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1-15 읽기

1-6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을 깨닫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터득하라고 하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혜가 하는 말을 받아 들이고 지혜가 하는 명령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해야 한다. 지혜에 귀를 기울이고 명철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은을 구하고 보화를 찾듯 지혜를 찾아야 한다. 지혜를 주시고 지식과 명철을 주시는 분은 바로 주님, 곧 하나님 이시다. 결국 돌고 돌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으뜸이고, 지혜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이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7-9 주님은 정직한 사람에게는(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도록) 분별하는 지혜를 주시고, 흠 없는 사람에게는 (죄인의 길에 서지 않도록) 방패가 되어 주신다. 공평하게 사는 사람의 길을 보살펴 주시고, 충성하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의 길을 지켜 주신다. 그럴 때, 정의와 공평과 정직이라는 복된 길을 깨닫게 된다. (지혜자가,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복은 정의와 공평과 정직이다.)

10-15(따라서) 지혜가 네 마음 속에 들어가고,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다. 분별력이 너를 지켜주고 명철이 너를 보살펴 줄 것이다. 지혜가 악한 사람의 길에서 너를 구하고, 표리부동한 사람에게서 너를 건질 것이다. 악인은 바른길을 버리고 어두운 길로 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쁜 일 하기를 좋아하며 악하고 거스르는 일 하기를 즐거워한다. 그들의 길은 구부러져 있고, 그들의 행실은 비뚤어져 있다.

// 복 중의 복은 정의와 공평과 정직이다. 다분히 공동체적이다. 아니 공동체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복을 구할 때, 정의와 공평과 정직을 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령이 거하시는 교회 공동체의 복 대신 지극히 개인적인 복을 구하기 때문이다. 지혜자는 지혜 곧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복된 길을 깨닫게 한다고 교훈한다.  개인의 욕심이나 지역적 욕심이 표리부동하게 만들고, 바른 길 대신 어두운 길을, 선한 일 대신 나쁜 일을, 순종 대신 불순종을, 바른 길 대신 구부러진 길을, 착한 행실 대신 비뚤어진 행실을 하게 한다.

//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거하고, 보혜사 성령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셔서, 우리 영혼이 즐겁게, 이 시대의 조류를 따르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내게 주신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살게 하소서.

잠언 1:20-33 읽기

20,21,33 지혜가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말한다. 오직 지혜의 말을 듣는 사람은 안심하며 살겠고,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히 살 것이다.

22-32 하나님의 지혜 앞에서 사람은 어수룩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수룩한 줄도 모르고 하나님의 지혜를 비웃는다. 자신들이 미련한 줄도 모르고 하나님의 지식을 미워한다. 그래서 지혜가 책망을 한다.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말을 듣고 돌이키라고 말한다. 돌이키면 지혜의 영을 보여주시고 지혜가 하는 말을 깨닫게 해 주시겠다고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지혜가 하는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혜가 손을 내밀어도 (이적을 보여 주셔도) 거들떠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지혜의 충고를 무시하며, 지혜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결국은 재앙이다. 심판의 날에 지혜의 비웃음과 조롱만이 기다릴 것이다. 사람들은 공포가 덮치고 재앙이 폭풍처럼 밀려오고 고난의 고통이 밀어닥칠 때에게 지혜를 애타게 찾겠지만, 지혜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심판대에서 지혜를 애써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미리 경고한다. 주님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않은 결과다. 지혜를 깨닫기 싫어하며, 지혜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지혜의 책망을 업신여겼기 때문이다. 지혜는 사람은 자기가 한 일의 열매를 먹고, 제 꾀에 배부를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어수룩한 사람은 지혜에게 등을 돌리고 살다가 죽음에 이르고, 미련한 사람은 안일하게 살다가 자기를 멸망 시킨다고 말한다.

20,21,33 지혜가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말한다. 오직 지혜의 말을 듣는 사람은 안심하며 살겠고,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히 살 것이다.

// 나의 기도는 골방에서 주님의 말씀은 공공장소에서…

잠언 1:8-19 읽기

아이들아, 아버지의 훈계를 잘 듣고, 어머니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말아라.

아이들아, 악인들이 너를 꾀더라도, 따라가지 말아라.

// 아버지의 훈계를 듣고 어머니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는 것은 왕관이요 훈장이다. 한마디로 ‘효’야 말로 아이들의 자랑거리라고 교훈한다. 십계명에도 한자리를 차지 하고 있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잠언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지혜/교훈의 가장 앞부분에 언급된다. 효가 동서고금의 진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아야 한다. 결코 악인과 함께 다녀서는 안된다. 악인과 함께 하는 곳에는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악인이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도 부당한 이익을 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물이 목숨을 빼앗는다고 교훈한다. 잠언은 일만 악의 뿌리가 재물/돈에 있음을 내비친다.

// 오호통재라! 재물(돈)이 효보다 앞선 세상에 살고 있다. 돈이 하나님보다 높아진 세상이다. ㅠㅠ  

잠언 1:1-7 읽기

토욜 아침 히브리어 단어로 읽어보기

1격언/솔로몬/아들/다윗/왕/이스라엘 >>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격언(은)

2 알다(깨닫다)/지혜(명철)/교훈(책망,징계)/이해하다/가르침(설교)/지식(명철) >> 지혜와 교훈을 알게 하고, 가르침과 지식을 이해하게 한다.

3 취하다/교훈(책망,징계)/심사숙고하다/옮음(의)/법(정의)/공의 >> 교훈을 받아, 옳음, 곧 정의와 공의를 심사숙고해서 판단하게 한다.

4 적용하다(지도하다)/어리석은/교활(신중)/청년(철부지)/지식/계획(생각) >> 신중해 보이나 어리석은 철부지(청년)들이 지혜로운 결정을 (하도록) 지도한다.

5 경청하다/지혜로운/더하다/교훈(가르침)/신중하다/계획(권고) >>  지혜로운 (자는 이 격언을)  경청해서 교훈을 더배우고 (다른 사람에게) 권고(할 수 있도록) 신중하다.

6 알다(이해하다)/격언/해석/말(충고)/지혜로운/수수께끼(격언) >> 지혜로운 (자의) 말씀과 가르침의 말을 이해하게 한다.

7 경외/지존자(여호와)/첫째(최고)/지식/지혜(명철)/교훈(책망)/바보(어리석은 사람)/ 무례하다(멸시하다) >> 하나님을 경외함이 최고의 지식(이요) 지혜(요) 교훈(이나)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을) 멸시한다.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격언은 지혜와 교훈을 알게 하고, 가르침과 지식을 이해하게 한다. 교훈을 받아 옳음, 곧 정의와 공의를 신중하게 판단하게 한다. 어리석은 청년들이 지혜로운 결정을 하도록 지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격언을 경청해서 교훈을 더 배우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권고할 수 있을 만큼 신중하다. 지혜로운 사람의 말씀과 가르침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식과 지혜와 교훈의 으뜸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들을) 멸시한다. 곧 하나님께 무례하게 행한다.

// 히브리어 문법을 1도 모르지만, 히브리어 단어를 배열해서 읽어보았다.

출애굽기 14:15-31 읽기

15-18주님께서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왜 부르짖느냐?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여라. 지팡이를 바다 위로 내밀어 바다가 갈라지게 하여라.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집트 사람들이 너희를 뒤쫓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병거와 기병들을 전멸시켜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 내가 바로와 그이 병거와 기병들을 물리치고 나의 영광을 드러낼 때에, 이집트 사람은 비로소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9-20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를 건너기까지 진 앞에 있던 구름기둥이 진 뒤로 옮겨 가서 이집트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구름이 이집트 사람이 있는 쪽은 어둡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는 쪽은 환하게 밝혀 주었다. 밤새도록 양쪽이 서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21-25 모세가 바다위로 팔을 내밀자, 주님께서 밤새도록 강한 동풍으로 바닷물을 뒤로 밀어 내어 바다가 말라 바닥이 드러나게 하셨다. 바닷물이 갈라지고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갔다. 물이 좌우에서 벽이 되었다. 뒤이어 이집트 사람들이 쫓아왔다. 새벽이 되어 주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에서 이집트 진을 내려다 보시고 이집트 진을 혼란 속에 빠뜨리셨다. 주님께서 병거의 바퀴를 벗기셔서 이집트 병거는 전진하지 못했다. 이집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쫓지 말고 되돌아 가자고 외쳤다.

26-29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바다 위로 너의 팔을 내밀어라. 그러면 바닷물이 이집트 사람과 그 병거와 기병 쪽으로 다시 흐를 것이다.” 모세가 바다 위로 팔을 내미니 새벽녘에 바닷물이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왔다. 이집트 사람들이 되돌아 오는 물결에서 벗어나려고 하였으나, 주님께서 이집트 사람들을 바다 한가운데 빠뜨리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따라 바다로 들어간 바로의 모든 군대는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갔는데, 바닷물이 좌우에서 그들을 가리는 벽이 되어 주었다.

30-31 바로 그 날,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셨고 이스라엘은 바닷가에 널려 있는 이집트 사람들의 주검을 보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치신 주님의 크신 권능을 보고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님과 주님의 종 모세를 믿었다.

// 홍해가 갈라졌다.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을 밟으며 홍해를 건넜다. 우리는 마른 땅만 기억한다. 그러나 강한 동풍이 불었다는 것은 언급하지 않는다. 마른 땅으로 건널 수 있었던 것은 강한 동풍이 밤새도록 불어, 물이 좌우에서 벽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태풍의 눈이 고요하듯 이스라엘 자손이 걸었던 마른 땅은 고요했을 지 모른다. 그러나 200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 줄로 걸었을 리는 없고, 분명 가장자리로 걸었던 사람들은 강한 동풍을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바람소리 없이 고요한 마른 땅을 지났으면 더 두려웠을 지 모른다. 강한 바람소리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위로가 되는 소리였을 것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버려진 듯한 제자들도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열흘 후 오순절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났고 불 같은 성령이 오셔서 제자들의 두려움을 쫓아 주었다.

// 이집트 병거는 빠르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더 빠르도록 바꾸지 않으시고 이집트 병거를 느리게 하셨다. 병거의 바퀴가 빠지게 하셨다. 자중지란에 빠져 저들 스스로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을 쫓아가지 말고 되돌아 가자고 말하게 만드셨다. 성도도 한 발 더 빨리 가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실상 성도를 뒤쫓아 오는 것은 세상이다. 성도의 눈에 세상의 병거가 최신이고 빠른 것 같아도, 세상을 경영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성도가 하늘을 보지 않고 뒤쫓아 오는 세상의 병거를 바라보면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늘을 보고 걸어야 한다. 성령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성령의 불기둥을 보며 걸어야 한다. 나에게 불어오는 강한 동풍이 임마누엘의 증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