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3:26-43 읽기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지도자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보고 남을 구원하였으면 자기나 구원하라고 비웃었고, 병정들은 예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면 너나 구원하라고 조롱했고, 십자가에 달린 죄수 중 하나도 예수께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 하고 모독했다. 과연 구원이란 무엇인가?

세상사람들은 구원을 자기 생명의 연장정도로 이해한다. 유대 종교지도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구원은 용서함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첫마디는 ‘용서’였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구원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곳에서, 용서를 받는 시간에 이루어진다. 그곳, 그 순간은 성도의 육체적 생명 연장과 상관이 없는 곳이다. 용서받고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순간이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 말씀을 가장 가까이서 들은 두 죄수 가운데 한 사람은 용서의 선언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소원했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이 죄수는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보다, 울며 예수를 따라온 여인들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복음을 덜 배웠겠으나, 주님의 나라, 구원에 대해 더 바르게 이해했다. 용서받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구원이다. 곧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구원의 방법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하고 가르치신 그대로 친히 실천하셨다. 주님의 나라, 주님께서 다스리는 나라에서 주님을 섬기며,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하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성도가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라, 밀알 하나로 땅에 떨어져서 죽는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를 섬기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주실 것이다. 구원이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https://www.youtube.com/watch?v=RGB2E0NzO2A

이미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셔서 다스리시는 주님, 주님의 나라에서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주여, 주여!” 하고 불렀지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라는 심판을 주님께 받게 되는 것보다 더 큰 수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주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게 하소서.

누가복음 23:13 읽기

13-16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을 불러모아 놓고 “그대들은 예수가 백성을 오도한다고 고발하였으나, 내가 그대들 앞에서 친히 예수를 신문하였지만, 그대들이 고발한 것과 같은 죄목은 아무것도 예수에게서 찾지 못했다. 헤롯에게 보냈지만 헤롯도 유죄 증거를 찾지 못하고 예수를 우리에게 돌려보내 왔다. 예수는 사형을 받을 만한 일을 하나도 저지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예수를 매질이나 하고 놓아주겠다.” 하고 말했다.

18-25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 대신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요구했다. 바라바는 예루살렘 성 안에서 일어난 폭동과 살인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었다.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자고 다시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거듭해서 외쳤다. 빌라도는 세 번째로 예수는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를 찾지 못했으니 그냥 매질을 하고 놓아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결국 목소리가 큰 사람들의 소리가 이겼다.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대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는 그들의 뜻대로 하게 넘겨주었다.

// 세상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들이 이긴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의 목소리를 아예 내지 않으셨다. 빌라도가 예수께 신문만 하고 심문을 하지 않은 까닭도 있겠지만, 누가는 피고나 변호사의 존재는 무시한 채, 원고(고발자)와 재판관(빌라도)의 목소리만 기록한다. 재판은 결국 목소리가 큰 고발자들의 승소로 끝이 났다.

// 빌라도가 예수를 매질이나 하고 놓아주겠다고 판결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죄면 무죄지, 매질의 벌을 받아야 할 죄목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누가는 빌라도가 고발자들이 고발한 내용에 대해서는 분명 죄를 찾지 못했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불의한 재판관) 빌라도는 첫 재판에서 예수를 깨끗하게 ‘무죄 방면’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항소에 항소를 받아 결국 고발자의 뜻대로 사형을 선고한다. 불의에는 작고 큼이 없다.

// 예수께서는 ’의’를 이루시기 위해 자신을 향한 불의에 대해서는 침묵하셨다. 죄인들을 의롭게 하시기 위해 자신에게 행해지는 불의를 감당하셨다.

누가복음 23:1-12 읽기

1-5 공의회에 모였던 온 무리가 예수를 빌라도 앞으로 끌고 갔다. 그들은 예수가 유대 민족을 오도하고,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반대하고, 자칭 그리스도, 곧 왕이라고 했다고 빌라도에게 고발했다.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요?” 예수께서는 빌라도의 말이 맞다고 대답했다.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들에게 예수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가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온 유대를 누비면서 백성을 선동하고 있다고 재차 고발했다.

6-12 빌라도는 예수가 갈릴리 사람이라는 소리에, 마침 예루살렘에 와 있는 갈릴리를 관할하는 헤롯에게 예수를 보냈다. 헤롯은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했다. 헤롯은 예수가 어떤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싶어했다. 헤롯은 예수께 여러 말로 심문했으나, 예수께서는 헤롯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헤롯에게도 예수를 맹렬하게 고발하였다. 헤롯은 자기 병사들과 함께 예수를 모욕하고 조롱한 후, 예수에게 화려한 옷을 입혀서 빌라도에게 도로 보냈다. 헤롯과 빌라도는 서로 미워하는 사이였으나, 오늘은 한통속이 되었다.

// 공의회에서 예수께 신성모독으로 유죄를 선고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빌라도에게 고발한다. 그런데 선동죄, 탈세조장죄, 반란죄로 고발했다. 빌라도는 예수께 달랑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다. 예수가 그렇다고 하자 고발자들에게 예수의 무죄를 선고했다. 예수에게 유죄를 선고한다면 유대 총독으로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었을까?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예수의 선언에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심문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귀차니즘이 발동 예수를 헤롯에게 보냈다.

// 헤롯은 예수를 기적을 베푸는 자로 듣고 있었는데 직접 보게 될 기회를 얻자 기뻐했다. 그러나 예수는 어떤 기적도 보이지 않았고, 헤롯에게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세례 요한과 달리 예수가   자신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안) 헤롯은 예수를 모욕하고 조롱한 후 예수에게 화려한 옷을 (아마도 자기의 왕복을) 입혀서 빌라도에게 도로 보냈다. 헤롯 역시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 누가는 서로 적대적이었던 헤롯과 빌라도가 한통속이 되어 예수가 미친 사람이는 결론을 내렸다고 기록한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들은 한통속이다. 세상은 한패가 되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듣지 않는다. 공의회에서 잘못된 판결을 내렸듯이, 어쩌면 교회에서 잘못하고 있기 때문에 복음이, 복음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ㅠㅠ

누가복음 22:54-71 읽기

54예수는 붙잡혀서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갔다.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뒤따라갔다.

55-62베드로는 한 하녀의 질문을 받았다. 베드로는 예수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부인했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의 질문을 받았다. 베드로는 예수와 한패라는 것을 부인했다. 베드로는 또 다른 사람의 질문을 받았다. 베드로는 예수와 함께 있었다는 고발과 갈릴리 사람이라는 그 사람의 주장에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소 하고 부인했다. 그러자 닭이 울었다. (새벽 이경이 되었다.) 주님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똑바로 보셨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닭이 울기 전에 세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대제사장 집 밖으로 나가서 비통하게 울었다.

63-71 예수를 끌고 간 사람들이 예수를 때리고 모욕하였다. 날이 밝자, 백성의 장로회 사람들이 예수를 공의회로 끌고 가서 심문했다. 그들은 예수에게 “그대가 그리스도냐?” 하고 물었다. 예수는 내가 그렇다고 시인하더라도 그들이 믿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오히려 예수께서 내가 그리스도입니까 하고 물어봐도 그들이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대신 자신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에게 그러면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물었다. 예수께서 내가 하나님이 아들이라고 여러분이 묻는 말에 맞다고 답하셨다. 그들은 더 이상 예수를 심문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예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곧 하나님을 모욕하는 증거로 삼기로 했다.

// 베드로는 당시 가장 낮은 자들의 질문(심문)을 받을 때, 분명 그의 눈은 주님을 주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하고 만다. 그것도 세번 씩이나. <<예수께서 물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베드로는 물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게 해 달라고 예수께 요청했고, 주님이 오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물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갔다. 그러나 베드로는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물에 빠졌다. 주님은 베드로를 살려주시고 말씀하셨다.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 주님을 멀찍이 따라와 주님을 주시하고 있었어도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사람의 믿음이다. 주님의 얼굴을 바로 봐야 한다. 주님이 베드로를 똑바로 봐 주셨을 때, 베드로는 비통하게 울었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가슴을 치며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기도한 세리를 의롭다 하셨다.

// 예수는 심문을 받으실 때, 오히려 심문자가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주님은 하나님 앞에 계셨다. 베드로가 주님을 멀찍이 따랐다면, 예수는 하나님과 가까이, 아니 함께 계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누가복음 22:39-53 읽기

39-46 예수께서 유월절 만찬장에서 나와,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제자들도 예수를 따라갔다. 올리브산에 이르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말씀하시고, 그들과 떨어져 혼자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천사가 하늘로부터 나타나 힘을 북돋우어 주었다. 예수께서 고뇌에 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 같이 되어서 땅에 떨어졌다.] 예수께서 기도를 마치고 제자들에게 와서 보시니, 제자들이 슬픔에 지쳐서 잠들어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왜들 자고 있느냐?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서 기도하여라” 하고 다시 말씀하셨다.

47-5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일어나서 기도하여라” 하고 말씀하실 때, 한 무리가 나타났다. 열둘 가운데 하나인, 유다가 무리를 이끌고 왔다. 유다는 입을 맞추는 인사를 하려고 예수께 가까이 갔다. 예수께서 유다에게 “너는 입맞춤으로 인자를 넘겨주려고 하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 주위에 있는 제자들이 “주님, 우리가 칼을 쓸까요?” 하고 물었다. 그때 제자 중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의 오른쪽 귀를 칼로 쳐서 떨어뜨렸다. 예수께서 “그만해 두어라” 하고 말씀하시고, 그 사람의 귀를 만져서 고쳐 주셨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너희가 강도를 잡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서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 왜 잡아가지 않았느냐? 지금은 어둠의 권세가 판을 치는 때니,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해라” 하고 말씀하셨다.

// 올리브 산에서, 예수께서는 기도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도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슬픔에 지쳐서 잠들었다. ‘슬픔에지쳐서’는 ‘억지로 (기도)하느라’ 지쳐서’ 라고  의역할 수 있겠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간절함이 없었다는 뜻이다. 내 뜻에 매달리면 기도가 아니다. 시험에 빠지고 만다.

// “그러나 지금은 너희의 때요, 어둠의 권세가 판을 치는 때다.” 이 마지막 구절을 ‘지금은 어둠의 권세가 판을 치는 때니 너희 뜻대로 해라’ 하고 의역해 보았다. 방금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기도하셨다. 어둠의 권세에 사로잡혀 자기 뜻대로 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기 뜻을 버리는 예수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예수께서는 빛으로 세상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빛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 빛 가운데서, 자신들의 악한 행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다.” 세월을 아끼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진리를 따르는 것이다. 빛으로 나아 오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행하는 것이다.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 할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세월을 아낄 수 있다. 슬픔에 지쳐서 기도하지 못한 제자가 칼을 휘두른 것과 대제사장들의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가지고 온 것과 뭣이 다르랴!