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3:28-37

마가복음 13:28-37

28-31 무화과나무에서 비유를 배우라고 하신다. 무화과나무를 보면 계절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세상 돌아가는 징조로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온 줄을 알라고 하신다. 주님은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천지가 없어지더라도 주님의 말씀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32-37 그러나 그날 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신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 아신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하고 깨어있어야 한다.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서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명령했다. 집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종들은 깨어 있어야 한다. 주인이 갑자기 와서 종들이 잠자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명하신다. 모든 사람들이 (문지기만 아니라) 깨어 있어야 한다.

//나무를들을 보고 계절을 알 수 있듯이, 천기를 보고 날씨를 분별 하듯이, 징조를 보고 인자가 가까이 온 줄을 알 수 있어야 한다. 특별히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말씀으로 인자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고 하신다. //그런데 주신 말씀은 인자가 가까이 온 줄은 알 수 있어도 그 날과 그 때는 알 수 없다고 하신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한다. 문지기만 대표로 깨어 있다가 신호를 주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 때부터 깨어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함께 깨어 있어야 한다. 인자가 맡겨주신 할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지 이천년이 넘었으니, 주님이 더디 오신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우리에게는 여전히 곧 오신다. 아니 오히려 그 만큼 더 가깝다고 이해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을 미뤄서는 안 된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3:14-27

마가복음 13:14-27

‘황폐하게 하는 가증스러운 물건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사람은 깨달아야 한다.) 그때에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쳐야 한다. 짐을 챙기지 말고 뒤돌아보지도 말고 산으로 도망해야 한다. 도망치기 어려운 임산부는 불행하다고 하신다. 도망치기 어려운 겨울에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 창조이래 지금까지 없었던, 전무후무한 환난이 닥칠 것이라고 하신다. 그래도 주님께서 그 환난의 날들을 줄여주셔서 구원받을 사람이 있다고 하신다. 주님이 뽑으신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해 주님이 환난의 날들을 줄여 주셨다. 그때 자칭 그리스도가 나타나도 믿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그들은 주님이 뽑으신 선택받은 사람들을 유혹할 것이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한다고 주님은 미리 말씀으로 경고해 주신다. 환난이 지난 뒤에야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다. 그 때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따고 오실 것이다. 그 때에 인자는 천사들을 보내어 주님이 뽑으신 선택받은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

//종말에 대한 말씀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읽고 깨달아야 한다고 단서를 붙인다.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깨닫는 것은 불가능이다. 그렇다고 성령의 감동이라도 이땅의 언어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그러니 확실한 것만 먼저 되새기자. 먼저 종말이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종말은 예수 십자가를 앞두고 이미 시작되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과 부활 전에 이미 종말에 당할 고난과 재림을 언급하시는 이유다. 두번째로 종말에 환난이 있다는 것도 환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도 확실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님이 뽑아 선택하신 사람들은 끝내 구원을 받는다는 것도 확실하다. 언제와 어떻게와 얼마나는 확실하지 않다. 확실하지 않은 것을 몰라도 된다. 끝까지 인내한다면 종말이 언제 어떻게 또 얼마나 많은/적은 사람이 선택받아 끝내 구원을 받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우리 공동체가 끝까지 인내하도록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 격려해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안내한다. 내 뜻대로 살려고 아둥바둥 거리지 않고 , 내 것을 지키려고 맞서 싸우지도 않으셨다. 아버지 하나님의 길을 따르셨다. 그리고 그 결국이 부활이요 승천임을 보여주셨다. 주님이 뽑으신 선택받은 사람들도 부활이신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살라고 하신다.

마가복음 13:1-13

마가복음 13:1-13

1-2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실 때, 제자들 가운에 한 사람이 예수께 성전이 큰 돌로 지어진 놀라운 건축물이라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이 크고 놀라운 건물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3-8 예루살렘을 나오신 예수 일행은 올리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보고 앉았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따로 예수께 언제 성전이 무너질지 물었다. 또 성전이 무너지기 전에 무슨 징조가 있는지 물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누구에게도 속지 말라고 하셨다. 많은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와서 자칭 그리스도라고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라고 하셨다. 전쟁과 전쟁의 소식에 놀라지 말라고 하신다. 전쟁의 소식도 아직 끝은 아니라고 하셨다.민족들과 나라들이 다투고 지진이 일어나고 기근이 드는 것은 진통의 시작리라고 하셨다.

9-13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제자들을 법정에 넘겨 줄 것이고 제자들이 회당에서 매를 맞을 것이고 예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서 서서 증언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먼저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끌려갔을 때 무슨 말을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때에 성령께서 지시하는대로 말하면 된다고 하셨다. 가족간에 서로 죽이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다. 제자들은 주님의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제자들은 가까이서 본 성전의 외용에 압도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건축물 성전은 언젠가는 무너져 흔적도 남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과연 그럴까?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나와 올리브 산에서 본 멀리 보이는 성전은 엄지 손톱으로도 가려질 정도로 작게 보였고 금방 무너진다해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설까, 네 제자가 예수께 언제 이런 일이 일어는지 물었다. 마가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 안드레의 이름을 끼어넣었다. 아마 모든 제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는 의미가 아닐까? //마지막 때에는 모든 것이 무너져 흔적도 남지 않게 된다. 새하늘과 새 땅이요 거룩한 성으로 단장하게 된다. 그 전에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전쟁과 지진과 기근이 일어나고 심지어 가족관계도 무너진다. 특별히 성도들은 고난을 받으며, 주님의 증인이 된다. //아무나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주님의 증인이 된다.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자기 말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 성령께서 그때 그때 곡 필요한 말을 알려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 예수께서는 항상 때에 대해서는 침묵하신다. 대신 ‘끝까지’ 인내하라고 하신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종말의 징조는 마가복음의 1차 독자들에게나 우리에게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종말은 2천년전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져 왔다고 생각된다. 종말의 때를 말씀하시는 예수의 가르침은 어쩌면 단 하나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러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평안을 누리라고 하시는 것이다. 예수 믿는다고 환난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견뎌 구원을 받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이 구원과 평안을 전하는 삶을 살라고 하신다.

https://quietwaters.blog/2020/04/01

마가복음 12:35-44

마가복음 12:35-44

35-37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율법학자들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 말에 대해 바른 가르침을 주셨다. 예수께서는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노래한 “주님(아버지 하나님)께서 내 주(성자 하나님, 곧 그리스도)께 말씀하셨다” 하는 시편을 들려주셨다. 따라서 다윗 스스로가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고 반문하셨다. 많은 무리가 예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38-40 예수께서는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율법학자들을 조심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고 지적하셨다. 그리고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하는 위선자들이라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41-44 예수께서는 무리가 헌금함에 돈을 넣는 것을 보고 계셨다.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돈 두 닢을 넣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놓고, 이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들 가운데 어느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은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 떼어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자기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고 그 이유를 말씀해 주셨다.

//어느 한 율법학자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는 칭찬?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하나님의 나라에 반드시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적용했었다. 예수께서는 그 이유로 율법학자들이 성령의 감동없이 말씀을 읽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다윗도 성령의 감동으로 성자 하나님, 곧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지 않았을 때도 그리스도를 알았는데, 율법학자들은 눈으로 보고도 믿지 않았다.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읽고 적용하지 않은 결과 율법학자들이 위선자가 되고 말았다고 지적하신다.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읽고 행하지 않으면 우리도 위선자가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두 렙돈을 헌금한 과부는 자기 소유의 전부를 다 팔아 보화가 감추인 밭을 사고 값진 진주를 샀다고 하신다. 천국의 가치는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공평하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자기 소유의 전부를 다 팔아야 한다. 

https://quietwaters.blog/2020/03/31

>> 말씀을 맡은 자들의 외식.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법망을 피해 온갖 부조리를 저지르듯, 말씀을 잘 아는 서기관들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적용해 가난한 과부들의 재산을 삼킨다고 지적하신다. 좋은 옷을 입고 종교적으로  보이고 높은자리 윗자리에 앉지만 외식이라고 하신다.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있던 독자들은 계속 즐겁게 들었을 것이다. (물론 서기관들은 뜨끔했겠지만) 마가는 1장에서 이미 뭇 사람이 예수의 가르침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기 때문에  놀랐다고 기록했었다.

>> 자기의 소유를 다 = 자기의 모든 소유. 마태복음 천국비유에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보화가 묻힌 밭을 사고 값비싼 진주를 산 것과 과부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헌금한 것은 같은 행동이다. 하나님나라의 가치다.  이렇게 이 과부는 하나님나라를 샀다. 부자들 같이 풍족한 중에 일부를 넣는 삶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나라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일부를 희생하고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주일 하루의 열심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날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신다. …

마가복음 12:28-34

마가복음 12:28-34

율법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께서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부활에 대해 변론을 잘하시자 예수께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예수께서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시며 첫째는 하나님 사랑이요, 둘째는 이웃사랑이라고 답하셨다.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율법학자는 예수께 선샌님의 말씀이 옳다고 맞장구쳤다. 그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다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뒤에는 감히 예수께 더 묻는 사람이 없었다.

>> 한 율법학자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람이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낫다, 곧 사랑하라는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낫다고 적용한다. 예배적 삶이 성도들의 생명과 다름 없으나, 주일예배가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주일예배가 제사로 전락해 버렸다면 더욱 그렇다. 하나님사랑이 곧 이웃사랑이요, 이웃사랑이 곧 예배적 삶 (하나님사랑) 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예수께서 저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실 것이다. 예수의 부활을 경험하지 못한 율법학자도 예수님의 답변에서 번제물과 기타 제물을 드리는 제사 보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 낫다는 것을 알았는데 부활의 삶을 사는, 곧 하나님 앞에서 이미 영생을 살고 있는 성도들이라면 어찌 살아야 할 지 분명하다.

>> 하나님나라에서 멀지 않다. 거의 다 왔다고 속으면 안된다. 멀지 않다는 것은 아직 들어가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마태는 예수께서 심지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늘 나라의 문을 닫기 때문이다. 너희는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마23:23) 라고 강하게 책망하셨다고 기록한다. 아는 것과 순종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과 듣고 행하는 것은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의 차이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들어가고의 차이다. 멀지 않다고 만족해서는 안된다. 끝까지 안전운전을 해야 한다.

https://quietwaters.blog/2020/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