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8:1-14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땅을 분배받지도 기업도 받지 않았다. 주 하나님께서는 그런 레위인을 챙겨주셨다. 땅의 소산의 십일조도 받게하시고, 화제물의 일부도 챙길 수 있게 하셨다. 주 하나님께서 레위자손을 택하셔서 자신의 소유로 삼아 항상 주 하나님만 섬기게 하셨다. 고향을 떠나서도 레위자손은 주 하나님만 섬기며, 레위 자손의 권리를 누리게 하셨다.

다른 각도로 보면 레위인은 다른 백성들의 십일조와 화제물로 살았다. 따라서 토지 소산이 풍성하면, 감사할 일이 넘치면 레위인이 받을 몫도 커진다. 토지 소산이 풍성하도록 레위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백성들의 복을 비는 것일까? 아니다. 율법을 준수하여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종교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점쟁이요, 무속인, 마술사, 무당들이었다. 진언자, 신접자, 박수, 초혼자였다. 법이 아닌 (거짓) 길흉화복 예언으로 백성들을 주관하려는 자들이다. 저들은 삯을 받아 먹고 사는 자들이다. 저들의 기업은 (레위인과 달리) 사람에게 있다. 길흉화복을 주관할 수 없으니 사람들을 두렵게 하여 속여 삯을 받는다.

주 하나님은 거짓 길흉화복으로 사람들을 주관하려는, 참 길흉화복의 주관자이신 주 하나님을 멀리하게 만드는 가나안 종교인들을 가증히 여기신다. 가나안 땅에서 저들을 쫓아내신 이유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13)

순결하라. 정절을 지키라고 하신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길흉화복을 점치고 길흉화복으로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삯을 받는 사람들이 아니다. 세상에서 기업을 찾는 자들이 아니다. 주 하나님을 기업으로 받은 자다. 길흉화복을 따지는 게 아니라 주 하나님의 말씀을 따지고,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순결하라. 정결하라.

신명기 17:14-20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반드시 주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새워라.

네 형제 중에서 세워라.

병마를 많이 두지 말아라.

아내를 많이 두지 말아라.

은금을 많이 쌓지 말아라.

율법 필사본을 만들어 평생 읽어, 주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율법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왕은 교만하지 않고 주 하나님의 명령에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왕위가 장구할 것이다.

왕 제도를 (이렇게나마)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이방 왕은 근본적으로 교만한 지위다. 군림하는 왕이다. 그래서 주 하나님이 택하신 (위에 기름부으실 더 큰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아는) 자를 세워야 하고 타국인이 아닌 형제 중에서 (그래야 사람 위에 교만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세우라고 한다. 군림하는 왕은 군사력(병마)과 외교력(많은 아내)과 경제력(은금)으로 평가 받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육적 이스라엘은 이 명령에 실패했다. 결국 예수님이 오셔서 이 명령을 만족시키셨다. 예수님을 한 분 왕으로 모셔야 할 이유다.

우리에 대한 주 하나님의 기준도 그 때와 다르지 않다. 주 하나님은 교만을 싫어하신다.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않는 것이 겸손이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겸손한 자는 주 하나님의 명령을 청종한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사는 길이다.

신명기 16:18-17:13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하라.

재판거래라는 말이 안되는 뉴스가 터져나오는 우리나라. 유전무죄 무전유죄. 공의는 어디에 있는지?

공의가 약속의 땅에서 사는 원리인데 재판을 굽게하며,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며, 뇌물을 받아 지혜자의 눈을 가리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재판을 얘기하면서 우상을 세우지 말라고 한다.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우상과 같이 되지 말라는 뜻이다. 지혜자의 눈으로 의인의 입으로 재판하지 않으면 주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고 경고한다.

흠있는 제물을 드리거나 주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는 악을 행하거나 다른 신들, 우상, 일월성신을 섬기는 자들은 주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신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악이다.

그러나 두 세사람의 증언이 있어야지 한사람의 증언으로는 사형을 집행해서는 안된다. 석형(돌로 쳐서 사형)은 반드시 증인이 먼저 돌을 던지고 무리가 던져야 한다. 증인에게 책임감을 묻는다. 악을 깨끗게 하는 방법이다.

//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 라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린다. 간음현장에 어쩌면 증인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너희 중에 증인이 먼저 돌로 치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바꾸면 안되는데…

재판장과 지도자가 현장에서 판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주 하나님께서 정한 곳에 나아가 제사장과 담당 재판관에게 묻고 가르침을 받아 판결해야 한다. 판결의 근거는 주 하나님의 율법이다. 제사장과 담당 재판관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고 좌우로 치우치는 사람은 (재판관이나 지도자는, 혹은 피고는) 사형에 해당한다. 약속의 땅에서 무법과 악을 제거해야 한다.

// 음. 율법은 죄악을 벌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벌이 있으니 그만큼 삼가 하지 말라고 주어졌다.

신명기 16:1-17

너희 가운데 모든 남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과 상관없이 모든 백성은) 일년에 세번 곧 무교절(유월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을 주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에서 주 하나님을 만나라. 빈손으로 만나지 말고 주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려라.

칠칠절과  초막절을 지키라고 가르치면서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주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에서 주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라’라고 명령한다. 온전히 즐거워하라고 한다.

15장의 면제 규정에 이어서 약속의 땅에서의 삶은 ‘언약 공동체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개인적으로 구원의 부르심을 받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단독자의 삶이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삶이다. 예수 안에서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이가 없다. 계급장을 떼고 모이는 잔치다. 먼저된 자가 (큰 자) 나중되고, 나중된  (작은) 자가 먼저되는 잔치다. 다시말해 주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즐거워 하는 잔치에는 누가 높고 누가 낮음이 없는 잔치다. 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한다면 당연하다.

신명기에서 이어지는 약속의 땅에서 지켜야 하는 규례와 명령은 (지독하리 만큼) 가난한 자들을  (고아와 과부와 노비와 객) 포함시킨다. 그들을 보호하고 잔치자리에  초청한다. 그리고 함께 온전히 즐거워하라고 한다.  성도가 계급화 되어가는 교회, 지역에서 고립되는 교회가 묵상하고 배워야 할 명령이다.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의 의미에 갇혀서 정작 모든 사람과 함께 온전히 즐거워 하라는 사랑의 실천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면 좋겠다.

 

 

신명기 15

“매 칠년 끝에는 면제하라.”(1)
다짜고짜 뭘 면제하라는 것인지? 빚을 면제해 주라고 한다. 왜? 주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명령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 면제란 무엇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성경앱은 ‘면제’라는 명사는 신명기에서만 딱 네번 사용되었다. ‘면제하다’라는 동사는 신명기에서 두번 그리고 다른 곳에서 6번 쓰였는데 출애굽기에서는 ‘묵혀두다’, 왕하와 시편에서는 ‘내 던지다’ 예레미야에서는 ‘손을 떼다’, 삼하와 대상에서는 소가 놀라 ‘뛰다’로 번역되었다. 복잡하다. 본문에서 그 의미을 찾으니 ‘독촉하지 말라’라는 의미다.
면제의 규례를 잘 지켜 행하면 약속의 땅에서 복을 받는 다고한다. (돌려 읽으면 복을 받았으니 이 규례를 자 지켜 행라라라는 명령이다.) 특별히 이스라엘 중에 가난한 자가 없는 복이다.
면제 규례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가난한 형제에게 완악하게 행하지 말고, 내 것이라고 고집하지 말고, 사랑의 손을 내밀어 가난한 자들의 필요에 따라 넉넉히 꾸어주라고 명령한다. 이구절을 읽은데 고후 9장 7절 연보의 원리가 떠오르는 이유는?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바울이 가르치는 연보의 원리는 어쩌면 면제의 규례에서 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면제 규례를 지키기 위해서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한다.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라고 한다. 면제 규례를 잘 지키면 가난한 자가 없겟다는 약속을 주셨지만 면제 규정을 주셨다는 것 자체가 가난한 자들이 항상 있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하는 명령이다. 약속의 땅에서 형제 중에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쳐라. 이것이 면제 규례의 핵심이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성도들은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한 몸의 지체들이다.
 
면제의 원리는 이스라엘 백성 중 가난과 궁핍으로 노예로 팔린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면제는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노예로 부리지 않는 것이다. 단순히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 받은대로 복을 나눠주어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이다. 의미있는 표현은 이들의 섬김이 실제 받은 품삯의 두배의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자본과 노동을 나눌때 노동의 가치는 자본에 비해 턱없이 낮게 책정된다. 그러나 주 하나님은 노동의 가치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곱절로 생각하신다. 말이 곱절이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면제는 ‘먹는 십일조’와 같은 원리다. 온 가족이 (남종이나 여종을 포함한) 함께 주 하나님 앞에서 먹는 것으로 이어진다. 정한 사람과 부정한 사람이 함께 먹는다. 다만 피채 먹지 말라고 한다. 
 
면제규정도 고후 9장 연보의 원리의 핵심과 같이 가난한 성도를 돕는 것이요,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사랑의 실천이다. 주 하나님 앞에 드리지만 쓰여지는 것은 성도들을 섬김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감사하는 삶이다.
 
우리의 연보생활이 면제의 규정만큼이라도 실천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