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1:18-32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모세의 경고이자 주 하나님의 마음(근심)이다. 이러므로 주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모세는 다시한번 자신의 가르침을 마음과 뜻에 두고 (새기고), 오늘날로 말하면 암송카드로 만들어 가지고 다니며 옷에도 적고 다니라고 강조한다. 뿐만아니라 자녀들에게도 항상 (할 수 있는 모든 때에) 가르치라고 한다. 우상을 세우지 말고 말씀을 적어 문기둥에도 적어놓으라고 한다. 이렇게 해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약속의 땅에서 오래 오래 (영원히) 살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렇게 기록해 놓은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고 강론해야 주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켜 행할 수 있다.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주 하나님의 도를 (듣고) 행하는 것이다. 순종이 말 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이것이 약속의 땅에서 사는 원리다.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원리다. 이땅에 살지만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는 방법이다.

내가 어딜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이땅에서도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한다면 우리를 당할 사람이 없다. (만일 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문제는 우리가 주 하나님 편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다.

모세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복이란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것이요, 저주란 주 하나님의 도에서 돌이켜 떠나 명령을 듣지 않고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우상을) 따르는 것이다.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복과 저주는 선포(적용)된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만 하면 끝나는 게 아니다.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고 한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 살면서도 항상 복과 저주의 원리를 적용하라는 것이다.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의 통치를 받느냐의 문제다. 모세는또 반복한다.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베푸는 모든 규례와 법도를 너희는 지켜 행할지니라”

예수님 편에 서는 방법이다.

신명기 11:1-17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가 주신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 10장은 주 하나님께서 야곱의 자손들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해 주셨다고 마친다. 따라서 그런즉은 주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지키셨으니 너희도 아브라함처럼 순종하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주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도 이 말씀(언약 갱신)을 하셨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창 26:4,5)

약속의 땅은 영원하지 않다. 오히려 17절에서는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라고 경고한다. 주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가나안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까지 변함이 없다.

이들은 (자녀들이 보지 못한) 주 하나님의 권능을 목도했다. 어릴 때부터 주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이적과 기사, 갈라진 홍해, 만나와 반석에서 터져나오는 물, 뿐만 아니라 원망과 불평으로 심판을 받은 일까지, 그리고 요단 동편에서의 승리를 직접 보고 경험했다. 이들에게는 불순종에 대한 핑계거리가 없다.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은 노예 생활을 하던 애굽땅과는 다른 땅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만 주 하나님께서 돌보셔야 풍족한 땅이다. 순종하면 배부른 땅이다. 그러니 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 땅 사람들이 섬기는 소출의 신, 다산의 신, 번영의 신, 건강의 신은 우상이다.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을 신(하나님)이라고 착각하여 주 하나님 대신 섬기면, 주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도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실 것이며, (생육하여 번성하지도 못하게 하시고, 질병에 시달리게 하시고) 아름다운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이 속히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땅이 어디인지보다 그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번성과 풍요는 언약의 결과다. 아니 언약 순종의 결과다. 아브라함이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지켰기 때문에 주 하나님은 이삭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될 것이라며 언약을 갱신해 주셨고, (이삭과 야곱의 순종으로) 이스라엘은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했다. 이제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도 동일하게 언약을 갱신하신다.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는 길이다. 다른 길이 없다. 주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이 언약을 준수해야 한다.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내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이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지 않으시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나라에서 속히 멸망할것이다.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니 죽은 것이다.)

// 결국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야 한다.

 

 

신명기 10

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계약하신다. 두 돌판에 계약서를 다시 작성한다. 이번에는 계약서를 보관할 나무궤도 하나 만들라고 하신다. 언약궤다. 계약서의 내용은 처음과 동일하다. 주 하나님께서 직접 작성하셔서 모세에게 주셨다. 물론 계약서의 내용은 우리가 아는 십계명이다.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언약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대제사상 아론이 죽었어도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대제사장 직음을 이어받았으니 계약은 자동 갱신된다.  계약서가 든 언약궤는 레위 사람들을 구별하여 관리하게 하였다. 레위 사람들에게는 따로 분할상속을 하시지 않고 주 하나님의 소유를 사용하게 해 주셨다. (그러니 상속을 받은 지파나 상속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소유를 누리는 레위나 모두 다 주 하나님의 소유다.) 계약은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사는데 관한 특약조건이다.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사는데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것이 계약서 (십계명)에  적혀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면 줄줄이 외우고 있을 내용이다. 그것을 한줄로 요약하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모든 길을 따르며,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섬기며, 당신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새번역)” 것이다.

창조주 주 하나님께서 너희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는 계약을 맺으신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셔서 맺은 약속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인 너희들도 목을 곧게 하지 말고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고 한다. (목을 곧게 하는 것이 교만이면 마음에 할례를 행하는 것은 겸손이다.)

주 하나님은 하나님들(신들) 중 하나님이시며, 주인들 중의 주인이시다. 한마디로 전지전능 하시며 경외할 하나님이시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뇌물을 받지 않으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신다. 나그네를 사랑하시며 그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신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그게 되었음을,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나로 먹이시고 옷도 신발도 헤지 않게 하셨다.) 그러니 너희도 나그네를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에서 나그네로 살았었다고 하신다. 그러니 주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섬기고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계약을 지켜라. 주 하나님이 너의 찬송이시다.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행사셨던 모든 기적과 권능을 눈으로 보지 않았느냐. 칠십인을 셀수 없는 별같이 많아지게 하셨다.

// 마음에 할례를 행하는 것은 십계명을 암송하고 제사하고 찬송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정의를 행하는 것이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것, 뇌물을 받지 않는 것, 고아와 과부 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는 것, 나그네(노숙자)들을 먹이고 입히는 것이다. 마음에 하는 할례는 묵상에서 그치지 않는다. 찬양과 예배만이 아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사랑)을 우리도 나그네 같은 사람들에게 (교회 밖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다.

신명기 9:13-29

‘목이 곧다’는 무슨 뜻일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니 겸손하지 않다는 의미고, 따라서 교만하다는 뜻이다. 주 하나님 앞에서도 머리 숙일줄 모른다. 이런 이스라엘을 주 하나님은 진멸하시고 모세로부터 새로운 나라를 이루시겠다고 하셨다. 모세는 급히 백성들에게로 내려왔다.

두 돌 판을 가지고 내려온 모세는 백성들이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을 보고 급히 두 돌판을 깨뜨렸다. (쉽게 말하면 계약서 잉크가 마르기 전에 계약서를 찢어버린 행동이다.) 그리고 모세는 위약금을 물지 않게 해달라고 주 하나님께 계약 무효를 간청했다. 사십일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계약을 철회해 달라고 졸랐다. 이스라엘 백성은 십계명을 (언약을) 어겼으니 죄값을 치러야 했다. 당연히 죄값은, 벌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주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를 들어주셨다. 주 하나님은 적어도 아론 한 명에게는 책임을 물으려고 하셨지만 이마저도 모세의 중보로 철회하셨다. (백성들이 계약서 내용도 모르고 모세를 대리자로 세웠기에 봐주셨나) 모세는 불순종의 흔적을 철저하게 지워버렸다. 티끌로 만들어 버렸다. 이후 (계약서를 다시 썼는데도) 불순종은 이어졌다. 이것을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희가 항상 주 하나님을 거역해 왔다’고 지적한다. 모세는 가네스 바네아에서의 거역도 거론한다. 물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판결)도 죽음(진멸) 이었으나 모세의 사십주야 식음전폐의 중보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의 언약에 신실하신 주 하나님의  권능으로 상속자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밝힌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 의인 한명이라도 있으면 용서하신다.

신명기 9:1-12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강대한 나라, 즉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높고, 백성 수는 많고, 백성들은 아낙자손처럼 거인인 나라를 쫓아내고 진멸하는 것이다. 이런 강대한 나라들을 주 하나님께서 엎장서서 쓰러뜨리실 것이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 하나님을 뒤따라 저들을 쫓아내고 멸하라고 모세는 말한다. (청소는 주 하나님이 하시고 쓰레기 통은 백성들이 비운다)

주 하나님께서 가나안 민족들을 이렇게 쫓아내고 멸하시고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공의로와서가 아니라고 하신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리가 가나안 일곱 족속보다 공의롭다’라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공의로와서가 아니라 일곱 족속이 악하기 때문이라고 밝히 말한다. 주 하나님은 일곱 족속의 악함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의 언약을 이루신다고 모세가 말한다. 이스라엘의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다. 오히려 모세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상기시킨다. 목이 곧은, 고집불통의 역사를 끄집어 낸다. 주 하나님께 거역하고 주 하나님을 격노하게 하여 진멸당할 뻔 했던 백성임을 기억시킨다. 심지어 주 하나님의 법을 기다리는 동안 주 하나님의 명령을 속히 떠나 우상을 만들었던 백성이었다.

선민. 구별된 백성. 그러나 역사는 선민들의 불순종으로 되풀이 되어왔다. 이스라엘은 쓰레기통에 던져지고 버려져도 마땅할 만큼 스스로 부패한 백성이었다.

의인은 없다. 나의 의로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죄와 허물로 죽었다.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은 은혜만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긴다. 내가 공의로운게 아니고 내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예수 안에 사는 내가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가슴을 치는 사람은 보기 힘들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는 사람이 참 많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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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가슴을 치는 사람은 보기 힘들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는 사람이 참 많은 세상이다. (뭐 눈에는 뭐가 보인다니 나를 삼가야 한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공의로와서가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사람이 악하기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너희들도 거역과 주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백성이라고. 스스로는 부패한 백성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