바쳤고,  여호사밧의 부귀와 영광이 대단하였다. 여호사밧은 오직 주님께서 지시한 대로 살기로 다짐하고 유다에서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없앴다.

7-9 여호사밧 삼년에, 여호사밧은 제사장과 레위사람들을 지도자로 세워, 주님의 율법책을 가지고 전국을 돌면서 백성을 가르치게했다.

10-19 유다 주위에 있는 모든 나라는 유다를 보호하시는 주님이 두려워서, 감히 여호사밧에게 싸움을 걸지 못했다. 오히려 어떤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사밧에게 조공을 바쳤고 , 아라비나 사람들도 선물을 바쳤다. 여호사밧의 세력이 점점 커졌다. 여호사밧은 성읍들을 요새화하고 군사들을 배치했다. 유다 가문 중에 천부장 아드나가 용사 삼십만을 거느렸고 여호하난이 이십팔만, 아마샤가 용사 이십만, 베냐민 가문에서 엘리아다가 이십만, 여호사밧이 십팔만을 거느렸다. (르호보암 때 40만, 아사 때 58만, 여호사밧에 와서는 백만대군이 넘는 총 116만)

>>  사관이 병적을 기록한 이유는 단순히 군사력이 증강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남유다로 모여든 사람 수가 점점 늘어났다는 것을 뜻하지 않을까? 원래 유다와 베냐민 지파뿐만 아니라 남북 분열 후  북이스라엘에서 넘어 온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북이스라엘의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려고 했던 이유도, 남유다로 건너가려는 북이스라엘 사람을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주 목적이었을 것이다. 15장에 보면 이스라엘에서도 많은 사람이 남유다의 아사에게 모여들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들이 아사에게 모인 이유는, 주하나님께서 (아사와) 함께 계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사관은 밝힌다. 여호사밧은 하나님대신 군사력을 의지해서 병사를 늘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보내 주시는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고, 용납하고 받아들여  적재적소에 배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새로 편입된  사람들을 위해 (물론 백성 모두를 위해) 제사장과 레위사람들을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로 삼았을 것이다. 그러자 주변 나라들도 조공과 선물을 바치게 되었고, 남유다에 편입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 계속되지 않았을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는 삶의 선순환이다.

역대하 16:1-14 읽기

1-6 아사 왕 삼십육년에 (총 재위기간이 41년)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왔다. 바아사는 라마를 건축해서 유다의 아사 왕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했다. (38선이네) 아사는 성전창고와 왕실 창고의 모든 금과 은을 모아 다마스쿠스에 있는 시리아 벤하닷 왕에 보내, 시리아로 하여금 북이스라엘 바아사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남유다와  동맹을 맺어 바아사가 떠나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벤하닷은 아사의 청을 받아들였다. 벤하닷과의 동맹이 깨어진 바아사는 라마 건축을 멈추고 돌아갔다. 바아사가 돌아가자, 아사는 바아사가 라마 건축에 쓰던 건축자재를 가져와 게바와 미스바를 보수했다.

7-10 선견자 하나니가 다음과 같이 아사왕에게 말했다. [왕이 시리아 왕을 의지하고, 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이제 시리아 왕의 군대는 왕의 손에서 벗어나 버렸습니다. 에티오피아 군과 리비아 군이 강한 군대였고, 병거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지만, 왕이 주님을 의지하셔서, 주님께서 에티오피아와 리비아를 왕의 손에 붙이셨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온 땅을 두루 살피셔서 전심전력으로 주님께 매달리는 이들을 힘있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이번 일에, 왕은 어리석게 행동했습니다. 이제 왕은 전쟁에 휘말리실 것입니다.] 아사는 선견자의 말에 화가나서, 하나니를 감옥에 가두었다. 그때 아사는 백성들을 어느정도 학대했다.

11-14 아사의 행적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어있다. 아사가 왕이 된지 39년에, 발에 병이 나서 위독하게 되었다. 아사는 병이 나서 아픈데도 주님을 찾지 아니하고 의사들을 찾았다.  아사는 왕이 된지 41년 되던해에 죽어 다윗성에 장사되었다. 사람들은 온갖 향으로 아사를 장하하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려고 큰 불을 밝혔다.

>> 선왕 르호보암의 뉘우침으로 아사는 평안한 가운데 10년을 다스렸다. 하나님은 에티오피아 침공으로 아사를 시험하셨고 아사는 주님만을 의지함으로 시험을 통과해, 35년까지 이번에는 20년동안 평안함을 누릴 수 있었다. 재위 36년에 하나님은 북이스라엘 바아사를 사용해 또 다시 시험하셨는데, 아사는 주님대신 시리아 벤하닷을 의지하고 말았다. 당장 북이스라엘의 공격에서는 벗어났지만, 대신 시리아의 속국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 대신 의지하는 것이 생긴 아사는 공의와 정의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고 백성들을 학대하기까지 했다. 아사가 왕이 된지 39년째, 하나님은 아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할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아사는 끝까지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의사들을 찾았다. 아사는 왕이 된지 41년 되던해에 죽었다. 하나님보시기에 좋은 일, 올바른 일을 한 아사 왕의 마지막이 아쉽다.

>> 모태신앙이 아닌 대학에서 예수 믿은 나, 햇수를 헤아렸더니 36년차 예수쟁이다. 신앙에서도 꼰대가 되어버린, 좋은 일과 올바른 일을 하셨던 소위 잘나갔던 목사님들을 보게 된다. 나라고 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별수 없기에 주님만 찾고, 주님만 의지하게 되니 이또한 감사의 제목이다. 사람들로부터 온갖 향과 큰 불로 애도받는 것보다, 주님 다시 뵐 때까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역대하 15:1-19 읽기

1-7 하나님의 영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했다. 아사랴가 아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사 왕과 온 유다와 베냐민은 제가 하는 말을 들으십시오. 왕과 백성이 주님을 떠나지 않은 한, 주님께서도 왕과 백성을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왕과 백성이 주님을 찾으면, 주님이 만나 주실 것입니다. 만일 왕과 백서이 주님을 버리면, 주님께서도 왕과 백성을 버리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참 하나님이 없이 지내왔습니다. 가르치는 제사장도, 율법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이스라엘이 주하나님께 돌아와 주님을 찾으면, 주님께서 그들을 만나 주셨습니다.어려운 일이 있을 때, 땅위의 모든 백성이 평안하지 못하였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성읍과 성읍이 서로 싸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서로 싸우도록 버려두셨습니다. 그러나 왕과 백성은 기운을 내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왕과 백성이 하는 수고(행위)에는 상급이 따를 것입니다.]

8-15 아사는 오뎃의 아들 아사랴 예언자가 주는 말씀을 듣고 용기를 내어, 유다와 베냐민 온 지방과 에브라임 산간지여그이 점령지역 성읍에서 역겨운 물건들을 없애 버렸다. 아사는 성전 현관 앞에 있는 제단도 보수하였다. 아사는 유다와 베냐민 모든 백성과 유다로 와서 함께 사는 에브라임, 므낫세, 시므온 지파 백성도 모두 불러모았다. 주하나님게서 아사와 함께 계시는 것을 보고, (북)이스라엘에서도 많은 사람이 남유다의 아사에게 모여들었다. 이때가 아사 왕 십오년 세 번째 달이었다. 이날 아사와 백성은 그들이 가져온 전리품 가운데서 소 칠백마리와 양 칠천마리를 주님께 희생제물로 바쳤다.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에서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아사랴의 예언이 임했나보다.) 아사와 백성은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하나님만 찾기로 하는 언약을 맺었다. 주하나님을 찾지 아니하는 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든지 다 죽이기로 하였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함성과 나팔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큰 소리로 주님께 맹세하였다.  백성은 맹세 하는 것이 기쁘기만 하였다. 그들은 마음을 다해 맹세하고 정성을 다해 주님을 찾았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만나 주셨고 사방으로 그들에게 평안을 주셨다.

16 아사왕은 할머니 마아가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다고 해서, 마아가를 태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마아가가 만든 우상을 토막내어 가루로 만들어서 기드론 냇가에서 불살라 버렸다. 아사 때, 모든 산당이 제거된 것은 아니었지만 주님을 사모하는 아사의 마음은 평생  한결같았다. 아사는 선왕과 자신이 거룩하게 구별하여 바친 은과 금과 그릇들을 성전에 들여놓았다. 이때부터  아사왕 삼십오년까지 전쟁이 없었다. (에티오피아에게 승전한 후 20년이 지났다.)  

>> 르호보암 이야기가, 르호보암의 아들 아사가 다스리는 십년동안 나라가 조용했다로 끝나서 아사 재위기간이 10년이라고 생각했는데 총 35년이다. (재위기간 총 41년.) 10년의 평안과 20년의의 평안 사이에 에티오피아의 침공이 있었다. 첫 10년동안 아사는 산당과 우상을 제거하는 한편 군사를 키웠다. 하나님은 하나님보시기에 착하고 바른 일을 하는 아사에게 에티오피아를 보내 시험하셨다. 아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이 시험을 통과했다. 그리고 모친 마아가라고해서 예외를 두지 않고 산당과 우상제거를 이어갔다. 사관은 주님을 사모하는 아사의 마음은 평생 한결같았다고 기록한다. 그래서 첫 10년의 두배 20년의 평안이 주어졌다.

>> 평안하다고, 하나님보시기에 착하고 올바른 일을 행한다고 위기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감당하기 힘든 시험이 닥치기도 한다. 그러나 주님을 떠나지 않는 한 주님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세상이 어수선 해도 낙심하지 말라고 하신다.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수 안에서 평안하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예수께서는 혼자가 아니라 성부하나님과 함께라고 하셨다. 평안은 임마누엘의 열매다. 아니 임마누엘이다. 아사랴를 통해 우리에게도 말씀하신다. “너희가 하나님과 함께 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너희와 만나게 되신다. 너희가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도 너희를 버리신다.” 임마누엘은 두배의 기간이 아니라 영원한 평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