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1-22 읽기

1-5야곱과 함께 이집트로 내려갔던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블론, 베냐민, 단, 납달리, 갓, 아셀]이다. 요셉은 이미 팔려가 총리가 되어있었다. 이들에게서 난 사람들을 모두 포함하면 총 일흔 명이 애굽으로 내려갔었다.

6-7 세월이 지나, 요셉과 그이 형제와 그 시대 사람들은 다 죽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자녀를 많이 낳고 번성하여, 그 수와 세력이 커졌고, 애굽 땅에 가득 퍼졌다.

8-14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 왕이 자기 백성에게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 백성보다 수도 많고 힘도 강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신중이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더욱 불어나서,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이스라엘이 애굽의 원수들과 합세하여 애굽 땅을 치고, 애굽의 통치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집트 왕은 이스라엘 자손을 부리는 공사 감독관을 두어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강제 노동을 시켰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로 왕이 곡식을 저장하는 성읍을 건설하는 일에 끌려갔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는 점점 더 불어났고, 이스라엘 자손이 번성하였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런 이스라엘 자손을 몹시 싫어해서, 더욱 혹독하게 이스라엘 사람들을 부려먹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흙을 이겨 벽돌을 만들거나 밭일과 같은 온갖 고된 일을 시켰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우 힘들었다.

15-22 이집트 왕은 십브라와 부아라고 하는 히브리 산파들에게, 히브리 여인이 아기를 낳을 때, 낳은 아기가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 두라고 명했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므로, 바로의 왕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남자 아이들을 살려주었다. 이집트 왕 바로가 산파들을 불러 꾸짖었으나, 산파들은 히브리 여인은 이집트 여인과 같이 않고, 기운이 좋아서, 산파들이 도착하기 전에 아기를 낳아 버린다고 대답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크게 불어났고 매우 강해졌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산파들의 집안을 번성하게 하셨다.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바로는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 아이는 모두 강물에 던지고 여자 아이들만 살려 두라고 명령을 내렸다.

// 출애굽기는 일흔명의 이스라엘 가족이 이집트에 내려간 사건을 언급하면서 시작한다. 일흔명의 일가가 이집트로 갔는데,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스라엘과 열두 아들의 이름들은 족보에나 남았을 것이다. 요셉의 이름도 역사의 한 페이지에 묻혀버렸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긴 세월동안 번성했다. 주류 이집트 사람들보다 수적으로 많아졌던 모양이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이런 이스라엘을 견제하기 위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강제 노동을 시켰다. 목축을 하며 번성하던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에 시달리는 노예로 전락했다. 그래도 이스라엘 자손은 수적으로 계속 번성했다. 이집트 왕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번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에 남자 아기가 태어나거든 죽이라고 산파들에게 명령했지만, 십브라와 부아를 비롯한 산파들은 바로의 명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남자 아기들도 살려주었다. 결국 바로는 남자 아이는 모두 강물에 던지라는 명령을 내렸다.

// 일흔 명에서 이백만 명으로 (남자만 육십여만 명). 애굽에 내려간 이스라엘의 역사는 자손의 번성으로 집약된다. 몇 년, 몇 백 년이 지났는지 언급하는 대신 이스라엘 자손의 번성에 초점을 맞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제국의 우산 아래서 번성하도록 지켜 주셨다. 요셉 때에는 이집트 바로의 도움을 받으면서,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는 이집트에서 노예 신분으로 전락했지만 번성하도록 하셨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지켜 가신다. 이땅에서 성도의 삶도 마찬가지다. 세상에서 부하게 살아가게도 하시지만, 세상에서 비천하게 살아가게도 하신다. 사실 요셉이 살아 있을 때에도 이스라엘 자손은 이집트의 주류가 아니었다. 나그네였다는 것을 기억하자.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성도도 세상의 주류는 아니다. 나그네임을 기억하자.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세상 조류를 거스리는 산파의 삶을 살아내라고 하신다.

    

누가복음 24:36-53 읽기

36-43 예루살렘에 제자들이 모여, 시몬도 예수를 보았다고 말하고, 엠마오에서 온 제자들도 예수를 만났다고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몸소 그들 가운데 오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를 보고 유령인 줄 알고 놀라고 무서워 떨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당황하느냐?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리고 손과 발을 보여주시며,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던 예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살과 뼈가 없는 유령이 아니라 살과 뼈가 있는 육체로 살아나셨다고 하시며 자신을 만져보게 하셨다. (그제서야)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기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고 있는 제자가 있자, 예수께서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명하셨다. 그들이 예수께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예수께서 받아서 잡수셨다.

44-49 예수께서 그들에게 성경에 기록한 예수께 관한 모든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상기시켜 주셨다. 그리고 그들이 성경을 깨달을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일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며, 제자들이 이 일의 증인이라고 선언하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니, 제자들에게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 성에 머물러 있으라고 명령하셨다.

50-53 예수께서는 그들을 베다니까지 데리고 가셨다. 그곳에서 손을 들어 그들을 축복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을 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예수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입을 때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날마다 성전에서 지냈다.

// 승천! 누가는 9장 51절에서 예수께서 승천하실 날이 다 되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가시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기록한다. 예수의 최종 목적지는 예루살렘도, 골고다의 십자가도 아닌 ‘하늘’이었다. 예수의 부활도 끝이 아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람을 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는 일, 그리고 제자들이 이 일의 증인이 되는 일, 제자들이 이 일의 증인이 되기까지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는 일은 모두 승천하신 예수의 일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가가에 못박혔다. 사는 것은 성도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도 안에서 살고 계신다. 성도의 삶은 성도를 사랑하셔서 성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성도의 최종 목적지도 ‘하늘’이다. 하나님의 나라요 주님의 나라다. 주님의 다스림이다.

// 승천하시기까지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에게서 하셨던 것처럼, 제자들에게 성경을 깨달을 수 있도록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그리고 지금도 보혜사 성령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성도가 성경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성도의 마음을 열어 주시는 것이다. 물론 성도가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있는 능력도 성령께서 주신다. 위로부터 오는 능력이다. 성도는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온전히 입을 때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며, 날마다 주님의 이름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하늘의 것을 사모하는 부활신앙이다.

누가복음 24:13-35 읽기

그날, 무덤이 비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날, 두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둘은 예수의 죽음에 대해 서로 이야기 하면서 길을 가고 있었다. 예수께서 가까이 가서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그 둘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무슨 얘기를 주고받는지 물었다. 둘 중에 글로바라는 사람이 예수께 지난 며칠 동안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정말 모르냐고 반문했다.  글로바는 예수께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예수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였는데,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예수를 넘겨주어서 사형선고를 받게 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고 대화를 이어갔다. 자신들은 예수야 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요, 자신들은 예수에게 소망을 걸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예수가 죽은지 사흘이 된 날 몇몇 여자들이 새벽에 예수의 무덤에 갔다가 예수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천사들이 예수가 살아 계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과 함께 있던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여자들이 말한 대로 예수의 시신을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니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한 후,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에서부터 성경전체에서 예수께 관하여 써 놓은 일을 그들에게 설명하셨다.  

그들은 엠마오 가까이 이르렀다. 예수께서는 더 멀리 가는 척하셨다. 그들은 예수를 만류하여 엠마오에서 묵고 가시라고 초대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초청에 응하셨다. 식탁에 앉으신 예수께서는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그때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엠마오로 오는 길에서, 예수께서 성경을 풀이하여 주셨고, 자신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열한 제자와 또 그들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들도 예수께서 시몬에게 나타나셨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엠마오에서 돌아온 두 사람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예수를 알아보게 된 일을 간증하였다.

//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마음이 뜨거워졌다. 예수의 설명이 없이는 성경 말씀을 믿는 마음이 무딜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 마찬가지로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성도라 해도 성경 말씀을 온전히 깨달을 수 없다. 말씀을 펼 때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이유다.

// 엠마오에 도착해 저녁을 먹던 (아침에 출발했다면 점심이었을 수도 있으나) 두 제자는, 예수를 알아보자 마자, 그 길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깜깜한 길을 걸었을 것이다. 달밤이었을까? 주께서 친히 설명해 주신 말씀이 그들이 가는 길에 빛이요, 그들의 발에 등이었을 것이다. 우리 인생의 길에도 주의 말씀이 내 길의 빛이요 내 발의 등이다.

// 부활하신 예수! 시몬 베드로에게도 나타나시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동행하시고. 더 이상 물리적 제한을 받지 않으신다.  시공을 넘어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린다.

누가복음 24:1-12 읽기

한 주의 첫날 이른 새벽, 여자들은 준비한 향로를 가지고 예수의 시신을 넣어 둔 무덤으로 갔다. 무덤에 도착한 여자들은 무덤 입구를 막고 있던 돌이 굴려져 나간 것을 보았다. 여자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예수의 시신이 없었다. 당황하는 여자들에게 눈부신 옷을 입은 두 남자가 나타났다. 여자들은 두려움에 얼굴을 숙이고 있었는데, 그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왜 살아 계신 분을 무덤에서 찾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 남자들은 예수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 하신 말씀, 곧 ‘인자는 반드시 죄인의 손에 넘어가서, 십자가에 처형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 는 말씀을 상기시켜 주었다. 여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회상하였다. 무덤에서 돌아온 여자들은, 열한 제자와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무덤에서 있었던 일을 전했다. 무덤에 갔던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외에 다른 여자들도 있었다. 모두 사도에게 무덤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그러나 사도들은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예수의 부활은 사도들에게 어처구니없게 들렸다. 그러나 베드로는 무덤으로 확인하러 달려갔다. 몸을 굽혀서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시신을 감았던 삼베만 놓여 있었다. 베드로는 여전히 이상히 여기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 여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회상했다. 두 남자(천사)의 권고에 따라 예수의 말씀을 기억한 여자들은 당황에서 확신으로 예수의 부활을 제자들에게 전했다. 그러나 사도라고 하여도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지 않으면, 베드로처럼 현장을 방문한다 해도 예수의 시신이 없어진 사건을 그저 이상히 여길 수밖에 없었다. 부활의 아침, 예수의 말씀보다 더 확실한 부활에 대한 증언은 없을 것이다. 성도는 말씀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보혜사 성령께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께서 이미 하신 말씀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결국 성경 말씀을 읽지 않으면, 상기할 말씀이 없는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성경을 읽고 순종하는 사람이다.

누가복음 23:44-56 읽기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셨다. 숨을 거두시기 전, 해는 빛을 잃어, 낮 열두 시쯤부터 오후 세 시까지 어둠이 온 땅을 덮었다. 성전의 휘장은 한가운데가 찢어졌다. 예수께서는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이것을 목격한 백부장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가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고백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구경하러 모여들었던 무리들은 모두 가슴을 치면서 돌아갔다. 예수를 아는 사람들, 예수를 따라다닌 여자들은, 멀찍이 서서 이 일을 지켜보았다.

공의회 의원이요 착하고 의롭다는 평가를 받은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요셉은 공의회에서 예수를 빌라도에게 고발하기로 한 결정에 찬성하지 않았었다. 그는 유대 사람의 고을 아리마대 출신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이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했다. 빌라도의 허락을 받은 요셉은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삼베로 싼 다음, 바위를 파서 만든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무덤에다 예수의 시신을 모셨다. 그날은 준비일이고 안식일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따라다닌 여자들은 예수가 어디에 안장되었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향료와 향유를 준비했다. 여인들은 예명대로 안식일에 쉬었다.

// 45절 “성전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하나님의 시점이다. 모든 눈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에게 쏠려 있었는데, 바로 그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을 누가 어떻게 알고 복음서의 저자들에게 알려 주었을까? 지진과 흑암과 달리 아마 성전에 남아 있던 제사장 몇명만이 목격했을 이 사건을 마태 마가 누가 모두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 히브리서 저자는 휘장이 찢어진 사건을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제사장이 계십니다.” 하고 정리한다.

// 예수께서는 물리적 휘장을 뚫지 않으셨다. (성전 휘장을 찢으신 분은 성부 하나님이지만) 성자 예수께서는 자기 몸을 휘장처럼 내어 주셨고, 뚫려 주셨다. 곧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는 길은 나를 죽이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도, 자신을 찢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미 보여주신 길이다. 부활의 빵빠레가 울려 퍼지기까지는 죽음의 길이다. 죽음 없이 부활에 참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