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6 (1-10)

1-4절은 요셉 자손이 제비뽑아 얻은 땅에 대한 기록이다. 요셉 자손은 (약속대로)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지파의 몫을 기업으로 받았다.

5절부터는 에브라임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지역을 열거한다. 특이한 점은 므낫세 자손의 기업중에서도 에브라임 자손을 위해 구분한 성읍과 마을이 있었다는 것이다. (에브라임이 므낫세에게 분배되어야 할 성읍과 마을도 배정받았다는 의미같은데… 음 동편 땅을 분배받은 므낫세 반지파 몫인가?) 또한 유다지파처럼 에브라임도 분배받은 땅 중에서 완전히 차지하지 못한 땅이 있었다. 사관은 에브라임 지파가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고 에브라림 가운데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으로 삼았다고 기록한다.

// 여호수아는 여기서 실패한 것 같다. 지도자로서 팔이 안으로 굽었다. 서쪽 므낫세 반지파까지 계산하여 자기가 속한 에브라임 자손에 땅을 더 분배한 것이나, 자신을 속인 기브온과 화친을 맺어 기브온을 종으로 삼은 잘못에 대해 (주하나님께서 별다른 징계를 하지 않으시자 ) 게셀 주민에게 그대로 적용하여 에브라임 자손의 종으로 삼은 것은 지도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관된 원리를 가지고 있지만 적용을 아전인수적으로 해서는 안된다.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은 것은 쫓아낼 힘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그들을 노예로 부리기 위해 쫓아내기 않았다는 것이 흐름상 더 맞는 것 같다. 에브라임은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기브온 주민처럼 노예로 부리면 된다는 잘못된 적용으로 완전히 쫓아내지 않았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은 진멸의 대상이었다. 완전히 쫓아내야 했다. 주하나님께서 친히 쫓아내시겠다고 (쫓아낼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게셀주민을 노예로 삼을 정도면 분명 진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에게는 주하나님의 (아마도 일시적인) 긍휼이겠지만 에브라임 자손은 자신들의 편리를위해 분명 불순종한 것이다.

나의 일관성을고집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훼손해서도 안되고 내가 속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팔이 안으로 굽어서도 안된다. 지도자라면 특히 더 그렇다. 같은 말씀이라도, 비슷한 상황이라도 매일매일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

여호수아 15 :20-63

유다지파가 가족대로 받은 땅이 열거된다.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을만큼 많은 성읍과 마을들을 분배받았다. 그러나 서편 해안가의 블레셋이 차지한 비옥한 땅을 비롯하여 많은 땅을 아직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수 13:3)

사관은 마지막 절에서 예루살렘을 그 예로 든다.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 유다자손부터 분배받은 땅을 온전히 차지하지 못했다. 여전히 차지해야 할 분배받은 땅이 있었다. 주하나님께서 쫓아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갈렙처럼 온전히 주하나님을 좇아 순종해서 차지해야 할 땅이다. 예루살렘은 후에 다윗에 의해 정복되어 이스라엘의 수도가 된다. 기럇 여부스가 기럇 다윗, 곧 다윗성이 된다 (삼하 5)

우리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를 주로,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땅을 분배받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듣고 행하는 자가 (땅을 차지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온전히 따를 때 가능하다.

그러나 불순종은 천하 예루살렘이라도 심판을 면하게 할 수 없음을 에스겔 묵상으로 배웠다. 불순종은 기럇 그리스돌를 기럇 세상으로 전락시킨다. 육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오늘날의 예루살렘이 그 결과다. 평화를 상징해야할 도시가 분쟁의 도시가 되었다.

참된 안식은 순종으로부터 나온다.

여호수아 15:1-19

유다지파가 제비뽑아 얻은 땅과 경계를 기록한다. 그 사방경계에 속한 땅이 굉장히 넓다는 인상을 받는다. 무려? 12절에 걸쳐 기록한다. 예루살렘 아래쪽을 몽땅 차지하고 시므온과 공유한 것으로 나온다. (지도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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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9절은 갈렙이 요구한 헤브론 산지와 드빌을 얻는 보다 구체적인 기록이다. 갈렙은 헤브론의 원래 이름인 기럇 아르바에서 아르바의 후손 아낙의 세아들 세새, 아히만, 달매를 쫓아내고 이름을 헤브론으로 바꿨다. 소유권 이전등기를 완료했다. 이어서 기럇 세벨도 쳐서 ‘드빌’ 로 이름을 바꿨다.

갈렙이 아무리 아낙 자손을 ‘밥’ 같이 여겼어도 헤브론과 드빌을 다 차지하기에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갈렙이 드빌을 쳐서 점령하는 자에게 딸 악사를 주겠다고 약속을 했고 옷니엘이 악사를 차지했다. 사관은 옷니엘을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이라고 소개함으로 갈렙가문에 대한 약속의 성취임을 분명히 했다. 그 아버지의 그 딸. 악사는 네겝에 있는 옷니엘에게 출가하면서 윗샘 아랫샘을 결혼선물로 갈렙으로부터 얻었다.

// 기럇 아르바가 헤브론이 되었다. 기럇이 마을 혹은 성읍이라는 뜻이므로 아르바 마을이 헤브론이 된 것이다. 마을 주인이 큰 아낙 아르바에서 갈렙과 갈렙후손들로 바뀌었다.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나는 기럇 용승에 사는가? 기럇 그리스도에 사는가? 자문하게 된다. 성도는 기럇 그리스도에 사는 사람들이다. 기럇 그리스도에 살아야 그리스도 말미암은 은혜의 샘물을 나눌 수 있다.

여호수아 14 (1-15)

요단 서편땅도 분양한다. 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 그리고 각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했다고 한다. 이들은 주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제비뽑아 지파별로 땅을 나눴다. 제비를 뽑았다는 것은 주하나님께서 친히 분배하셨다는 뜻이다. 제사장도 참여한 이유는 레위지파를 위한 거주지와 레위인 소유 가축의 목초지를 분배하기 위해서였다. 레위지파가 분배에 빠졌는 여전히 아홉지파 반에게 분배된 이유는 요셉 자손이 므낫세, 에브라임 두지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친절히 설명해 준다. 여호수아는 여전히 눈의 아들이요, 땅의 분배도 주하나님께서 모세의 명령에 따라 행했다고 기록한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넘사벽이었던 모양이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의 때부터 천국은 침노 당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해석하기 정말 어려운 말씀이다. 그런데 오늘 갈렙이 꼭 천국을 침노하는 자의 전형을 보여주는듯.) 유다 지파는 제비뽑기와 함께 약속으로 땅을 분배받는다. 우선 유다지파 대표로 사십오년전 열두정탐꾼의 하나로 주하나님께 충성했던 갈렙이 여든다섯의 노구를 이끌고 헤브론 산지를 분배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모세는 (주하나님은) 갈렙의 충성에 ‘네가 밟는 땅은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될것이다’ 라고 약속했었다. 약속에따라 갈렙은 아낙사람들이 거주하는 헤브론 산지를 주면 주하나님을 힘입어 (주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아낙자손을 쫓아내겠다고 말한다. 여호수아는 갈렙을 축복하고 헤브론 산지를 분배했고 갈렙은 주하나님을 온전히 좇아 그 땅을 차지 했다. 사관은 갈렙이 차지한 헤브론이 가장 큰 아낙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다고 주석을 단다. 그리고 그땅에 전쟁이 그쳤다고 한다. 임마누엘의 결과다.

// 사람들은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다며 핑계댈 피동적인 제비뽑기를 선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동적인 믿음으로 이땅에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약속을 주셨다. 물론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지않을 때는 제비뽑기가 좋다. 사람의 주관이 하나님의 뜻을 훼방할 여지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할 때는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여호수아는 갈렙을 축복함으로, 갈렙은 주하나님을 온전히 좇아 약속을 성취했다. 임마누엘이 전쟁을 그치게 한다.

여호수아 13:15-33

요단 동편부터 땅을 분배한다. 제일 먼저 르우벤 지파에게 기업을 주었다. 분배원칙은 ‘가족을 따라서’였다. 아마도 가족수가 기준이었을 것이다.

21절에보면 르우벤 지파는 헤스본에서 다스리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의 온나라를 차지하게 된다. 사관은 이때까지 언급하지 않던 시혼의 군주들인 미디안의 귀족 에위와 레겜과 술과 훌과 레바를 모세가 시혼 왕과 함께 죽였다고, 그리고 점술가 발람도 죽였다고 언급한다. 르우벤이 물질적으로 문화적으로 풍요롭지만 거짓영으로 가득한 땅을 차지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것 같다

이어서 갓 지파가 분배받은 땅을 열거한다. 갓 지파도 가족대로 분배 받았다.

므낫세 반지파도 요단 동편에서 길르앗 절반과 옥이 다스렸던 바산 땅을 가족대로 분배받았다. 므낫세 반지파의 대표적인 가문이 마길자손이었다고 한다.

사관은 다시한번 레위지파의 기업은 주하나님이심을 끼어넣는다.

// 땅을 분배받는 기준은 간단하다. 가족을 따라서다. 가족대로 받았다. 지파별로 지역이 결정되면 그 지역내에서 가족대로 땅을 받았다. 누가 더 받거나 누가 덜 받지 않았다. 만나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출 16장에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 거두었더라.” 라고 기록한다.

가족대로, 사람의 수효대로, 기업을 분배 받을 때 사람의 지위고하는 고려되지 않았다. 차별이 없었다. 사람들 눈에는 어떤 가족의 땅은 커 보이고 어떤 가족은 작아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남음도 부족함도 없는 분배였을 것이다. 성도들이 받은 은사도 이와같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차별이 없다. 당연히 서로 차별해서는 안된다.

다시한번 레위 지파의 기업을 언급한다. 내가 무엇을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됨에 감사하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