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7:24-41

주님의 말씀대로 북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백성들은 앗수르로 잡혀갔다. 앗수르 왕은 대신 사마리아 여러 성읍들에 여러 민족의 이방인들을 이주시켰다. 이주민들은 당연히?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여호와를 경외했을리 만무했다. 주님은 사자들을 그들에게 보내 몇명을 죽였다.

사관은 사마리아에 이주한 이방인들 몇이 사자에게 죽임당한 사건을 그들이 주님을 (몰라)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이방인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사마리아 땅을 다스리는 신의 법을 몰라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마리아 땅신(지신)의 제사장을 데려와 사마리아 지신의 법을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앗수르 왕의 허락을 받아 사마리아에서 잡혀갔던 제사장 한명을 귀환 시켜 벧엘에 거주하며 (백성에게) 어떻게 여호와를 경외할지 가르쳤다.

(사마리아에 남았던 이스라엘 백성과) 귀환하여 벧엘에서 여호와를 어떻게 경외할지 가르친 제사장은 여호와 창조주를 사마리아의 지신(땅의 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결과) 이주해 온 각 민족들은 자신들의 신상을 만들었다. 32절이 하이라이트다.

[그들이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들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 (32)]

저들의 혼합된 종교적인 열심은 온전히 ‘자기를 위하여’ 행한 것이었다. 그러니 여호와를 경외함도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사관은 34절에서 바로 잡는다.

[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는도다. (34)]

그들은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았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순종에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35 절부터는 아주 혼란스러운 본문이다. 사관은 사마리아의 혼합된 잘못된 종교적 열심이 역사를 기록하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있다고 적는다. 사마리아에 이주한 다른 민족 이방인들에게는 야곱의 자손에게 세우신 주님의 언약이 어떻게 받아드려졌을까? 사관은 단순히 사마리아의 남은 자들이 이방인들을 좇아 행한 것을 책망하는 것일까? 사마리아 땅에 이주해 온 이방 민족들이 창조주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도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우신 여호와, 이스라엘 민족신을 받아들여야 했을까? 우리 입장에서는 맞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앗수르 땅으로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교지에서도 영적전쟁은 항상 존재한다. (지신 수준의 싸움에서 기독교가 항상 이긴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출애굽 열재앙에서 보듯 아홉 재앙을 버텨낸다. 많은 경우 먼저 지치는 것이 선교사들이다.)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주님을 경외하면서도 “그들의 자자손손이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대로 그들도 오늘까지 행한다. (41b)”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도 그럴 것이고 서구의 기독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은 언약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세우신 언약,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서 이루신 언약을 잊지 않고 순종하는 것이 그 어떤 종교적 열심보다 중요하다. 주님을 땅의 신, 지신으로 삼아 자기를 위하여 제사 드리는 것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은 주님이라는 존재를 알거나 주님의 말씀을 배우는 수준이 아니라 주님이 세우신 언약에 참여하는 것이고 언약을 준수하는 것이다.

음 생각이 얽히는 아침이다. 보혜사 성령님 도우소서.

열왕기하 17:1-23

남유다 왕 아하스 때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 되었다. 오죽하면 호세아 (구원자)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그러나 이름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지만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사관은 앞구절을 (그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않았다) 강조하나 역사는 뒷부분에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따라 흐른다. 호세아의 구원자로서의 역할은 (앗수르 조공국에서 해방?) 애굽에 도움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일로 호세아는 앗수르 왕에 의해 감금 당하고 앗수르의 속국이 되고 만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수르로 끌려가 앗수르 땅 여러 고을에 흩어져 정착하게 되었다.

사관은 이일의(이스라엘의 멸망) 이유를 열거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의 하나님을 배신하고 다른 신들을 경외했다.  가나안에서 쫓아낸 이방사람의 규례와 이방을 모방하여 이스라엘 여러 왕들이 세운 율례를 행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점/차/로/ 불의를 행하여 여호와를 배역하여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 여호와께서 행하지 말라고 하신 우상을 섬겼다. 하나님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목을 곧게 하여 여호와를 믿지 않았던 조상들을 따라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 (우상)을 따르며 이방 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명령을 버렸다. 자기를 위하여 두 송아지의 형상을 만들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일월성신을 경배하며 또 바알을 섬겼다. 자녀들을 제물로 드렸다. 복술과 사술로 자기의 영혼을 팔아먹는 악을 행했다. 그러니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심히 노하시고 멸망하게 하신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이제 유다지파만 남았다.

그런데 이어지는 19,20절. “유다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든 관습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게서 이스라엘의 온 족속을 버리사 괴롭게 하시며 노략꾼의 손에 넘기시고 마침내 그의 앞에서 쫓아내시니라.”은 18절과 마지막 ‘오직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와 어떻게 조화될까?

만약 유다가 순종하였으면 유다의 순종으로 이스라엘 온 족속을 구원할 수 있었을까? 유다의 불순종으로 결국 유다도 같은 길을 가게 된다는 예언일까?

북이스라엘이 멸망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윗 왕조에서 분리시키셔서, 이스라엘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고, 여로보암은  주님을 버리고 떠나 이스라엘 백성으로 큰 죄를 짓도록 만들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점차로/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사관은 결론적으로 정리한다.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셨다.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자꾸 반복해서 18~20절을 읽어본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크게 진노하셨고, 그들을 그 면전에서 내쫓으시니 남은 것은 유다 지파뿐이었다. 그러나 유다도 또한 그들의 주님이신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든 규례를 그대로 따랐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을 내쫓으시고, 그들을 징계하여 침략자들의 손에 넘겨 주셔서, 마침내는 주님의 면전에서 내쫓기까지 하셨다.”(새번역)

만약 유다가 순종하였더라면, 한 지파 유다의 순종으로 북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주님의 면전에서 내쫓김을 당하는 벌을 용서 받았을까? 결국 유다도 같은 길을 간다고 역사는 말한다. 다만 주님은 영원한 다윗의 위에 대한 언약을 지키셨다.

 

열왕기하 16

북이스라엘이 멸망으로 치닫고 있던 베가 제 17년에 남유다에서는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었다. 사관은 “아하스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열여섯 해 동안 다스렸다. 그러나 그는 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조상 다윗이 한 대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스라엘의 왕들이 걸어간 길을 걸어갔고, 자기의 아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쳤다. 이것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민족의 역겨운 풍속을 본받은 행위였다. 그는 직접 산당과 언덕과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지내고 분향하였다.(새번역)”라고 아하스 왕의 삶을 요약한다.

아하스 왕은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연합하여 남유다를 공격하였을 때, 역사적 정황상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대항하기 위해 남유다를 끌어드리려고 했지 침략전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남유다를 에워쌌지만 남유다를 이기지는 못했다. (물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남유다가 반앗수르 연합에 참여하지 않자 아람은  잃었던 옛땅 엘랏만 회복하는데 그쳤다. 아하스는 이런 아람과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앗수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하스는 앗수르 왕에게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라고 아첨하며 구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성전 곳간의 은금을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다. 앗수르 왕은 곧바로 옳거니 기회다 하면서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고 아람 왕 르신을 죽였다. 아하스는 구원?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서 앗수르 왕을 만났다. 아하스는 다메섹에 있는 제단을 보고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도면을 세밀하게 그려서 우리야 제사장에게 보냈다.

그왕에 그제사장이라고 해야하나. 우리야 제사장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왕이 보내온 도면에 따라 이미 제단을 완성했다. 다메섹에서 돌아 온 아하스는 새로 만든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다. 산당제사와 다를게 없었다. 아하스는 성전 기물들도 다시 배치했다. 제사 방법도 바꾸었다.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 왕에게 동조했다. 제사장 아사랴의 충고를 듣지 않고 직접 분향하려던 조부 아사랴 (웃시야)가 나병에 걸렸음도 잊었던 것일까? 사관은 남유다를 구원?한 앗수르 왕을 두려워 한 처사라고 기록한다. 아하스 왕은 평생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다 죽음을 맞았다. 평안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앗수르가 아니라 주님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결과다.

왕이 직접 성전을 산당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는 것이야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사람들은 산들을 향하여 눈을 든다. 자신들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찾는다. 이름모를 신들에게 분향한다. 오늘날은 돈을 의지한다. 자식들도 돈의 노예로 만든다. 자녀들을 불태워 신들에게 바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거기에 평안이 없음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2)

열왕기하 15:23-38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 북이스라엘은 므나헴이 아들 브가히야에게 왕위를 계승한 후 베가 호세아로 이어지는 반정의 거듭으로 결국 앗수르에게 멸망하고 만다.

앗수르의 공경에 므나헴은 백성들을 쥐어짜 모은 일천달란트로 조공국으로 명맥을 유지 했으나 아들 브가히야 때에 이르러서는 결국 베가가 반역을 일으켜 브가히야를 죽이고 대신 왕이 되었다. 그러나 베가 역시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앗수르는 이스라엘 온땅을 점령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이주시켰다. 허울뿐인 베가역시 호세아의 반역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남유다에서는 웃시야 (아사랴)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었다. 사관은 왜 갑자기 남유다 왕 아사랴 (23,27절)를 웃시야 (30절 이하)로 이름을 바꿔 기록했을까? 아사랴 (여호와가 도우심)가  교만해지자 주님은 나병으로 아사랴를 치셨다. 나병으로 겸손해져서 웃시야 (여호와는 나의 힘)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나? 음

요담은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을 제거하지 아니하였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남유다의 왕들도 하나같이 완전하지는 않다. 사관은 반복적으로 ‘정직히 행하였으나’라고 ‘으나’라는 토를 단다. 요담의 경우 성전 윗문을 건축하는 등 나름 ‘성전 중심’의 왕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을 ‘성전 중심’으로 이끌지 못했다. 주님은 비로소 백성들을 ‘산당 중심’으로 방치한 남유다에 아람 왕들을 보내어 치게 하셨다. 완전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같은 잘못이 반복되면 주님은 자신의 백성이라도 언젠가는 치신다. 한국교회가 처하 상황이다.

 

열왕기하 15:1-22

북이스라엘에서 무려 42년을 다스린 여로보암 왕 시대에 남유다에서는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어 52년간 다스리게 된다. 아사랴에 대한 평가역시 선왕 아마샤와 다르지 않다. 아사랴가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따랐으니 당연한 결과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다. 판박이 평가다. 사관은 주님이 아사랴를 치셔서, 아사랴는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별궁헤서 왕자 요담을 통해 통치했다고 마무리 한다. 본문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주님이 나병으로 아사랴을 치셨다는 것은 아사랴의 교만때문이었을 것이다. 모세의 누이 미리엄도 모세의 지도권에 도전하다가 나병이 걸렸었다. 나병이 아사랴를 겸손하게 만들었을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나병으로 말미암은 겸손이 52년이라는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음~~

아사랴 제 38년에 북이스라엘에서는 여로보암의 42년의 통치가 마감되고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가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어쩌나 예후의 4대손이다. 스가랴 역시 부친 여로보암 2세와 동일한 평가를 받는다. “…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그러나 부친 여로보암과 달리 6개월만에 야베스의 아들 살룸의 반역에 죽임을 당한다.  사관이 살룸의 통치기간을 아예 기록하지 않을 정도로 살룸은 바로 므나헴의 반역에 죽었을 것이다. (이후 북이스라엘은 망할 때까지 브가히야에게 왕위를 물려준 므나헴을 제외하곤 암살과 쿠데타의 연속이다.) 므나헴의 평가에서 보듯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않은 결과다. 사관은 /평/생/ 이라는 단어를 덧붙인다.  므나헴은 백성들을 착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침으로 이스라엘을 유지한다.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잠29:2).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돈의 도움으로 평화를 살 수 없다. 북이스라엘은 이렇게 저물어 갔다.

// 왕들의 이름을 외우기도 쉽지 않다. 족보는 더군다나 어렵다. 이름도 섞여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든,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든 모든 왕들은 주님의 주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주님이 다스리신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교만해서는 안된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해도 42년동안 다스릴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후대는 반년만에 망할 것이고 그 나라는 /평생/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다스림은 우리로 순종의 자리에 나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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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버지에 그 아들

남유다 아마샤와 아사랴. 둘 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버지 아마샤는 에돔에 대한 승전으로 교만하여 북이스라엘에 덤비다가 패전하고 재위29년만에 신하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만다. 아들 아사랴도 여호와께서 나병으로 치신 것으로 보아 교만했으리라. 그러나 나병으로 겸손해졌을까? 무려 52년동안 남유다의 전성기를 이어간다.

북이스라엘 여로보암과 스가랴. 둘 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 여로보암은 42년을 통치하면서 이스라엘의 번영을 이끌었지만, 아들 스가랴는 (예후의 4대손이다) 반년만에 반역에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은 반정에 반정을 거듭하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않았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쇠락한다.

그아버지에 그아들이다. 그러나 삶의 굴곡은 아버지와 아들이 많이 다르다. 삶의 주인이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자녀들에게 물려줘야 할 것은 나의 성공이나 실패가 아니라 ‘삶의 주인이 주님이시다’라는 명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