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3:1-22 읽기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는 바벨론에 대한 경고를 전한다.

2-5 주하나님께서는 민둥산 같은 곳이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문으로 거룩하게 구별한 자들, 곧 주하나님을 기뻐하는 용사들을 불러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모으신다. 거룩하게 구별된 자, 하나님을 기뻐하는 용사들이 많은 나라에서 하나님의 군대로 모여든다. 먼곳, 하늘 끝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와서 검열을 받는다. 온 땅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6-12 너희는 애곡하라고 노래한다. 너희는 당연히 바벨론일 것이다.거룩하게 구별되지 않은 자들과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자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주님의 날에, 전능하신 주님께 멸망당할 자들이다. 손의 힘이 풀리고 마음은 녹아내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모두가 놀라며 괴로움과 슬픔에 사로잡혀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주님의 날이 이들에게는 잔혹한 날이 될 것이다. 땅이 황폐해지고 죄인들은 진멸당할 것이다. 해와 달과 별들이 그 빛을 내지 않는다고 (비유로) 말씀하신다. 주께서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시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시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추신다고 하신다. 이 심판에서 살아남을 자는 순금보다 희귀할 것이라고 하신다.

13-19 주께서 진노의 날에, 곧 심판의 날에 하늘과 땅을 흔드실 것이라고 하신다. 세상질서를 흔드실 것이다. 더이상 바벨론이 제국의 중심이 아니라고 하신다. 바벨론에 충성하던 나라들이 자기 동족에게 돌아가고 고향으로 도망쳐도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신다. 악인에 대한 심판은 어린이와 여자라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주께서는 심판의 도구로 특별히 메대사람을 사용하신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신다. 메대사람들은 (다음세대를 책임질) 청년도 심지어 임신한 여인도 애석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이렇게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인 바벨론은 소돔과 고모라 같이 하나님께 멸망당할 것이다.

20-22 하나님께 멸망당한 땅은 거주할 사람도, 그땅에 거주하겠다는 사람도 없는 곳이 될 것이다. 심지어 목자들이 양떼들을 먹이러도 오지 않는 땅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오직 들짐승과 들양만 가득한 곳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화려했던 바벨론 궁성과 궁전도 승냥이와 들개가 차지할 것이라고 하신다. 그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멀지 않다고 하신다.

>> 주님은 제국의 화려한 궁궐이 아니라 민둥산 같은 곳으로 거룩하게 구별된 자요 하나님을 기뻐하는 의의 용사들을 부르신다. 그러나 주께서 정하신 문을 들어서면 그곳이 하나님나라다. 그 때에 거룩하게 구별된 자요 하나님을 기뻐하는 용사로 부름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악행과 교만과 강포로 심판을 받을 것인가? 답은 뻔한데, 우리들의 눈은 민둥산이 아니라 제국의 화려한 빌딩숲을 향한다. 민둥산 너머의 하나님나라를 보지 못하고 들짐승의 울음소리만 들릴 제국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경고는 곧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다. 악행과 교만과 강포로부터 돌이키라. 악행과 교만과 강포를 일삼는 자들로부터 약자들을 보호하라. 약자들 편에 서라고 하신다.

이사야 12:1-6 읽기

(형제가 화목되는 날, 거룩하신 하나님을 진실되게 의지하는 남은 자들이 시온에 거주하는 날, 성도들이 구원을 완성하는 날,) 그날 성도들은 주께 감사할 것이다. 주께서 진노하심을 푸시고 안위함을 주시는 날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곧 구원이시다 라고 노래한다. 하나님만 신뢰하기에 두려움이 없다고 노래한다. 구원받은 백성으로 주하나님만 힘과 노래요 구원이시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남은 자, 곧  돌아온 자들도 구원의 기쁨을 만끽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구원의 기쁨을 만끽한다는 것은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구원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을 행하신 하나님을 만국에 선포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인다는 것이다. 주하나님만 찬송해야 할 이유는 주하나님이 바로 구원이라는 아름다운 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자는 이것을 온 세상에 알게 해야 한다. 시온의 주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요 주인이십니다’ 라고 소리 높여 선포하라고 명령한다.

>> 구원은  하나님이 행하신 아름다운 일(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일)이다. 심히 좋은 새창조다. 새피조물이 되었다면 하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는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다. 구원받은 자라면 주어를 ‘나’에서  ‘하나님’으로 바꾸고 살아가야 한다

이사야 11:1-16 읽기

거룩하신 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하는 남은 자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그런데 어떻게 남은 자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할 수 있을까? (주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메시야를 통해 가능하다고 알려준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고 주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이분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가 아니시면 누구란 말인가? 육신으로 오셨지만 주하나님의 영, 곧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주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으로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께서는 주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으신 분이시다. 예수께서는 사람을 외모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공의로 정직으로 가난한 자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부요하고 교만한 악인에게 사형을 내리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철두철미하게 공의와 성실로 행하신다.

공의와 성실이 행해지는 나라 곧 하나님나라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들과 뛰노는 나라다. 암소와 곰이 함께 먹고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뒹굴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 나라다.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해도 괜찮은 나라며, 젖 뗀 어린 아니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해가 없는 나라다. 주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한 나라이기 때문에 해됨도 상함도 없는 나라다.

이새의 뿌리에서 난 한 싹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일이 가능하게 하신다. 열방이 예수께 돌아올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거한 곳이 영화로운 하나님나라이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하는 남은 자들을 열방의 강대국의 손에서 (하나님 아는 것에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다. 주하나님께서 예수를 푯대로 세우시고 열방을 향하여 예수를 따르라고 하신다. 에브라임이 더 이상 유다를 질투하지 않게 되고, 유다를 괴롭히던 열강은 끊어지고 유다도 더 이상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않는 나라가 될 것이다. 화목하게 된 에브라임과 유다는 주변나라들을  복종시킬 것이다. 주하나님은 열강들을 흔들어 버리시고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하는 남은 자들이 시온의 대로를 걸을 수 있게 인도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던 날과 같게 하실 것이다.

>> 하나님나라. 화목된 나라. 바울은 하나님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곧 더 먹으려고 더 마시려고 서로 싸우는 나라가 아니라) 성령 안에 있는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으로 중만하신 예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라고 적용한다. 해됨도 상함도 없는 나라. 성도들이 꿈꿔야 할 공의와 성실이 행히지는 나라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으시는 분이신데 하물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된 성도들이랴.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사야 10:20-34 읽기

그날에 (주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앗수르가 소멸되는 날일까?)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피난갔던 자들이 더이상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할 것이라고 하신다. 남은 자 야곱(이스라엘)의 남은자가 전능하신 하나님게로 돌아 올 것이라고 하신다.

이사야는 남은 자만 돌아온다고 강조한다.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은 넘치는? 공의로 파멸될 것이라고 밝힌다. 만군의 주하나님께서 작정된 파멸을 세상 끝까지 행하실 것이라고 선언한다.

만군의 주하나님께서 시온에 거주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앗수르가 애굽처럼 때리고 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시온에 거주하는’은 거주지역이라기 보다는 ‘말씀에 순종하는’의 뜻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대다수의 백성들은 주하나님의  진노로 멸절당하겠지만 남은 자들에 대한 분을 그치신다고 하신다. 대신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앗수르를 오렙바위의 미디안 족속과 홍해에 수장된 애굽 마찬가지로 멸절시킬 것이라고 하신다. 더이상 앗수르의 압제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풍요를 자랑하던 앗수르의 멍에가 제풀에 부러질 것이라고 하신다.

앗수르의 위세는 아얏, 미그론, 믹마스, 게바, 라마, 기브아, 갈림, 라이사, 아나돗, 맛메나, 게빔, 놉을 휩쓸고 시온산 곧 예루살렘을 치겠지만, 만군의 주하나님께서 앗수르를 꺾으실 것이다. 앗수르의 교만을 낮추실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 앗수르라는 숲의 나무들을 베실 것이라고 하신다.

>> 거룩하신 주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하는 남은 자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 온다. 대다수 이스라엘 백성은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다. 그러나 주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하는 남은 자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앗수르도 결국은 자기 교만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기를 치는 자에게 의지하고 굴복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께 진실되게 의지하는 자들이다. 하나님께 굴복하라고 하신다. 하나님께 피난하라고 하신다.

이사야 10:5-19 읽기

주하나님께서는 앗수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진노의 막대기와 분노의 몽둥이로 사용하신다. 주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앗수르, 그런 앗수르 사람에게도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은 앗수르 사람을 보내어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를 치게하며, 주님을 노하게 한 백성을 쳐서 탈취와 노략하게 하시고 짓밟게 하신다. 그런데 앗수르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의 생각을 알지 못했다. 그저 자기의 유익을 위해 다른 나라들을 파괴하며 멸절하는데 골몰했다. 주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아닌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했다.

앗수르는 자기가 왕중의 왕이라며 교만했다. 갈로 갈그미스 하맛 아르밧 사마리아 다메섹 모두 굴복시켰다고 자랑한다. 우상들을 섬기는 많은 나라들을 굴복시켰다고 자랑한다. 예루살렘과 사마리의 신상도 우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하나님께 대한 교만이다. 당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도 우상으로 가득했음을 지적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

주께서는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행하시기 위해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 후에 주께서는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 곧 교만과 오만을 벌하실 것이다. 앗수르는 자신의 힘과 지혜로 다른 나라들을 굴복시켜 영토를 확장하고 재물을 약탈했다고 자신의 총명을 자랑했다. 스스로 용사라고, 온 세계를 얻었다고 떠벌였다. 그러나

주께서는 앗수르는 도끼요 톱이라고 하신다. 주께서 사용하시는 심판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하신다. 어찌 도끼와 톱이 사용자에게 스스로를 자랑하고 큰 체 하겠느냐고 말씀하신다. 회초리가 회초리를 든자를 몽둥이가 몽둥이를 든 자를 움직이려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하신다. 따라서 만군의 주하나님께서 살진 앗수르를 파리하게, 앗수르의 영화를 불사를 것이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불과 불꽃이 되셔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던 앗수를 하루아침에 소멸시키실 것이라고 하신다. 앗수르의 영광이 전부 소멸될 것이라고 하신다.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지는 것 같이 울창한 숲과 같았던 앗수르에 손가락을 꼽을 수 있는 몇그루의 나무만 겨우 남을 것이라고 하신다.

>> 매일의 삶에서 경건을 훈련하지 않으면 마음이 완악해지고 눈이 높아져 교만하고 오만해 진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떠벌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앗수르가 주는 교훈을 잊지 말라고 하신다. 동방의 예루살렘을 운운하는, 촛대가 한반도로 옮겨졌다고 교만한 한국교회도 앗수르의 길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신다. 하루아침에 소멸되지 않을 지 몰라도 병자처럼 점점 쇠약해 지고 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돌이킬 시간이 있다. 경건의 근육이 다 빠지기 전에 다시  재활운동을 해야 한다. 겸손하게 경건의 훈련을 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뜻과 마음의 생각을 알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