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8:11-20

명령과 규례와법도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주 하나님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역으로 지키지 않는 것은 주 하나님을 잊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배부르고 등 따시면, 부자가 되면 마음이 교만하여 주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모세는 염려한다.

모세는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낮추신 이유를 복 주려 하심이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내가 내 능력과 내 손으로 이 재물을 얻었다 할것이라고 염려한다. 그러니

모세는 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잊지 말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신 분도 주 하나님이심을 잊지말라고 한다. 언약의 주 하나님을 삼가 잊지 말아야 한다.

주 하나님을 잊는다는 것은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다른 신(하나님)을 따라 섬긴다는 것이고, 그 길은 멸망의 길이다.

주 하나님의 소리를 청종하지 않으면 멸망의 길을 걷는 것이다.

복은 먹고 마시는데만 있지 않다. 배부르고 등 따시고, 건강하고 큰 집 사고 재물이 풍부해 지는 것은 세상이 구하는 복이지만 하나님나라는 의와 희락과 화평의 나라다. 주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삶은 의와 희락과 화평이 풍부해지는 복을 구하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이다.

신명기 8:1-10

모세의 강설은 분명하다. 명령을 지켜 행하라. 이것이 사는 방법 (생명) 이다. 이것이 번성하는 길이다. 이것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열쇠다.

모세는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사십년 동안 광야 길을 걷게 하신것을 기억하라고 명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고생 (낮추시며) 연단 (시험하시며) 자체가 아니라 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어려웠던 시절이 아니라 어려웠던 시절을 인도하신 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명령을 지키면 순행하고 불순종하면  역행하시는 주님의 인도를 기억해야 한다.

주 하나님께서 낮추시고 (고생하게 하시고) 주리게 하신 (만나를 먹이시며, 반석에서 물을 내신) 이유는 삶이 주 하나님의 명령 (말씀)에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해서 알도록 하신 것이다. 고생길이었다 하여도 의복이 헤어지지 않았고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 개고생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차라리 자식을 유격훈련에 보낸 아비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모세는 반복에 반복을 한다. 주 너의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그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하여라.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나 그 길을 따라 가는 것이나 모두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동일하지만 다른 표현이다.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한다.

약속의 땅은 골짜기든 산지든 물이 풍성하고, 소산이 풍성해서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다. 뿐만아니라 철광산과 구리광산도 있다. 배부름으로 광야의 불평과 원망은 사라진다. 약속의 땅은 옥토를 주신 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땅이다. 그러나

모세의 반복을 기억해야 한다. 네 주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우리는 본성상 약속의 땅의 주인이신 찬송받아야 마땅하신 주 하나님 대신,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 꿀에 관심이 많다. 더군다나 철과 구리도 풍성하다. 그러나 광야에서든 약속의 땅에서든 우리는 관심을 주님의 말씀에 두어야 한다.

광야에서든 약속의 땅에서든 주님이 선한 목자이시다. “자기 양들을 다 불러낸 다음에, 그는 앞서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라간다.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요 10:4 새번역)

신명기 7:12-26

“당신들이 이 법도를 듣고 잘 지키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도 당신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세우신 언약을 지키시고,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실 것입니다.”(12)

모세는 말을 이어간다. 주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은 복과 번성이다. 주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 자손에게 이르기까지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실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실 것이다. (대적들은 악질에 걸리더라도) 질병도 멀리하실 것이다. 그러니 주 하나님께서 넘겨주신 모든 민족 (일곱족속)을 긍휼히 여기지 말고 진멸하여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이 네게 올무가 되리라. // 그들이 섬기는 신(우상)과 그 백성들을 동일시 하신다. 축복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 하나님이 자연도 주관하시고, 소출도 주관하시고, 다산의 신이시고 질병도 주관하신다는 뜻이라고 본다. 한마디로 가나안에서 섬기는 우상들을 진멸해도 소출이나 다산이나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모세는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있는 족속이 수도 많고 강대해보여 어떻게 쫓아낼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대신 주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일, (아모리 두 왕을 진멸한 일), 광야에서 본 큰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 즉 주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기억하라고 권면한다. 주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워 하는 모든 민족에게 그와 같이 행하실 것이다.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주 하나님이 두려우신 분이심을 알아라. 그 주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신다.)

주 하나님께서 이 민족들을 /조/금/씩/ 쫓아 내실 것이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아라.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칠까 하노라. 이구절은 무슨 뜻일까? 음. 하나님의 시간에 대한 경고일까? 아마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았어도 한걸음 한걸음 주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하나님의 인도로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들이 그르치는 경우를 보면 일자체가 우상이 되어있는 경우다. 그러니 하나님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

모세는 또 반복한다.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아라. 그것이 올무가 된다. 주 하나님이 싫어하신 것이다. 그것을 네 집에 들이면 너도 그것과 같이 진멸당할 것이다. 너는 그것을 멀리하여 심히 미워하라. 그것은 진멸 당할 것이다.

// 모세는 (주 하나님은) 이방의 신들과 이방 신을 섬기는 민족들을 동일시 한다. 가나안 일곱족속은 진멸될 것이다. 그들이 섬이는 신들과 함께.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당연히 주 하나님과 동일시 된다. 그러니 주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

 

신명기 7:1-11

가나안 땅은 여러 민족, 헷, 기르가스,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등 일곱 족속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스라엘보다 인구도 많았고 강대한 민족들이었다. 주 하나님은 이들을 쫓아 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차지하도록 하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실제 그 땅을 차지해야 할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주 하나님 보시기에 그 당시 일곱족속은 진멸의 대상이었다. 언약의 대상도 불쌍히 여겨야 할 대상도 아니었다. 그들과는 통혼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들이 믿는 다른 신을 섬기게 되어 주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켜서 이스라엘이 오히려 진멸될 수 있는 대적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르라고 하셨다.

모세는 이스라엘은 주 하나님의 거룩한(구별된) 백성이라고 주지시킨다.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상속자로 삼으셨다고 한다.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뻐하시고 택하신 것은 다른 민족보다 인구가 많아서가 아니라고 하신다. (그렇다고 작은 민족이라서 택하신 것도 아니다.) 주 하나님께서 외모로 이스라엘을 택하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조상들과의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출애굽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 되셨다. 모세는 이것을 알라고 강설한다. 이스라엘을 주 하나님이야 말로 신실하신 하나님(신)이시다. 그러니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켜라. 계명을 지키면 주 하나님의 자손으로 천대까지 (영원히) 주 하나님의 상속자로 사랑을 받을 것이며, 주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삼사대가 아니라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실 것이다. 모세는 강하게 반복한다. 주 하나님은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는 신(하나님)이시라고. 그런즉

“너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 주 하나님은 (가나안 일곱족속 같이) 인구의 많음이나 번성과 벙영, 강대함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신 )순종을 최고의 가치로 삼으신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도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가지셨다. 왜? 답하기 어렵지 않다. 약자들은 순종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약자들은 순종말고는 의지할 바가 없기 때문이다. 돈이든 가족이든 의지할 바가 없다. 비굴해 보일지 몰라도 외향적으로 순종하면 살아 남았다. 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에게는 부자도 순종할 수 있다. 그러나 확실히 작은 자가 큰 자보다 순종하기 쉬울 것이다. 하여간 듣고 행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요, 듣기만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다.

// 우리는 강함과 번영을 추구한다. 심지어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신다. 강함과 번영은 인구수나 국력으로 평가할지 몰라도 하나님나라는 순종에 있다고. ‘샬롬’은 하나님나라에 있다.

 

 

 

신명기 6:10-25

가나안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이다. 그 약속의 땅에 이제 들어간다. 흐르는 젖과 꿀, 그 땅과 성읍과 집들과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들은 약속에 덤으로 주어진 것이다.

모세는 이 모든 것을 주신 출애굽의 주님을 삼가 잊지 말라고 교훈한다. 배은망덕하지 말고 주님을 경외하고 섬길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한다.

율법, 명령, 규례, 법도의 정신을 다시 상기시킨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라. 주님은 질투하시는 신(하나님)이시다. 주님을 시험하려 들지 말고 명령과 증거와 법도를 지켜라. 주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한 일을 행하라. 그러면 복을 받아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모세는 자녀들이 이 율법의(규례와 증거와 법도) 뜻을 묻는다면 출애굽의 주님이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라고 답하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하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롬3:20)

율법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주님을 경외함으로 복을 누리는 길이며, 사는 (생명의) 길이며, 의의 길이다. 우리 주 예수님이 보여주신 길이요, 우리가 믿음으로 따라야 할 길이다. 하나님나라를 얻기전부터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서는(사는) 길이요 자녀들에게 물려줘야할 의의 길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가능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