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4:22-29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22) 누구에게 드리란 말이 없다. (레위기와 민수기에 언급된 십일조는 땅(토지)를 분배받지 않은 레위지파에게 주는 것이다.) 신명기의 십일조는 다른 것인가? (성경학자들은 제2, 제 3의 십일조라고 구분한다.) 하여간 먹거리에 이어서 십일조를 언급한 것을 보면 뭔가 의미가 있어보인다.

23절에서는 ‘십일조를 드리다’라는 표현 대신 ‘십일조를 먹다’라는 표현을 쓴다. 음 그러니깐 오늘 본문의 십일조는 무엇을 먹느냐에 이어 어떻게 먹느냐에 관한 규례라고 할 수 있다. 먹거리를 정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구분한 것이 주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정체성을 드러내듯이, 어떻게 먹느냐라는 십일조? 규정도 주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정체성을 실천하는 규례다. 모세는 이 규례를 통해서 주 하나님 경외 하기를 항상 배우라고 (사족이 아닌) 강조한다.

십일조는 먹는 방법이다.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라고 가르쳤다. 모세도 십일조는 주 하나님 앞에서 (주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먹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주 하나님께서 정한 곳에서 정한 방법으로 먹는다는 것은  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다.

매년 (정해진 절기에) 주 하나님께서 정한 곳에 가서 주 하나님 앞에서 너와 가족이 함께 먹고 즐거워 하라고 한다. 주 하나님께서 정한 곳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토지 소산을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가축) 가지고 갈 수 없으면 돈으로 바꿔, 돈을 싸 가지고 주 하나님께서 정한 곳으로 가서 네 마음에 원하는 (주 하나님의 마음에가 아니라 자발성을 강조?) 모든 것을 돈으로 사서 주 하나님 앞에서 온 가족이 함께 먹고 즐거워 하라고 한다. 당연히 가족(권속)에는 남종이나 여종도 포함될 것이다. 주께서 십일조를 통해 바라시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받으시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함께 먹는 십일조 잔치에 권속외에 땅을 분배 받지 못한 레위인도 초대하라고 명한다. 특별히 매 삼년마다 십분의 일을 (십일조를) 내어 (구별하여, 꺼내놓아) 성읍에 저축하여, 분깃과 기업이 없는 (땅을 분배받지 못한) 레위인과  그 성에 거주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초대해서 함께 먹으라고 (그것도 배부르게) 하신다. 그리하면 주 하나님께서 범사에 복을 주신다고 하신다. (신명기 행간을 흐르는 복이란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수가 많아짐)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에서 끊어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약속의 땅에서 멸절되지 않고 사는 것을 뜻한다.)

십일조는 결국 경건한 삶이다. 야고보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라고 초대교회 성도들을 가르쳤다. 세속은 자기 보신을 위해 먹고 마시지만, 성도들은 머리되신 그리스도 예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먹고 마셔야 한다. 교회가 십일조를 교회 권속들과 함께 먹고 즐거워 하는데 사용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끼리끼리가 아니라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서. 뿐만아니라 교회가 지역사회의 가난한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삼년에 한번씩 십일조를 사용하는 지도 반성해야 한다. 십일조는 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의 통로다. 무슨 복! 교회가 번성하고, 성도가 교회 (하나님나라)에서 끊어지지 않고 주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자자손손 이어져 가는 것이다. 이외 다른 복은 ‘진복’이 아니다. 가짜다.

 

신명기 14:1-21

주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은 단순히 약속의 땅에 사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외형적으로는 다른 헤어 스타일과 다른 음식을 다른 방법으로 먹는 것으로 구별된다. 예를 들면 사별의 슬픔을 자해하는 것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앞머리를 빡빡 깎는 것도 아니다. 세상사람들은 그렇게 해도 주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백성들은 그러면 안된다고 한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거나 먹어서는 안된다. 주 하나님께서는 먹어도 되는 짐승과 물고기와 새들과, 먹지 말아야 할 짐승과 물고기와 새들을 구별해 주셨다. 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정한 것, 허락하지 않으신 것은 부정한 것이다. 이렇게 구별하는 원리는 분명하지 않다. 마치 애서와 야곱중에서 야곱을 택하신 것과 같다. 중요한 원리는 삶의 가장 기본적인 먹거리에서 주 하나님의 백성을 구별해 주셨다는 것이다. 메뉴에 없는 것은 먹지 말라는 것이다. 중국집에 가서 피짜를 시킬 수는 없다.

모세는 주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은 스스로 죽은 모든 것은 (정한 먹거리든 부정한 먹거리든, 아니면 정한 먹거리 중에서) 먹지 말라고 하면서 그것을 성중에 거류하는 객이나 이방인에게 주거나 파는 것은 괜찮다고 덧붙인다. 다시말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정한 것이  객이나 이방인에게도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원래 정하고 부정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법인 것이다. 정하다고 구별하여 먹어도 되는 염소의 경우도 염소의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아 먹지는 말라고 하신다. 먹는 방법도 구별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이다.” (롬 14:17)  그러니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하여 가르치신 사랑의 법으로는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보다 어떻게 먹고 마시느냐가 중요하다.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은 개인적이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이다. 내 육신의 보신을 위해 먹는 것은 세상 나라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 성도들과, 교회 밖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먹고 마셔야 한다.

신명기 13

12장은 주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고 가감하지 말라는 모세의 경고로 끝난다. 이제 모세는 선지자나 꿈꾸는 자를 청종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오직 주 하나님만 청종하라고 강조한다.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며 그를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며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를 의지하며” (4)

선지자나 꿈꾸는 자들은 주 하나님을 청종하는 일의 걸림돌이다. 그러니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할 예언이 있다면 ‘주 하나님께로 돌이켜, 주 하나님만 청종하라.’ 이거 하나밖에 없다. 다른 메세지는 이미 주어진 주 하나님의 가르침을 가감하는 악이다.

가족이나 친구가 (선지자나 꿈꾸는 자여서) 다른 신을 섬기자고 꾀는 것은 죽여야 할 죄악이다. 긍휼히 여기지도 애석하게 여기지도 말고 단호하게 돌로 쳐죽여 이스라엘 중에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신다.

만약 어떤 불량배가 (선지자나 꿈꾸는 자로 행세하여) 다른 신을 섬기려는 소동이 일어난 성읍에 대한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면 그 성읍 전체를 진멸하고 다시는 재건하지 못하도록 폐허로 만들라고 하신다. 진멸한 성읍의 재물에 손대지 말라고 하신다.

이렇게 주 하나님 대신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섬기도록 조장하는 개인이나, 미혹된 집단을 깨끗하게 진멸해야 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누리고 번성하게 될 것이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서 정직하게 행하면 이같이 되리라.” (18)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깨달았다. 하느님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드셨는데 사람들은 공연히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전7:29, 공동번역)

전도자의 깨달음 처럼 주 하나님과의 관계는 참 단순(정직)하다. 다만 사람들이 꾀를 내어 복잡하게(거짓되게) 만든다.

신명기 12:20-32

주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시지만 제사는 주 하나님께서 택한 곳에서 정해진 방법으로 받으신다. 구별, 거룩의 원리다. 일 주일 칠 일 모두 거룩하게 살아야 하지만 주일을 구별하여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이방신을 탐구하고 따르지 말라고 방어기제로 주신 명령이다.

제물이 아닌 고기는 아무데서나 아무렇게나 먹을 수 있다. 물론 제한은 있다. 피채 먹지 말아야하며, 정한 자나 부정한 자나 차별없이 (나눠) 먹어야 한다. 이것이 주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방법이고, 후손까지 복을 누리는 길이다.

한편 성물은 주 하님께서 정한 곳에서 정한 방법으로 드려야 한다. 성물로 드려진 고기를 먹는 법도 따라야 한다. 주 하나님의 선과 의를 따라 행하면 후손까지 (영원히) 복을 누린다.

주 하나님의 선과 의를 행하는 것을 잊어버리게 하는 이방신을 탐구하고, 따르고, 이방인들이 우상을 섬기는 방법으로 주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주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 우상을 섬기는 방법을 (인신제사를 예로 든다) 가증히 여기신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 (신12:32)

신명기 12:1-19

모세는 개론?을 마치고 약속의 땅에서 평생에 지켜야 할 규례와 법도에 대해서 알려준다.

그 첫번째가 우상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다. 가나안 땅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모든 곳을 마땅히 파멸하며, 헐며, 주상은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조각한 신상들은 찍어 그곳에서 멸하라. 대신 주 하나님을 섬겨라. 주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신 곳, 주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 그 곳으로 찾아 나가서 제사드리고, 주 하나님 앞에서 먹고, 주 하나님께서 수고에 따라 주시는 복을 온 가족이 즐거워하라.

모세는 여전히 각자의 소견대로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약속의 땅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꾸짖는다. 주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것은 그냥 땅이 아니라 ‘안식과 기업’이다. 땅을 차지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의 모든 대적을 물리치고 안식을 주신 주 하나님과 평안히 거주하는 것이요, 주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순종의 백성이 되어) 후손들이 영원히 언약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한번 더 반복한다. 대적을 물리치고 평안히 거하게 된 후에도 주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 나가서 제사 드리고 , 주 하나님 앞에서 먹고 온 가족이 즐거워하라. 이번에는 온가족에 노비도 포함시킨다. 주변의 레위인도 포함시킨다.

모세는 아무데서나 제사를 드리지 말고 주 하나님께서 택하실 곳 (한지파 한 곳)에서 드리라고 한다. 물론 주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나누어 먹는 것은 각 성에서  (지파별로) 먹어도 된다고 한다. 다만 피채 먹지 말라고 한다. 반복해서 주 하나님께 제사드린 음식은 각 성에서 먹지 말고 오직 주 하나님’께서 택하실 곳에서 노비를 포함한 온 가족과 그 성중에 함께 거주하는 레위인들과 함께 먹고 즐거워 하라고 하신다.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아라.

// 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들은 아무데서나 아무렇게나 (자신의 소견에 옳은대로) 목석의 신을 섬긴다. 우상은 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교심으로 만들어 낸 피조물이다. 그러나 주 하나님은 자신을 예배할 곳과 예배의 방법을 명하시는 창조주시다. 이방사람들이 목석의 신을 섬기는 이유는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복을 받기 위해서다. 즉 개인적이고 탐욕적이다. 그러나 주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는 주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과 평화를 온 공동체가 함께 누리는 것이다.

//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해야 할 첫번째는 우상의 흔적들을 지우는 것이다. 그것도 철저하게. 감추고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멸해야 한다.  주 하나님 앞에 살 때만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