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1:37-54 읽기

37-44 예수께서 바리새판 사람의 식사초대를 받아 그 집에 가 앉으셧다. 그 바리새파 사람은 예수께서 잡수시기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신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다. 주님은 그 바리새파 사람의 마음을 읽으시고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지금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은 잔과 접십의 겉은 깨끗하지만,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 어리석은 사람들아, 겉은 만드신 분이 속도 만들지 않았느냐? 속에 있는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해질 것이다.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있다! 너희는 박하와 운향과 온갖 채소의 십일조는 바치면서, 정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소홀히 한다! 그런 것들도 반드시 행해야 하지만, 이런 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야 했다.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 받기를 좋아한다!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무덤을 드러나지 않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그것이 무덤인지를 알지 못하게 하여 그들로 부정하게 한다!]

45-52 율법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하는 것은 자신들까지도 모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 그렇다. 너희 율법교사들에게도 화가있다! 너희는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우면서, 너희 자신은 손가락 하나도 그 짐에 대려고 하지 않는다!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세운다. 그렇게 함으로 너희 조상들이 저지를 소행에 찬동한다.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였는데,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세운다. 하나님의 지혜(구약)에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겠는데, 그들은 그 가운데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창세 이래로 예언자들이 흘린 피, 곧 아벨의 피에서 비롯하여 사가랴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 대가를 이 세대에게 요구할 것이다.이세대가 책임을 져야 한다. 너희 율법교사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지식의 열쇠를 가로채서, 너희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막았다!]

53-54 예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서 나오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께 앙심을 잔뜩 품고, 여러가지 물음으로 예수를 몰아붙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서 트집을 잡으려고 했다.

// 바리새파 사람은 자신의 식탁에 예수를 초대했지만, 결국은 화를 자초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외식하지 말고, 위선을 버리고, 자신들의 배를 채우려고 모아놓은 것들로 구제하는 것이 진짜 깨끗해 지는 것이라고 정공을 찌른다. 이어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고 세번, 율법학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세번 펀치를 날리신다. 바리새파 사람의 초청에 응하셨지만 그들이 파놓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도 죄인의 길에 서지도 오만한 자의 자리에도 앉지 않으셨다. 결국 예수께서는 그 바라새파 사람의 집에서 나오실 수 밖에 없었다.

// 바리새파 사람들에 화가 있다고 세번 말씀하신다. 1) 정의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소홀하다. 2) 높은자리에 앉고 인사받기를 좋아한다. 3) 사람들이 죽음의 길로 다니는지 모르게 한다. 무덤인 줄 모르고 무덤을 밟은 사람도 부정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한통속인 율법학자들에게도 화가 있다고 세번 지적하신다. 1) 가르치기만 하지 스스로는 실천하지 않는다. 2) 옛 예언자들의 무덤을 세우는 것은 예언자들을 두번 죽이는 꼴이다. 3) 하나님 나라에 (지식에) 대한 열쇠를 가로채서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교사들은 한통속이다. 예수님의 지적은 한마디로 너희들이야 말로 하나님 나라의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 자부심이 강했던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교사들은 예수가 자신들의 정곡을 찌르자, 회개가 아니라 앙심으로 반응한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근심으로 회개하여 구원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높은 자리와 인사받는 자리에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세상 염려로 사망의 길을 택한다. ㅠㅠ

// 깨끗해지는 법은 참으로? 쉽다. 구제하는 것이다. 탐욕과 악독으로 쌓아 놓은 것이라도 이제는 그것을 가지고 구제하라고, 가난한 자들, 사회적 약자를 돌보라고 하신다. 물질적이지만 않다. 높은 자리 인사받는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도 가난한 자들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길이다. 갑질을 하지 않고 뇌물을 받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정의와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깨끗해 지는 길이다. 예수께서 산상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라고 가르치셨다. 깨끗해 지는 것은 마음이 청결해 지는 것이데, 41절 말씀은 역설적으로 마음의 청결은 ‘구제’의 삶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하신다.

// 예수께서는 청결하지 않은 마음 속에 거하실 수 없다. 예수를 마음 속에 초청(영접)했다면, 내가 만든 법을 버리고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시면 예수께서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실 것이다.      

누가복음 11:27-36 읽기

27-28 무리 가운데서 한 여자가 예수의 육신의 어머니가 참으로 복이 있다고 목소리 높여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은 변함이 없다.

29-32 무리가 모여들자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구하지만, 이세대는 요나의 표징 밖에는 다른 표징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과 같이, 인자 곧 나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다. 남방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찾아 왔는데, 이 세대 사람들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는데도 그의 지혜를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선포를 듣고 회개했는데, 이 세대 사람들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는데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33-36 [등불을 켜서 움속에나 말 아래 놓는 사람은 없다. 등경 위에 놓아 두어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그 빛을 보게 한다. 네 눈은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성하면 네 온 몸도 밝을 것이요,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네 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지 살펴보아라. 네 온 몸이 밝아서 어두운 부분이 하나도 없으면, 마치 등불이 그 빛으로 너를 환하게 비출 때와 같이, 네 몸은 온전히 밝을 것이다.]

// 복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다. 금수저 은수저를 낳은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진 자들이 복되다. 하나님의 가족이 복되다.

// 무리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징을 구하지만 예수께서는 요나의 표징을 말씀하신다. 무리들은 축귀보다 자신들을 압제하고 있는 원수, 곧 로마에 대한 즉각적인 불의 심판을 예수께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 세대가 악한 세대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요나의 표징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인 줄 안다면, 이 말씀을 나에게만 적용시켜야 할 것이 아니라, 원수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교훈하시는 것이다. (사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 니느웨에서 하나님말씀을 전했지만, 끝까지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고집했었다.) 이방인 남방 여왕도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려고 솔로몬을 찾아왔고, 니느웨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는데,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고 하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라고 부르시는 유대 백성들이 말씀앞에 나오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심을 꼬집으신다. 요나의 표징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아끼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다.

// 주의 말씀은 내 길에 빛이요 내 발에 등이다. 주의 말씀은 내가 어디로 가야할 지 보여주고, 내가 당장 어디에 발걸음을 놓아야 할지도 가르쳐 준다. 내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지 살피는 것은 내가 가야 할 곳, 곧 푯대가 분명한지 살피라는 것이다. 등불이 나를 환하게 비춘다는 것은 내가 주의 길을 따라 간다는 (주의 말씀을 듣고 지킨다는)  징표다. 주의 말씀이야 말로 내가 어디로 가야할 지, 또 어떤 길로 가야하는 지 밝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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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부터 오는 표징과 요나의 표적 (눅11:29-32)
무리들이 예수께 요청한 하늘로부터 오는 표징이 무엇일까? 무리들은 축귀나 치유보다 자신들을 압제하고 있는 원수, 곧 로마에 대한 즉각적인 불의 심판을 예수께 기대하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이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 세대가 악한 세대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신다. 하나님나라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한다는 촉구다. 멸망당할 악을 행하는 이방인이라도 회개하면 용서받는 것이 요나의 표적이다.
요나는 하나님이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인 줄 알았다. 요나는 이 말씀을 유대 민족에게만 적용시켜야 할 것이 아니라, 불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할 니느웨, 곧 원수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요나는 결국 실패했다.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말씀을 전했지만, 끝까지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고집했었다.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했지만, 요나서는 요나의 온전한 회개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끝맺는다.
이방인 남방 여왕도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려고 솔로몬을 찾아왔고, 니느웨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는데,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고 하는, 하나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유대 백성들이 말씀 앞에 나오지 않고 회개하지 않음을 꼬집으신다. 요나의 표적은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아끼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다. 심판이 아니라 용서가 기적이다.
사족: 예수께서는 죽은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으시는 분이시다. 마태는 구약을 많이 인용하는데 …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말씀도 그렇고, 요나가 사흘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을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을 것이라는 예언에 갖다 쓰신 것도 그렇고. 말씀을 읽을 때 1차 독자들에게 주신 의미를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혜사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오늘 나에게 주신 적용이 말씀의 생명력이 아닐까?

 

누가복음 11:14-26 읽기

14-23 예수께서 벙어리 귀신을 하나 내쫓으셨다. 그 귀신이 나가니 말 못하는 사람이 말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무리가 놀랐다. 무리 중에 더러는 예수가 귀신들의 두목인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내쫓는다고 하였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에게 하늘에서 내리는 표징을 보여달라고 시험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어느 나라든지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망한다. 가정도 서로 싸우면 무너진다. 마찬가지로 사탄이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사탄의 나라가 어떻게 서 있겠느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다면, 너희들은 누구를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느냐? 너희가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힘을 입는 그들이 너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판단해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안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이미 임한 것이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키면 그 소유가 안전하지만,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키면 그가 믿던 무기와 재산을 다 빼앗길 것이다.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고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사람은 분열시키는 사람이다.]

24-26 [악한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와 쉴 곳을 찾아 헤맸지만, 그 귀신은 찾지 못하고 자기가 나온 집으로 되돌아 갔다. 되돌아 가보니, 집은 말끔히 치워져 있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귀신은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산다. 그러면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비참하게 된다.]

// 예수께서는 앞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아내는 사람들을 자기 편이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무리들은 분명 저들도 하나님의 이름, 혹은 하나님의 천사들의 이름으로 귀신은 내쫓아 냈을 것인데, 곧 같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내쫓아내면서도, 예수께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자 예수는 자기들 편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는 귀신의 편이어야 한다는 논리를 편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탄의 나라가 자중지란에 빠질만큼 어리석지 않다고 하신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자신이 사탄보다 더 강한 분이심을 선언한다. 그리고 자기(예수)편에 서지 않으면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선언하신다. 다시말해 하나님 나라를 누리지 못한다고 하신다.

// 예수께서는 축귀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하신다. 그것은 바로 예수의 이름이다. 예수의 이름이 없이는 귀신이 다시 그 집 (사람)의 주인이 된다고 하신다. 그것도 귀신들의 소굴이 될 수도 있다고 하신다. 그러면 그 사람의 형편이 처음보다 더 비참하다고 하신다. 성도는 강한 사탄보다 더 강하신 예수라는 문패를 달아야 한다. 그렇다고 예수라고 쓴 부적을 지니거나 십자가 목걸이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로 옷입어야 한다. 곧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어야 한다. 보혜사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힘주시는대로 주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누가복음 11:1-13 읽기

1-4 예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기도를 마치셨을 때 제자들이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과 같이 자신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할 때에 이렇게 말하라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고,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십시오.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십시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우리가 용서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5-13 기도할 내용을 가르쳐 주신 예수는 제자들에게 기도할 때 졸라대라고 가르치신다. 구하는 너희에게 주실 것이고, 찾는 너희가 찾을 것이고, 문을 두드리는 너희에게 문을 열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구하는 사람이 받고 찾는 사람이 찾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라고 하신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생선대신 뱀을 주지 않듯이, 달걀대신 전갈을 주지 않듯이, 악인이라도 자녀에게는 좋은 것들을 주듯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졸라대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이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신다.

// 기도의 내용 I – 1)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자녀들이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는 것이다. 곧 효도 하는 것이요,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것이다.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마땅히 순종해야 할 아버지이시다. 2) 하나님 나라를 오게 하는 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겠다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은 곧 우리 왕이시다. 3)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 이상을 구하지 않는다. 배가 부르면 하나님을 모른다 할까, 배가 고프면 도둑질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4) 우리의 죄를 용서 받아야 한다. 하나님과 화평하는 길이다. 5)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용서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기도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잣대다. 6)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는 두 주인을 섬기지 않게, 혹은 두 마음을 품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다.

// 기도의 내용 II – 이 기도는 개인적인 기도라기 보다 다분히 공동체적 기도다.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교회가 공동체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먹칠하지 않아야 하고, 하나님의 통치도, 하나님나라도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공동체가 받아야 한다. 나만을 위해 필요한 양식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필요한 양식을 구해야 하고, 개인적인 죄만 아니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의 죄까지 자백하고 용서 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빚진 모든 사람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원수들까지 용서해야 한다. 두 주인을 섬기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않도록, 또 두 마음을 품지 (진리도 붙잡고 세상가치관도 따르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 기도의 방법 – 친구보다 더 가까운 아버지께 졸라대라고 하신다. 그런데 나의 필요가 아니라 방문자의 필요를 위해 졸라대라고 하신다. 내 배를 채우기 위한 빵이 아니라 객의 배를 채우기 위한 빵을 위해 졸라대라고 하신다. 기도의 내용에도 기도의 방법에도 ‘나’를 위한 기도는 없다.

// 기도의 결과 – 아버지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신다. 내가 졸라대는 것보다 더 좋은, 아니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내가 졸라대는 것을 안주신다고 계속 졸라댈 필요가 없다. 그러나 공동체 이웃을 위해서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실 때까지 졸라대야 한다. 보혜사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실 때까지.

누가복음 10:25-42 읽기

25-28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를 시험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반문하셨다. 그 율법교사가 율법에 이르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그에게 “네 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라고 답변하셨다.

29-37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예수께서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 두고 갔다.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나귀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다음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여관 주인에게 주고 그 사람을 잘 볼봐 달라고 부탁했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겠다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는지 그 율법교사에게 물으셨다. 그가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그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라고 명하셨다.

38-42 예수 일행은 어떤 마을로 들어가셨다.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다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했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마리아 보고 자신을 거들어 주라고 말씀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있다. 주님의 일은 많지 않다.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아무도 그것을 마리아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

// 영생! 율법은 영생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예수께서는 율법교사에게 아는대로 실천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칭찬에? 율법교사는 자신이 예수를 시험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얼마나 이웃을 사랑하는 지 보이기 위해 이웃이 누구냐고 예수께 물었다. 예수께서는 강도만난 사람을 도운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웃이 되어준 사마리아 사람 같이 자비를 베풀라고 하셨다.

// 영생을 주제로 한 율법교사와 예수의 대화에서 다시한번 예수의 평지설교, 곧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가르침을 (6:27-36 )떠올려 본다. 율법교사는, 죄인들도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는 사람이요, 좋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만 좋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야기의 사마리아 인은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꾸어주는 자로 등장한다. 원수지간인 유대인을 측은히 여긴 사마리아 인을, 율법교사도 ‘자비를 베푸는 사람’으로 인정하게 한다. 예수께서 평지설교에서 말씀하신 대로 ‘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라는 말씀을 실천한 전형으로 등장한다. 예수께서 산상에서 가르치신 그대로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이다.’ 이것을 누리는 것이 영생이다.

// 율법교사는 하나님사랑과 이웃 사랑을 알았지만,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정작 몰랐다. 율법교사는 알기만 하고 실천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가 아는 만큼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율법교사가 사랑의 대상을, 이미 사랑하고 있는 자로 제한하고 있었기에, 예수께서는 원수에게도 이웃이 되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내’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 마르다와 마리아 – 주님의 일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마르다는 주님을/주님의 일행을 접대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에 반하여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예수께서는 주님의 일이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님을 교훈하신다. 미가 선지자는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높으신 하나님게 예배드릴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하는지 염려하며 들뜬 사람에게,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게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라고 예언했다. 핵심은 예수와 함께 함이다. 주님을 어떻게 섬길지 염려하고 들뜨는 것보다, 차분히 주님과 함께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 ‘내’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