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1:2-20 읽기

2-4 여호사밧을 이어 여호람이 왕이 되었다. 여호람에게는 아사랴, 여히엘, 스가랴,아사랴, 미가엘, 스바댜라는 동생들이 있었다. 여호사밧은 여호람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여호람의 동생들에게는 은, 금 재물과 요새화된 유다의 성읍들을 후하게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여호람은 왕위를 굳히자, 자기 동생들을 모두 죽이고, 이스라엘 지도자들 일부도 함께 죽였다.

5-7 여호람은 서른 두 살에 왕이되어 예루살렘에서 8년동안 다스렸다. 여호람은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기 때문에, 아합 가문의 길을 따라, 북이스라엘 왕들이 간 길을 갔다. 곧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다윗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다윗 왕가를 멸망시키시지 않으셨다.

8-10 여호람이 다스리는 동안, 에돔이 유다에 반기를 들고 자기들의 왕을 따로 세웠다. 여호람은 지휘관들을 이끌고 병거를 모두 출동시켰으나 오히려 에돔 군대에게 포위를 당하고 말았다. 밤에 겨우 포위망을 뚫고 빠져 나왔다. 이렇게 에돔은 유다의 지배를 벗어났다. 이것을 보고 립나 성읍도 반란을 일으켜 여호람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하나님을 저버린 결과라고 사관은 평가한다.

11-15 여호람은 유다의 여러 산에 산당을 세우고, 예루살렘 주민들로 음행을 하게 하였다. 유다 백성을 그릇된 길로 가게 했다. 이런 여호람에게 하나님은 엘리야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셨다. [왕(여호람)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왕이 아버지 여호사밧이 가던 길과, 할아버지 아사가 가던 길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 왕들이 걷던 길을 따라가고 있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아합 왕가처럼 음행을 했다. 왕은 여호사밧에게서 난 자식들, 곧 여호람보다 착한 동생들을 죽였다. 이제 나 주가 네 백성, 네 자식들, 네 아내들, 네 모든 재산에 큰 재앙을 내리겠다. 너는 창자에 중병이 들고, 그 병이 날로 더 악화되어, 마침내 창자가 빠져나올 것이다.]

16-20 주님께서는 블레셋과 에티오피아에 인접하여 사는 아라비아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겨 여호람을 치게 하셨다. 그들은 유다를 침공해서 왕궁의 모든 재물을 탈취하고, 여호람의 아들들과 아내들까지 잡아갔다. 막내 아들 아하시야만 남겨두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주님께서 여호람에게 벌로 창자에 불치의 병이 들게 하셨다. 여호람은 꼬박 두해를 앓다가 창자가 몸밖으로 나와서 심한 통증에 시달리다 죽었다. 백성은, 왕들이 죽으면 향을 피우는 관례가 있었지만 여호람에게만은 향을 피우지 않았다. 다시말해 여호람의 죽음을 슬프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이 여호람을 다윗 성에 묻기는 하였으나 왕실 묘지에는 장사하지 않았다.

>> 여호람은 아버지 여호사밧의 길도, 할아버지 아사의 길도 따르지 않았다. 하물며 다윗의 모든 길을 따랐을리 만무다. 사관은 여호람이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아, 아합왕가와 같이, 북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따라 주님보시기에 악한 일과 음행을 하였다고 평가한다. 그의 대표적인 악행이 착한 동생들을 죽인 일이다.  사관이 여호람 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 아사와 여호사밧이 그렇게도 없애려고 했던 산당을 세우고 백성으로 하여금 음행을 하게 하고, 그릇된 길로 가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과의 언약을 지켜내신다.

>> 첫단추.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을 때부터 악한 길은 예견되었어야 했다. 여호사밧의 잘못이라고 해야하나. 하여간 하나님을 저버린 여호람, 그 댓가는 혹독했다. 에돔이 남유다를 저버렸고, 립나도 여호람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블레셋과 아라비아 사람들이 침략해서 왕궁의 모든 재물을 탈취하고 아들들과 아내들까지 잡아갔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2년동안의 투병후 여호람이 죽자 아무도 그를 추모하지 않았다. 백성마져 여호람을 버렸다고 할 수 있겠다.

>> 하나님은 다윗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여호람의 막내아들 아하시야(개역개정:여호아하스)은 지켜주셨다. 여호람이 막내아들 이름을 ‘하나님이 붙드심’으로 지었다는 것이 놀랍다. 여호사밧 아들들의 이름의 뜻도 찾아봤다: 여호람 (하나님이 세우심 혹은 하나님은 존귀하심), 아사랴 (하나님이 도우심), 여히엘 (하나님이 살아계심), 스가랴 (하나님이 기억하심), 미가엘 (누가 하나님 같으랴?), 스바댜 (하나님이 숨기심). 믿음의 부모가 자녀에게 붙여준 이름같이 자녀들이 살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름 값 하는 것도 하나님께 달렸다.

역대하 20:20-21:1 읽기

20-24 다음날 여호사밧과 백성은 하나님을 믿어, 군사를 앞장 세우는 것이 아니라 노래하는 사람들을 군대 앞에서 행진하게 했다. 노래하는 사람들은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라는 찬양을 부르며 앞장서서 행진했다. 싸움은 주께서 하셨다. 복병?을 시켜서 암몬과 모압과 세일 산에서 논 사람들을 대파하셨다. 암몬과 모압이 세일 산에서 온 사람들을 쳐죽이고, 후에는 암몬과 모암이 서로 쳐 죽였다. 유다의 행진 앞에는 적군의 주검뿐이었다.  

25-30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이 한 일이라고는 전리품을 챙기는 것이었다. 전리품이 너무 많아 사흘이나 걸렸다. 나흘째 되던 날 그들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 주님을 찬양했다.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여호사밧을 앞세우고 기쁨에 넘쳐 예루살렘으로 개선했다. 주님께서 원수를 쳐서 유다 백성을 기쁘게 해 주셨다. 사람들은 악기를 연주하며 성전으로 나아갔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원수들를 치셨다는 소문에 이방 모든 나라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다. 여호사밧이 다스리는 동안 나라가 태평했다. 하나님께서 사방으로 평안함을 주셨기 때문이다.

31-34 여호사밧은 서른 다섯에 왕이되어 25년동안 다스렸다. 여호사밧의 어머니는 실히의 딸 아수바였다. (실히는 창(무기)라는 의미를 갖고 아수바는 파멸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사관이 굳이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호사밧은 아사의 길을 걸었다. 아사의 길을 걸었다는 것은 주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지만 산당만은 헐어버리지 않아 백성이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게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 사관은 17장 6절에서 여호사밧이 유다에서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없애버렸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나보다. 여호사밧의 나머지 역사는 예후의 역사책과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었다.

35-21:1 사관은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가 동맹을 맺은 일을 덧붙인다. 아하시야 왕은 악행을 많이 저지른 왕이었음에도 아하시야의 권유로 여호사밧은 다시스로 왕래할 상선을 만들었다.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에게 와서 아하시야와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이 만든 상선을 부술 것이라고 예언했고, 예언대로 되었다. 여호사밧이 세상을 떠나 다윗 성에 장사되었고 여호람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 여호사밧. 아합 때에 악한 자를 돕고 하나님을 싫어하는 자들 편에 서서 이미 책망을 받지 않았던가? 그래서 뉘우치고 온 유다를 돌며 하나님의 법을 가르쳤기에 암몬, 모압, 마온의 침략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다시 재물과 평안을 얻지 않았던가? 그런데 다시 많은 재물과 평안을 얻자 악행을 많이 저지른 아하시야 왕과 다시 동맹을 맺었다.  17장 6절에보면 재임초기부터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없애버렸다고 기록하는데 재위 말기에 산당만은 헐어버리지 않아, 백성이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게 하지 못했다고 한다. 궁궐의 편안함을 버리고? 온 유다를 다니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가르쳤고, 하나님의 공의가 이뤄지도록 지방과 예루살렘에 재판관을 세우고 종교와 행정의 최고 책임자를 세우고 행정관들을 세웠건만 많은 재물과 평안은 다시 악행을 많이 저지른 아하시야와 동맹을 맺게 했다. 많은 재물과 평안은 솔로몬도 아사도 여호사밧도 오점을 남기게 한  단초다. 아사의 길과 여호사밧의 길로는 부족하다. 다윗의 모든 길을 본받아야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곧 곁길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재물과 평안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찾는데 마음을 쏟아야 한다. 많은 재물과 평안보다 환난이 유익하다. 하나님을 찾게 하니까.

역대하 20:1-19 읽기

1-5 얼마 뒤, 모압과 암몬이 마온 사람들과 결탁하여 여호사밧에게 싸움을 걸어왔다. 전령들이 여호사밧에게 큰 부대가 사해 건너편, 에돔에서 쳐들어 왔고 엔게디까지 밀고 왔다고 보고했다. 놀란 여호사밧은 주님께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령을 내렸다. 백성이 각 성읍에서 예루살렘에 모여 주님의 뜻을 찾았다. 여호사밧이 성전에서, 유다와 예루살렘 회중 가운데 서서 다음과 같이 공적 기도를 했다.

6-12 [우리 조상의  하나님, 주님은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계 만민을, 열방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권세와 능력이 주님께 있습니다. 아무도 주님께 맞설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전에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쫓아내시고 이 땅을 주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시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땅에 살면서 주님의 이름을 빛내려고 이렇게 성소를 지어 바쳤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봉헌하면서 전쟁이나 전염병이나 기근과 같은 재난이 닥쳐온다면, 하나님 앞, 곧 주님의 이름을 빛내는 이 성전 앞에 모여서, 재난 가운데 주님께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들으시고 구원해 주실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암몬과 모압자손이 우리를 공격해 왔습니다. 출애굽할 때, 주님께서 우리 조상이 암몬과 모압의 당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셔서 우리 조상은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고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우리에게 앙갚음을 하러 왔습니다.주님께서 우리에게 유산으로 주신, 주님의 땅에서 우리를 쫓아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십니다. 그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를 치러 온 전 큰 대군을 대적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어찌할바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주님만 바라봅니다.]

13-14 유다모든 백성, 아녀자들까지도 주님 앞에 나와 서 있었다. 이들 회중가운데 야하시엘이라는 레위사람이 있었다. 그에게 주님의 영이 내렸다. (사관은 이례적으로 야하시엘의 아버지는 스가랴. 할아버지는 브냐야, 증조는 여이엘, 고조는 맛다니야라고 4대조의 이름까지 기록한다.) 야하시엘이 이렇게 말했다.

15-17 [온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 여호사밧 왕은 듣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적군이 아무리 많다 하여도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아라. 이 전쟁은 너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맡아 하는 것이다. 내일 그들을 마주하여 내려가라. 적군은 시스 고개로 올라올 것이다. 여루엘 들 맞은 편에서 그들을 만날 것이다. 전쟁에서 너희가 싸울 필요가 없다. 그저 대열만 정비하고 굳게 서서, 나 주가 너희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는 것을 보아라.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겁내지 말아라. 적들을 맞아 싸우러 나가거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18-19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댔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도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했다. 고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목소리를 높여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 악한 자들을 돕고, 하나님을 싫어하는 자들의 편에 섰던 여호사밧에게 내릴 하나님의 진노는 암몬과 모압의 침공이었나보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준비를 해왔다. 군사력 증강이 아니라 온 유다를 다니면 하나님의 법을 가르치고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도록 가르치고 종교, 행정, 사법을 하나님의 공의로 이루지도록 체제를 정비했다. 그 결과로 여호사밧은 암몬과 모압의 침공에 군사력으로 맞서지 않고 바로 하나님을 찾는다. 여호사밧 혼자만이 아니라 온 백성이 함께 하나님을 찾았다. 여호사밧과 온 유다가 하나님을 찾자 하나님께서 대신 싸우시고 승리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함께 있겠다고 하셨다. 여호사밧과 온 유다는 싸움을 하기도 전에 (미리) 하나님을 찬양했다.

성도들이 힘써야 할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외환으로부터 우리들을 지켜 주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이땅에서도 하나님나라를 맛보며 사는 비결이다.

역대하 19:4-11 읽기

4-7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에 살면서 온 유다를 돌아다니며 백성들을 백성의 조상의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였다. 유다의 요새화된 성읍에 재판관을 세워, 단순히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판할 때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재판을 하라고 당부했다. 재판관으로서 하나님을 항상 두려워하라고 했다. 하나님은 불의하지도 않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며, 뇌물을 받지도 않으시는 분이시니 재판할 때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라고 가르쳤다.

8-10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에서도 레위인들과 제사장들과 가문의 족장들 가운데서 재판관을 임명해서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경우와, 주민들의 송사를 재판하게 했다. 이들에게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온 마음을  다해 재판을 수행하라고 지시했다.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이 대법원이 되어 다른 성읍에서 살인과 범법으로 송사를 제기해 오면, 지방 성읍 재판관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도록 경고하여 바르게 재판하라고 경고했다. 재판관들이 범죄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재판관들에 내릴 것이며, 경고한 대로 바르게 재판하면 재판관들은 무죄할 것이라고 당부한다.

11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든 문제는 대제사장 아마랴에게 최종 권위를 주었고, 왕에 속한 모든 문제는 유다지파의 우두머리, 이스마엘의 아들 스바댜가 최종 권위를 가지며, 레위사람들에게는 법정에서 결정된 사항들이 실행되는 것을 감독하는 관리 책임을 주었다. 여호사밧은 이들에게 용기를 내어 자신이 지시한 것을 잘 실행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이루는 사람들의 편을 드신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마무리 했다.

>>  패전에서 돌아온 여호사밧을 기다리는 것은 악한 자를 돕고 하나님을 싫어하는 자들을 편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였다. 그러나 선견자는 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힌트를 덧붙였다. 바로 선한 일을 하고 마음을 오로지 하나님을 찾는 일에 쏟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던 것이다. 여호사밧은 시리아의 침공에 대비한 국방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을 하고 마음을 오로지 하나님을 찾는 일이 무엇인지 실천하고자 했다. 그래서 왕으로서 편안히 궁궐에서 즐긴 것이 아니라, 온 유다를 두루 다니며, 백성들도 하나님께 돌아와  선한 일을 하고 하나님을 찾도록 하였다. 그리고 권력을 종교권과 사법권과 행정권을 분리해서 권력의 독점으로 오는 폐단을 없앴다. 무엇보다도 종교, 사법, 행정의 책임자들에게 왕의 눈치를 보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라고 당부했다. 선한 일을 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쏟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노는 미루어질 수 밖에 없다.  

역대하 18:28-19:3 읽기

28-29 아합왕과 여호사밧은 시리아와 싸우려고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갔다.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자신은 왕복을 벗고 싸움터로 나갈테니 여호사밧은 왕복을 그대로 입고 나가라고 말하였다. 두 왕은 전장으로 들어갔다.

30-34 시리아 왕은 지휘관들에게 오직 이스라엘 왕만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지휘관들은 왕복을 입고 있는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인줄 알고 달려들었다. 여호사밧은 기겁을 하여 소리쳤고,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을 도와주셨다. 시리아 지휘관들로 하여금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알고 여호사밧 추적하는 것을 그만두고 돌아서게 하셨다. 한편 한 군인이 무심코 쏜 화살이 아합에게 명중되었다. 화살은 아합 갑옷 이음새 사이를 뚫고 들어갔다.  아합은 병거를 모는 부하에게 자신이 부상을 입었으니 퇴각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싸움이 격렬해서 퇴각을 못하고 병거에서 저녁때까지 버티다가 해거름에 죽고 말았다.

9:1-3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여호사밧에게 말했다. [왕은, 악한 자를 돕고, 주님을 싫어하는 자들의 편을 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왕께서 그렇게 행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왕에게 내릴 것입니다. 그러나 왕께서는 선한 일도 하셨습니다. 아세라 목상을 이땅에서 없애 버리시고 마음을 오로지 하나님을 찾는 일에 쏟으신 일도 있으십니다.]

>> 아사 왕 때,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는 시리아와 동맹을 맺고 남유다를 공격했었다. 그러자 남유다는 시리아와 동맹을 맺고 북이스라엘을 물리쳤다. 이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동맹을 맺고 시리아에게 대적한다. 어제의 동지가 적이되고, 적이 동지가 되었다. 하나님은 이것을 옳다고 인정하지 않으신다. 악한 자를 돕고 주님을 싫어하는 자들의 편을 드는 것이 옳지 않다고, 그에 따른 하나님의 진노가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선한 일을 하고 하나님 찾는 일에 마음을 쏟은 여호사밧이었기에, 하나님은 전장에서 기겁을 하고 하나님을 찾은 여호사밧을 도우셨다. 본문에는 악한 자를 돕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의 편을 든 여호사밧에게 내린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다. 여호사밧은 선견자의 말을 듣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다시는 두마음을 품지 않았으리라.

>> 두 길, 하나는 선한 일을 하고 하나님을 찾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악한 자를 돕고 주님을 싫어하는 자들의 편을 드는 길이다. 여호사밧은 두 길을 모두 맛보았다. 앞으로 어느 길을 택할지 뻔하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다. 예수천당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며, 불신지옥은 악한 자를 돕고 하나님을 싫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예수천당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불신지옥이다. 그냥 믿고 안믿고가 아니라 순종 불순종의 차이다. 성도가 택해야 할 길도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