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2:10-20

르우벤, 갓, 므나셋 동편 반지파는 요단을 건너 자신들의 소유지로 갔다. 사관은 이들이 가나안 땅 요단 언덕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제단을 쌓았다고 기록하는데, 이 요단가가 요단 서편인지 동편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문맥상 요단을 건너자 마자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새번역 공동번역 참조)

요단 동편에 제단을 쌓았다는 소식을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자손들이 들었다.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자손들은 실로에 모여 요단 동편의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와 싸우려고 했다. 그러나 우선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각지파의 대표 한명씩 열명을 길르앗 땅 (요단 동편)으로 보내어 사실관계를 확인하도록 하였다. 비느하스를 대표로 한 조사단은 요단 동편 지파에게 “주하나님의 온 회중이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 주하나님을 따르는데서 돌아서서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아 너희가 오늘 주하나님께 거역하고자 하느냐?”라고 물었다. // 자신들을 이스라엘 온 회중이라고 하지 않고 주하나님(여호와)의 온 회중이라고 말함으로써, 요단 동편의 두지파 반이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아닌지 따졌다고 할 수 있다..

비느하스는 특별히 민수기 25장의 브올의 죄악을 언급했다.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죄에서 정결함을 받지 못했다고 자성했다. 주하나님 대신 다른 신에게 제사하여 주하나님을 배역할 때 주하나님께 온 이스라엘 회중에게 진노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비느하스는 특별히 요단 동편은 원래 약속의 땅이 아니기 때문에 깨끗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만약 요단 동편이 깨끗하지 않다면 요단 서편에 와서 열지파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지라고 제안했다. 주하나님의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쌓아 주하나님께 거역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것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한 뜻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공동체의 뜻도 거역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브올의 죄악고 함께 아간의 범죄도 언급한다. 브올이 음행을 상징한다면, 아간은 불순종을 뜻한다. 불순종으로 인해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했다고 한다. 한사람의 잘못으로 당사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아이성 전투에서) 멸망당했음을 예로 든다.

//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지파들은 요단 동편의 지파들도 당연히 이스라엘의 일부로 보았다. 그래서 동편 일부가 주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인한 온 이스라엘에 내릴 재앙에 대처하고 했다. 범죄하게 하는 신체의 일부를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았다고나 할까. 사관은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대표가 자신들을 온 이스라엘의 회중이라는 표현 대신 주하나님의 온 회중(16)을 대표한다고 말함으로써 이스라엘이 혈육공동체가 아닌 주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신정 공동체임을 분명히 하는 것 같다.

비느하스는 브올 사건을 언급함으로 집단적인 음행과 그에 따른 이방신에게 제사하는 범죄에 대한 경종을, 그리고 아간을 언급함으로 한 개인의 불순종으로도 온 이스라엘이 심판받게 됨을 경고한다. 요단 동편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도 주하나님의 온 회중에 포함되어있음을 분명히 한다.

요단 동편이 깨끗하지 않은 땅이라는 것은 (요단 서편은 깨끗하다는 것은) 편견이겠지만 비느하스를 대표로 한 조사단이 깨끗함을 이유로 요단 동편을 포기하게하고 요단 서편을 공유하겠다는 제안은 굉장히 깨끗한 (구별된, 거룩한) 마음에서 나온 것 같다. 거룩함을 위해서라면 세상 욕심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이미 소유한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거룩함을 위해서라면 내것을 이웃들에게 (특별히 믿음의 형제들에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여호수아서가 끝나간다. 그러고보니 이 중요한 사건에서 여호수아는 등장하지 않는다. 요단 서편은 ‘가나안 정복’을 이끌 장수형 지도자에서 ‘가나안 안식’을 이끌 제사장 체제로 전환되어서 일까? 주어가 여호수아 한명에서 땅분배에서부터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이스라엘 각 지파 대표가 추가되더니 안식을 얻은 후 이번 사건에서부터 여호수아가 빠졌다는 것도 새롭다. 땅의 지도자는 유한하다. 브올 사건의 주인공 비느하스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이기도 하지만 제사장 시대의 도래를 뜻하는 것이다. 가나안 정복에는 주하나님의 군대로서의 이스라엘을 이끌 여호수아가 필요했다면, 가나안 안식에는 주하나님의 예배자로서의 이스라엘을 이끌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여간 오늘의 질문은 ‘무엇을 예배하느냐?’다.

 

여호수아 22:1-9

땅분배가 끝났다. 즉 가나안 점령 전쟁이 끝나자 여호수아는 요단 동편에서 땅을 얻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를 불러서 그들이 주하나님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요단 동편 땅을 주면서 명령한 대로 요단 서편 점령에 앞장섰고 여호수아의 명령에 잘 순종하였고 주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그 책임을 지켰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주하나님께서 요단 서편에도 안식을 주셨으니 그들에게 요단 동편의 소유지로 돌아가라고 허락한다. 단 돌아가서 오직 주하나님의 종 모세가 명령한 율법과 명령을 반드시 지키고 주하나님을 사랑하고 주하나님의 길로 행하며 주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주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주하나님을 섬기라고 강조하고 축복하여 보냈다.

므낫세 지파의 경우 지파의 반은 요단 동편에, 나머지 반은 서편에서 기업을 얻었다. 여호수아는 동편으로 돌아가는 므낫세 반지파에게 축복하며 요단 서편에서 얻은 탈취물을 나눠가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는 실로를 출발하여 요단을 건너 요단 동편 땅, 곧 그들의 소유지 길르앗으로 갔다.

// 가나안 점령을 마치고 요단 동편에 기업을 분배 받았지만 요단 서편 전쟁에 앞장 섰던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가 자신들의 소유지로 돌아갔다. 이들은 요단 동편에서 땅을 기업으로 받은 후 주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하신 명령에 순종하여 요단 서편 싸움에서도 선봉에 섰다. 자신들의 소유지로 돌려보내면서 여호수아는 이들에게 주하나님의 종 모세가 명령한 율법과 명령을 반드시 지키고 주하나님을 사랑하고 주하나님의 길로 행하며 주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주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주하나님을 섬기라고 축복했다. 순종은 끝이 있는게 아니다. 일터에서 치열하게 싸울 때나 가정에서 편안하게 쉴 때나, 세상에서나 교회에서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가나안 점령은 지파별 각개 전투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싸움이었다. 가나안 일곱 족속은 이스라엘에게 대적하기 위해 연합하였지만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이해타산이 맞아서였다. 그러나 열두지파가 이스라엘로 하나되는 것은 이해타산을 따져서가 아니라 주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순종이었다. 가나안을 차지한 이스라엘은 앞에 놓여진 숙제를 미리 풀어 보았다고나 할까? 이스라엘 지파들은 이해타산을 따져서 이합집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언약에 따라 연합해야 함을 가나안 점령을 통해서 배우게 하셨을 것이다. 결국 온 이스라엘이 차지해야 할 기업은 땅이 아니라 주하나님이시다. 교회(성도)도 이해타산을 따져서 이합집산을 하는 모임이 아니다. 동서로 갈라진 므낫세 지파로 하여금 지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전리품을 공유하라고 권면(명령)한 여호수아의 의도도 각각의 지체로서의 독립성이 아니라 한 몸에 연결된 지체임을 강조한 교훈일 것이다. 성도는 (바울의 가르침대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 한다.

안식, 하나님나라,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곳에 있다.

여호수아 21:20-45

레위 지파 그핫 자손들은 에브라임지파 중에서 성읍과 목초지를 배정받았다. 그핫자손들은 도피성으로 지정된 세겜을 포함한 8성읍을 에브라임으로 부터 받았다. 그리고 요단 서편 므낫세 반지파로부터 두 성읍과 목초지를 받았다. (20-26)

게르손 자손들은 요단 동편 므낫세 반지파로부터 도피성이 있는 바산 골란과 목초지를 비록하여 잇사갈, 아셀 지파로 부터 성읍과 목초지를 받았고, 납달리 지파중에서도 도피성인 갈릴리 게데스와 목초지를 얻어 총 열세 성읍과 목초지를 받았다. (27-33)

므라리 자손들은 스블론 지파와 르우벤 지파, 갓지파로 부터 성읍과 목초지를 받았다. 갓지파로부터는 도피성 길르앗 라못도 받았다. 므라리 자손은 총 열두 성읍과 목초지를 받았다. (34-40)

레위 자손이 이스라엘 기업 중에서 받은 것은 모두 마흔 여덟 성읍과 목초지였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온 자손에 대한 기업분배를 마쳤다. 사관은 땅의 분배를 결말지으면서 주하나님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다고 기록한다. (44) 이스라엘 주위에 대적자들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주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약속하신 선한 말씀이 모두 이루어졌다고 한다.(45)

// 도피성은 총6곳이다. 모든 도피성에 ‘살인자 도피성’이라는 수식구가 붙어있는데 사관은 왜 르우벤 자손이 준 ‘베셀’에는 안붙었을까? 그저 궁금.

땅분배는 안식으로 이어진다. 이 안식이 주어졌다는 것은 그냥 이 안식을 흥청망청 방탕하게 누리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주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약속하신 선한 말씀이 성취되었듯이 가나안 땅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할 때 안식을 누린다는 또 다른 약속이다. 이스라엘 주위에 대적자들이 하나도 없었다는 표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는 바울의 가르침과 같은 맥락이지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없는 안식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를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안식’ 할 때가 남아있고, 순종해야 그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고 배웠다. 바울은 ‘참’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권면한다. 순종하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믿는 도리, 곧 대제사장 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아야 한다. 예수를 굳게 붙잡는 방법이 말씀에 순종함으로 임마누엘을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다. 안식이다.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는 삶이다.

여호수아 21:1-19

땅배정이 끝났지만 레위 자손을 위한 거처와 목초지 배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레위 자손들이 땅분배 제비뽑기를 진행한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족장들에게 나아와 주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자신들이 거주할 성읍과 목초지를 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스라엘 자손은 주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자기들의 기업에서 레위 자손을 위한 성읍과 목초지를 주었다.

레위 자손들이 받은 거주지와 목초지도 제비뽑기로 그 가족대로 배정되었다.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유다, 시므온, 베냐민 지파 중에서 열세 성읍을, 그핫자손 중 제사장이 아닌 자손들은 에브라임, 단, 므낫세 반지파 중에서 열 성읍을 받았다. 게르손 자손들은 잇사갈, 아셀, 납달리, 요단동쪽 므낫세 반지파 중에서 열세 성읍을 받았다. 므라리 자손들은 르우벤, 갓, 스블론 지파중에서 열두 성읍을 받았다. (1-7)

이어서 사관은 세부 가문별로 제비뽑아 배정받은 거주할 성읍과 목초지를 열거한다. 먼저 아론 자손들이다. 아론 자손이 배정 받은 목초지는 헤브론이었다. 헤브론의 밭과 그 촌락들은 갈렙의 소유고 헤브론과 그 주위의 목초지는 아론 자손에게 주어졌다고  밝힘으로써 제사장들에게는 땅이 분배 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제사장 아론 자손은 유다/시므온/베냐민으로 부터 열세 성읍과 목초지를 분배받았다. (8-19)

// 레위 자손이 받은 성읍들과 목초지. 다른 지파들이 기업으로 받은 성읍들과 밭과 어떻게 달랐을까? 레위 자손이 배정 받은 성읍들과 목초지는 주인은 주하나님이시고 레위 자손은 무상영구 임대자로 보면 될까? 레위 자손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성읍과 목초지에 대한 재산권이 없었다. 당연 매매권이 없었을 것이다. 다른 지파 자손들이 자신의 땅과 소유를 지키기 위해 수고해야 했다면 레위 자손들은 그저 거주하면서 잘가꾸면 되었다. 레위 자손은 다른 지파 자손들의 땅에 섞여 거주지와 목초지를 분배받았다. 흩어진 레위 자손은 단체행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주변의 다른 지파 자손과 상부상조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나라의 전형이다.

하나님나라는 성도가 소유하는 땅이 아니다. 성도의 재산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우리는 임대자다. 언약에 따라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곳이다. 하나님나라는 지켜야 할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지키시는 분은 주인이신 하나님이시다) 우리 성도가 이웃과 함께 누리고 서로 나눠야 할 은혜다.

 

여호수아 20 (1-9)

열두지파에 대한 기업분배가 끝났다. 주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모세에게 명령한 도피성을 정하라고 말씀하신다.

도피성은 (3절)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그곳으로 피하게 하여, 죽은 사람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사람을 피하는 곳이다. 도피성에 도피하는 자는 도피성 문 어귀에서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사건을 보고해야 하고 그 성읍은 그를 받아들여 거주하게 해야 한다. 복수를 하려는 사람이 찾아와도 살인자를 복수하려는 사람에게 내주어서는 안된다.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살인을 했기 때문이다.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아 실수가 확인되면 도피성에 머물러 살수 있었다. 오직 그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어야 자기가 속한 성읍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도피성으로 요단 서쪽에 세곳과 (납달리 산지 갈릴리 게데스, 에브라임 산지 세겜, 유다 산지 헤브론)과 요단 동쪽에 세곳을 (르우벤 평지 베셀, 갓 지파 길르앗 라못, 므낫세 지파 바산골란) 구별하여 정했다. 도피성은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되었다고 사관은 분명히 기록한다.

// 도피성은 이스라엘 자손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들에게도 적용되었다. 그만큼 모든 생명은 귀한 것이다. 도피성에 피난 온 살인자는 두번 재판을 받는다. 첫번째로 도피성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 도피성 성읍의 장로들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아마 장로들의 판단은 긴박한 가운데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도피성으로 피난 온 살인자는 두번째로 회중의 재판도 받아야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합당하지 않은 살인자에게는 살인의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이처럼 도피성은 재판을 (심판을) 면제받는 곳이 아니다. 일정기간 생명을 보존하는 곳이다. 음~~. 도피성보다 나은 곳이 있다. 바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렇게 가르치는 바울이 성도들에게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라고 분명히 말한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은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사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아들(자녀)로 사는 것이다.

성도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자들이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율법’이 아니라 ‘믿음의 법’으로 성도가 된다. 믿음으로는 법없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이다. 그리스도 예수라는 도피성에도 ‘믿음의 법’이 있다.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한다. 성령의 깨닫게 하심에 순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